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경주시 산내면 신원리, 내칠리
지도보기1, 지도보기2(국제신문)

▼장육산 정상부는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고 청도방면으로 조망이 시원한 곳이다.
장육산은 낙동정맥의 사룡산에서 남쪽으로 짧게 곁가지를 친 줄기로 경주시 산내면 신원리와 내칠리에 연해 있다. 신라 때 6명의 장군이 무술을 연마했다고 하며 옷밭마을 북쪽에 위치한 이 산은 모양이 장구를 닮아 흔히 장구산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 산의 바위에는 장군이 투구를 쓰고 앉아 있는 모양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정상 주변에는 길이가 길지는 않지만 제법 넓은 규모의 천연 동굴인 굴암벽(장육굴)을 비롯하여 마애여래좌상이 있어 예나 지금이나 수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오랜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주민들이 산 정상에 위치한 굴암에서 제사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하여 가뭄 때 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등 많은 전설을 간직한 산으로 주민들로부터 더욱 숭앙을 받고 있다.
정상부는 넓직한 반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운문댐을 비롯하여 영남알프스 일대의 산자락을 조망해 볼 수 있다. 단점이라면 주변으로 이리저리 난 임도가 정상까지 나 있는게 흠이다.
정상 북쪽으로 표고 약 700m의 정족산이 있어 연계산행 코스로 적당하다. 정족산(鼎足山, 700m)은 얼마 전까지 무명봉이었으나 국제신문 근교산에서 마을 주민을 통해 찾아낸 이름으로  장육산에서 보면 가마솥을 떠 받치고 있는 형상이어서 예부터 정족산, 솥발산으로 불렀다 하며, 양산에 있는 정족산과 높이와 한자음까지 같다.
장육산의 산행 들머리로는 정상 동쪽의 내칠리, 남서쪽의 신원리, 청도쪽 운문면의 봉화리, 평지말쪽을 들 수 있다.
 

* 장육산 선각마애여래좌상
장육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약 200m 정도 내려서면 임도 왼쪽 샛길로 바위군들 가운데 세로로 반듯하게 서 있는 높이 약 5m 정도 되는 바위에 선각으로 조성된 마애불 좌상이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불로 추정하고 있으나 초기의 마애불은 통일신라의 수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시대적으로 많이 뒤떨어지는 듯하며 고려 중기 이후로 오면서 불상의 크기가 양식적으로 더 크게 조성이 되어야만 했을 것으로 보이나 암반의 크기가 주는 한계점 때문에 크게 조성하지는 못했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기 때문에 투구를 쓴 장군상으로 오인받게 하는 것으로 보이며 귀는 거의 어깨에 닿을 정도이며 목에는 삼도가 확연히 표현되었으며 선정인의 수인에서 양손의 엄지는 맞붙여 세웠다. 결가부좌한 무릎은 풍성하게 표현하였으며 발바닥은 정면에서 보이며 대좌는 만들지 않았다.

* 장육산 굴바위(육장굴)
동굴은 크기가 작은 두 개의 동굴이 맞붙어 있으며 우측의 동굴이 조금 길이가 길며 안쪽에는 무속인들이 밝혀놓은 촛불이 있어서 어렵사리 내부를 볼 수 있으나 천장을 비롯하여 벽에는 붉은 색의 도료를 사용하여 무분별한 글자들이 씌어져 있다. 구전하는 얘기로는 누워 있을 때 떨어지는 암반의 물방울이 입으로 들어가면 지병이 낫는다고 하며, 한편 동굴 위의 공간은 장군이 수도하다가 도를 깨우쳐 벌떡 일어서다가 투구에 받쳐서 커다랗게 공간이 생겼다고 한다.

* 장육산 탱바위
마애불을 지나 200여m 거리에 왼쪽으로 커다란 바위가 나오는데 이곳 사람들은 탱바위라 부르며 바위 상면에는 어른과 어린아이의 발자국이 있다고 하나 식별할 수 있는 무늬는 삼각형의 구도를 가진 선으로 이어진 패인 홈이 있으나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이며 전하는 얘기는 장군이 일어설 때 손으로 짚으면서 생겨난 자국이라 한다.

