산으로가는길

   
   
 
 

백두대간13구간

신의터재-윤지미산-화령재-봉황산-비재-갈령삼거리-갈령

★일시:2000.7.19
★참가:2명(박병준,임상운)
★날씨:비
★교통:승용차 이용(포항-경산-추풍령-화동면-신의터재) 195km, 3시간 30분 소요
★산행코스
신의터재(04:13) -사거리 임도(04:36) -복숭아밭(05:04) -무지개산(05:50) -판곡저수지 갈림길(06:43) -437.7봉(07:05) -윤지미산(조식)(07:20~07:50) -고추밭옆 임도(08:10) -넓은 임도(08:24) -화령재(08:42~09:00) -산불감시초소(10:05~10:20) -봉황산(10:54~11:16) -중식(12:00~12:36) -459봉(12:50) -비재(13:00) -510봉(13:18) -암릉구간(14:05) -못재(14:30) -헬기장(14:35~14:45) -암릉우회(15:00) -갈령삼거리(15:17) -갈령(15:50)
=== 도상거리:21.7km+0.8km= 22.5km,   총소요시간:11시간 37분 ===

★GUIDE

6,7월로 접어 들면서 유난히도 비를 많이 만난다.
신의터재를 출발하면서부터 만나기 시작한 비는 갈령에 이르기까지 줄곳 우리를 따라 다닌다.
오늘은 보충수업하는 날이다. 이미 작년 9월쯤에 이 구간을 통과했어야 했지만...
게으른 일상은 이제야 겨우 묵은 칼을 뽑아 들고 장도에 나선다. 하늘도 그 게으름을 탓하는지 산행 내내 비를 뿌린다. 마침 함께 대간을 타던 박병준氏도 이 구간을 빼먹은 터라 동행이 되어 오랜만에 호젓한 산행을 하게 되었다. 박병준氏는 대간을 시작할 때부터 줄곳 산행을 함께 해 왔으며 백두대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열심히 산을 타시며 틈틈이 대간의 완주를 위하여 뒷산을 오르내리며 뒷심을 키우고 계신다고 하신다.
이번 구간인 신의터재~갈령 구간은 추풍령에서 화령재에 이르는 해발 200~400m 대의 고원지대인 일명 중화지구대를 벗어나면서 빼어난 암봉미를 자랑하는 속리산일대로 접어드는 길목이라 할 수 있다.

추풍령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면서부터 차창에 이따금씩 빗방울이 묻어 나기 시작한다. 박병준氏가 일러 주는대로 차를 몰아 상주시 화동면 소재지를 지나 신의터재 고갯마루에 도착한 시간이 3시50분, 포항을 출발하여 약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신의터재는 해발 280m의 야트막한 고개로서 상주시 화동면과 내서면을 연결하고 상주방면으로 이어진다. 고갯마루에는 신의터재임을 알리는 대형 표석이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임진왜란때의 의병장 김준신氏의 공을 기리는 유적비인 "의사 절곡 김선생 준신 유적비(義士 節谷 金先生 俊臣 遺蹟碑)"가 서 있다. 신의터재 표석 뒷면으로는 신의터재 내력이 적혀있다.

