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경북 상주시 모서면, 모동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 지도보기1 , ☞백화산 지도보기2

 

▼백화산 정상은 지형도에 포성봉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최근 옛 이름인 한성봉을 알리는 큼직한 빗돌이 서 있다.
백화산하면 문경의 백화산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문경의 백화산과 이름이 똑같은 백화산이 상주의 중화지역에 우뚝 솟아 있다
산 전체가 티 없이 맑고 밝다는 뜻의 백화산(白華山)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과 경북 상주시 모동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 전쟁으로 백제를 공격할 때인 660년 태종무열왕이 머물던 금돌산성, 대궐터, 용문사지, 진불암터 등의 사지가 있는 유명한 산으로 경부고속도로 황간을 지날 때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우람하게 솟아있는 산이다.
백화산의 주봉인 한성봉 (구 포성봉-捕城峰) 은 일제가 우리민족의 문화말살과 국운을 꺾을 목적으로 금돌성을 포획한다는 뜻에서 포성봉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백화산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들 한성봉이라고 부른다.
국립지리원 지도에 백화산맥이라고 표기할 정도로 산세가 웅장하고 날카로우며, 부드럽고 아름답다. 특히 주행봉 일대의 깍아지른 암릉은 설악산의 공룔릉을 연상시킬 만큼 스릴 넘치는 곳으로
산세가 험하여 등산하기에 힘든 산의 하나다. 전설에 의하면 이 봉으로 그 옛날 천지개벽 때에 배가 지나갔다고 하여 주행봉이라 하고 두 산봉우리가 쌀개와 같이 나란히 솟아 있다고 하여 일명 쌀개봉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성봉을 중심으로 샛별봉, 주행봉, 만경봉, 헌수봉이 솟아 있고, 이러한 산세에 금돌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또 산 입구 수봉에는 옥동서원과 그 뒤로 백옥정, 그리고 백화산을 흐르는 석천 주변엔 저승골, 섬심석, 명경대, 저승폭포 등이 있다. 주변에는 보현사, 반야사, 용수폭포 등의 수려한 경관들이 즐비하다.

 




1.수봉리 보현사-대궐터-금돌성-백화산(한성봉)-주행봉-반야교(반야사)



☞ 자가운전시
*경부고속도로 황간IC - 우회전 상주 모동방면의 49번 도로- 옥동서원 향하여 - 수봉재 지나 - 보현사 방향 좌회전- 백화교 건너 마을길 따라 - 주차장(백화산 관광안내도)
=== 약 182km, 2시간 40분 소요(휴게시간 포함) ===



1.수봉리 보현사-대궐터-금돌성-백화산(한성봉)-주행봉-반야교(반야사)
 

보현사-대궐터-금돌성-백화산-주행봉-반야교

*산행코스
수봉리(보현사입구)-(3.6km/1시간 7분)-대궐터-(0.8km/11분)-금돌성-(1.2km/36분)-백화산 한성봉-(3.1km/1시간 52분)-주행봉-(약 2.3km/1시간 12분)-반야교
== 이정표거리: 약 11km, 총소요:7시간, 순보행: 5시간 ==
*2009.12.4(한무리)

