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경북 문경시 산북면, 동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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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불산이란 이름을 낳게 한 사불암-공덕산 중턱에 위치해 있고 사면으로 불상이 새겨져 있지만 지금은 흔적만 희미하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과 동로면 경계에 자리한 공덕산(功德山ㆍ912.9m)은 백두대간상의 대미산(大眉山ㆍ1,115m)에서 남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가 여우목고개(호황령)를 지나 911.9m봉에 이른 다음, 다시 두 가닥으로 갈라져 911.9m봉에서 남서쪽으로 달아나는 능선은 운달산(雲達山ㆍ1,097.2m)과 이어지고, 남동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상의 최고봉이 공덕산이다.
공덕산 이름은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름일 뿐 불교계에서는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천강석조사불상(天降石造四佛像·일명 사불암)과 관련지어 사불산(四佛山)으로 부른다.
사불산이라는 산이름을 낳게 한 사불암(四佛岩)은 신라 진평왕 9년(587년) 하늘로부터 붉은 비단으로 싸여 산중턱의 커다란 암반 위에 내려 앉았다고 전해지며, 진평왕이 이 소식을 듣고 직접 가본 뒤 바위 곁에 절을 세운 것이 대승사라는 전설도 전한다. 공덕산은 대승사, 사불암 외에 나옹화상이 거처했다는 묘적암과 안장바위, 탑돌이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윤필암, 두 암자 사이에 있는 마애여래불상, 그리고 묘봉의 부부바위, 사불암 아래 유무유바위, 윤필암 아래 나도야바위 등 볼거리가 많은 산이다. 따라서 공덕산은 반드시 등산이 아니더라도 상기에 열거한 명소만 보고 와도 하루가 아깝지 않다.
 

[참고자료]
*대승사:신라 금자화엄경 나온 유적 많은 고찰
대승사는 신라에 불법이 전해진 법흥왕 15년(528) 59년 후인 진평왕 9년(587) 당시 무명의 불도였던 망명비구가 창건했다. 조선 초기에는 득통 기화가 이 절에서 반야경을 연구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대 전소된 뒤 선조 37년(1604)부터 숙종 27년(1701) 사이에 법당을 비롯해 승당 동상실, 관음전, 조전, 미륵전, 중실, 시왕전, 향로전, 천왕문, 만세루, 침계당, 금당, 영자전, 향적전, 음향전, 나한전, 청심전 등이 건립됐다.   영조 원년(1725) 의학대사가 삼존불상을 개금했는데, 이때 아미타불의 복장에서 사리 1과와 성덕왕 4년(705) 개명의 금자화엄경 7권이 나왔다. 1956년 실화로 극락전 명부전 산신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들이 전소된 것을 1978년에 대부분 복구했다.   산내 암자로는 윤필암, 묘적암, 보현암이 있다. 문화재로는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불탱각(보물 제575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991호), 마애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239호), 윤필암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및 윤필암 후불탱화(문화재자료 제348호) 등이 있다.