깜깜하던 밤하늘이 갑자기 환해 지는가 싶더니 이내 번개가 번쩍거리며 "우르릉 쾅쾅" 천둥을 동반하며 가는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하며 지레 겁부터 준다. 그래도 갈 길은 가야지....
새벽 4시 13분, 판쵸를 덮어쓰고 비장한 각오(?)아래 첫 발을 내딛는다. 버스정류장 안내판 뒤로 있는 우마차길로 접어들면서부터 비는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10여m 후에 우측 능선으로 접어드는 희미한 숲길이 있지만 그냥 지나쳐서 조금 더 전진하게 되니 아랫말의 불빛이 환하게 내려다 보이고 이 지점에서 우측으로 낡은 표지기 하나가 숲으로 붙어 대간 진입로임을 알리고 있다. 빼곡히 들어찬 잡목 숲을 헤치고 동쪽으로 방향을 꺽어들어 오르니 이내 무덤 몇 기가 나타난다. 아직까지는 야산 지형인 탓에 숲은 잡목으로 가득차 있고 간간이 나타나는 표지기를 따라 23분 정도 진행하니 좌우로 이어지는 길이 확연한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를 지나 채 5분이 되지 않아 잡목숲은 가지런히 정돈된 전나무 숲지대로 바뀌게 되고, 여기서부터 길은 확연해지기 시작하며 전나무 숲을 지나 10분 후에 왼쪽 선교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타나고 다시 10분 후에 우측으로 지능선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방향을 왼쪽으로 급선회하는 지점이 나타난다. 여기서 5분 정도 더 내려서게 되니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는 밭이 나타나게 된다. 밭 가장자리로 길이 잘 나있고 남북으로 이어지는 넓직한 길이 있는데 남쪽으로 이어져 있는 길이 확연하게 나 있고 초입에는 백두대간 표지기가 한 개 걸려있다. 하지만 여기서 길은 왼쪽(북)으로 접어 들어야 한다. 남쪽의 넓직한 길을 따르게 되면 장자봉 방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어서 다시 15분 정도 진행하게 되면 다시 방향이 왼쪽으로 급선회하는 지점을 만나게 되고 이 지점쯤이 지형도상에서 무지개산을 향해 방향이 전환되는 지점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이제 겨우 하늘이 희끄므레 밝아오기 시작하고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빗줄기로 인해 메모장이 한쪽 끝에서부터 젖어들기 시작한다. 가끔씩 지도를 펼쳐 들기도 하지만 정확한 지형을 읽기가 곤란하고 대충의 방향만 가름하여 표지기만 열심히 쫒는 형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한 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이미 온 몸은 물에 빠진 생쥐꼴이고 판쵸 속에서는 싸우나가 진행중이다. 그래도 베낭이 더 이상 젖어들지 않도록 열심히 덮어쓰고 가야한다. 신발 속에서는 물이 강을 이루고 한발씩 옮길 때마다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이미 팬티까지 젖은 상태다.
방향이 북으로 꺽이는 지점을 지나 5분 거리에 사거리 소로길이 나타나고 다시 4분후에 소로길이 한번 더 나타난다. 이 갈림길은 좌측의 선교리와 우측의 어산리를 넘나들던 길이었던 것같다. 그리고 다소 경사가 높아지는 길을 15분 가량 더 진행하게 되면 우측으로 무지개산(437.8m)을 두고 방향이 서쪽으로 꺽이는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무지개산 직전의 봉우리에 이르기 전 사면을 트래바스하여 무지개산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소로가 오른쪽으로 보이고, 대간길은 왼쪽으로 트래바스되며 이어진다. 신의터재를 출발하여 무지개산 직전까지 1시간 37분이 소요되었다.

