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충남 금산군 금산읍, 남이면
진악산개념도  

충남 금산군 금산읍 남이면의 진악(락)산(737m)은 서대산(903.7m), 대둔산(877.7m), 계룡산(845.1m)에 이어 충남에서 네번째 높은 산이다. 기암괴봉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금산쪽으로 깍아지른 높은 낭떠러지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진악산에는 나라의 위급을 알리던 봉화대가 있어 산 자체가 나라를 지키는 보루였다. 또 1592년 임진왜란 때는 금산벌싸움에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쓰러진 기허당 영규대사가 이 산 남쪽 기슭의 보석사에서 수도했다. 개삼터가 있는 비실(성곡리) 위 물굴은 일제시대 조국광복을 염원하던 애국청년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진악산을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인삼의 고장인 금산의 진산이라 부른다.
진악산은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737m 주릉에 펼쳐지는 길다란 암릉의 경관이 아름답고 금산쪽(동쪽)의 깎아지른 바위낭떠러지 위에 서면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장엄함을 느끼게 된다. 산을 감싸고 있는 숲은 무성하고 영천암 골짜기, 원효암 골짜기의 개울은 맑고 차다.
진악산에는 명물과 명소가 많다. 보석사 입구의 전나무 숲이 좋고 보석사 곁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수령이 천년이 넘는다. 보석사 외에 영천암, 역사 깊은 원효암이 있다. 이밖에 영천약수, 도구통바위, 봉화대, 주봉 아래 빈대바위와 빈대굴, 물굴 바위굴이 있다. 물굴 바위굴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산군 산천조의 진악산란에 『진악산군의 남쪽 7리에 있다. 동쪽 봉우리 아래에 바위굴이 있는데 너댓 걸음 들어서면 물소리가 요란하며 깊이를 알 수 없다. 전하는 말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 하는데 가물 때 호랑이 머리를 집어넣으면 용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악산 정상에서는 속리산과 서대산 천태산, 민주지산, 덕유산의 장쾌한 산줄기를 모두 볼 수 있으며, 운장산의 특이한 모습도 보이고 계룡산도 눈에 띈다.충청지역의 수많은 연봉들이 파도처럼 펼쳐진다.
▼진악산은 적당한 암릉과 육산의 형태를 섞어 금산벌에 옹골차게 솟아오는 산이다. - 바로 앞이 무명암봉, 그 뒤가 빈대바위, 제일 뒷편에 보이는 것이 진악산(732.2m)이다.
[보석사]:금산읍에서 약 6km 떨어진 진악산 (732m)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12년 (866년)에 조구대사가 창건한 역사깊은 절이다. 교종의 대본산이며 한국불교 31본산의 하나로 지난 날 전라북도 불교의 이사중추기관이었고 현재는 충남 교구 산하로 되었다. 보석사라는 이름은 절 앞산 중허리의 암석에서 금을 캐내 어 불상을 주조하였다는 데서 이름 지어졌다. 사찰에 들면, 울창한 숲과 암석이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져 있어서, 속세를 떠난 듯하다. 절 안에는 대웅전, 기허당, 의선각, 산신각 등의 건물과 부속암자가 있으며, 인근에는 절경 의 12폭포가 있다. 특히 높이 40m, 둘레가 10.4m나 되는 1,1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365호)가 있어 좋은 휴식처를 제공해 주며, 200~300미터 정도의 전나무길이 나 있어 호젓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한국관광공사제공)
[의선각]:보석사 대웅전 앞에 있는 건물로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계룡산의 갑사와 보석사를 내왕하며 도를 닦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 여 중봉의 의병과 합세하여 금산이 왜적을 격퇴하려다가 700 의사와 함께 전사한 분으로 그 용맹과 담력은 출중하여 싸움마다 크게 공을 세웠던 것이다. 의선각은 영규대사가 보석사에 계실때 우거하던 곳으로 창녕위 김병주의 글씨로 된 의선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충청 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2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한국관광공사제공)