▼백화산~주행봉을 잇는 주능선은 칼날같은 바위를 넘는 암릉코스로 아찔한 고도감을 느끼게 한다. 사진은 주행봉 가는 길에서 되돌아 본 암릉으로 오른쪽 뒤로 백화산 최고봉인 한성봉이 우뚝하게 보인다.
백화산이라 하면 언뜻 백두대간 상에 있는 문경의 백화산(1063.5m)을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 국토의 정중앙부인 상주와 영동의 경계에 자리한 백화산(한성봉)(933m)도 이제는 꽤 많이 알려진 동명의 산이다. 특히, 백화산 한성봉과 주행봉을 잇는 날카로운 암릉코스는 칼날같은 바위를 오르내리며 발 아래로 굽이굽이 흐르는 석천계곡과 주변으로 훤히 터지는 조망을 만끽하기엔 그만인 곳이다.
게다가 산길 곳곳에 옛 호국의 흔적인 대궐터, 보문사터, 금돌산성등 신라시대의 유적 흔적이 남아 있어 옛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어보며 산행을 한다는 것도 매력이 될 수 있다. 산행 초입에 해당하는 경북 상주쪽 수봉리엔 보현사, 날머리에 해당되는 충북 영동쪽 우매리엔 반야사가 있어 두 절집을 덤으로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통상 백화산 산행은 인근에 반야사가 있는 반야교를 기점으로 주행봉~한성봉(포성봉), 또는 역순으로 진행하여 원점회귀 방식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관광버스를 이용한 단체산행의 이점을 살려 상주쪽 보현사를 출발하여 백화산~한성봉~반야사 코스로 진행한다.
들머리가 되는 상주시 모동면 일대는 일교차가 큰 고랭지와 황토질의 비옥한 땅의 강점을 살려 포도산지로 유명한 곳으로 국내 최고수준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수봉리는 조선시대 사학의 자존심인 황희정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옥동서원과 석천가에 자리잡은 백옥정이 있어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상주 모동과 영동 황간을 연결하는 49번 국도변에서 백화산(금돌성)을 알리는 안내판을 따라 석천을 가로지르는 백화교를 넘어 마을길을 따라들면 백화산 입구를 알리는 커다란 등산안내판이 서 있는 주차장에 닿는다.
안내판 좌우로 백화산, 금돌성의 유래가 기록된 입간판이 서 있다. 주변으로 마을쉼터 정자와 석천변으로 소나무 세 그루가 자라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등산안내도가 있는 백화산 초입은 삼거리를 이루고 있다.
백화산은 오른쪽 보현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야 한다. 왼편길은 "구수천 팔탄 천년옛길" 안내도가 있다. 팔탄옛길은 백옥정~반야사에 이르는 석천을 따라 8개의 탄(여울)을 이름이다.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봄날처럼 따사롭다.
출발부터 겉옷을 벗어 베낭에 패킹하고 북쪽으로 난 넓은 길을 따라든다. 100여m 나서면 이정표(←봉화터 1.5km/40분, ↑대궐터 3.6km/1시간 45분)가 있는 방성재 등산로 갈림길이다. 왼편 산길은 봉수대, 방통재가 있는 옛 성터길을 따라 백화산 정상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이다. 대궐터 방면으로 직진한다.
잠시 후 열린농원 앞을 지나면 차량진입을 금지하는 쇠사슬 차단막에서 보현사가 나타난다. 보현사는 최근에 지은 작은 절집이다. 길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으로 근사한 돌탑과 "손기순여사 공적비"가 서 있다. 길을 따라 몇 걸음만 더 하면 여염집 같아 보이는 용천암도 보인다.
보현사를 지난 길은 용추골을 따라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넓직한 길이 이어진다. 길은 계류를 몇 번 건넌다. 계류 건너는 곳마다 시멘트로 만든 작은 잠수교를 건너게 되는데 계곡 수량이 불어나면 등산화를 벗고 건너야 할 것 같다.

◀용추
보현사에서 15분 가량 용추골을 따라 들면 간이 화장실 지나 오른쪽으로 갈림길 하나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40여m 계류쪽으로 향하면 용추골이란 이름의 근원지인 용추가 나타난다. 아담한 소와 비스듬히 흐르는 와폭이 있어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엔 그만인 곳이다.
용추에서 되돌아 나와 다시 잔돌 깔린 길을 따라 오르면 4분 후 사방댐을 지나고 다시 3분 정도면 계곡이 양쪽으로 갈리는 합수점 갈림길에 닿는다.
백화산 입구에서 약 30분 정도 용추골을 따라들어 만나게 되는 이 갈림길은 대궐터와 옥류대 갈림길이 되는 곳으로 대궐터를 향하려면 왼쪽으로 계곡을 건너서야 한다. 직진하는 넓은 길은 계속되는 본류를 따르는 길로 나무판자에 <옥류대, 용문사터, 선녀탕, 네원, 세재, 금돌성>이라 적혀 있다. (이정표: ←대궐터 1.7km/50분, ↑옥류대, ↓수봉리 1.9km/50분)

