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열박재-치술령-서라벌골프장-사일고개 ☞지도보기 ☞형남2구간 사진모음

*일시:2004.5.12
*날씨:오전 흐림, 오후 비

*산행상세
열박재-(3.5km/1시간16분)-한전고개-(1.7km/40분)-유공자묘역고개-(3.8km/1시간 25분)-치술령-(3.1km/56분)-686봉-(1.0km/30분)-골프장고개-(2.0km/35분)-사일고개
*도상거리:15.1km *총소요시간: 8시간 41분(순보행: 5시간 22분)

35번국도(열박재)(08:17)-임도따라-월성이씨묘(08:44)-월성최씨묘(08:51)-송전탑(No07)(09:18)-송전탑(No06)(09:24) -송전탑(No04)(09:33)-한국전력공사고개(대우농장숯불구이식당)(09:41)-한전정문(10:00)-철탑공사용 임도접(10:20~42)-오천장씨묘3기(10:47~51)-4거리 갈림길(10:53~11:03)-4형제 위령비묘역(11:05)-2차선 도로고개(11:10~11:25)-송전탑(No103)(11:30)-송전탑(No40)(11:34)-당산마을 갈림길(11:51)-능선마루(중식,12:08~12:35)-당산마을 갈림길안부(12:42)-만화리갈림길 3거리(13:08)-울산망부석(13:12~18)-치술령(13:23~13:32)-769봉(14:07)-헬기장(14:12)-751봉 헬기장(14:15)-686봉(14:30~15:02)-더덕사냥 9분-골프장고개(15:45)-골프장상단 능선진입 초입(15:50~58)-밀양박씨묘(16:02)-주능선(16:12~25)-442.5봉(16:34~40)-사일고개(16:58)

*참가: 백호산악회 24명
강동길, 김승현, 김재권, 박영태, 박준희, 박춘하, 방상래, 성기봉, 신용호, 이경모, 이병목, 임상운, 전준식, 조동범, 정길영, 정태영, 지유영, 천광래, 주영기, 정홍조, 최부근, 최호우, 한백기, 홍일표


=== 망부를 기리는 치술신모의 애틋한 그리움은 비가되어 마루금을 적시고..... ===


▼치술령-정상부엔 박제상의 부인 치술신모를 기리는 신모사지 비석이 있다.(사진은 정홍조, 이경모님)
이번 구간은 35번 국도상의 열박재에서 경주시 외동읍 사일고개까지 진행하게 되고 치술령 자락에 붙기까지의 초반 약 5km 구간은 야산지형을 이리저리 굽돌게 되므로 마치 미로 속을 헤메인 듯하다. 하지만 그 불분명한 야산자락도 어김없이 형산강과 태화강을 물가름하는 면면한 맥(脈)이 흐르고 있었고 백운산 이후 형남기맥의 최고봉을 이루는 치술령 일대의 주능선은 역시나 울산, 경주지역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 훌륭한 명품 능선코스를 이어가게 된다.
치술령 일대에서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와 짙은 안개는 산행 내내 복병이 되어 기맥종주자의 발길을 부여잡고 몇 번의 도돌이표를 찍는 헤프닝을 벌이게 된다. 산행 후반부에 나타나는 외동읍 서라벌골프장 공사장 일대에서는 중장비에 의해 무참하게 난도질 당한 산자락의 신음에 무거운 발길을 옮겨야 했다.

산행 출발지는 경주에서 언양을 넘어가는 35번 국도 고갯마루인 열박재가 된다.
이곳은 지형도에 고개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두서면 자료에 따르면 미호리 북쪽에서 활천리 가정마을로 넘어가는고개를 열박재(咽薄嶺, 悅朴嶺)라 부른다고 하며 이는 백운산의 신라때 이름인 열밝(박)산의 열박에서 나온 말이며 옛 백운산의 이름이 이 고개에 남아 있음이라 한다.
또한 두서면지에 따르면 이곳은 임란 당시 "두서면 열박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경주로 입성하려는 왜병을 당시 경상좌병사 박진, 의병장 정세아, 권응수의 군과 합세하여 열박재에서 복병의 진을 친 후 백병전으로 혈투를 벌여 크게 승리한 것이 "열박전투"라고 전한다. 현재의 열박재는 바로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고 6차선 확장도로가 국도를 가로지르고 있다.
산자락이 시작되는 기맥 초입부로는 철망이 가로막고 있으며 철망 초입부로 최중교님이 걸어둔 형남기맥 표지기가 나풀거리고 있지만 이곳에서 올라서게 되면 길이 제대로 없고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야 하는 고행의 길이란 귀뜸을 받은 터라 고갯마루에서 언양방면으로 약 30m 진행하여 왼편으로 시작되는 임도를 2차구간 들머리로 잡는다.