* 그 외의 구전 설화
-장육산에는 여섯 명의 장군이 수도하고 있을 때 운문산에서는 일곱의 장수가 있어 서로 힘자랑을 할 요량으로 바위를 던졌는데 운문산에서 날아온 돌들은 신원리 앞뜰에 떨어지고, 장육산의 장군들이 던진 바위는 운문사를 넘어가 산 위에 떨어졌다 한다. 물론 이 구전 설화에 등장하는 바위는 근세에까지 있었으나 -지석묘로 추정- 경지 정리를 하면서 모두 없어졌다.
-고어에서 크다는 뜻의 대(大)는 태(太), 태(泰), 탱으로 변하여 접두어 탱이 붙는 사물은 그 주위에서 가장 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출처: 어느 분의 장육산 답사기에서 woon5400@hanmir.com]


 


1.내칠1리 동회관-정족산-조래봉-장육산-월항마을-내칠1리 동회관



☞ 내칠리 가는 길
포항-경주간 국도를 따르다가 가구단지가 나타나는 모서에서 우측 자동차 전용도로 안내판을 따라 북경주IC로 진입하여 포항-건천간 산업도로로 옮겨 탄다. 건천터널 지나 북건천IC에서 계속 직진하여 건천읍내까지 들어온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경부고속도로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청도, 산내방면 20번 국도를 따른다. 땅고개를 넘어서면 산내면 소재지다. 산내사거리에서 운문, 청도방면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여 3km 정도 달리면 우측으로 서면, 우라, 오옥정사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이다. 우회전하여 잠시 나가면 아스팔트 길은 끊어지고 좁은 시멘트 길로 바뀐다.
20번 국도를 벗어나 약 4km 달리면 산행 들머리가 되는 내칠1리가 된다. 왼편 "오옥사" "화엄정사" 안내판을 따라 산저교를 건너면 내칠1리 동회관이다.
*포항 종합운동장-강동-북경주IC(산업도로 진입)-건천-산내-내칠리(56km)

 


정족산-조래봉-장육산

*산행상세
내칠1리 동회관-(1시간 30분)-정족산-(40분)-조래봉-(40분)-버섯재배지-(30분)-장육산-(40분)-월항마을-(30분)-내칠1리 동회관 === [순보행:4시간 30분, 총소요:6시간 20분] ===


개터, 다리골, 곧은터, 다라미기(월항), 개미골, 안옻밭, 산저...
참으로 정겨운 이름의 일곱 동네가 골짜기 안으로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내칠리(內七里)
정족산~조래봉~장육산의 들머리가 되는 내칠리는 가도 가도 산이요, 봐도 봐도 하늘뿐인 산내면에서도 고지대 산간마을이다. 마을 서쪽에 있는 장육산은 국제신문의 소개로 영남지역 매니아에겐 이미 알려진 산이지만 정족산(鼎足山)은 생소한 이름이다. 국제신문 근교산팀에서 마을 주민을 통해 찾아낸 이름이라 한다.
정족산하면 으레 양산의 정족산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공교롭게도 이곳 경주 산내의 정족산도 한자음은 물론이고, 높이 마져 700m로 꼭 같다. 산행 출발 전 동회관에서 만난 할머니께서도 서슴없이 "정족산" 이라 알려주니 더 이상 그 이름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할  일은 없겠다.
◀청도백씨 무덤가에서 내려다 본 내칠리
직현천을 따라 난 시멘트 길에서 "화엄정사"를 알리는 안내판을 따라 산저교를 건넌 내칠1리 동회관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동회관 뒤편 화엄정사 안내판쪽으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올라가면 차길이 오른쪽으로 크게 꺽이는 부분으로 볼록거울이 있고 여기서 오른쪽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지릉으로 붙는다.
대체적으로 길 상태는 양호한 편이고 국제신문 표식이 충실한 길 안내를 맡고 있다. 3분 정도 지릉을 따라 오르면 청도백씨무덤을 비롯한 몇몇 기의 무덤이 모여있는 터를 지나친다. 뒤로는 산저골과 곧은터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왼편으로는 장육산을 건너다보며 올라서는 길은 꾸준한 된비알이다.
30분쯤 꾸역꾸역 올라서면 밋밋한 둔덕을 이룬 첫 봉우리다. 여기서부터 그리 심한 오르막은 없다.