밝아오는 여명 아래 빗님도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판쵸를 벗어 던지니 한결 살판난다. 평지길을 수더분하게 15분 가량 내려서니 사거리 안부가 나타나고 내림길상태도 좋아 보인다. 왼쪽 선교리의 중인초등교와 오른쪽 산대기못으로 내려서는 계곡길이다. 다시 5분후에 무덤이 있는 사거리 갈림길 하나를 더 통과하게 된다. 대간의 맥이 낮게 흐르는 지역이고 주변의 마을과 인접한 야산지형인 관계로 전체적으로 소로길이 발달해 있고 유난히도 대간상에 무덤이 많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사거리안부에서 다시 33분 진행을 하게 되니 왼쪽 아래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환하고 표지기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정작 정면으로 난 대간길은 잡목숲으로 인해 그 초입이 막혀있는 지경이다. 왼쪽 아래로 내려서는 길은 판곡리쪽에서 윤지미산을 오르는 길로 많이 이용되는 듯하다. 정면 수풀을 헤치고 10m만 전진하게 되면 넓직한 무덤이 나온다. 이제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세로 제법 가파른 길을 올라서야 한다. 앞서가는 박병준氏가 나뭇가지를 줏어 들고 열심히 거미줄을 걷어내며 등산로를 삐집고 나온 나뭇가지의 물방울을 털어주는 덕분에 쉽게 따라 오른다.
오른쪽으로 437.7봉을 살짝 빗겨 왼쪽으로 길이 나 있고 25분 가량 비지땀을 흘리며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선다. 작은 바위 몇 개가 돌출되어 있고 뒤로 돌아본 전망은 일품이다. 오른쪽 아래로 화서면, 화동면 일대의 고원지대는 짙은 안개가 겹겹이 깔려있고 건너편의 무지개산은 해발 400m의 산 답지 않게 산허리쯤에 하얀 구름을 드리우고 뾰족하게 솟아있다. 이른 아침 고산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날씨쯤이라면 건너편 무지개산 마루에 진짜 무지개가 걸려 있을만도 하고 오른쪽 아래로는 판곡저수지의 그림같은 전경이 펼쳐질 듯도 하건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걸까?
이후 평지로 이어지는 듯하더니 다시 작은 봉우리 두 개를 거푸 넘어서니 윤지미산(538m) 정상이 나타난다. 표지기들이 빼곡하고 역시 작은 돌뿌리 몇 개가 돌출되어 있고 그 옆으로는 평평하여 여럿이 쉬어가기도 좋을법하다. 주변은 숲에 가려 조망은 별로이다. 무지개산 옆을 지나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속옷과 양말을 벗어 쥐어짜니 족히 한 사발은 될 정도로 질퍽한 국물(?)이 흘러나온다. 여기서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7시 50분 화령재를 향하여 내려서기를 시작한다.
가파른 내리막을 20분 내려서니 탐스럽게 열린 고추밭 옆으로 임도가 나타난다. 고추밭을 지나 다시 야트막한 산을 하나 넘어서면 15분만에 이번에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을 만큼 넓직한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 오른쪽 아래로는 너덜밭이 계곡 아래로 한없이 떨어진다. 임도를 따라 100m정도 진행하게 되면 다시 숲길로 접어들게 되고 이 임도는 신봉리로 내려서서 화령재 아래의 마을 표석이 있는 곳까지 이어진다. 숲길로 접어들어 채 5분이 되지 않아 밋밋한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고 풀숲 속에 삼각점이 하나 있다.(NO 045) 왼쪽 아래로 신봉리를 내려다 보며 완만하게 내려서다보니 차량 지나는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이내 정자가 있는 화령재에 도착한다. 윤지미산에서 50분 소요.
화령재(320m)는 조선시대때 상주시 화서면 소재지가 화령현 이었는데 이 화령현을 넘나들던 고개라 하여 화령재라 이름 지어졌다 한다. 도로 건너편으로 화령재표석이 있고 그 옆으로 화령정이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으며 정자는 비박하기에 안성맞춤이고 실제 양초를 피운 흔적이 있는걸로 봐서 누군가가 최근에 하룻밤을 지새운 모양이다. 정자에 올라서니 1990年 6月 상주군수 명의가 있는 화령정 건립비문이 빼곡한 글씨로 한켠에 걸려있다. 느긋한 휴식을 취하며 이리저리 카메라를 작동시켜 본다.

정각 9시, 25번 국도를 따라 보은방면으로 5분정도 내려서니 갈령을 지나 속리산 문장대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나고 그 건너로 마을표석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으로는 "신봉2리", 오른쪽으로는 "성곡리"라고 표시된 마을 표석이 마주 보는 지점에서 또 한번 포즈를 취하고 성곡리쪽 표석 뒤로 난 야트막한 능선을 올라선다. 능선 초입부분은 잡풀들이 들어차 있어 헤쳐 나가기가 힘들고 과연 대간길이 맞는가 하고 의심이 갈 정도로 잡목이 베낭끈을 잡아 끈다. 비는 그쳤지만 풀숲을 헤쳐 나오느라 이내 온 몸이 젖어들고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은 조금만 스쳐도 여지없이 물벼락을 선사한다.
능선은 완만하게 북서쪽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산불감시초소가 가까워 지면서 다소 경사가 급해지며 힘겹게 올라야 한다. 드디어 산불감시초소가 반듯하게 서 있는 지점에 다다르니 화서면 일대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바로 아래로 화령초등교가 선명하다. 화령재를 출발하여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제부터 지루하게 이어지던 야산지형을 벗어나 비로서 험준한 대간길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되는 초입이기도 하다. 아래로 화령재에서 나지막하게 고도를 높여가며 올라서는 능선이 빤하고 그 건너로는 윤지미산 허리쯤에 낮은 구름이 깔려있다. 서쪽으로 약 1.8km 지점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봉황산 정상부가 선명하지만 제법 멀리 느껴진다. 잠시 다리쉼을 하는 동안 윤지미산은 몇 번씩이나 구름옷을 갈아 입으며 패션쇼를 연출하고 있다. 여기서 봉황산까지는 급한 오르막을 올라서야 한다. 20분 정도 진행하니 암봉이 나타나고 암봉우회후 다시 능선안부로 올라선다. 여기서 10분 진행후에 왼쪽으로 완연한 내림길이 나타나며 상현리에서 백운사를 거쳐 봉황산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여기서 5분정도 더 나서니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봉황산(740.8m)이다. 산불감시초소에서 35분 정도 다리품을 팔았다.
정상에는 97년 6월1일 상주시청산악회에서 설치한 화강암표석이 예쁘장하게 자리하고 있고 그 뒤로 삼각점(관기 303)과 나무팻말도 서 있다. 비온 후라서 인지 북서쪽으로 선명하게 속리산 천왕봉이 성큼 다가와 가깝게 느껴진다. 정북 방향으로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대궐터산과 암릉 7부능선쯤에 세워진 극락정사가 간헐적으로 구름사이로 멋지게 연출되고 있다. 이리저리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순간에도 주위조망은 구름으로 인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대궐터산은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그 모습을 몇 번씩이나 감추곤한다.
오랜만에 단출하게 산행을 하다보니 지체시간은 길어져도 한껏 여유를 부리며 늑장을 부려본다.