08시 17분, 국도변에서 왼편(남쪽)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올라선다. 임도 초입부로는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고 "97임도시설 미호-구미지구 1km"를 알리는 표석과 "봉계한우숯불구이단지" 대형 입간판이 서 있다.
이 임도를 따라 100여m 올라서게 되면 임도가 오른쪽으로 굽어돌기 직전에서 왼편으로 산으로 접어드는 뚜렷한 오솔길을 만나게 된다.(08:20) 여기서 오솔길을 따라 30m 만 나서면 무덤 1기를 만나게 되고 능선에 접하게 된다. 무덤가에서는 오른쪽으로 바로 꺽어 오른다. 5분 가량 능선을 따라 나서면 다시 임도로 내려서게 되고(08:27) 잠시후 다시 왼편 숲길로 접어드는 오솔길이 나타나고 초입으로 "부산 천자봉" "한국독도학교" 표지기가 걸려있다.(08:30)
이 숲길은 잠시 후 산허리를 돌아 나온 임도와 다시 합류하게 된다. 여기서도 왼편 능선을 타는 왼편 오솔길로 접어들게 되지만 능선은 오른쪽으로 임도를 두고 나란히 진행하고 있다.

이후 무덤 두어 기를 지나친 산길은 임도로 내려선 길을 따르더니 우측 20m 지점으로 무덤4기(옥산김씨, 김녕김씨,경산김씨...)가 보이는 곳에서 왼편 숲으로 접어들어야 한다.(08:44) 이곳은 중요지점으로 임도의 최고 높은 지점이 되고 최종적으로 임도와 작별해야 하는 곳이다.
열박재에서 시작된 임도는 줄곧 마루금과 나란히 진행하여 이곳까지 오게 되므로 굳이 능선을 고집할 필요없이 임도를 따라 이곳까지 진행해도 마루금을 벗어나지 않게 된다. 즉,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 우측으로 무덤 4기가 보이는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편 숲으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숲으로 접어들어 30~40m 후 잘 가꾸어진 "월성이씨묘" 가 있고 무덤 뒤쪽으로 길이 나 있다. 이 무덤을 지난 이후로는 능선이 왼편(북쪽)으로 크게 돌아 나가게 되고 왼편 소로길 하나를 지나치면서부터 의미 모를 일련의 번호표가 씌여진 빨간 띠지가 좁은 간격으로 붙어 있어서 그 표식을 따라 나가면 된다.

08시 51분, 망주석이 세워진 "월성최씨" 무덤에 이른다. 정면으로 무덤 조성을 위해 닦은 듯한 넓은 길이 내려가고 있지만 이 무덤에서는 오른쪽으로 꺽어 나간다. 무덤을 빠져 나가는 길 초반은 좁은 미로같은 숲길이지만 잠시 후 길 상태는 그런대로 뚜렷해지는 편이고 이 일대로는 이리저리 굽돌이가 심하므로 가장 또렷한 길을 따르도록 한다.
최중교님의 형남기맥, 남국철, 천자봉, 부산 명승산악회의 표지기가 요소요소에 붙어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
미로같은 숲길 주위로는 곳곳에 산나물이 지천이다. 오늘은 다들 아예 작정을 하고 나선 듯 이리저리 나물 뜯는 손길들이 바쁘다. 내 손에도 하나 둘 꺽어 모은 고사리가 이미 손아귀가 감당 못할 정도로 소복하다. 오늘은 나물사냥에 욕심을 부려본다.