1.진악휴게소(수리넘어재)-진악산-도구통바위-보석사
 

*금산읍에서 남이 석동방면 시내버스 이용 (07:10 ~ 18:10, 1일 5회, 20분 소요)
*금산읍에서 진악산 광장 및 원효암 입구 도로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3,000 ~ 5,000원) 접근 용이
 

 

1.진악휴게소(수리넘어재)-진악산-도구통바위-보석사
 

충청지역 명산을 조망하는 호국의 산 - 진악산


☆산행코스:진악휴게소-진악산-도구통바위-보석사

☆산행상세:진악휴게소-(10분)-주능선삼거리-(20분)-암봉-(20분)-진악산(732m)-(23분)-737봉-(8분)-도구통바위-(25분)-영천암-(10분)-보석사 [총 소요시간:3시간30분, 순보행:2시간]

금산읍에 들어서자 남쪽으로 우뚝 솟은 거무튀튀한 산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진악산이 초행이지만 담박에 그 산의 품세가 진악산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인삼의 고장 금산의 진산이 진악산이기 때문이리라!
산행은 금산읍내를 빠져나와 음지리에서 상금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수리넘어재 직전의 진악휴게소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악광장이라고도 불리는 주차장에는 진악산 등산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도로 건너편의 들머리로 로프가 쳐져있는 바위지대를 오르면서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오름길은 초입부터 거칠다. 한동안 급하게 올라서던 사면길은 광고탑이 서 있는 산봉을 향하여 슬그머니 왼편(북쪽) 산허리를 애돌아 나간다. 산길이 잠시 순해지는가 하더니 두어 번 지계곡을 건너 진악산 북서쪽 능선마루에 올라선다. 진악산휴게소에서부터 부지런히 걸어서 10분 거리다.
올라선 주능선에는 <금산인삼과 진악산>에 대한 안내판과 목장승 2구, LPG 개스통이 나무에 매달려있다. 산에 웬 개스통??? 긴급구조용인가? 개스통의 용도가 자못 궁금하다.
이곳은 3거리를 이루는 지점으로 능선 왼편 <오솔길>이란 안내판이 적혀있는 길로 나서면 음지리 변화교회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되고 진악산은 우측능선을 향해 급하게 꺽어 올라서게 된다.

왼편으로 금산읍내를 내려다 보며 7~8분 올라서게 되면 초가지붕을 머리에 인 시판이 앙증맞게 서 있고 류시화의 <나무는>이란 싯구가 적혀있다. 금산군에서 진악산을 찾는 산객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 시판이 있는 곳에서 왼편 아래 지능선으로 내려서는 갈림길 하나가 보이는데 음지리 인삼밭쪽으로 내려서는 길로 여겨진다. 여기서부터 진악산은 저 앞으로 우뚝 선 암봉 뒤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진악산에서 건너다 본 겹겹의 산 산 산...

시판을 지나 유순한 능선을 따라 잠시만 올라서면 석축의 흔적이 있는 산봉에 이르게 되고 오른쪽 아래로 수리넘어재로 올라오는 구불구불한 차도가 내려다 보인다. 이어서 안용진의 <진악산의 창꽃> 시판을 지나 4분 만에 바위암봉에 올라선다. 바로 앞으로 큼직한 암봉이 지척으로 있고 그 오른쪽으로 진악산 고스락의 모습도 완연하다.
여기서부터는 올망졸망한 바윗길이 시작되고 잠시만 올라서면 무명암봉 정수리에 이르게 된다. 이 무명암봉 직전으로 로프가 쳐진 우회로가 있지만 크게 위험스럽지 않으므로 암릉을 따라 올라서는 재미도 솔솔하다. 무명암봉 위에 올라서면 바로 아래로 금산읍내가 빤하고 너른 벌판으로는 검은 차양을 친 인삼밭이 펼쳐진다. 역시 금산이 인삼의 고장임을 실감한다. 그 인삼밭 건너로(북쪽) 우뚝한 서대산이 보이고, 뒤돌아보면 올라왔던 능선 저 뒷편으로 바위병풍이 도열한 대둔산이 희뿌옇게 보인다.
날씨만 맑다면 대둔산 암봉이 더욱 입체적으로 보일텐데...좀 아쉬운 마음이다.