11시 16분 비재를 향하여 내려서기를 시작한다. 봉황산 정상에서 5분을 진행하니 암릉이 나타나고 우회한다. 이후 길은 아주 수월하게 진행되고 속리산을 계속 시야에 두고 진행하게 된다. 간간이 빼어난 암릉미를 자랑하는 대궐터산도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암릉을 지나 40여분을 더 진행하다 459봉 못미쳐의 비재에서 장자동으로 올라서는 비포장도로가 보이는 지점의 바위에 걸터앉아 여유있게 점심식사를 한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전망도 트이는 지점이라 쉬어가기에는 제격인 곳이다. 베낭을 풀어 헤치고 젖어있던 잡동사니들을 이곳 저곳에 펼쳐놓고 말린다. 옷도 벗어던지고, 양말도 벗어 쥐어짜니 또 한웅큼의 구정물이 흘러내린다.
12시 36분, 주섬주섬 베낭을 정리하고 비재를 향해 다시 내려서기를 시작. 능선 좌우로 반짝거리는 줄을 쳐놓은 곳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데 알고 봤더니 송이버섯채취를 위해 채취금지를 위한 경고판이 붙어있다. 무덤터가 넓직한 지점을 지나서자마자 비재 직전의 459봉에 다다른다. 이후 10분 정도 가파르게 흘러내리는 능선을 내려서니 비포장도로가 관통하는 비재도착. 봉황산에서 출발하여 도중에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1시간 10분이 소요된 셈이다. 비재는 나는 새의 형국이라 하여 비조(飛鳥)재, 비조령이라 불렸으나 최근들어 비재라고 이름이 굳어졌다 하며 상주시 외서면의 동관과 화남면을 연결하는 길이다.

지체없이 가파른 급경사에 올라붙어 오름길을 재촉한다. 간간이 들려오던 천둥소리는 급기야 굵은 소나기를 뿌려대기 시작한다. 오르막길에서 소나기를 맞으니 오히려 시원할 지경이다. 그러나 산행을 시작한지 이미 9시간을 넘어서고 있고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사력을 다해 15분 정도를 올라서니 오르막 끝지점에 무덤1기가 자리하고 있고 능선에 올라서니 510봉이다. 이후 힘겹게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서고 암릉구간을 우회하게 되니 세 번째 봉우리가 위협적인 기세로 버티고 서 있다. 거의 기력이 쇠진한 탓에 보행속도는 점점 늦어지고만 있다. 마지막 바위암봉구간은 다행히도 오른쪽으로 돌아서는 우회로가 있고 사면을 돌아서니 후백제 견훤의 전설을 간직한 못재가 왼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못의 흔적은 찾을수 없고 넓직하게 풀밭이 전개되는 곳이다. 비재에서 올라서기를 시작하여 1시간30분 소요.
이후 5분을 나서니 넓직한 헬기장이 나타난다. 다행히도 비는 그치고 피곤한 육체는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니 일어서기가 싫어진다. 다시 산사태 흔적이 있는 곳을 지나 15분 정도 진행하니 암릉을 우회하는 지점이 나타나고 다시 암릉구간을 스트레이트로 세 군데를 더 지나서야 일전에 지형을 익힌 갈령삼거리에 도착한다. 못제를 지나 휴식시간 포함하여 47분이 소요되었고 엄청나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구간이다.