09시 18분, 답답하던 숲길을 벗어나면서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빨간색 송전탑(No 07&No 81) 아래를 지나친다. 이후 6분 만에 두 번째 송전탑(No 06&No 82)이다.(09:24) 철탑 건너로 이어야 할 치술령과 북으로 뻗어나간 능선이 훤히 모습을 드러내지만 불안하게도 잔뜩 찌푸린 먹장구름을 이고 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토실토실 살찐 고사리가 자꾸 발길을 더디게만 만들고 있다.
두 번째 송전탑을 지나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선 왼편으로 방향을 잡는다.(09:27)(오른쪽 길엔 망주석이 있는 "월성최씨" 무덤이 있고 무덤 앞쪽으로 오솔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후 송전탑 건설을 위해 닦여졌던 작업도로를 가로질러 세 번째 송전탑(No 04)이 있는 작은 산봉에 올라선다.(09:33)
정면으로 직진하는 길과 바로 앞으로 차도가 보이지만 세 번째 송전탑에서는 오른쪽(남쪽) 숲길로 꺽어 내려서야 한다. 파란색 최중교님의 표지기가 걸려있다. 선답하여 시종 길잡이가 되고 있는 최중교님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숲길로 접어든다. 간간이 지나는 차소리를 들으며 5분 남짓 내려서게 되면 월평리와 구미리 중리마을을 연결하는 2차선 포장도로인 한전고개로 내려서게 된다.

▼한전고개-"대우농장 숯불고기"식당이 있고 도로따라 왼편으로 진행하면 한전변압설비 시설물로 가는 도로가 나온다.
고갯마루 오른쪽 중리 방향으로 "대우농장숯불구이식당"이 있고 사격장, 레스토랑, 카페, 골프연습장을 갖춘 "두동일심랜드"로 가는 갈림길에 안내판이 붙어있다. 도로를 따라 왼편으로 나서면 한국전력공사 변전소로 들어가는 삼거리길이다.
여기서 기맥은 바로 앞 과수원울타리 뒤편 봉우리를 거쳐 한전건물로 이어지게 된다. 고개에서 왼편으로 잠시 나선 후 도로 건너 과수원 개구멍을 통과해 봉우리에 올라선 후 왼편 한전방향으로 꺽어 내려오게 되면 다시 울타리 옆을 돌아 비포장 삼거리쪽으로 내려오게 된다. 하지만 한전도로를 따라가는 포장도로와 곧 만나게 되므로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한전고개에서는 한전 변전시설이 있는 건물을 향하는 도로가 기맥이다. 하지만 맥의 한가운데 한전시설이 자리하고 있고 도로쪽으로 들어오는 진입 자체을 막고 있다.

"이쪽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얼렁 돌아가세요!"
멋모르고 도로를 따르던 일행은 느닷없이 들려오는 방송소리에 놀라 발길을 멈춰선다. 알고 봤더니 도로변에 감시카메라가 있고 그들의 레이다에 포착된 것이다. 진입금지를 알리는 방송에 모두들 망연자실 하고 있다.
한참의 논의 끝에 성기봉대장님과 함께 선발대가 되어 한전 정문까지 진입해 보기로 하고 연이어 날아드는 진입금지 방송소리를 외면하고 기어이 한전 정문 앞에 이르렀다.(10:00) 경비 근무자는 일반인의 접근 자체를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치대한 예의를 갖춰 저자세로 대하고 난 후에야 한전시설물 울타리 외곽으로 돌아 나가는걸 허락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인원 통과는 곤란하여 후미팀들은 한전건물을 우회하는 농로길을 따르기로 한다.

농로길을 따르게 되면 일종의 편법이긴 하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월평리 못안마을과 구미리 당산마을을 연결하는 당산고개(?)에 20분 정도면 이를 수 있고 한전측과의 마찰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즉, 한전고개에서 한전 진입로로 접어든 후 우측으로 나타나는 비포장길을 따라 잠시 나서면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왼편으로 접어들어 뒷골지를 지나쳐 오르게 되면 차도변에 이르게 되고 이후 차도를 따라 오르면 기맥과 접속하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한전도로에서 일행은 세 갈래로 나뉘어져 진행하게 된다.
일부는 한전 정문에서 우측 울타리를 따라 나서고, 일부는 우회하는 비포장길을 따르다가 다시 주능선에 붙고 나머지 일행들은 곧장 뒷골지를 지나 차도를 따르게 된다.