암봉을 지나 한차례 올라서면 동쪽으로 아찔한 단애를 이룬 빈대바위에 올라선다. 바위 생김새가 빈대가 붙어있는 모양이라는 이 빈대바위는 주등산로에서 왼편으로 약간 물러나 있다.
옛날 금산 인삼의 유래 속에 어느 효성 지극한 선비가 홀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 기도하던 중 산신령이 나타나 "진악산 관음봉 암벽에 빨간 열매 3개가 달린 풀을 달여드려라" 고 전했던 전설 속의 바위가 이 빈대바위로 일부 진악산 안내도에는 관음봉이라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빈대바위 바로 아래에는 빈대굴이 있고 빈대굴에는 용이 살고 있어 가뭄이 심할 때 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빈대바위를 지나 4~5분만 더 나서면 원효암 갈림길로 <원효암 650m, 정상 60m, 빈대굴 130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로 오른쪽 아래 원효암으로 내려서는 릿지길에는 굵직한 로프가 걸려있다.

정상 60m를 알리는 이정표 거리에 비해 이 갈림길에서 진악산 고스락까지는 4분 이나 걸렸다. 정상까지는 진악휴게소를 출발해 채 1시간이 소요되지 않은 짧은 거리다.
정상부는 넓직한 헬기장으로 되어 있고 금산산악회에서 세운 표석과 삼각점(금산26), 삼각점 안내판이 있다. 정상 둘레로는 돌아가며 참호가 파져 있고, 소방시설 통신장비인 무선통신 중계기와 축전지판도 있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거칠게 없다. 북으로 금산군, 금북면 들판 건너로 육중한 서대산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금산읍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멀리로 운장산, 구봉산이며 덕유산까지 아스라하다. 특히 덕유산 방면으로는 겹겹의 산이 중첩되어 원근감이 살아나고, 그 산록을 보는 감동의 파노라마는 진악산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남겨두기에 충분하다.
정상표석이 있는 이곳 진악산의 높이는 732.3m로 남동 건너로 있는 737봉에 비해 표고가 낮고 어떤 안내지도에 보면 이곳은 "진악산 주봉" 이라 별도 표기하고, 건너편 737봉을 진악산으로 표기한 것도 있다. 하지만 737봉에 서 보면 알겠지만 이곳 732.3봉이 비록 표고는 조금 낮지만 정상이 갖춰야 할 요건은 진악산의 주봉답게  훨씬 높은 품격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진악산에서는 보석사로 내려서기 위해 남동능선을 따른다. 737봉 가는 길은 유순하게 이어지고 5~6분 후 암릉지대를 통과하게 되는데 왼편으로 우회로가 있지만 위험하지 않으므로 짧게 암릉을 넘어서는 재미도 즐겨볼 수 있는 곳이다.
정상을 출발하여 25분 거리로 짧게 올라친 산봉이 737봉으로 고스락은 소나무 몇 그루와 엉성한 돌탑이 있고 주위로는 억새도 자라고 있다. 737봉 역시 진악산의 최고봉답게 너른 시야를 제공하고 있는 편이다.
737봉에서는 진행방향의 왼편(북동) 아래쪽으로 내려서게 된다. 7분 후 무덤 1기가 있는 산봉 하나를 더 지나쳐 내려서게 되면 곧바로 도구통바위가 돛대처럼 서 있다.(이정표: 정상 1040m, 영천암 950m)
도구통은 이 지방 방언으로 절구통을 의미하지만 바위 생김새는 전혀 절구통 같아 보이지 않는다. 바위 옆으로 유치환의 <바위> 시판이 있고 금산인삼에 관련된 안내판이 있다. 외지인에게 금산인삼을 홍보하려는 의도지만 그것보다는 도구통바위를 알리는 안내판과 진악산의 전설 한자락 정도 적어두었다면 더 좋을 법도 하련만...

