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경남 울주군 두동면, 경북 경주시 외동읍(개략도보기)
지도:1/25,000(입실,서하) 1/50,000(울산,언양)

▼박제상의 부인 치술신모를 기리는 신모사지 비석
치술령은 경남 울산시와 경북 경주시의 경계에 터 잡고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산으로 맑은 날이면 멀리 일보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시원한 전망을 제공하는 산이다. 치술령은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 김씨에 관한 애절한 설화가 있으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박제상은 눌지왕 즉위 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던 두 왕제를 구출코자, 먼저 고구려에 가 복호를 귀국시킨 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구출해 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일본에 잡혀 심한 고문 끝에 소사당한다. 이에 그의 아내인 김씨부인은 사무치는 정을 달래지 못해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통절의 눈물을 흘리다 그 몸은 돌로 변하여 망부석이 되고 영혼은 날아가 바위굴로 숨었는데 그 곳을 은을암이라 한다. 훗날 사람들은 김씨부인을 치술신모라하여 사당을 짓고 제를 올렸다고 한다.
산정에 신모사지 비석이 있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주능선 좌우로 울산시가지를 비롯하여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산하의 모습이 정겹기만하다. 또한 동쪽 건너로 외동읍의 삼태봉과 울산쪽의 동대산을 잇는 멋진 스카인라인 너머로 쪽빛 동해를 굽어보는 맛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다. 산행 들머리로는 울산쪽 배내마을, 박제상 유적지, 척과리, 경주쪽 외동읍의 녹동마을 등 여러 곳이 알려져 있고 경주, 울산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1.율림마을회관-국수봉-치술령-울산망부석-법왕사-박제상유적지(5시간 30분)
2.박제상유적지-법왕사-울산 망부석-치술령-헬기장-법왕사-박제상유적지(6km, 2시간 40분))
 

☞박제상유적지:포항-경주를 이은 후 경주IC 진입 전 경주 남산, 내남 방면으로 난 35번 국도를 따라 울산방면으로 달리다가 봉계 불고기 단지에서 좌회전 후 봉월초등교 방면으로 진입→이후 박제상유적지를 알리는 안내간판을 따라 난 지방도를 따르면 박제상 유적지에 이른다.
(포항공대에서 박제상유적지까지 54km, 1시간 10분 정도 소요)
또는 봉계에서 계속 35번 국도를 따른 후 두서면에서 박제상유적지 안내판을 좌회전.
 

 

1.율림마을회관-국수봉-치술령-법왕사-박제상유적지

 

애절한 망부석 설화의 근원지 치술령

★일시:2003.2.14(날씨-맑고 쌀쌀, 멀리로는 옅은 스모그현상) *참가:거북이 14명

*산행코스:은편리 율림마을회관-(1시간)-국수봉-(40분)-두 번째 임도(벽진이씨 가족묘)-(15분)-오르막 이후 무덤(전망대)-(50분)-헬기장-(5분)-치술령-(5분)-울산망부석-(17분)-법왕사-(20분)-박제상유적지
 (순보행:3시간 32분, 총 소요시간:5시간 40분)

*GUIDE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끝끝내 마저 하지 못 하였구나/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유명한 소월시인의 <초혼>이다.
치술령 산행이 계획에 잡히고 망부석 설화에 대한 이런 저런 자료를 정리하던 중 다시금 접하게 된 싯구로 망부석으로 화한 박제상의 아내 김씨부인의 애절한 심정을 대변하는 노래인 듯하다. 어쩌면 소월은 세월을 거슬러 옛 신라땅 치술령에 올라 망부(亡夫)를 그리는 김씨부인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라가 아직 그 기반을 닦지 못하던 눌지왕때 박제상은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던 두 왕제를 구출코져 멀리 고구려에 가 있는 복호를 구출한 후, 또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구출해 냈으나 정작 자신은 일본에 잡혀 심한 고문 끝에 소사당했다. 이에 박제상의 아내 김씨부인은 두 딸 아기(阿奇), 아경(阿慶)과 함께 치술령에 올라 사모하는 정을 이기지 못해 멀리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죽으니 몸은 돌로 화해 망부석(望夫石)이 되고 그 혼은 수리새가 되어 산 아래로 내려 앉았다가 다시 남쪽에 있는 한 바위구멍 속으로 숨어들게 된다.
뒷날 사람들은 새가 앉은 자리를 만화리의 비조(飛鳥)마을이라 부르고, 새가 숨어든 곳을 은을암(隱乙巖)이라 불렀으며 김씨부인을 치술령의 산신인 치술신모라 하여 사당을 지어 재를 지냈으며 두 딸 또한 아버지를 부르며 통곡하다 죽으니 이 세 모녀를 "호국삼신녀"라 칭하였다.