*대승사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 지방유형문화재 제239호
묘적암방향 좌 도로 150m쯤 올라가면 오른쪽에 거대한 암벽에 음각 높이 6m, 폭 3.7m, 머리상부에 화염문을 간략하게 변형시킨 2개의 연꽃형 뿔모양으로 지닌 것이 특징이며 조각수법이 각주의 약화(略化)현상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불교미술양식 변천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화강석의 자연석벽을 이용하여 음각된 이중연화좌(二重蓮花座) 위에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을 역시 음각하였으며, 머리 위로는 모서리가 깨어진 편평한 판석이 앞으로 밀려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천개(天蓋) 형식의 판석을 별석(別石)으로 마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는 소발(素髮)에 육계는 편평하게 솟아 있으며, 그 양편에 두 뿔처럼 화문(花文)을 돋을 새김으로 나타낸 것이 특이하다. 두 귀는 아래로 처지면서 반전되었고, 얼굴은 정면관(正面觀) 위주로 약화형식이 뚜렷하다. 통견(通肩)에 군의(裙衣) 매듭띠가 가슴 앞으로 보이는데 끝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사불암(四佛岩): 사면체 바위에 양각된 4개 불상
사불암은 삼면이 수직절벽인 너럭바위 위에 높이 2.5m에 각 면이 1.5m 안팎이 되는 사면체 기둥바위다.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4면에 모두 돋을새김된 불상이 있다. 모두 여래상으로 동서면은 좌상이고, 남북면은 입상이다.
사불암에 대해서는 '진평왕 9년(587) 하늘에서 한 길이나 되는 반듯한 사면체 바위가 붉은 비단에 싸여 이곳에 내려졋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왕이 이곳까지 찾아와 예배하고 이 바위 옆에 대승사를 지었다', '그리고 연경을 외우는 비구 망명에게 청하여 주지로 삼아 받침돌인 공석을 깨끗이 씻은 위에 향화(香火)를 끊이지 않게 하고, 이 산 이름을 역덕산, 또는 사불산이라 했다', '그 뒤 비구가 죽어 장사를 지내자 그 무덤 위에 연꽃이 피어났다'는 내용 등이 삼국유사 권3에 전해진다.
사불암은 1,4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비바람에 노출되어 왔기에 다소 초라해 보인다. 그만큼 마모가 심해 윤곽이나 겨우 알아볼 정도다. 이 사불암과 관련해서 대승사 경내에서는 '하늘에서 사면불이 내려오고, 땅에서 쌍련이 솟아났다'는 뜻인 천강사불지용쌍련 현판을 볼 수 있다.
◀사불전에서 본 윤필암 전경
*묘적암과 윤필암:   나옹화상이 득도한 암자
묘적암은 823m봉 남서릉 동쪽 사면, 사불암이 마주보이는 곳에 앉은 암자다. 이 암자는 선덕여왕 15년(646) 부운거사가  창건했다. 고려 말 나옹화상(1320~1376)이 머리를 깎고 출가, 이후 이곳에서 득도한 곳으로 유명하다.
묘적암 뒤 안장바위 전설은 나옹의 도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암이다. 날이면 날마다 안장바위 위에는 항상 남들이 볼 때 게으르기 짝이 없어 보이는 나옹화상이 앉아 있었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고된 농사일을 하던 산 아래 농부들이 이 바위에서 놀고만 지내는 나옹이 보기 싫어 안장바위를 깨뜨려버렸다. 그러자 그로부터 수년간 긴 가뭄과 흉년이 계속됐다. 그래서 농부들은 나옹이 범상치 않은 스님임을 알고 안장바위를 다시 이어 놓고서야 가뭄과 흉년이 끝났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윤필암은 묘적암 아래 골짜기에 위치해 심산유곡에 든 기분이 나는 암자다. 고려 우왕 6년(1380) 각관비구가 초창한 비구선원으로 유명하다. 여승들만 사는 절이라 경내의 모든 것이 정갈하기 이를 데 없는 청정도량이다. 이 절 서쪽 축대 위 건물이 사불전으로, 계곡 건너 암릉 상의 사불암이 마주보인다. 윤필암에는 고려시대의 작품인 삼층석탑이 있다.

*장군수:대승사에서 윤필암으로 가는 길목에 장군수라는 샘이 있는데 이 물을 마시면 장군과 같이 힘이 난다고 한다.
[출처:월간산]



 


1.불당골-천주사-천주산-공덕산-묘봉-윤필암-대승사주차장



☞대중교통:
점촌~대승사:시내버스터미널(문경여객)에서 산북 경유 가좌리행 버스 1일 6회(07:15, 08:40, 10:25, 14:00, 16:30, 19:10) 운행, 전두리 대승사 입구에서 하차. 40분 소요.

☞승용차:
대구→(경부고속도로)→구미·아포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IC 또는 점촌·함창IC→점촌 또는 문경읍→대승사

 


천주산-공덕산(사불산)-윤필암

*산행상세
천주사입구(간송리 불당골)-(20분)-천주사-(20분)-돌탑-(10분)-슬랩지대 하단-(15분)-천주산-(25분)-안부4거리-(35분)-공덕산-(10분)-대승사 갈림길 안부-(13분)-823봉(능선분기점)-(3분)-사불암,묘적암 3거리-(8분)-마당바위-(3분)-묘봉-(10분)-부부바위-(18분)-안장바위-(10분)-묘적암 입구(마애여래좌상)-(2분)-윤필암-(15분)-사불암-(7분)-윤필암-(5분)-대승사주차장   === [순보행:3시간 50분, 총소요:6시간] ===


문경읍 산북면 소재지를 지나 동로면으로 가는 59번 국도변의 경천호반에 접어들면 호수 건너로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듯이 올려다 보이는 바위산이 천주산이다. 경천호를 지나면 곧 왼편으로 천주산 천주사를 알리는 커다란 간판이 있는 곳이 간송리 불당골로 천주사 초입이 된다. 도로 바로 옆으로는 "대자연 회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천주사는 여기서 입간판을 따라 20분 가량 소요된다. 절집 바로 아래까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으므로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절 바로 아래 주차장을 이용하면 발품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원래의 천주사는 천주마을에서 천산정을 지나 천주산 오르는 길에 있지만, 고종때 왜병에 의해 불태워졌고 지금의 천주사는 옛 암자터에 새로 지은 절이라 한다. 경내에는 음수대와 복원한 3층석탑, 굴피지붕을 한 요사채 옆으로 관음영탑묘원이 꾸며져 있다.

