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 경남 남해군 설천면, 고현면 -
☞지도보기  *금음산-대국산1(국제신문) *금음산-대국산2(갈대의산)  


▼금음산~대국산 산행구간 중 최고의 조망을 선사하는 대국산성에서 본 진목리와 남해바다

보물섬'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경남 남해군은 비록 섬이긴 하지만 금산 망운산, 호구산, 설흘산, 응봉산 등 명산이 즐비해 근교산행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그런데 산꾼들이 즐겨 찾는 이 남해의 명산들은 대부분 섬 중부와 남부에 집중돼 있다. 아무래도 다도해를 바라보는 조망이 빼어난 데다 저마다 특색 있는 암릉구간이 적절히 혼합돼 있어 산행을 하는 재미가 크기 때문일 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작 남해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남해대교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격전지인 노량해협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섬 북부의 산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남해대교를 포함한 노량 바다와 사천만 광양만을 굽어 볼 수 있는 한적한 산행지로 금음산(480.9m)~대국산(371m) 코스를 꼽을 수 있다. 남해군 설천면과 고현면에 걸치는 이 코스는 조망이 빼어난 해발 300~400m 대의 야트막한 봉우리 4개를 거쳐가는 길인 데다 4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주파 가능해 가족 산행지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게다가 산행 후 이순신 장군의 전몰유허지인 '이락사'와 노량해변의 충렬사 등 역사의 현장을 둘러볼 수 있고 설천면 문항리의 맨손 물고기 잡이 체험, 문의리 왕지마을의 녹색어촌체험 등을 곁들일 수도 있어 한마디로 웰빙형 섬 산행이 가능한 코스다.
특히 대국산성이 있는 대국산에서 사천,광양 일대를 굽어보는 조망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출처:국제신문)




☞ 1. 노량공원-구두산-금음산-대국산-정태마을회관



*
남해대교를 건너 노량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노량공원이다.
*네비게이션: 노량공원



1.☞노량공원-구두산-금음산-대국산-정태마을회관

[대국산성에서 바라보는 남해조망 으뜸]

*일시:2011.9.6(한마음)
*산행코스:노량공원-구두산-금음산-대국산-정태마을회관
*거리및 소요시간: 노량공원-(2.7km/50분)-구두산-(1.3km/25분)-용강고개-(3.0km/1시간)-금음산-(1.5km/40분)-대국산-(1.5km/35분)-정태마을
=== 이정표거리: 10km, 총소요시간: 5시간 30분, 순보행: 3시간 30분 === 

*사진으로 보는 산행기

  1973년 바다를 건너는 남해대교가 개설된 후 섬 아닌 섬으로 존재하는 곳이 남해다. 그 남해의 관문인 남해대교 건너로 솟아 있는 산이 금음산과 대국산으로 일명 남해지맥에 속해 있는 산이다. 예전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아 지맥꾼들만 간혹 찾았던 산이지만 지역산꾼들에 의해 등산로가 정비되고 국제신문, 부산일보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진 산이라 할 수 있다.
남해지맥은 남해대교 옆 산성산(山城山, 162m)을 필두로 구두산(龜頭山, 371.3), 금음산((金音山, 480.9m), 대국산(大局山, 371), 망운산(望雲山, 783.4), 괴음산(槐陰山, 605), 망운산(望雲山, 286.2) 아래 남쪽 미조 빗바위에 이르는 약 43.74km에 달하는 섬 산줄기를 말한다.
그러고 보면 금음산 구간은 이 남해지맥의 첫 단추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남해대교 옆 초입에 있는 산성산은 일반 산객들은 별로 오르지 않고 지맥꾼들만 찾는 편이다. 산행 막바지인 대국산성에서 남해 바다를 비롯해 사천, 광양, 하동 일대를 둘러보는 조망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산행 들머리인 노량공원을 알리는 빗돌
  파란 하늘빛이 아름다운 초가을 날, 남해에 있는 금음산과 대국산을 찾는다. 남해하면 망운산, 금산 정도만 아는 것이 고작 이었으니 새로운 산을 찾는다는 기분은 하늘빛만큼이나 달떠오른다.
오랜만에 남해대교를 건넌다. 예전에는 일부러 관광삼아 남해대교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허나 작금에는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그리 신통방통한 세월이 아니고 보니 남해대교의 명성은 이제 옛 것이 되고 말았다. 다리를 건너 잠시만 달려나가면 산행 들머리가 되는 노량공원이다. 도로 옆 넓은 공터에 "노량공원"을 알리는 큼직한 빗돌이 서 있다.
빗돌 뒤 둔덕에 올라서면 남해대교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격전지인 노량해협이 보인다. 공터 한 켠으로는 "통일동산"이라 적힌 또다른 빗돌이 서 잇다. 빗돌 맞은편 "한려해상국립공원 남해대교지구" 란 간판 옆으로 난 시멘트 오르막 길이 산행의 들머리가 된다.