한전변전소 우측 울타리를 따라 5~6분 가량 나서게 되면 시설물 외곽을 싸고 있는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게 된다. 별 수 없이 철조망을 월담하여(10:11) 주능선 방향으로 올라서자 "평해황씨" 무덤이 있고 무덤 뒷편으로 올라서게 되면 길흔적은 다시 확연해지고 잠시후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넓은 임도에 닿게 된다.(10:20)
이곳 역시 길찾기에 주의해야 할 곳으로 임도에 내려서자마자 우측으로 90도 이상 급선회하여 꺽어져 들어가는 숲길(남동쪽)로 접어들어야 한다. 초입으로 표지기가 걸려있었지만 고사리 사냥에 눈먼 발길은 이를 미쳐 보지 못하고 뚜렷한 임도를 따른 대가로 20분 이상 이리저리 헤메야 했다. 이 임도는 송전탑 건설을 위해 닦여졌던 길로 임도를 5분 가량 따라 나가면 No 78번 송전탑 아래에 서게 된다. 길은 계속 북쪽을 향하게 되므로 철탑을 만나게 되면 미련없이 되돌아 서야 한다. 부회장님께선 계속 직진하여 삽다리못까지 내려섰다가 되올라오는 부지런함(?)을 보이기도 했다.

10시 42분, 능선에서 처음 임도를 만났던 지점까지 되돌아와 숲길로 접어들었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오붓한 길을 5분 가량 나서자 "오천정씨" 흙무덤 3기가 나타나고 오른쪽에 임도가 내려다 뵌다.(10:47~51) 우측으로 보이는 임도는 한전 진입도로에서 우측으로 보이던 비포장길이 뒷골지에 이르기 전 갈라져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로 여겨진다.
무덤에서 임도를 따라 잠시 올라서게 되면 우측 10m 거리에 "평해황씨" 무덤이 있는 또렷한 4거리 갈림길이다.(10:53) 여기서 계속되는 임도를 따르게 되면 시멘트 포장길로 바뀌게 되면서 산허리를 넘어 유공자묘역을 지나 차도변에 이르게 되고 5~6분 남짓 소요되는거리다.(우리는 이 4거리에서 왼편 길로 접어들어 천주교무덤 3기가 있는 곳까지 헛발품을 파느라 10여분 소비했다. 왼편길은 월평리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었다.)

시멘트길을 따라 유공자묘역을 지나친 후 차도변에 이르게 되면 고갯마루 왼편으로 기맥능선이 건너다 뵌다. 뒤에야 알았지만 임도가 시멘트길로 바뀔 즈음 왼편으로 보이는 무덤으로 올라선 후 내려서는게 올바른 기맥이었고 우리는 지능선 하나를 잘못타고 내려온 셈이다. 차도변에 이르면 유공자묘역 안내판이 있고 곧 이어 월평리 못안마을과 구미리 당산마을을 잇는 고갯마루에 이른다.(11:10)
뒷골지쪽 농로길을 따라왔던 일행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그들은 40분 이상을 기다렸다고 한다. 되돌아보면 열박재를 출발하여 이곳 차도까지 약 5.2km 남짓한 거리는 3시간이나 소요된 미로찾기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11시 25분, 모든 일행이 합류하자 본격적인 치술령 오름길로 접어든다. 치술령까지의 길은 지금까지의 야산지대와는 달리 고속도로같은 탄탄대로를 따르는 길이다. 도로에서 우측 숲길을 파고들어 2분 가량 올라서면 능선자락이 시작되고 우측으로 등로에서 약간 빗겨난 송전탑 하나가 서 있다.
능선에서 왼편(동)으로 꺽어 잠시 나서면 또다른 송전탑(103번)(11:30)이고 여기까진 송전탑건설을 위해 닦여진 작업도로를 따르게 된다. 이후 나타나는 "월성이씨무덤" 2기 에서는(11:32) 무덤 앞으로 내려선 후 왼쪽으 전환되는 길을 따라 2분 가량 더 나서게 되면 40번 송전탑이다.(11:34) 송전탑에서 우측으로 접어들면 무덤 1기를 만나게 되는데 이 일대로는 족적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무덤 뒤편 희미한 숲길을 비집고 잠시 나서면 길상태는 다시 뚜렷해진다.