▼왼쪽은 울산쪽 망부석, 오른쪽은 전망대를 제공하는 경주쪽 망부석
 

치술령은 이러한 애절한 설화와 함께 역사의 향기를 음미하며 오를 수 있는 산이다. 국제신문 다시 찾는 근교산팀의 산행기사를 참고하여 그 역사의 현장 치술령을 찾는다.
경주고속도로 가기 전 4거리 갈림길에서 35번 국도로 좌회전 후 내남을 지나서게 되면 울산시 봉계숯불단지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여 얼마를 나서면 박제상 유적지를 알리는 도로표지판을 만난다. 유적지까지는 포항에서 약 54km,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일단 박제상유적지에 차량 한 대를 주차한 후 산행 들머리인 율림마을로 이동한다.
유적지를 지나 두동면 은편리 옷밭마을회관을 지나자마자 우회전하여 마을길을 따라 들어서게 되면 약 3km 정도 거리로 율림마을에 당도하게 된다. 마을 초입부로 아무런 표식이 없는 탓에 다소의 혼돈이 있었고 마을주민에게 길을 묻고서야 겨우 율림마을회관에 당도할 수 있었다.

10시 50분, 율림마을회관 앞 사거리에서 회관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시멘트 농로길을 따라 100m 정도 나서게 되면 오른편으로 재실이 보인다. 여기서 재실 직전 왼편의 봉분 큰 무덤 뒤로 난 지능선을 따라 드는 길이 국수봉으로 오르는 초입이 된다. 지능선으로 접어들어 몇 발자국 나서지 않아 넓은 임도길이 시작되고 오른쪽 건너로는 넓직한 무덤군이 보이게 된다. 4~5분 가량 너른 임도를 따라 올라서게 되니 4거리 갈림길이다.(10:54)
여기선 왼쪽 능선 오름길로 방향을 전환한다. 완만하게 올라서는 넓은 길이 편안하게 이어지고 좌우로 몇몇기의 잘 가꾸어진 무덤들을 지나치게 되니 "금부도사경주최씨묘"에 이르게 된다.(11:07) 이후 7~8분 가량 임도가 더 이어지더니 임도가 끝나면서 밋밋하게 올라서던 길이 산허리 하나를 크게 돌아 나서면서 다시 능선상으로 올라서게 된다.(11:34)
산허리를 돌던 길이 능선상에 올라붙는 지점은 4거리 갈림길로 여기서는 왼쪽으로 전환하여 뚜렷한 능선을 따르기로 한다. 1분 가량 듬성듬성한 돌길을 따라 올라서게 되면 소나무 한 그루 아래로 넓직한 바위가 있는 전망대에 이른다.
솔가리가 소복하게 쌓인 편평한 바위로 장정 대 여섯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발 아래로 지지마을 일대가 내려다 보이고 그 건너로 오똑한 봉우리가 연화산(530.5m)이다. 남서방면 언양쪽으론 채석광산인지 산허리를 잘라내 속살이 허옇게 파헤쳐진 모습이 볼성사납기도 하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20여분 가량 가까이 은근한 오르막을 올라서면 뚜렷한 능선 3거리에 이른다.(11:53)
여기서 바로 왼쪽으로 밋밋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국수봉이다. 하지만 이 능선 3거리에서 오른쪽으로 50m 가량 나서게 되면 바로 아래로 울산시 범서면 척과리를 비롯하여 울산시가지를 굽어 볼 수 있는 시원한 조망이 터지는 전망대가 펼쳐지므로 땀흘려 오른 발품을 충분히 보상하게 된다. 왼쪽 저 아래 골짜기로 반용저수지의 푸른 물빛이 내려다 뵌다.
다시 능선갈림길로 되돌아 와 왼쪽 능선을 따라 20~30m 이어가면 무덤 1기를 지나치게 되고 이후 올라서는 봉우리가 국수봉(600m)이다.(12:047)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국수봉(國讐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청산회"에서 세운 정상표석엔 國守峰으로 표기되어 나라를 지키는 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범서읍지에 따르면 국수봉은 원래 한자로 國讐峰으로 표기했다고 하며 인근의 산들이 모두 신라 서라벌을 향해 경의를 표하는 자세인데 반해 유독 이 산만이 등을 돌리고 앉은 형국이라 하여 원수 수(讐)자를 섰다고 한다.
국수봉엔 청산회에서 세운 화강암 표석 말고도 울산 한가족산악회에서 세운 나무표식이 자리하고 있다. 사방이 수목으로 둘러싸여 시야가 가리는 편이지만 정상 동쪽 아래로 평평한 바위반석과 소나무가 그늘을 제공해 주는 넓직한 전망대가 있으므로 식사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국수봉 직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척과리일대
국수봉을 지나쳐 북으로 10m 가량 나서게 되면 갈림길, 여기서는 왼쪽으로 잘 다져진 반반한 길을 따라 내려서야 치술령 방면이다. 오른쪽 길은 은을암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왼쪽으로 반반하게 잘 다져진 길은 급격하게 낙차를 두고 떨어지게 된다. 애써 올라온 길을 다 까먹는 기분이다. 국수봉에서 약 15분 가량 내려오게 되면 고갯마루를 지나는 임도를 만나게 된다.(12:19) 표고 약 200m 정도를 떨어진 셈이다.
이 임도는 왼쪽 두동면 만화리 방면으로는 시멘트포장이 되어 있는 상태고, 오른쪽 범서리 방면은 비포장 상태이다. 만화리 방면으로 <두동 만화 1.8k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기도 하다.