  비록 가을의 문턱에 들어 섰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씨다. 그늘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짱짱한 시멘트길로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허나 맑고 투명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주니 큰 선물이다. 남도의 여린 바람에서 가을냄새가 전해지는 듯하다.
오르막길 도중 뒤돌아 보면 남해지맥의 초입인 산성산이 야트막하게 보이고 그 옆으로 빨간색 남해대교가 정겹게 보인다.
노량공원에서 15분 가량 올라서서 임도가 오른쪽으로 살짝 꺽어지는 지점에서 첫 갈림길이 나타난다. 계속되는 넓은 시멘트길로 진행해도 되지만 왼쪽 오르막의 산자락을 향해 난 시멘트길이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두 길은 잠시 후 다시 만나게 된다. 일행들 일부는 오른쪽길, 또 일부는 왼쪽길로 흩어져 진행한다.
왼쪽 길로 잠시 올라서면 흙길로 바뀌고 100여m 후 길은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온통 잡풀들이 임도를 점령하고 있다. 이 지점쯤에서 오른편 숲길로 "부산일보" 표지기와 함께 숲으로 통하는 희미한 통로가 보인다. 여름이라 산길 초입은 빼곡한 잡풀이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숲으로 들어서면 뚜렷한 족적이 이어진다.

구들뫼 이후로는 울창한 편백림이 이어진다.▶
 
  숲길은 5분 후 다시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오르던 임도길과 합류한다. 이후 3분 가량 임도를 따라 오르면 <노량공원 1.8km> 이정표가 서 있고 그 뒤로 출입금지 현수막이 붙어있다. 여기서 임도를 뒤로 하고 오른쪽 숲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제대로 된 산길로 접어든 기분이다. 대숲에 이어 소나무 숲이 우거진 길은 묵은 임도 수준으로 널찍하다.
뜨거운 햇살에 달아오른 몸이 울창한 숲에 접어들자 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길섶으로 여름과 가을에 공존하는 야생화들이 앞다투어 피어 있고, 남도 특유의 푸른 식물들도 눈에 띈다. 임도 갈림길에서 15분 정도 편안하게 진행하여 올라서게 되는 둔덕봉이 지형도상의 구들뫼로 표시된 곳이지만 별다른 표식이나 특징은 없다.
구들뫼에서 구두산까지는 산책로 같이 넓고 편한 길을 따라 10분 정도 더 진행하여야 한다. 구들뫼 이후로는 울창한 편백나무 숲길이 이어져 한층 운치를 더한다. 숲의 청량한 기운이 몸 속으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기분이다. 뒷사람들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20분 이상을 노닥거린다.

구두산이 가까워지면 편백숲은 자취를 감추고 잡목 숲이 잠시 이어진다. 거북의 머리라는 한자어를 갖고 있는 구두산(龜頭山)은 <남해 구두산 371m>이란 나무 팻말만 걸려 있을 뿐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답답한 둔덕봉이다.
구두산을 지나 3분 후 송전철탑이 서 있는 3거리 갈림길로 이정표가 서 있다.(이정표: ↑문의마을, →용강마을 1.2km, ↓노량공원 2.8km) 여기서 우측 아래 용강마을쪽으로 진행한다. 내리막길엔 웃자란 풀이 등산로를 덮고 있어 수풀을 헤치고 나가기가 다소 곤혹스럽다. 7분 가량 숲길을 빠져 나오면 이정표가 서 있는 임도가 나타난다.(이정표: ↓구두산 0.2km, ←용강마을 1.0km) 이 임도에서 지름길은 임도 건너 우측 아래로 진행하는 내리막 방면이지만 이정표는 임도를 따라가는 왼쪽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임도를 따라 진행해도 되지만 나중에 알고 봤더니 삥 돌아가는 길이 되고 만다.
왼쪽 방향의 임도를 따라 100여m 나서면 시멘트 길과 만나는 3거리가 된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로 진행하여 또 한번의 3거리를 만나면 오른쪽 오르막으로 올라선 후 바로 앞 철탑쪽으로 진행한다. 오르막 올라서는 지점에서 우측에서 오는 산길과 만나게 된다. 철탑 아래로는 허리까지 자란 풀이 등산로를 점령하고 있어 길 찾기가 까다로웠다.