여기서 왼편으로 계류를 건너 잠시 산비탈을 오르면 큼직하게 모난 바위 아래로 로프가 걸린 길을 지나치게 되는데 "백화산 사랑모임"에서 제작한 작은 나무판자에 <벼락바위>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런 류의 작은 안내팻말은 들머리에서 부터 금돌성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포인트마다 설치해 놓아 초행자에겐 많은 도움이 된다.
벼락바위를 지난 길은 계곡을 멀찍이 두고 계속되는 산허리 길로 이어진다. 지형도에는 보문골 계곡을 따라 진행하도록 표시되어 있건만 길은 점점 계곡에서 멀어지기만 한다. 아마도 벼락바위 직전의 합수점에서 좌측 보문골로 향하는 길을 미쳐 챙겨보지 못한 연유일 것이다. 아무튼 벼락바위를 지나 15분 가량 산사면으로 난 길을 따라 나서면 <외성>을 알리는 작은 나무판이 있는 성터 흔적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

외성을 지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금돌성 권역 내로 입성하게 되는 셈이다. 금돌성 성곽형식은 외성, 내성, 차단성, 토루로 구분하였는데 백화산 어귀에 차단성을 쌓고 성문을 마련하였으며, 외성은 보문골로 접어들면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외성을 지나 다시 산허리를 타고 10분 정도 더 진행하면 보문골에서 올라오는 갈림길과 만나는 곳에서 이정표를 대한다.(이정표: ←수봉리 3.1km/1시간30분, ↑금돌성 1.3km/40분) 즉, 합수점 갈림길에서 미쳐 챙겨보지 못했던 보문골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3거리가 되는 곳이다.
이 이정표를 지나 6분 가량 제법 가파른 길을 올라서면 다시 성터의 흔적이 있는 내성을 지나게 되고 이어서 2분 이면 작은 바위에 절터라고 적은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 있다.(이정표: ←보문암터 0.6km/20분, ↑대궐터 0.3km/20분, ↓수봉리 3.3km/1시간 40분) 여기서 왼쪽 길은 대궐터를 거치지 않고 보문암터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다.

직진하는 대궐터방향 오르막을 따라 8분 가량만 올라서면 높다란 4단 축대 위에 집터의 흔적이 있는 <대궐터>에 닿게 된다. 특별한 유물이나 유적은 찾아 볼 수 없는 대궐터는 규모도 작고 공터엔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신라 태종무열왕이 이곳 금돌성에 머물며 백제 공략을 지휘할 때 거쳐 하였다고 하여 대궐터로 불리어지고 있다. 왕이 머물렀던 옛 흔적이라고는 마른 돌우물이 전부일 뿐이다.
대궐터를 지나 다시 산허리 길을 타고 4분 정도 나서면 <보문사지 부속터>가 나온다. 역시 좁은 터에 돌재단의 흔적과 돌탑만 숲 속 저만치에 보일 뿐이다. 보문사지 부속터에서 왼편 아래 2분 거리로 옛 보문사지가 있다.