임도를 가로질러 3분 가량 올라서게 되면 자그마한 봉우리에 올라서고(12:22) 여기서는 반반하게 닦여진 왼쪽 비탈길로 내려서야 한다. 하지만 정면으로 난 북동쪽 능선으로 잠시 내려선 연후에야 잘못 접어든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주능선 같은 북동능선은 무덤 1기를 지나치더니 철탑 아래로 이어진다. 왼쪽 저 건너로 고갯마루를 넘는 차도가 보이면서 치술령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건너다 보인다. 이 북동능선은 길이 뚜렷하지만 은을암쪽으로 내려서고 있는 것이었다. "빽"을 외치면서 뒤돌아 서야 했다. 다행히 크게 많이 내려서지 않는 터였고 도중에 왼쪽 능선으로 건너서게 되는 트래버스 길을 따라 산허리 하나를 돌게 되니 371.6봉 직전의 작은 안부와 접하게 된다.
안부를 올라서게 되면 삼각점이 있는 371.6봉이다.(12:37) 이후 북쪽 건너로 보이는 철탑을 향하여 내려서게 되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너른 공터가 나타난다. 고개 절개지로 내려서는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두동면 만화리 비조마을과 범서면 척과리를 잇는 고갯마루다.(12:44) 너른 주차공터와 "벽진이씨 가족묘"가 안장된 <영막당(永幕堂)>이라 씌여진 납골당처럼 생긴 무덤이 있다. 저 앞으로 넘어서야 할 산봉이 지레 겁을 주며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고갯마루를 건넌 오름길에 고압 송전철탑(NO 29번) 아래를 지나(12:48) 30m 가량 진행하면 밋밋한 4거리 안부로 비조마을과 척과리로 내려서는 길이다. 이 안부를 지나면서부터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15분 가량 땀을 쏟아내고서야 겨우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고 이 지점에 허름한 무덤 1기가 자리하고 있다.(중식 13:02~13:49)
무덤 뒤로 몇 발자국만 나서게 되면 왼쪽 만화리, 이전리 일대가 빤하게 내려다 뵈는 수백길 낭떠러지 벼랑 끝에 서게된다. 저 앞으로는 치술령 정상부가 올려다 보인다. 뒤돌아 본 국수봉 또한 아주 멀리 그리고 높게 보인다. 풍수지리를 제쳐놓고라도 양지바른 무덤터는 산객들에겐 쉬어가기 안성맞춤인 터, 이곳 무덤가에 자리를 틀고 앉아 점심식사.

13시 49분, 다시 행장을 꾸려 치술령을 향한다. 작은 안부 하나를 지나쳐 가파른 오름길을 극복하고서야 건너편 봉우리에 이른다.(13:58) 오른쪽 아래로 척과리로 이어지는 뚜렷한 능선길이 뻗어 나가고 있다. 이후 또다른 사거리 갈림길을 만나는데(14:05) 정면으로 반듯이 난 능선길을 이어간다. 여기서부터는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는 오름길의 연속이고 점심식사 후라서 인지 많은 인내가 요구된다.
그렇게 20여분 가까이 가쁜 숨을 토해내게 되니 왼쪽 저 앞으로 치술령 멧부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완만하고 부드러운 능선길이 전개된다.(14:23) 묵은 낙엽이 발목을 덮는 오솔길이 마냥 평화롭게 이어지는 길이다. 단조롭던 오솔길에서 몇몇 개의 특이하게 생긴 바위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오른쪽으로 멋들어진 전망을 제공하는 평평한 바위반석 전망대가 나타난다.(14:37~14:48)
석계저수지를 비롯한 경주 외동 일대와 경주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14번 국도가 발 아래로 지척간이다. 건너편으로 외동읍 삼태봉(三台峰)(629.1m)에서 울산쪽 동대산(東大山)(444m)을 잇는 스카이라인이 짙은 스모그속에서 그저 윤곽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좀더 날씨만 맑았다면 저 산록 너머로 쪽빛 동해바다를 건너다 볼 수도 있으련만...