각각 5분 간격으로 나타나는 봉우리 두 개를 지나 오르면 북쪽 건너로 우뚝하게 솟아있는 정족산과 첫 대면이다.
이 세 번째 봉우리에선 능선이 둘로 분기하는데 왼편으로 진행한다. 3~4분 만에 바위봉우리에 올라선 후 바위 왼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른다. 일대로는 진달래 나무가 빼곡하여 시기만 잘 맞춘다면 가히 환상적인 길이라 하겠다.
바위봉을 내려서면 5분 거리로 찢어진 애드벨룬이 방치된 곳을 지나친다. 잠시 밋밋하게 올라선 펑퍼짐한 둔덕지역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나가면 다시 봉우리. 5분 후 코 앞으로 정족산이 올려다 보이는 안부자리다.
안부에서는 길이 능선 왼쪽 사면으로 이어지는데 허리길을 따라 50~60m쯤 진행하면 계속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과 오른쪽 비탈을 치받아 오르는 갈림길이다. 직진하는 허리길은 정족산쪽을 경유하지 않고 조래봉쪽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정족산을 오르기 위해선 오른쪽 비탈로 난 희미한 오름길로 접어 들어야 한다.
◀조래봉 정상의 바윗돌과 돌탑
가파른 된비알을 15분 가량 올라서면 오른쪽 건너로 정족산이 코 앞으로 보이는 3거리 능선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오른쪽으로 꺽어 5~6분 이면 정족산(鼎足山, 솥발산)이다. 고스락엔 바윗돌 위에 작은 돌탑이 있는게 전부다. 하지만 높이 만큼은 근동에서 최고다. 수목으로 인해 시야가 가리는 편이지만 북쪽 아래로 우라리가 보이고, 그 건너로 숲재(숙재)를 중심으로 사룡산이며 단석산이 건너다 보인다.

조례봉쪽으로 길을 잇기 위해 능선 3거리까지 되내려 온 후 계속되는 직진 능선길을 따른다. 급하게 쏟아지는 내리막을 내려서면 10여분 만에 왼편 허리길을 따라 우회하는 길과 만나고, 이 일대로는 펑퍼짐한 지형을 이룬다. 길은 여기서 곧장 능선을 따르지 않고 주능선을 오른쪽으로 두고 사면길을 따른다. 송림이 우거져 있어 호젓하기 이를 데 없는 평탄한 길을 따라 나서면 곧 주능선에 합류하게 된다. 주능선에 올라서면서부터는 경주와 청도의 경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순하게 올라서는 능선을 따라 15분쯤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청도쪽 평지말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100m 후 달성배씨 무덤을 지나친다. 무덤에서 코 앞에 보이는 조래봉까지는 채 5분이 소요되지 않는다.