▼주능선에 올라서면 1978년 일부를 복원시킨 금돌성 성벽을 따라 오르게 된다.
보문사지 부속터에 있는 이정표(↖금돌성 0.5km/15분, →대궐터 0.3km/10분)에서 금돌성 방면 오름길은 제법 거칠다. 15분 가량 힘겹게 올라서면 금돌성이 있는 안부에 오른다.
금돌성 안내판이 있는 능선마루는 4거리를 이루고 있다.(이정표: ←한성봉정상 1.2km/1시간 20분, ↑옥류대, ↓대궐터 0.8km/50분) 금돌성은 백화산 능선을 따라 구축된 석성으로 신라의 김흠이 쌓았다고 한다.
상주는 신라시대 북방공략을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특히 백제와 연접되어 있어 접전이 많았던 곳이다. 이곳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한 태종무열왕이 한 달간 머무르며 신라군을 독려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옛 성터 자리엔 무너진 성벽을 이용한 작은 돌탑이 즐비하고 한성봉 방향으로는 1978년 복원된 80m 길이의 성벽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신라군의 함성이 아직도 들리는 듯한 왼편의 복원된 성곽을 따라 한성봉을 향한다.
복원된 성터를 지나서도 여전히 무너진 성곽의 잔해를 밟으며 능선을 이어간다. 15분 남짓 옛 성터 흔적을 따라가면 오른쪽 아래로 모서면 득수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 있다.(↓금돌성 0.5km/20분, ↑한성봉 0.7km/40분, →득수초등 3.0km/1시간 20분)
여기서 2~3분만 더 올라서면 저 앞으로 한성봉과 그 뒤로 뾰족하게 날을 세운 주행봉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군바위에 닿는다. 왼편 바위 끝으로 나서면 모동면 일대의 산야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맑은 날이면 영동, 상주 일대를 지나는 대간줄기도 훤히 보일 듯 하지만 옅은 박무가 먼 곳까지는 시야를 허락하지 않는다.

장군바위를 지나 잘록이 하나를 지나면 곧 백화산이 자랑하는 암릉길이 시작된다. 암릉길 좌측으로 안전한 로프가 걸려 있지만 바위 날등도 그리 위험하지 않으므로 낮아진 상주쪽 산들을 조망하며 암릉을 넘어서는 재미도 색다르다.
장군바위에서 백화산 정상인 한성봉까지는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다소 고압적인 거대한 빗돌이 서 있는 한성봉은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포성봉>으로 표기 되어 있지만 이는 일제가 우리 민족 문화와 국운을 꺽을 목적으로 금돌성을 포획한다는 의미로 포성봉이라 부른데 기인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1254년 몽고의 지랄타이가 고려를 침공했다가 상주 횡령사의 중 홍지사에게 저승골에서 군사 절반을 섬멸 당하는 대패를 겪은 후 성을 넘지못하고 한탄했다는 고사에서 한성봉(恨城峰)이라 부르던 것을 한성봉(漢城峰)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최근 뜻있는 지역분들의 중지를 모아 옛 이름인 한성봉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제법 너른 공터를 제공하는 정상부엔 아직 포성봉을 알리는 작은 대리석 빗돌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백화산 정상부엔 "한성봉"임을 알리는 큼직한 빗돌이 서 있지만 한 켠에는 아직도 예전 이름인 포성봉 표석이 삼각점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정상 주변은 수목이 가리고 있어 마른 나무 사이로 주행봉쪽 능선만 건너다 보일뿐 지나왔던 암릉만큼 시원한 조망은 보여주지 못한다. 정상은 3거리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 능선은 반야사로 곧장 떨어지거나, 방통재를 거쳐 보현사로 내려서는 길이고 남서쪽 아래가 주행봉까지 능선을 잇는 길이다.(이정표: ↑주행봉, ↓금돌성 1.2km/1시간, →봉화터 2.8km/1시간 10분)
정상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주행봉을 향한다. 급한 내리막 돌 길은 한없이 아래로만 치닫는다.
그럴수록 역광으로 검게 보이는 주행봉은 더욱 높아지고 아득하다. 15분 가량 정신없이 떨어지던 내리막은 작은 안부를 만나면서 정점에 이르고 안부에서 5분 가량 올라서면서부터 암릉이 시작된다.

암릉길이 시작되기 직전의 왼쪽으로 첫 암릉지대를 왼편으로 돌아가는 우회길이 있다.
비록 거친 암릉이지만 특별히 위험구간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이 암릉은 본격적인 주행봉 암릉의 서막에 불과하다.
20여분 암릉길을 넘어서면 이정표가 있는 4거리 갈림목 안부에 닿는다. 각각 좌우로 반야사, 모서방면으로 내려서는 반듯한 길이 있다. 이 지점쯤에서 암릉길에 자신이 없다면 왼쪽 반야사로 내려 설 수도 있을 것이다.
안부에서 능선을 따라 20분 가량 꾸준히 올라서면 755봉이 되고 755봉 이후부터 주행봉까지는 경북과 충북의 도계를 따라 본격적인 주행봉 암릉길이 시작된다. 마치 거대한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암릉의 연속으로 암릉을 피하는 별다른 우회로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뾰족한 날등에는 군데군데 로프가 걸려 있긴 하지만 좌우로 벼랑을 이룬 아찔한 구간에서는 균형감각을 요구하기도 한다.