▼하늘기둥을 따라 천주산에 오르는 길은 밧줄이 걸쳐진 화강암 슬랩지대를 비스듬히 횡단해 올라야 한다.
천주산 오르는 길은 절집 마당으로 들어서기 직전 왼편 오르막으로 "천주산 1시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비탈길로 오른다.
20분 가량 한 치의 여유도 없는 된비알을 올라 바위지대가 시작되는 곳에서 로프를 타고 오르면 10여기의 돌탑군을 지나친다. 저 아래 불당골을 비롯하여 경천호가 마치 한반도 지도모양을 하고 있다.
돌탑을 지나 10여분만 더 오르면 거대한 바위사면인 슬랩지대가 앞을 가로 막는다. 암벽 왼쪽 아래를 따라가면 왼편으로 바위사면을 비스듬히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굵은 로프가 걸려있다. 100여m 올라서면 "정상은 오른쪽" 이라 씌여진 작은 안내팻말을 만나다. 여기서 왼쪽 오르막 방향의 길은 천주마을에서 올라오는 길로 여겨진다. 몇 걸음 후 다시 바위 사면을 오른쪽으로 횡단할 수 있는 로프를 따라 나선다. 로프와 슬랩면으로 좁다란 테라스가 형성되어 있어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바위 사면 바로 아래로 암반부에 뿌리를 내리며 꼿꼿하게 몸을 세운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두 번의 바위사면을 횡단하고 난 후 짧은 암릉길을 올라서면 철제 난간을 지나 천주산 정상이다.

암봉으로 된 정상부는 표석과 산불초소가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통팔달 막힘이 없다. 가까이로는 동로면 일대의 노은리, 생달리, 적성리가 손금보듯 빤하고, 그 뒤로 대미산, 황장산을 비롯하여 도솔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허리가 멋지게 펼쳐진다. 코 앞으로는 공덕산, 운달산, 그 뒤로 월악산까지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경천호도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공덕산으로 연계하기 위해 북쪽 아래로 보이는 짧은 암릉길로 내려선다. 암릉 끝으로 볼록하게 솟은 마지막 암봉은 직접 넘어서도 되고 오른쪽 아래로 돌아 내려도 된다.
암릉 구간이 끝나면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급내리막이다. 마사토 지대라 미끄럽기도 하려니와 안전시설물이 없어 나뭇가지와 낡은 슬링에 의지해 내려와야 한다. 눈이라도 쌓여 있는 계절이라면 상당히 조심해야 할 구간이 될 것이다.
10여분 내려선 급경사 지역이 끝나면 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한 평지길로 이어진다. 15분쯤 더 나서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내려서면 좌우로 내림길이 뚜렷한 안부 4거리가 되고 오른쪽 노은리 방향으로는 다수의 표지기가 걸려있다. 안부를 지나면서부터 길은 다시 은근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가 하더니 공덕산 직전 20분 가량은 사정없는 오르막이다.

