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2001.11.17~18
*참가:그린산악회 일일회원(28명)
*산행코스 일주문
앞 주차장(06:07)-(10분)-대흥사-(40분)-북암-(10분)-오도재-(30분)-능허대(노승봉)-(8분)-가련봉-(20분)-
만일재-(20분)-두륜봉-(30분)-진불암-(30분,차도이용)-관음암-(30분,차도이용)-일주문-(60분)-상가촌 ===
순보행:4시간 50분, 총 소요시간:6시간) ===
☜가련봉
내림길에서 건너다 보이는 두륜봉 <산행
스케치> 토요일, 밤 늦은 시간 포항역 광장에서
"그린산악회"의 일일회원이 되어 머나먼
땅 해남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한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산이라 했던가? 지리산에서 갈라진 금남호남정맥이
무등산, 월출산을 거쳐 그 기세를 남서로 내리 뻗다가
바다에 스며들기 직전 크게 한 번 용트림하며 솟구친
두륜산은 그 지맥을 달마산(489m)으로 이어가며 땅끝마을
사자봉에서 스르르 바다에 잠기고 만다. 10여년 전
두륜산을 올랐을 때 옹골차게 솟아 각인되어 있던 바위봉의
형체를 되새김하며 아스라하던 기억들을 다시금 떠
올려 본다. 진영휴게소에서 뜻밖에도 미자, 종미자매를
만나 산행 내내 동행이 된다.
04시
40분, 6시간 가까이 달려온 차량 속에서 취한 잠을
못내 아쉬워하며 눈을 뜬다. 제법 한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새벽바람을 가슴에 담고 올려다 본 하늘엔 총총히
박힌 별들이 유난스레 가까이 내려 앉아 있다. 산악회측에서
준비한 뜨뜻한 국밥으로 요기를 하니 이내 한기가 가시고
06시 07분 어스름한 새벽녘 대흥사 경내버스 종점이
있는 주차장을 출발한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따라 얼마 나서지 않아 피안교(彼岸橋)를 건너게 된다. 이제부터는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피안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彼岸!, 일상에
찌든 군더더기를 잠시 벗어 버리고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로 도달하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느낌일까?
피안교를 건너면서 청아한 새벽공기가 한층 싱그럽기
그지없다.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전 대둔사)에 다다르니 고요하기 이를데
없다. 일행들의 웅성거림과 발소리가 수도정진하는
스님들의 새벽예불에 방해가 될까하여 조바심마져 든다. 어둠
속에서도 고계봉(638m)에서 오심재로 떨어져 노승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크게 "V"자를 이루며 다가선다. 오른쪽
일지암으로 올라서는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간간이
동백나무가 모습을 드러내며 제멋대로 놓여진 돌길이
조심스럽다. 다소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길로 조릿대가
보이기 시작하고 하늘이 희끄므레 열리기 시작하며
제법 너른 바위턱에 이르니 그 위로 북암 지붕이 올려다
뵌다. 날은 이미 훤히 새고 북미륵암이라고도 불리는
북암 절마당에 들어서니 남서쪽으로 도솔봉에서 연화봉으로
비스듬히 흘러 내리는 능선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0여년 전 옹색하게만 보이던 요사채가 그사이 새단장을
하고 마애여래좌상을 봉안하기 위한
용화전 법당보다 더 근사한 모습으로 낯선 길손들을 반긴다. 고즈넉하기
이를데 없는 산사에는 가을의 끝자락을 붙들고 형형색색의
단풍이 잔뜩 이슬을 머금고 붉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보물 301호로 지정된 3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보물
48호)을 둘러 보고는 북서쪽 사면을 타고 오심재를
향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며 산허리를 돌아서는 길은 키 작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시야가 트일 즈음 건너편으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올라서는 고계봉(638m)이 시선을 끈다.
허리께 쯤으로 아침 햇살을 받아 제 빛을 발하는 단풍띠를
두르고 있는 고계봉의 모습이 고고하게까지 느껴진다. 어어서
몇 발자국을 더 나서지 않아 두륜산 일대의 가장 넓은
억새밭이 펼쳐지는 오심재에 이른다. 동쪽 아래로
오소재로 내려서는 길이 빤하고 넓직한 안부에 부드럽게
펼쳐지는 억새가 쌀쌀한 아침바람에 흔들려 물결치고
그 뒤로 준수하게 생긴 고계봉이 올라서기를 유혹한다.
하지만 오늘은 객(客)이 아니던가? 단숨에 고계봉을
올라설 것같지만 유혹을 애써 억누르고 산악회측의
안내에 의지한다.