▼주행봉 정상부 모습-고스락을 지키는 무덤1기가 있는 주행봉은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암릉구간이라 조망만큼은 기막히다. 왼편 아래로 굽이 굽이 휘어도는 석천변에 자리한 반야사가 빤하고 그 뒤로 절집을 호위하고 있는 듯한 헌수봉, 망경봉도 발 아래다. 오른쪽으로는 상주 모동일대의 산야와 골프장 등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허나 조망이 좋다고 긴장을 늦추어선 안될 일이다.
한성봉에서 주행봉까지는 조망을 즐기고 휴식을 취한 시간까지 포함하여 꼬박 2시간이 소요되었다.
주행봉 정상(874m)은 무덤 1기가 고스락을 지키는 넓직한 공터로 한성봉에 비하면 뛰어난 조망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주행봉을 알리는 작은 빗돌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주행봉에서는 길이 둘로 갈린다. 정상 올라서기 직전 좌측 "주차장" 방면 이정표가 서 있는 동릉을 따라 반야교로 내려서는 길이 있고, 계속되는 암릉을 타고 건너편 855봉까지 능선을 이은 후 왼편 지능선을 따라 반야교로 내려설 수도 있다.
주행봉은 이웃한 855봉과 함께 두 개의 바위봉이 마치 엣날 디딜방아의 쌀개처럼 생겼다 하여 현지 주민들은 쌀개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주행봉에서의 긴 휴식을 뒤로 하고 건너편으로 우뚝하게 보이는 855봉을 향한다.
다시 암릉 내리막이 시작되는 다소 까다로운 구간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서고 이어서 나타나는 바위지대를 위태롭게 내려서면 잘록이 안부로 왼편 반야교쪽으로 내려서는 희미한 길이 보인다. 직진하여 바윗길을 올라서면 주행봉과 비슷한 높이의 855봉 암릉 위에 서게 된다. 주행봉보다 조망의 멋이 더 뛰어난 곳이다.
855봉에서는 오른쪽 아래로 계속되는 도계능선으로 내려선 후 솔티를 거쳐 용암리로 흐르는 낮아진 능선길이 보이지만 그 길 또한 암릉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855봉에서는 좌측으로 보이는 반야사쪽인 남동능선인 왼편 길을 따라 내려선다.
4분 가량 암릉길을 내려와 큰 바위 우측 사면으로 내려서면 비로써 암릉지대는 완전히 끝나게 되고 <주차장> 방면을 지시하는 이정표를 대한다.

주행봉에서 하산길에 내려다 보이는 구불구불한 석천계곡과 반야사를 호위하고 있는 헌수봉과 망경봉▶

지금까지와는 달리 육산이 시작되자 걷기는 한결 수월하지만 암릉길을 통과하느라 얼마나 용을 썼는지 아랫도리가 후들거린다.^^ 855봉에서 20여분 가까이 내려서면 <↓주행봉 1.05km, ←주차장>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직진방면의 능선으로도 뚜렷한 길이 있지만 주차장을 알리는 좌측 사면쪽으로 내려선다. 급한 내리막 길에선 간간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두 번째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지도상의 전망대라고 표시된 지점으로 <주행봉 1.62km> 이정표와 함께 좁은 공터에 닿는다. 겨울 숲 사이로 석천변이 내려다 보이긴 하지만 숲에 가려 있어 전망대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은 곳이다.
여기서부터 묵은 임도길이 좌측 산허리를 타고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물마른 계류를 건너 잠시 진행하면 <주행봉 1.9km> 이정표가 서 있는 곳으로 벤치도 마련되어 있고 몇 걸음 아래로는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다. 이 길은 황간산림욕장의 산책로를 위해 닦아 놓은 길이다.
산책로 돌계단을 내려서면 정자 있는 곳에서 시멘트 길이 시작된다. 왼편으로는 산림욕장 간이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정장 있는 쪽의 시멘트 길을 따라 6~7분 내려서면 석천을 가로지르는 반야교에 닿게 되고 다리 건너 오른쪽 50m거리에 황간참숯가마식당 앞으로 넓직한 주차장이 있다.
855봉에서 정자가 있는 산림욕장 시멘트길 까지는 50분, 다시 주차장까지는 10분 정도가 더 소요되었다.