이 전망대에서 한참을 쉰 후 마지막 힘을 추스려 치술령의 망부석을 보기 위한 발길을 재촉한다. 2분 만에 오른쪽 아래로 녹동리 남방마을 방면을 알리는 경주 "좋을라고산악회"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지나 10여분 정도를 더 나서게 되니 깔끔한 헬기장이 나타난다.(14:59)
헬기장에서 이정표가 알려주는 거리는 정상까지 0.3km, 왼쪽 아래 치산서원 3.0km, 은을암 3.2km.
5분을 더 올라서서야 신모사지(神母祠地) 비석이 있는 치술령정상이다.(15:05~15:39) 치술령의 산신 치술신모는 박제상의 아내 김씨부인을 일컬음이고 이곳 치술령의 산신은 여신인 셈이다. 신모사지 비석 뒤로는 치술령을 알리는 자그마한 표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망 또한 사방으로 시원하기 그지없다.

치술령에서 북쪽으로 호방하게 뻗어있는 능선은 이른 바 치술령 종주코스로 봉계리쪽으로 길을 이어갈 수 있다. 신모사지 비석 정면방향인 동쪽 아래로 30m 가량 내려서게 되면 바위전망대를 제공해 주는 경주쪽 망부석을 들러 볼 수 있다. 모양새는 그리 망부석모양을 하고 있지 않지만 동해쪽을 바라보는 전망만큼은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다시 정상까지 되올라 온다. 정상에서 망부석 0.3km 라고 표시된 이정표를 따라 서쪽 능선으로 접어들어 1분 정도 나서게 되면 3거리, 여기서 왼쪽 또렷한 길로 3분 가량 더 내려서면 울산쪽 망부석을 만나볼 수 있다.(15:43) 모양새로 봐서는 경주쪽 망부석에 비해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울산시에서 설치한 안내판이 박제상과 김씨부인에 얽힌 설화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한때 울산시와 경주시는 서로 자기 지역내의 망부석이 설화속의 진짜 망부석이라 주장하며 논쟁을 벌인 일이 있는데 아직까지 그 규명은 명확치가 않다. 망부석 오른쪽 아래로 <참새미(약수) 0.1km>를 알리는 이정표가 붙어 있고 정면(서쪽) 능선을 곧장 진행하게 되면 구미리 당산마을로 내려서게 된다.

15시 48분, 망부석에서 법왕사로 내려서기 위해 왼쪽 아래 비탈길로 내려선다. 촘촘히 박힌 나무계단길을 따라 12분 가량 내려서게 되니 왼쪽으로 계곡합수점이 나타나고 치술령 0.8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16:00) 이 지점은 치술령 올라서기 직전에 만났던 헬기장에서 왼쪽 아래 치산서원이라고 적힌 내림길과 합해지는 지점이다.
이후 유순해진 내림길을 5분 가량 나서게 되면 반듯한 대웅전이 치술령을 뒤로 하고 자리잡은 법왕사에 이른다.(16:05) 흰색 진도견 두 마리가 달려들어 요란하게 짖어 대지만 마음 착한 비구니 한 분이 타이르자 이내 온순해지며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고 있다. 법왕사 앞으로는 주차공간이 있으므로 승용차 이용시는 법왕사를 들머리로 잡을 수도 있다.
◀박제상유적지
법왕사 매점 앞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시멘트차도를 종종 걸음으로 내려오게 되니 오른쪽 계류 건너로 미륵입상이 서 있는 충효사에 이른다.(16:27) (이정표: 법왕사 1.3km, 치술령 2.7km)
이후 마을길을 따라 옷밭노인회관을 지나치게 되면 넓은 주차장이 있는 박제상유적지에 이른다.(16:35) 울산시 기념물 1호인 박제상유적지는 <치산서원터> 라고도하며 박제상과 그의 부인 치술신모를 기리기 위해 세웠던 사당터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 사당터에 치산서원이 세워졌던 곳이다. 이로서 애절한 설화 속으로 떠났던 치술령 산행은 막을 내리고 뒤돌아 본 산 능선위로 하얀 낮 달이 걸터앉아 유구의 역사를 일깨우는 듯하다.
선 채로 이대로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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