도구봉바위는 3거리를 이루는 곳이다. 직진하여 바위지대를 넘어서면 동쪽 능선을 따라 보석사 뒤편능선으로 내려서거나 성곡리 개삼터쪽으로 내려설 수 있고 바위지대 아래로 또렷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보석사로 내려서려면 오른쪽(남쪽) 아래 계곡을 향하는 비탈로 내려서야 한다. 5분 가량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내려서면 무덤2기가 있는 넓은 터를 지나게 되고 10여분 후 계류가에 이르게 된다. 계류에 이르면 두 갈래 길이 된다. 오른쪽 아래 계류를 넘는 통나무 다리(목교)쪽으로 내려서면 이른 바 숲속교실이라 하여 곳곳에 시판과 벤취가 마련된 오솔길을 따르는 길로 계류를 왼편에 두고 내려서게 되고, 뚜렷한 직진길은 영천암 삼거리까지 나가서 차도를 따르게 되지만 두 길은 육각정자가 있는 곳에서 합류하게 된다.

영천암은 계류를 오른쪽으로 두고 난 넓은 길을 따라 나서다가 만나게 되는 시멘트길에서 100여m 위쪽에 위치에 있다.
석대를 쌓은 담장 위로 본당인 무량수각이 있고 그 뒤편으로 바위병풍을 두른 칠성각이 있다. 암자 뒤 바위 아래에 영천굴과 굴에서 나오는 영천약수가 있다고 하지만 절 입구엔 살벌한 안내판이 붙어있다.
절집에 어울리지 않게 섬뜩한 붉은 해골그림 아래로 "정신질환으로 요양하는 사람이 있고 떠들 경우 신상에 닥칠 위험에 책임질 수 없다"는 일종의 출입금지를 알리는 안내판의 위협으로 더 이상 들어서기가 꺼려진다.
비포장 차도를 따라 내려서면 육각정자(이정표: 보석사 700m, 영천암 360m), 목장승 2구, 큰 소나무 아래의 약수터를 차례로 지나 보석사에 이르게 된다.

▼보석사전경-보석사는 진악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이름 그대로 보석같은 사찰이다.
보석사 초입으로는 수령 1100년 가까이 된 거대한 고목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65호)가 있어 나라의 경사나 재앙이 닥치면 울음소리를 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예전 조구대사가 제자 5명과 함께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들 모두가 한 몸이 돼 지금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보석사는 역사적 무게가 있는 사찰이라 규모도 웅장하리라 예상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조그만 절이다. 하지만 이름만큼이나 앙증맞게 진악산 기슭에 자리한 보석처럼 빛나는 사찰이다. 깨끗한 법당과 요사채는 물론이고 절마당 또한 방금 빗질을 한 흔적이 있는 아담한 절집이다. 대웅전, 의선각, 조사장 등의 당우가있고 입구에는 최근에 세워 세월의 무게를느끼지는 못하지만 단청을 입히지 않은 깔끔한 종각도 있다.

종각을 빠져 나오면 자그마한 연못 속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연못 속엔 파란 하늘과 산자락이 들어 앉아있다. 흡사 청송의 주산지 축소판으로 여겨진다. 보석사 일주문 옆으로는 임란당시 승병을 모집하여 금산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하신 영규대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의병장승장비가 있어 호국정신을 일깨워 준다.
일주문에서 아름드리 전나무가 도열한 길을 따라 50m 가량 나오면 보석사 주차장이다.
진악산은 비록 규모도 작고 발품도 짧지만 충남일대의 산들을 굽어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암릉을 갖추고 있는 산으로 산이 갖춰야 할 요소를 두루 품고 있는 산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11월21일, 영일만산친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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