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경북 예천군 용궁면 
☞지도보기(국제신문)
  

용이 휘돌아 나가는 형상이라는 회룡포.
굽이 돌아가는 물길이 한 폭의 그림이다. 낙동강의 합류되는 물길인 내성천이 휘감아 만들고 있는 육지 속의 섬 회룡포이다.멋진 풍경으로 반짝이는 하얀 모래 백사장을 감싸며 돌아가는 옥빛 물길의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입곡류 하천으로 영월의 청룡포와 함께 유명한 곳이 회룡포이다. 회룡포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길목은 폭이 약80m에 수면에서 15m정도 높이로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면 정말 섬 아닌 섬이 되어 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회룡포는 2009년 국토해양부에서 주관하고 한국하천협회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천으로 선정되었다. 비룡산은 육지 속의 섬인 회룡포(回龍浦)를 감싸고 있는 산이다.

1998년에 세운 정자인 회룡대에 오르면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휘감아 돌아 모래사장을 만든 곳에 자리한 의성포의 절경이 잘 내려다보인다. 의성포는 이웃하고 있는 회룡마을과 함께 하나의 관광지군으로 묶여 있어 회성포라고도 부르는데, 드라마 〈가을동화〉를 찍은 곳으로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숲이 울창하며, 정상 바로 밑에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장안사가 있다. 1997년 11월 복원한 봉수대는 예전에 동쪽의 서암산 봉수, 서쪽의 소이산 봉수, 북쪽의 가불산 봉수와 연락을 담당하는 군사요충지였다고 한다. 정방형이며, 높이는 2.7m이다.
또 마한시대에 축성된 원산성(圓山城:또는 따뷔성, 또아리성)이 있는데, 둘레가 약 920m, 높이가 1.5~3m인 토석혼축산성이다. 《군지》에는 '비룡산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원형으로 쌓았다 하여 '원산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이 성에서 마한을 점령하고 백제를 세웠다거나, 고구려 온달 장군이 이 성을 점령하려고 내려오다 아차산성에서 전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궁향교, 무이서당(武夷書堂), 만파루, 황목근(천연기념물 400), 삼강 나루터가 가까이 있고 그밖에 용문사 대장전(보물 145) 외에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용문사와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천연기념물 294) 등 관광명소가 있다.
비룡산은 평균 해발이 200m도 채 안되지만 초입부터 오르막이 시작되고 봉우리를 오를 때 마다 낙동강 바닥까지 완전히 내려섰다 다시 올라서는 것이 반복되기에 체감 높이는 웬만한 높은 산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 조그만 산이라고 얕봤다간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그러나 시원한 강바람과 숲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내성천과 회룡포의 비경은 그런 고단함을 잊어버리게 한다. 산은 높지 않으나 산행코스가 다양하며, 산행시간은 코스에 따라 4시간까지 걸린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회룡대에서 본 육지 속의 섬 회룡포





1.회룡마을주차장 -아미타대불(장안사) -회룡대 -원산성 -의자봉 -사림봉 -회룡마을-주차장



☞교통: 대구 → 중앙고속도로 → 서안동IC → 예천→ 용궁면 → 회룡포
 



1.회룡마을주차장 -아미타대불(장안사) -회룡대 -원산성 -삼강앞봉 -의자봉 -적석봉 -사림봉 -사림재 -회룡마을-주차장
 

[회룡마을주차장 -아미타대불(장안사) -회룡대 -원산성 -의자봉 -사림봉 -회룡마을-주차장]

*일시:2010.11.4(영태) *날씨:좋음
*산행코스

회룡마을주차장 -아미타대불(장안사) -회룡대 -원산성 -삼강앞봉 -의자봉 -적석봉 -사림봉 -사림재 -회룡마을-주차장
=== 약10km,, 놀며쉬며 5시간30분 소요 ===

그냥 나들이 삼아 구미에 들렀다가 하루 더 쉬기로 한다. 하릴없이 보내기 보다는 산행이라도 하는게 어떻냐는 제의에 아내로 부터 콜사인이 들어온다. 기왕이면 좀더 근사한 곳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좀은 멀지만 회룡포가 있는 예천 비룡산을 찿는다. 관광도 하고 산행도 겸할 수 있는 1석2조의 대상지다. 아내의 체력에 따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코스를 조정하여 하산할 수 있는 곳이 비룡산이다.