잠시의
휴식이 끝나고 남쪽길을 따라 완만하게 올라서는 노승봉(능허대)
오름길을 따른다. 오심재에서 올려다 뵈는 노승봉은
우뚝 솟은 암봉으로 쉬이 범접하지 못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억새 사이를 비집고 15분 정도를 올라서니 서리가
잔뜩 깔려있는 지그마한 헬기장이다. 건너다 보이는
고계봉이 고개를 낮추고 어깨 너머로는 옥천면 방향으로
자그마한 암봉들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서 봉긋하게
솟아있는 200m 거리의 노승봉은 자못 기세가 당당하다.
길은 절묘하게 암릉 왼쪽으로 이어지고 가파른 바윗길은
쇠사슬을 잡고 올라 자그마한 바위문을 빠져 나가게
된다. 노승봉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을
제공하고 더 이상 거칠 게 없다. 정상부는 넓직한 바위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고스락에 이렇게
넓은 반석이 형성되 있다니.... 오랫동안 머무르며
이 암릉의 자락자락을 가슴깊이 새겨두고 싶은 욕심이
강렬하다.
이어서
자그마한 바위 암릉을 넘어서면 이내 두륜산의 주봉인
가련봉(7.3m)에 이른다. 바위 오름길 급경사 위험구간은
볼트를 이용해 발판과 링을 박아놓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바위벽을 비집고 들어간 볼트가
자연미를 훼손시키지만 안전을 확보해 주는 미더움으로
그냥 덮어두기로 하자. 가련봉에 올라서면 북으로
노승봉(685m), 고계봉(638m), 그리고 건너편의 두륜봉(673m)의
고만 고만한 암봉들이 남성적인 기개를 보이는 반면,
남서쪽 도솔봉(673m)에서 연화봉(613m), 혈망봉(379m),
향로봉(469m)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산세는 여성스럽기
그지없다. 상상의 산이며 산의 조종으로 알려진 곤륜산과 백두산에서 연유했다는 뜻에서 두 산의 한자씩을 따 두륜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했던가? 해남반도의 중앙에 우뚝 솟아 천지에서
시작된 백두 대간이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며 반도끝으로
기세를 몰아 저 멀리 제주도까지 이어갈 듯한 세력이
어찌 여기서 머물러 있단 말인가? 한반도의 끝자락임을
스스로 자부하기 위해 여기서 안주했단 말인가?
코
앞으로 떨어지는 해남군 북일면 일대의 너른 들판과
그 너머로 강진만이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 물결로
반짝이고 그 사이사이로 그림같은 다도해의 전경이
펼쳐진다. 서쪽 산록 아래로는 아담하게 자리잡은
골안으로 대흥사와 부속말사들의 지붕들이 내려다 뵌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두륜산 일대를 두고 "만고불파지지(萬古不破之地)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 했던가? 대흥사를
둘러싸고 있는 8개의 특징적인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절터라 감히 범접하기가 어려워 임진왜란과 6.25
전쟁때도 병화를 입지 않은 연유를 이 가련봉에 올라
실감한다. 대흥사 입구쪽 장춘리라는 지명이 과연
그럴 듯하다. 사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록으로 인해
봄이 길어 장춘(長春)이라던가.... 남쪽 만일재의
너른 안부 아래로 해남군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인
"천년수"가 나목으로 변해있다. 천년 세월을
그렇게 피고 지고 윤회를 거듭하며 그 자리를 지켰으리라...
만일재로
내려서는 다소 위험한 구간을 지나니 억새사이로 건너다
보이는 두륜봉 동쪽 사면의 깍아지른 벼랑이 사뭇 시선을
압도한다. 이윽고 만일재에 이르니 북일면과 강진만
일대가 지척이다. 그대로 한 발만 내딛으면 발뿌리가
이내 바다에 잠길 것같다. 너른 헬기장 안부에 키 큰
억새들이 장관을 이루고 두륜산은 암릉미뿐만 아니라
늦가을 단풍과 억새산행지로도 손색이 없을 것같다. 오손도손 모여 앉은 일행들이
행장 속에서 저마다 먹거리를 꺼내놓으니 제법 휴식시간이
길어진다.
두륜봉
오르는 길은 억새밭을 지나면서 또다시 암릉을 올라서야
한다. 예전에 없던 철사다리를 올라서니 "하늘로
통하는 문" 천연구름다리 아래를 지나치게 된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이 구름다리는 자연이 이루어낸
걸작물이 아닌가 싶다. 구름다리 위로 올라서게 되면
서너 발 정도면 건널 수 있고 아래로는 아찔한 벼랑이지만
건너는 재미는 스릴을 만끽 할 수 있다.(후답자에게
전하고 싶다 - 두륜산에 가면 꼭 이 천연구름다리를
한 번 건너 보라고...) 구름다리 아래를 지나 오른쪽으로
꺽어드는 평평한 바위를 건너게 되면 또 다시 넓직한
바위가 있는 두륜봉이다. 정상표석 뒤로 우뚝 솟은
가련봉이 전혀 가련해 보이지 않고 거대한 꽃봉우리
모양으로 다가선다. 기실 두륜산이란 이름이 이
두륜봉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어쩌면 오른쪽으로 가련봉을
위시해 노승봉, 고계봉을 거느리고 왼쪽으로는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연봉을 거느린 모습은 이 산군의 머리께쯤으로
여겨지고 한때는 주봉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았으리라.