호젓하게 이어가던 능선길이 묵은 임도가 있는 4거리 갈림길을 지나친다.(11:47) 여기서 정면 오름길이 기맥이 되지만 또렷하게 난 우측 허리길을 따라 나서기로 한다. 일종의 요령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산허리길 3분만에 우측 당산마을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길을 만나면서부터(11:51) 치술령 주등산로를 따르게 되고 국제신문 표지기가 길안내를 맡게 된다.
이후 제법 가파른 된비알을 15분 가량 치고 올라서야 주능선마루에 올라서게 된다.(12:08) 주능선에 이르러 곰곰히 따져 봤더니 산허리를 타는 요령을 피우다가 되레 시간이 더 소요된 듯한 기분이다.
가뭇가뭇 해진 잿빛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것 같다. 빗물에 밥말아 먹는 불상사를 염려해 올라왔던 능선마루 너른 풀밭에 앉아 후다닥 민생고를 해결하고 치술령을 향한다.(12:35)

아니나 다를까 식사를 마치자 우려했던 대로 후득 후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측 당산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있는 안부자리를 지나친 후(12:42) 살짝 올려치자 주위로 바위들이 돌출되어 있는 무덤 1기가 나타난다.(12:44)
이제 비는 작정이라도 한 듯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분위기 좋은 오솔길을 이어 두동면 만화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있는 능선삼거리에서(13:08) 왼편으로 접어들어 4분 거리로 울산망부석을 만난다.(13:18~23) 울산시에서 세운 망부석안내판과 "치술령 0.3km, 참새미약수 0.1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20m 후 법왕사를 지나 박제상 유적지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13시 23분, 삼각점, 치술령표석, 신모사지(神母祠地) 비석이 있는 치술령(765.4m)에 섰다. 정상 우측(동쪽) 아래로 또다른 경주망부석이 있다. 이곳 치술령은 신라 박제상의 부인인 김씨부인의 망부석설화로 유명한 곳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박제상은 눌지왕 즉위 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던 두 왕제를 구출코자, 먼저 고구려에 가 복호를 귀국시킨 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구출해 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일본에 잡혀 심한 고문 끝에 소사당한다. 이에 그의 아내인 김씨부인은 사무치는 정을 달래지 못해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통절의 눈물을 흘리다 그 몸은 돌로 변하여 망부석이 되고 영혼은 날아가 바위굴로 숨었는데 그 곳을 은을암이라 한다. 훗날 사람들은 김씨부인을 치술신모라하여 사당을 짓고 제를 올렸다고 한다.

또한 치술령은 신라 방위를 위해 쌓여진 관문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원래는 모벌군성, 모벌관문으로 불리었는데 조선시대에 관문성으로 부르게 되었고 치술령 남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울산, 경주 경계를 따라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의 동쪽 산아래까지 뻗쳐 장장 12km에 달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길이가 길어 만리성이라고도 부르며 옛 신라 서라벌의 동쪽과 남쪽 바다로부터 오는 왜군을 막기위해 성덕왕 21년(722)에 쌓은 성이다.
러고 보면 형남기맥은 옛 서라벌의 관문역할을 하는 경계선이 되고 이곳 치술령일대는 형남기맥 중에서도 가장 높게 이어나간 산줄기로 기맥의 중심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곳 치술령에선 동쪽 외동읍 건너로 삼태봉(三台峰)(629.1m)에서 울산쪽 동대산(東大山)(444m)을 잇는 스카이라인 너머로 동해바다가 보이고 울산쪽 시가지까지 잘 조망되는 곳이지만 망부(亡夫)를 그리는 애절한 마음이 망부석(望夫石)으로 화한 치술신모의 비통함이 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이 산정에 남아 있음인지 애꿎게 내리는 부슬비는 안개와 함께 모든 조망을 꼭꼭 숨기고만 있다.

정상 아래 경주망부석 바위벼랑에 서서 몇 해전 이곳에서 동쪽의 쪽빛 바다를 건너다 보던 기억으로 조망을 대신할 뿐이다. 치술령에 있는 울산망부석과 경주망부석은 한때 그 진위를 놓고 울산시와 경주시가 뜨거운 논쟁을 벌였던 때가 있었고 아직도 어느 것이 옛 설화 속의 진짜 망부석인지는 판별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13시 32분, 내리는 비로 인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터라 치술령을 뒤로 한다.
치술령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이른 바 치술령 종주길이라 하여 울산, 경주의 경계를 따라 봉계리까지 이어지는 멋진 능선코스로 경주, 울산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길이다. 5분 정도 나서면 "경주 좋을라고산악회"에서 세운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우측 약수터라고 적힌 길은 녹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약수터 갈림길에서 약간의 바윗길을 올라서면 721봉이다.(13:40) 7~8분 후 왼쪽 월평리로 내려가는 갈림길 하나를 더 지나치게 된다.(13:48) 치술령 종주길은 분위기 좋은 풀밭 길을 따른다. 과연 명품종주로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오롯한 길을 잇게 된다.