용궁면 소재지를 지나 회룡포를 알리는 이정표를 자주 대한다. 회룡교를 건너자 양갈래길이 나온다. 이정표도 없다. 무작정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다. 길은 구불구불 산으로 오르더니 잘 단장된 주차장이 나온다. 도데체 여기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겠다. 주차장엔 차량이 몇 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한산하여 사람의 그림자는 가뭇하다.

그 흔한 안내판조차 보이지 않는다. 팍팍한 시멘트길을 몇 걸음 올라서야 이곳이 회룡포가 아닌 장안사 쪽이라걸 깨달았다. 내친 김에 장안사쪽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비룡산을 한바퀴 돌아내려온다면 윈점회귀에는 적당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차를 몰아 갈림길이 있던 곳으로 돌아온 후 이번에는 왼쪽으로 들어선다. 얼마지 않아 회룡마을이 나타나고 뒤이어 관광안내판이 서 있는 회룡마을 주차장이다. 회룡교 지난 갈림길에 이정표 하나 정도 세워두었더라면 길 찾기가 훨 쉬우리라 생각해본다.

◀용주팔경시비

비룡산 오르는 길은 회룡마을주차장에서 관광안내도 옆 계단이 들머리다. 계단을 올라서자 용주팔경 시비가 서 있고 회룡대까지는 1.5km 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용궁면은 예전 예천군으로 통합되기 전까지는 용궁군이었으며 고려 때는 용주로 불렸던 곳이라 한다. 용주팔경시비는 이 고장 출신 시인인 김영락이 용주의 아름다운 팔경을 노래한 시를 1997년 회룡포 면민들이 시비로 건립했다고 한다.

용주팔경시비를 지나면 길은 산허리를 타고나간다. 목책까지 설치되어 안정감을 주는 길이다. 그 길에서 내성천 물길과 백사장이 숲 사이로 보인다. 저 멀리로 뿅뿅다리를 건너는 관광객의 모습이 가뭇하게 내려다보인다. 산 아래 물가 풍경은 깊어진 가을빛과 어우러져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몇 개의 간이의자가 마련된 쉼터를 연이어 지난다. 숲길이 좀 짙어 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눈앞이 훤히 트이며 아미타대불이 서 있는 넓은 터에 다다른다. 근사한 정자와 식수대까지 마련되어 있다.
공터 오른쪽 아래로 장안사가 보이길래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절 빗돌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장안사는 13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이지만 고찰다운 면모는 크게 찾아볼 수 없는 작고 아담한 절집이다. 마당 한 켠 석탑에 걸린 소원지에 적어 놓은 글귀가 웃음을 자아낸다. "올해 12월 30일까지 꼭 닌테도 게임기를 갖게 해주세요"

장안사를 둘러보고 아미타대불이 있는 곳까지 되돌아 온다. 회룡대에 오르기 위해 대불 오른쪽으로 난 가지런한 계단길을 따라 오른다. 회룡대까지는 0.3km를 알린다. 잠시 후 현위치를 알리는 산행안내도가 있는 무제봉3거리에 닿는다. 왼편 바로 아래로 내성천 물돌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회룡포 전망대인 회룡대가 있다.
마을을 감아 흐르는 물길이 마냥 신기하다. 산과 강과 하얀 모래사장, 마을과 농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최고의 풍경을 만든다. 사실 비룡산의 하일라이트는 이곳 회룡대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회룡대만 둘러보고 이곳에서 곧바로 회룡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따르면 한시간 남짓으로 산행을 마칠 수 있다.