☜진불암에서
차도를따라 내려오는 길에서 올려다 보이는 가련봉,두륜봉을
배경으로 한 미자, 종미자매 뚜렷하게
각인된 봉우리들을 뒤로 하고 내려서기를 시작한다.
구름다리쪽으로 다시 건너와 서쪽 지능선으로 흐르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간간이 나타나는 동백숲이 만추의
계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푸르름을 자랑한다. 언제
기회가 다시와 이 동백꽃이 핀 숲길을 걸어 볼 수 있을까? 30분
가량을 내려서니 하늘을 덮었던 숲길은 갑자기 넓은
길로 바뀐다. 상원암 갈림길에 이른 것이다.(이정표
: 상원암 0.35km, 진불암 0.1km) 진불암으로 들어서게
되면 초입에 보라색 꽃을 피운 수국 옆으로 정교하게
세워 올린 돌탑 2기와 그 뒤로 백일홍과 항아리들이
오랜만에 찾은 고향인듯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진불암은
창건년대는 확실치 않으나 절마당 아래로 수백년 된
은행나무가 묵묵히 암자의 역사와 함께 했으리라. 절에서
되돌아 나오게 되면 암자 아래까지 차량이 진입할 수
있도록 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로
진불암계곡을 따라 표충사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쳐
계속 차도를 따라 올라서게 되면 도솔봉 정상의 군사시설까지
이어지는 시멘트도로와 접하게 된다. 이 차도를 따르게
되면 진불암에서 일주문까지는 3km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계곡길은 표충사까지 1km 안팍의 거리이다.
차도를
따라 내려서면서 오른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두륜봉,
가련봉의 암봉이 사뭇 시선을 끈다. 아직은 단풍빛이
여전한 길섶으로 낙엽이 엷게 쌓여있는 길을 따라 15분
정도를 내려서게 되면 왼편으로 "고산천"이라
명명된 샘터를 지나치게 되고 이어서 "남암"으로
들어서는 초입을 만나게 되는데 입구쪽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사립문이 굳게 닫혀있고 사립문 너머로 난
조붓한 오솔길은 역시 낙엽이 지천이다. 남암 바로
아래로 "관음암"이 은행나무 사이로 당우를
드러내고 있다. 절마당으로 들어서니 관음전이 가슴을
열어 졌히고 길손을 반갑게 맞는다. 요사채 옆으로는
점심공양 준비를 하는지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낙엽타는 향긋한 냄새에 취해 관음전 뜨락으로
올라서니 추녀끝에 매달린 자그마한 풍경 너머로 올려다
뵈는 두륜봉, 가련봉이 정녕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관음암은 한 때 명적암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이후
15분 정도를 더 내려서게 되면 대흥사 일주문에서 오도재를
넘어서는 갈림길을 지나쳐 다시 일주문 앞으로 내려서게
된다. 피안교를 건너 다시 속세로 환속하니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관광지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왼편으로
"유선여관"을 지나치게 되는데 한때는 유선여관의
"노랭이"가 등산객들의 안내를 도맡아 하여
세인들의 입과 잡지를 장식하기도 하였건만 지금 노랭이는
죽어 없어지고 또다시 유선여관은 영화 "서편제"와
"장군의 아들" 촬영지로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다. 장춘동 버스종점앞 상가에서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고 다소 혼잡스러운 차도를
따라 매표소쪽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장춘동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내려서는 이 길은 매표소까지 약 4km에
달하고 소나무, 전나무,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빽빽한
수림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계곡가 에는 마지막
단풍을 앵글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이 저마다 큼직한
카메라를 세우고 이리저리 초점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차도 왼편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내려서는 재미도 솔옷하다.
공원사무소를
지나 신상가촌으로 오르는 공터에 장승들이 줄지어
도열한 사이를 비집고 주차장에 이르니 6시간에 이르는
산행이 마감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두륜산 산행은
빼어나 암봉과 흙길이 반복되고 키 큰 억새가 조화를
이루고 발 아래로 남해와 서해의 은빛 물결사이로 다도해를
굽어 볼 수 있는 다분히 남국적인 이미지의 산이다.
ps:귀포길
한반도 최남단(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에 있는 땅끝마을을
둘러봄. 사자봉정상에 땅끝전망대 설치공사중(2001년
12월 완공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