  철탑을 지나 숲을 빠져 나오면 다시 이정표가 있는 임도에 닿고(이정표: ↓구두산 0.9km) 저 앞으로 마을창고가 있는 4거리 고개마루가 보인다. 시멘트 길이 통과하는 4거리에서 직진하여 소나무 숲 그늘에 앉아 점심을 해결한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하늘, 한창 여물어 가는 나락이 초가을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식사 후 밭지대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곧장 4분 정도 내려서면 오른쪽 덕신리와 왼쪽 남양리를 연결하는 2차선 포장도로인 용강고개다. 고개에서 곧장 직진하는 임도길이 있지만 그 길은 밭이 가로막고 있으므로 오른쪽으로 우회해야 한다.
고개에서 오른쪽으로 50m 정도 내려오면 왼쪽으로 금음산 가는 임도길이 보이고 초입에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이정표: ←금음산 3.0km, 대국선성 4.5km, ↓구두산 1.2km)
임도를 따라 400m 거리를 약 6분 남짓 진행하면 널찍한 공터가 있는 곳에 등산안내도와 이정표가 서 있다.(이정표: →금음산 2.6km, 대국산성 4.1km) 여기서 오른쪽 숲길로 빨려든다.


▲422봉에서 내려다 본 조망 - 오른쪽 아래 처음으로 탁 트인 조망을 보여주는 전망터, 왼쪽으로남해대교

  용강고개 이후로 대국산까지는 등산로가 잘 정리되어 있어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20여분 은근한 오르막을 올라서면 처음으로 시원스럽게 조망이 터지는 전망터가 나타난다. 왼쪽 멀리로 광양제철소와 광양만이 보이고 가까이로는 삼천포화력발전소와 남해대교가 보인다. 그 오른쪽으로는 하동 금오산이 듬직하게 버티고 있다.
전망터를 지나 올라서면 422봉이다. 422봉 이후로는 초원같이 평탄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수목을 잘라 마치 방화선처럼 넓게 난 길이라 시야가 훤히 트인 능선이고 보니 좌우 조망에 막힘이 없다. 왼쪽으로는 남해바다를 오른쪽으로는 남치저수지 건너로 야트막한 삼봉산이 보이고 그 뒤로 우뚝하게 솟은 망운산(768m)을 줄곧 시야에 두고 진행한다. 진행방향 저 앞으로는 마지막 봉우리인 대국산성이 선명하게 보인다.
422봉에서 능선을 따라 40분 정도면 삼각점(남해24)이 있는 금음산정상(480.9m)이다. 금음산 역시 구두산처럼 정상임을 알리는 나무판만 걸려 있을 뿐 사방이 숲으로 막혀 있는 곳이다. 금음(金音)은 옛날 한 도인이 산에서 잠이 들었는데 어디선가 쇳소리가 나서 금음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정상 동쪽 아래로 금음리가 있다.

▼금음산을 지나 대국산 가는 길은 조망이 트인 능선길이 펼쳐진다. 능선에서 본 남치저수지와 그 왼편의 대국산,
저수지 뒤로는 남해지맥 줄기인 삼봉산과 멀리 망운산이 우뚝하게 솟아 있다.

  금음산을 지나 100m 정도면 삼거리 이정표를 만난다.(이정표: ←전망대 0.2km, 문항마을 1.6km, ↓용강마을 3km, →대국산성 1.5km) 왼쪽이 문항마을, 대국산은 오른쪽이다. 봉우리 하나를 넘어 두 번째 올라서는 둔덕봉이 악치곡산(455m)이지만 그저 스쳐 지나는 둔덕일 뿐 이렇다 할 특징은 없다. 금음산에서 악치곡산까지는 13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악치곡산에서 2분 정도 내려오면 왼편으로 바위가 우뚝 선 전망터가 있다. 마치 거대한 호수를 연상시키듯 잔잔한 남해바다에 기대어 있는 진목마을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악치곡산부터는 곳곳에 재선충이든 나무를 베어 훈증하기 위해 덮어놓은 모습을 자주 보게되고 대국산 직전 고개까지 계속되는 내리막의 연속이다. 가파른 등산로에는 쇠줄과 로프가 있어 길을 정비하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히 나타난다.
악치곡산에서 20분 가량 구르듯 내려서면 넓직한 공터 주차장과 간이 운동기구가 마련된 고개마루에 닿는다. 진목리와 남치리를 연결하는 시멘트 차도길이 관통하는 곳으로 이정표와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이정표: →남치마을 1.6km, ←진목마을 2.1km, ↓금음산 1.1km ↑대국산성 0.4km) 지형도에는 악치현이라 표시되어 있다.