회룡포를 굽어볼 수 있는 회룡대▶

회룡대에서 되돌아 나와 이정표가 가리키는 원산성방면으로 진행한다. 200m후 봉수대다. "비룡산 봉수대"를 알리는 빗돌에는 2000년 12월 복원했다고 적혀있다. 사실 회룡포를 볼 수 있는 이곳 일대를 비룡산이라 부르고 있지만 정상석은 물론 이산 어디에도 비룡산이란 이정표를 만나 볼 수없다. 다만 유일하게 비룡산이란 글귀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이곳 봉수대이다. 따라서 비룡산은 어느 특정한 봉우리를 지칭하기보다는 이산 전체를 뭉퉁그려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구지 정상이 어디라고 꼭 집어서 말한다면 이곳 봉수대가 있는 자리가 아닐런지...
봉수대에서는 준비해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커피까지 마시는 호사를 누려본다. 어차피 회룡대만으로도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아내의 컨디션에 따라 적당한 만큼만 걷다가 내려설 계획이고 보니 여유로운 마음은 마냥 늑장이다.

봉수대-제2전망대와 원산성 갈림길이 있다 ▶

봉수대에서 10여분 후 제2전망대 갈림길에 선다.(이정표:좌 -제2전망대, 우-원산성 1.2km, 뒤-회룡리 1.2 km) 제2전망대까지는 5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국제신문 개략도를 보니 제2전망대를 경유하여 사림재로 통하는 길이 있다.
역시 아직은 시간여유가 많으니 원산성쪽으로 돌아 가기로 한다. 길은 한차례 곤두박질치며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다. 능선상 평이한 길에서 윈산성을 알리는 안내판을 만난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산성자리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원산성은 삼한시대의 마한이 이 성을 지키기 위해 전투를 벌이다가 백제에 패망하였다고 하며 그후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접경지대로 잦은 격전이 있었던 곳이라고 적혀있다. 남문지 안내판을 지나 평탄한 능선의 끝부분으로 나서면 간이의자가 마련된 전망자리가 있다. 이곳에 서면 회룡포를 감싸고 나온 내성천과 문경에서 흘러 드는 금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인 삼강 합수지점을 볼 수 있다.
오늘산행은 쉼터가 나타나면 모두 쉬어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터라 이곳에서도 한동안 쉬어간다. 예전 낙동강의 마지막 주막이었다는 삼강주막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11월 이라지만 아직은 햇살이 따사롭다. 낙동강을 바라보는 풍경이 지겨워 진 즈음에야 다시 걸음을 옮긴다.

원산성에서 능선을 따라 곧장 직진하면 성저마을이다. 벤치에서 몇 걸음 돌아 나와 갈림길 이정표에서 배골쪽으로 내려선다.(배골:0.5km, 성저마을 2.0km) 초입 계단길을 내려서자 쏟아질 듯한 급한 내리막이다. 길엔 미끌어질 만큼 도토리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덕분에 더딘 걸음은 더욱 더디어 지기만한다.
한동안 내려서면 정글지대를 연상케 하는 배골 하류에 닫는다. 어지간히 묵은 숲길이다. 다행이 골을 건너는 근사한 목재다리가 설치되어있다. 바로 오른편으로 낙동강변이다. 고도를 낮췄던 만큼 다시 올라선다. 한 차례 올라서면 삼강앞봉이다. 삼강을 조망할 수 있는 나무데크와 제2전망대 갈림길이 있다.(제2전망대 1.0km, 사림봉 2.4km, 의자봉 0.9km)
삼강이 모여드는 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원산성에서 보지 못했던 삼강주막의 모습도 보인다.

사림봉에서 내려다 본 회룡포 전경▶

사림봉 방향으로 접어들어 다시 한 차례 뚝 떨어진다. 이번에는 낙동강이 바로 코 앞이다. 강에는 중장비가 들어서 열심히 모래를 퍼 올리고 있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아니면 요즘 세간의 이슈가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바닥이 무참히 파헤쳐 지는 모습이 애처롭다.
강변을 벗어나면 다시 긴 나무계단 오름이다. 그 오름의 끝에 의자봉이다. 간이의자 옆 늘어진 나무가지에 나무의자봉이라 적어둔 팻말이 걸려있다. 적석봉 방향을 알리는 안내판을 따라 내려선다. 안부자리에 용포마을 가는 갈림길 하나를 지나친다.
의자봉에서 적석봉까지는 600m거리,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사림봉까지는 다시 10 분 정도가 더 소요된다. 도중에 용포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다. 유일하게 아담한 정상석이 서 있는 사림봉(256m)은 이 일대에선 최고봉이다. 발 아래로는 회룡포를 휘어 도는 내성천이 아주 가깝다. 솔숲사이 벤치를 만들어 놓아 편안하게 앉아 기이한 지형에 감탄한다.