14시 07분, 서너평 정도되는 공터를 제공하는 769봉에 섰다. 왼편 월평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으로 형남기맥이 시작되는 백운산 북쪽 삼강봉(三江峰, 약 845m)을 제외한다면 형남기맥 최고봉이다. 하지만 최고봉의 위세에는 걸맞지 않게 뚜렷한 지형지물없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봉우리일 뿐이다.
769봉은 치술령에서 2km 정도의 도상거리로를 나타내고 있지만 불과 35분이 소요됬을 뿐이다. 따라서 이 능선이 얼마나 유슌하게 이어지는지를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769봉을 지나 3분 간격으로 헬기장 두 곳을 차례로 지나치게 되는데 두 번째 나타나는 폐헬기장이 751봉이다.(14:15) 우측 산 아래서 골프장 건설을 위한 중장비 소리가 들려오지만 거세진 빗줄기와 짙은 안개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우중산행에서도 나물사냥은 계속되고.....더덕을 한 웅큼 뽑아 든 이병목 부회장님
이어서 무명봉 하나를 더 지나 안부자리로 내려서게 되는데(14:28) 여기서부터 특히 길찾기에 유의해야 할 곳이다. 바로 앞에 있는 산봉이 686봉으로 중요한 갈림길이 되는 곳이다. 안부에서 올라서면 뚜렷한 메인등로는 주능선을 우측에 두고 왼쪽 산허리를 살짝 돌아 나가게 되므로 686봉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즉, 안부를 지나 등산로가 산허리를 돌아나갈 즈음 족적이 거의 없는 능선으로 붙어 올라야 686봉에 이르게 된다.(14:30) 짙은 안개로 인해 주위를 가름할 수 없었던 터라 앞선 일행은 계속되는 치술령 종주길을 따라 나섰고 본인은 산허리길에서 686봉을 확인하기 위해 정상 직전까지 올라갔었지만 워낙 길이 제대로 없었던 관계로 그 꼭지점까지 확인하지 않고 되내려온 실수로 인해 북쪽 폐헬기장까지 잠시 더 진행하고서야 686봉을 지나친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앞섰던 모든 일행들이 이곳 686봉까지 되돌아 오는데까지는 꼬박 30분 정도가 더 지체되었다. 686봉 정상부엔 오래된 무덤 1기가 있고 봉분 위로는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예전에 헬기장으로 사용됬던 듯 낙엽 속에 블록이 깔려있고 한켠으로는 2단으로 쌓은 폐블록이 쌓여있다. 오른쪽(동쪽) 아래로 떨어지는 내리막 초입부로는 최중교님이 "중요지점"이라 표시한 표지기와 "천자봉" 표지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15시 02분, 모든 일행이 합류하자 우측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686봉에서 떨어지는 길은 사정없는 급비탈이고 희미한 길이다. 5분 가량 내려서면 나타나는 희미한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내려서서 바위를 돌아들게 되고 5분 정도 더 떨어지면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뚜렷한 오솔길을 만나게 된다.(15:18) 여기서는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내림길 도중 더덕밭을 만난 발길은 시간이 지체되는 줄도 모르고 더덕사냥에 잠시 시간을 할애해 보기도 한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벗삼아 15분 가량 숲속 잡목길을 헤쳐 내려서자 봉분이 허물어진 넓은 무덤터를 지나치더니 갑자기 시야가 훤해지며 서라벌골프장 절개지 앞에 선다.(15:35) 자세히 보니 산줄기를 이어가는 주능선은 왼쪽 건너로 보이고 우리는 지능선 하나를 잘못타고 내려온 셈이다. 아마도 내림길 도중 왼편으로 갈라지는 능선을 놓쳐 버린 모양이다.