주행봉 암릉지대에서 줄곧 시선을 잡던 반야사는 산행 날머리인 반야교에서 석천을 거슬러 오르는 도로를 따라 500m, 10분 거리에 있다. 반야사는 거대한 백화산이 일구어 낸 구불 구불한 석천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신라 성덕왕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상원스님이 창건한 절로 6.25때 소실되었으나 1993년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3층 석탑과 500년 된 배롱나무가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건 산 사면의 너덜지대가 마치 한 마리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절을 수호하는 형태를 하고 있어 자연의 신비한 형상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또한 가파른 벼랑 위에 세워진 문수전에 올라 굽이치는 석천을 내려다 보는 것도 빼놓아선 안 될 것이다.

[산행상세]
*수봉리 보현사입구-(0.1km/2분)-방성재 갈림길-(3분)-보현사-(14분)-용추-(4분)-사방댐-(3분)-계류갈림길-(2분)-벼락바위-(16분)-외성-(7분)-계곡갈림길 만남-(6분)-내성-(2분)-보문암,대궐터 갈림길-(0.3km/8분)-대궐터-(4분)-보문암터-(7분)-금돌성-(0.5km/13분)-득수초등 갈림길(모서)-(3분)-장군바위-(20분)-백화산 한성봉-(35분)-4거리안부(반야사갈림길)-(22분)-775봉-(55분)-주행봉-(16분)-855봉-(18분)-주차장갈림길 이정표-(17분)-전망대(임도도착)-(15분)-정자-(6분)-반야교-(2분)-주차장
== 이정표거리: 약 11km, 총소요:7시간, 순보행: 5시간 ==

 

 

[반야사]
반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서,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백화산에서 흘러내리는 큰 물줄기가 태극문양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연꽃모양의 지형을 이루는데, 이곳 연꽃중심에 반야사가 위치하고 있다.
신라 성덕왕 19년(720년) 의상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相源) 스님이 창건한  천년고찰답게 보물급 유물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삼층석탑과 석조부도, 대웅전과 요사채 3동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경주의 옥석으로 제작되어 개금한 것들이다. 또 대웅전 안에는 탱화 6점을 봉안하였으나, 이중 1890년(고종 27) 청주 보국사(輔國寺)에서 제작한 후불탱화와 신중탱화, 1753년(영조 29) 경상북도 김천의 봉곡사(鳳谷寺)에서 조성한 지장탱화 등은 매우 양호한 상태로 지금은 따로 보관하고 있다.

보물 제1371호인 삼층석탑은 대웅전 앞으로 옮겨 세웠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창건 당시 상원스님이 세웠다는 칠층석탑은 흔적이 없다.
이 밖의 유물로는 석조부도 2기(영동군 향토유적 25, 26호), 영위판(靈位板), 목사자, 청기와, 법고(法鼓), 범종 등이 있다. 영위판은 왕이 죽었을 때 영위를 봉안하는 판구(板具)로서 높이 105.5cm, 너비 15cm이며, 문수동자가 탄 목사자는 세조를 영천(靈泉)으로 인도하여 왕이 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을 상징한다. 또 청기와는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전해오는 용마루 기와다.


▲석천계곡가에 자리한 반야사 전경
왼편으로 호랑이 한 마리가 절을 수호하고 있는 형태를 한 너덜지대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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