사림봉에선 왔던 길을 되짚어 용포마을로 내려선다. 제2전망대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사림재에서 오른쪽으로 꺽어든다. 사림재를 지나면서 길은 널찍해진다. 이후 5~6분 정도면 용포마을이다. 용포마을은 서너가구가 전부인 듯 사람사는 기척은 가뭇하다.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가는 곳감이 인상적이다.
용포마을에서 강변쪽으로 다가서면 내성천을 건너는 제2뿅뿅다리가 육지 속의 섬 회룡포로의 입성을 유혹한다. 재작년 한마음에서 산행을 했을 때 까지만 해도 없었던 다리다. 아마 최근에 새로 만들었는 모양이다.

제2뿅뿅다리▶
회룡포는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탓다고 한다. 최근 강호동의 1박2일 촬영으로 그 주가가 더욱 상승되고 있는 곳이다. 마을 안에는 분수대를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 다시 내성천을 건너는 곳으로 뿅뿅의 원조인 제1뿅뿅다리가 있다.
강이 마을을 감싸고 도는 특이한 지형의 회룡포, 비룡산에서 보면 마치 육지 속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 회룡포는 다시 찾고 싶은 곳 중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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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長安寺)]

◀소원지가 빼곡하게 붙은 장안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비룡산(飛龍山)에 있는 절.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국토의 중앙인 이곳 비룡산 장안사가 그것이다. 절은 신라 경덕왕 때(759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雲明)선사가 세웠다고 사적기에 적고 있다.

1900년대까지 장안사는 허물어져 쇠락한 절이었는데 어느 날 두타(頭陀)스님이라는 분이 젊은 나이에 이곳에 들어와 혼자 산길을 내고 우마차로 제목을 나르고 하여 새롭게 절을 중수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두타스님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이 감복하여 스님을 도와 마침내 장안사가 옛 모습을 찾고 신도들이 모이자 두타스님은 말없이 절을 떠났다고 한다. 비룡산 장안사 뒤편의 전망대에 오르면 물길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동화 속 마을회룡포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義湘)의 제자인 운명(雲明)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예천군지』에서는 고려 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역사는 조선 중기 이후의 기록만이 전한다.
1627년(인조 5) 덕잠(德潛)이 중창하였고, 1709년(숙종 35) 청민(淸敏)이 범종각(梵鐘閣)을 중수하였으며, 1755년(영조 31) 법림(法琳)과 지묵(智默) 등이 중수하였다. 1800년(정조 24) 효일(孝日)이 중수하였고, 1867년(고종 4) 설산(雪山)이 향로전(香爐殿)을 중수하였으며, 1872년 설곡(雪谷)이 법당 및 요사채를 중수하였다. 1876년 백암(白巖)이 종각을 중수하였고, 1881년 백암이 산령각(山靈閣)을 중수하였다. 그 뒤 응봉(鷹峰)이 1896년에 산령각을 중수하였고 이듬해에는 법당을 중수하였다. 1925년에는 법당의 기와를 갈고 대방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여 좌측에 주지실로 사용하는 응향전(凝香殿)이 있고 우측에 승방(僧房)이 있으며, 건너편에 ‘飛龍山長安寺(비룡산장안사)’라는 현판이 걸린 마룻집이 있고, 뒤편 언덕에는 산령각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조선 말기에 지어진 건물이며, 전각 내에는 목조 아미타삼존불과 3점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나 모두 최근작이다. 그러나 산령각에 봉안된 산신탱화는 1812년(순조 12)에 조성한 것으로 확실한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마룻집에는 1727년에 쓴 중창기를 비롯하여 각종 중수기 현판이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등촉계기(燈燭契記)·불량계중설서(佛粮契重說序)·불사기문(佛事記文) 등이 있고, 1953년에 만든 높이 55㎝의 범종이 있다. 절이 향석리 구읍(舊邑)의 남쪽에 있으므로 일명 남산사(南山寺)라고도 하며, 향석리에 있는 석불좌상과 3층석탑을 이 절에서 관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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