절개지에서 바라본 골프장 공사장은 아수라장이다. 산자락은 온통 뭉틍그리 파헤쳐지고 지금도 계속 산을 깍아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고산분지에 마을을 이루었던 고천마을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일대는 하루가 다르게 지형이 변하고 있어 아마도 몇 일 후면 또다른 모습으로 탈바꿈 할지 모를 일이다.
경주 외동에 건설중인 서라벌골프장은 한때 공사가 중단되었던 곳으로 최근에 다시 공사가 재개 중이며 36홀 규모를 가진 골프장이 2006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골프장 건설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히 염려되는 부분이다.
절개지를 내려서 작업도로를 따라 고갯마루에 서게 되면(15:45) 왼편으로 변압시설과 공사장 출입문이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420.5봉이 안개 속에서 희미한 윤곽을 보이는게 또 한번의 난관을 예고하는 듯 하다.

▼무참하게 산허리가 잘려져 나가고 있는 서라벌 골프장 공사현장
고개에서 북동쪽으로 난 작업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선 골프장 건설지 최상단부에서 모든 일행들이 합류할 때까지 기다린 후 사일고개를 향한다.(15:50~58) 골프장 고개에서 420.5봉을 지나 사일고개까지 내려서는 기맥은 길상태가 극히 희미할뿐더러 단 한 개의 표지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길이다.
작업도로 상단부 각종 안전간판에 세워진 곳에서 왼편 넓은 길을 따라 산자락으로 붙게되면 곧 이동통신탑과 측량용 폴대를 만나게 된다.(15:58) 잠시 후 올라선 야트막한 산봉엔 "밀양박씨"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16:02) 무덤 오른쪽으로 나선 후 3분 만에 무명무덤을 지나치자 길은 산허리를 타고 잠시 이어진다. 하지만 420.5봉을 오르기 위해선 길없는 능선을 향해 치받아 올라야 한다.
일행은 산허리 길을 잠시 따르다가 나타나는 골프장 절개지에서 왼편으로 올라섰다.(16:12) 주능선에 이르게 되면 다시 오붓한 길이 이어지게 되는데 420.5봉은 정면(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희미한 능선을 타고 올라야 한다. 하지만 우중나물채취에 심취하여 방향도 확인하지 않고 뚜렷하게 이어지는 우측(동쪽) 능선길로 접어들어 442.7봉 직전까지 진행하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하기야 이런 야산지형에서 특히나 오늘처럼 비내리는 짙은 안개 숲에선 전혀 시야가 확보되지 못하므로 오로지 방향감각에만 의존해야 한다. 게다가 손에 들고 있는 건 50,00 지형도 복사본인지라 오늘같은 악조건에선 개념도 수준에 불과한 것같다.

골프장 절개지에서 올라선 지점까지 도돌이표를 찍고 북쪽으로 1분 가량 올라선 산봉으로 무덤 1기가 자리하고 있다.(16:30~34) 처음엔 이곳이 420.5봉 인가 하였지만 진짜 420.5봉은 이 무덤에서 능선 날등을 따라 1분 가량 더 진행하여 만나게 되는 "월성이씨무덤"이 있는 산봉이다.(16:35~40)
420.5봉에서 사일고개로 내려서는 초입 역시 불확실하다. 정북(진행방향에서 우측 약 30도)으로 향하는 잡목 숲을 20m 가량 뚫고 나가면 다시 희미하게 이어가는 능선길이 시작된다. 이후 나타나는 능선은 거의 갈래가 없고 "고령김씨무덤2기" (16:51)를 지나 5~6분 후 무덤3기(김해김씨, 월성김씨...)에 이어 "경주김씨" "밀양박씨" 쌍무덤을 지나쳐 내려오면 2차선 포장도로인 사일고개다.(16:58)
◀비내리는 사일고개
사일고개는 휴게소를 겸한 흥부주유소가 있고 도로 건너로 "사일가든" 이 있다. 경주 내남쪽에서 외동읍을 잇는 904번 지방도로로 정확한 이름은 알지 못하고 서쪽 아래로 사일마을이 있음으로 "사일고개"라 칭해본다.
이로서 우중에 이리저리 헤메느라 9시간 가까이 이른 긴 발품이 마무리되고 모두들 흠뻑 젖은 생쥐꼴이지만 불순한 날씨 속에서도 정상적인 기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올바르게 진행했음을 자위하며 서로를 격려하기에 바쁘다.
다소 흠이라면 산나물의 유혹에 이끌려 지도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하잘 것 없는 욕심을 채운 대가로 몇 번씩이나 엉뚱한 방향으로 접어들었음이다. 그래도 힘든 노고의 부산물로 한줌 찬거리도 준비했고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던 하루 발품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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