천주산은 큰 붕어가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해서 "붕어산" 이라고도 한다는데 되돌아 본 천주산은 영락없는 붕어의 입 모양을 하고 있다. 천주산을 출발하여 걷는 시간만 1시간 정도면 공덕산 직전 3거리로 올라서게 된다.
3거리에서 정상은 왼쪽 100m 거리에 있다. 대보름 산악회에서 세운 아담한 정상 표석과 삼각점(단양 25)이 있는 펑퍼짐한 고스락은 사방으로 수목에 가려 이렇다 할 조망은 없는 편이다. 다만 천주산 방면으로 나무를 잘라 놓아 뾰족한 삼각형태의 천주산만 건너다 볼 수 있는게 고작이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난 길은 방광재를 지나 대승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공덕산의 명물인 안장바위쪽으로 가기 위해선 정상 직전 3거리까지 되돌아 나와야 한다. 3거리를 지나 30~40m 면 넓은 헬기장이다. 헬기장에서 왼쪽 아래로 난 길을 따라 10여분 내려서면 4거리 갈림목이 되는 안부가 되고 "공덕산 20분, 사불암 20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왼쪽은 대승사, 오른쪽은 도하미기쪽으로 연결된다.
직진 능선을 따라 15분 쯤 올라서면 능선이 분기되는 823봉으로 3거리 갈림길이다. 사불암이나 안장바위는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는 왼쪽으로 접어 들어야 한다. 오른쪽 길은 도화목재를 지나 운달산, 대미산 방면으로 연결된다.
능선 3거리에서 왼쪽 길로 3분 정도면 사불암 3거리로 왼편 아래 지능선 방향으로 "사불암" 알리는 나무표식이 걸려 있다.
직진 능선을 따라 7~8분 가량 나서면 왼쪽 아래로 윤필암이 내려다 보이는 넓직한 마당바위에 이르게 된다. 노송이 휘늘어져 쉬어가기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어서 잠시만 바윗길을 더 따르면 묘봉(810m)이다. 묘봉 역시 바위쉼터에 조망이 좋은 곳으로 묘적암과 윤필암을 비롯하여 남서쪽 아래로 안장바위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이 빤하게 내려다 뵌다.

▼묘적암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안장바위 - 나옹선사와 관련된 전설이 서린 바위다.

묘봉을 지나면서부터는 급한 바위내림길이다. 간간이 나타나는 암릉을 돌아 내리거나 곧장 통과하며 20여분 내려서면 부부가 마주서 있는 형상을 한 부부바위를 지나게 되고 다시 15분 쯤이면 말 안장 모양을 한 안장바위다. 안장바위는 나옹선사의 도력과 관련된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어서 좌선 바위라고도 불리는 큼직한 바위를 넘어선다.
묘봉에서 이어지는 이 바위암릉은 노송과 고사목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코스로 왼쪽 바로 아래로 묘적암이 있어 묘적암 능선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안장바위를 지나면 능선 바로 아래로 묘적암 지붕이 빤하게 내려다 보인다.
묘적암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도량이므로 묘적암으로 통하는 길은 모두 막아 놓았다. 묘적암을 끼고 도는 능선 끝으로 나타나는 바위조망터에서는 조망터 직전의 왼쪽 아래 길로 내려선다. 묘적암을 돌아 내려서면 넓은 길과 만나는 묘적암 입구가 되고 "현위치 묘적암 입구" 내려온 길 방향으로는 "등산로" 표시가 있다.

큰 길을 따라 몇 발작국 내려오면 왼편으로 대승사 마애여래좌상으로 가는 계단길이 있다. 몇 걸음 되지 않으므로 들러 보도록 한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고려시대의 마애불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애불에서 되내려와 큰길을 따라 70~80m쯤 내려오면 왼편 산허리를 넘어가는 길을 만나게 되는데 그 길을 따라 산굽이를 돌면 채 1분도 되지 않아 윤필암이다. 윤필암은 묘적암과 더불어 나옹이 득도한 암자라고 한다. 비구니 사찰이라 경내도 정갈하고 암자치고는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윤필암에 있는 사불전도 꼭 들러야 할 곳이다. 불상을 모시지 않았지만 전면 유리로 된 사불전은 건너편 산자락의 사불암이 유리면에 비치게 되므로 곧 사불을 모시는 법당이 되는 곳이다. 불가에서는 공덕산을 사불산으로 부르고 있으며 이는 산 중턱에 있는 사불바위(四佛岩)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윤필암 절마당 공중전화와 화장실 맞은 편에 있는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산자락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대한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는 사불암을 만날 수 있다. 비록 세월에 닳아 형체는 희미하지만 돋을세김 한 흔적이 남아있는 사면불이다.
사불암에서 되내려 오는 길에 함석지붕을 덮은 샘터를 지나치게 되는데 이 샘물을 마시면 힘이 쏟아 난다는 장군수 샘이지만 마시기에는 부적당하다. 주변으로는 옛 암자터였던 듯 제법 넓은 공터와 기와조각들이 눈에 띈다. 샘터 앞을 가로질러 가는 길은 대승사로 연결되는 길이다.
다시 윤필암으로 되내려와 차길을 따라 5분 가량 내려오면 대승사로 갈리지는 차도 갈림길이 있는 대승사 주차장이다. 대형버스도 주차가 가능하고 주차장 옆으로는 대승사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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