갈령삼거리에는 형제봉과 갈령으로 내려서는 초입에는 표지기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포항 셀파가이드"에서 갈령삼거리라고 적힌 나무 표지판을 설치해 두기도 하였고 상주소방서에서  설치한 "속리산 65번 구조요청점" 이라고 표시된 간판이 걸려있다.
이제 지루하기만 하던 오늘구간은 끝이 나고 갈령으로 내려서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다소 마음의 위안이 된다. 갈령으로 내려서는 구간에는 괴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곳곳에 가로막고 있으며 지난번 이곳에 올라설 때 어둠속에서 만났던 모습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하산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인가? 천천히 내려서며 유심히 살펴본다. 갈령삼거리를 지나 25분 만에 넓직하고 깨끗하게 조성된 헬기장을 지나쳐 배수로 홈통을 따라 5분을 내려오니 드디어 갈령에 도착한다. 박병준氏와 자축의 악수를 나눈다. 박병준氏는 구룡령까지 대간을 따라 오르며 유일하게 오늘 구간을 빼먹은 터라 보충수업을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큰재~신의터재 구간을 메워야 한다. 갈령(443m) 고갯마루에는 무식하리만치 큰 표석이 버티고 서 있고 그 뒤로 "갈령도로 개통기념비"가 빛바랜 모습으로 서 있다. 이정표에는 "형제봉 1시간 30분, 대궐터산 1시간 50분" 이라 씌여져 있고 초입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하고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 땀과 비에 찌든 피곤한 육신을 대충 씻어내니 한결 개운해진다. 이제부터는 신의터재에 있는 나의 애마를 회수하기만 하면 된다. 억세게 운이 좋아 박병준氏가 단 한 번만에 갈령을 넘어서는 타이탄트럭을 잡아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니 흔쾌히 허락한다. 상주시청에 근무하는 선녀처럼 예쁘고(?) 착한 아가씨는 출장근무 중이란다. 박병준氏는 열심히 아가씨에게 백두대간을 설명하고 나는 차창밖 풍경에 심취한다. 아가씨의 터프한 운전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러나 아뿔싸! 폭우속을 달리던 차량은 화령재를 넘어 화동면 소재지까지는 잘 왔지만 대단한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아가씨의 착각인지, 목적지 설명이 잘못 되었는지 차량은 어느새 모서면 소재지까지 와 버리고 만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모서면 소재지에 하차. 착한 아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말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급하게 비를 피한다. 모서에서 다시 화동으로 넘어가는 시내버스 이용 후 화동면 소재지에서 신의터재까지 택시를 이용하여 애마회수에 성공. 마른 옷으로 갈아 입고 나니 이제야 살 것같다. 장대비가 퍼붓는 추풍령을 지나 포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다.

===== 끝 =====

신의터재 내력
임난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었고 임난때 의사 김준신(金俊信)이 이 재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임진 四月 二五日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라고 불리었으나 일제때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어산재"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후 광복 五十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져 옛 이름인 "신의터재"로 다시 고친다.
一九九六年 十二月    상주시장

못재
비재와 갈령 삼거리사이 백두대간상에 있는 고원습지로, 넓이는 500~600평 정도 되고 장마철이 아니면 물이 거의 없다. 못제에는 전설이 흐르고 있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대궐터산에 성을 쌓고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황충장군과 싸울 때마다 연전연승하자 황충장군은 견훤이 이기는 비법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 부하를 염탐시켰다. 그 결과 견훤이 이곳 못제에서 목욕만 하면 없던 힘도 저절로 생겨 승승장구한다는 사실과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으로 소금물에 약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황충장군은 부하를 시켜 못제에 소금 300석을 몰래 풀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견훤은 못제에서 목욕을 하고 난 뒤 힘을 잃고 말았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황충장군이 견훤에게 공격을 퍼부은 결과 승리를 얻어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로 보아 당시 물이 풍부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CopyRightⓒ2000-2008 By 산으로가는길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