별 특징없는 조래봉(570m)은 지형도에는 표기되어 있진 않지만 국제신문팀에서 마을 주민을 통해 알아낸 이름이라 한다.
정상부는 3거리 능선 분기봉으로 오른쪽(동쪽)으로도 길이 나 있지만, 남쪽 건너로 빤히 보이는 장육산을 향해 직진방향의 능선을 따른다. 야트막한 봉우리 하나를 내려 5분 이면 좌우로 내림길이 뚜렷한 안부 하나를 지나치고 다시 7~8분 만에 두 번째 안부에 이른다. 역시 좌우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여기서 오른쪽 길은 경주, 청도의 경계를 이루는 골짜기 방면이다.
직진 능선을 따라 올라서면 다시 경주땅으로 접어든다. 산비탈을 올라 무덤 1기와 쓰러진 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면 다시 순한 능선이 이어진다. 두 번째 안부에서 15분 쯤 올라서면 530봉으로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곧 임도를 만나게 되고 이후 장육산까지는 줄곧 임도를 따라가게 된다. 임도 오른쪽으로 왕릉을 방불케 하는 큼직한 무덤터를 지나 내려서면 버섯재배지가 나타나고 임도가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바로 앞으로 장육산이 올려다 보이는 직진 임도길을 따른다. 버섯재배지를 지나 지그재그로 올라서는 임도를 20분 가량 오르면 오른쪽으로 넓직하고 평평한 바위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장육산 탱바위(?)로 추측되는 곳이다. 바위 상단에 움푹움푹 패인 흔적들에 대해 옛 이야기는 이 바위에는 여섯 장군들이 무술을 연마한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장군이 일어설 때 손으로 짚으면서 생겨난 흔적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느 바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양들이다.
이 바위에서부터는 임도를 따르지 말고 바위 옆으로 난 샛길을 따르면 30m 후 샘터를 지나게 되고, 다시 약 200m 거리로 큼직한 바윗돌이 길게 늘어선 공터 앞을 지나게 되는데 바위면으로 장육산 선각마애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다. 옅은 부조로 음각되어 있지만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편이다. 마애불 아래로는 누군가가 치정을 드린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마애불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다시 임도와 합류하게 된다. 즉, 임도를 계속 따르면 마애불을 볼 수 없으므로 탱바위(?)를 만나면 샛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어지는 임도길을 잠시만 올라서면 고갯마루가 되고 오른쪽 바로 위가 장육산이다.
삼각점(경주 319)이 있는 장육산(將六山)은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자연석에 페인트 글씨로 정상표시를 해 두었으며 정상부는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방으로 조망이 좋은 곳이다. 정상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지촌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서쪽 끝으로 나와 노송 아래에서 운문댐이며 영남알프스쪽을 굽어보는 눈 맛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정상부의 자연석에 표시된 장육산 표식
하산은 임도 고갯마루까지 되내려 온다. 국제신문은 여기서 버섯재배장을 거쳐 산저골로 내려서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동릉을 타고 내칠리로 내려서기로 한다.
임도를 가로질러 건너편 숲길 능선으로 접어들어 100m 후 평지성 능선 끝으로 희미한 갈림길이 나타나는 내리막이 시작된다.
왼쪽 제대로 된 길이 보이지 않는 능선 내리막 방면으로 국제신문 표식이 걸려있고, 오른쪽 아래 뚜렷한 길로는 일반 산악회 표식이 있다. 오른쪽 북동으로 향하는 내리막을 7분 정도 내려오면 산허리를 돌아가는 임도 3거리를 만나다. 여기서 직진 방면으로 난 북동쪽 임도를 따라 내리면 내칠리 월항마을까지 이어진다.

임도 3거리에서 10여분 내려서게 되면 임도는 능선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결국 능선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쪽으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게 되면 왼쪽으로 큼직한 무덤터를 지난 내리막에서 "은진송씨" 무덤을 지나치게 되고 곧 다시 임도와 합류하게 된다.
처음 임도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25분 쯤 내려오면 산 중턱으로 난데없는 민가가 나타난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달 보러 가는 첫동네"라 하여 다라미기, 월항(月項)이라 부르는 곳으로 한 가구만 살고 있다.
여기서 길은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민가 내려서기 직전의 고개에서 왼쪽 넓은 길은 산저골로 내려선 후 원점으로 갈 수 있고, 오른쪽 민가를 지나 시멘트 길을 계속 따라가면 안옻밭마을, 그리고 민가 마당을 가로질러 내려서는 길은 집 주인만 다닌다는 사면길을 따라 곧은터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왼편 임도를 타고 산저골로 내려서는 길이 가장 편한 길이지만 집주인이 가르쳐 주는 산길을 따르기로 한다.
민가 마당을 관통하여 내려서면 비탈을 이룬 밭지대다. 왼쪽 산비탈쪽으로 내려서면 희미한 흔적의 묵은 옛 길이 사면을 타고 줄곧 이어진다. 20분 정도면 곧은터마을 아래쪽 도로변으로 내려선다. 여기서 차길을 따라 곧은터마을 표석, 내칠2교를 지나 10분 정도 되짚어 오르면 출발지인 내칠1리 동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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