고개에서 직진하는 시멘트길을 따라 오른다. 300여m쯤 오르면 시멘트길이 끝나는 지점으로 주차공터가 마련되어 있고 길은 비포장 널찍한 길로 바뀐다. 잠시 후 산성안내문과 함께 대국산성이 시작된다.(이정표: ↓금음산 1.77km, ↗가청고개 1.83km)
대국산성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 19호로 축조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산성으로 성내에는 우물터인 연지와 건물축조의 흔적이 남아있다. 베낭을 벗어 놓고 성을 따라 한바퀴 돌아 본다. 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 대국산 정상이 된다. 남해의 섬과 사천, 광양 일대가 훤히 보여 오늘 산행의 하일라이트가 된다. 대국산성은 자동차로 산성 100m 직전까지 오를 수 있으므로 구지 등산이 아니라 여행지로서의 볼거리도 제공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대국산성 최상단부인 대국산에서 본 남해바다▶

  정상에서 남해지맥을 따라 가청고개 방면으로 내려서려면 산성 최정상부에서 서쪽 아래로 보이는 능선으로 진행해야 한다. 성벽 아래로 숲으로 드는 등산로가 보이지만 성벽이 너무 높아 곧바로 내려설 수가 없으니 산성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나와 산성 우측으로 성벽을 타고 돌아가야 한다.
산성 끝단부에서 숲길로 접어들어 우측 내리막 길로 진행한다. 3분 후 <↓금음산 1.85km, ↑가청고개 1.42>를 알리는 이정표를 접한다. 서쪽으로 향하는 관당마을쪽 능선길보다 남해지맥을 이용하는 산꾼들이 더 많은 듯 가청고개로 이어지는 남쪽 내리막길이 더 반듯하다. 이후 길은 내리막의 연속이다. 부분적으로 길이 잡풀에 덮혀 희미한 곳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길은 뚜렷하다. 대국산성에서 20분 가량 내려서면 임도에 이르고 곧 시멘트도로인 임도 3거리다. 우측 내리막을 따라 10분 가량 내려서면 산행 날머리가 되는 정태마을회관이다.
 


대국산성 [ 大局山城 ]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진목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둘레 약 1,500m. 경상남도 기념물 제19호. 현재 문지(門址)·연못지·건물지 등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높이 375m의 대국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는데, 주위의 요소요소에는 석축으로 긴 네모꼴의 경계초소가 있어 접근하는 적을 경계하였던 것 같다.
석축 주위에는 동·서·남의 삼면으로 모두 10m의 토대를 둘러서 성내에서도 외곽 지역을 잘 볼 수 있도록 하였고, 북쪽은 약 2m 정도로 길게 하여 성내의 도로를 은폐시켰던 듯하다. 석축에 사용된 석재는 20∼30㎝ 크기의 자연석을 겹겹으로 쌓아올린 다음 흙으로 메웠다. 입구는 동남쪽과 북쪽 두 곳에 두었는데, 동남쪽의 것이 정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북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 성은 인접한 고현(古縣)의 산성으로 추측되는 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사이에 왜구방비를 위하여 축조한 산성으로 여겨지며, 외성도 현존하고 있다. 성내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와조각과 토기조각·자기조각 등이 채집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경종 때 천장군(千將軍)과 칠시녀(七侍女) 사이에 얽힌 낭만적인 사연이 있다. 그래서 이 성은 당시 천장군이 쌓았다고 하며, 수년 전까지만 하여도 성내에 천장군의 목상(木像)을 안치하여 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대국산성 전설 하나
옛날에 남해군 설천면 대국산 아래 비란리 라는 마을에 사이 좋은 두 형제가 서로 어지러운 세상에도 둥글둥글 살아가고 있었다. 그 형제 중에 아우의 이름이 '청'이었다. 두 형제는 나이가 들어 청년기가 되자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처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처녀는 미모가 뛰어났기 때문에 총각들의 눈길을 끌었고 청의 형도 마음에 두고 있어 그 처녀는 마음속에 아픔을 두고 있던 중 청의 형제는 각각 그 처녀에게 사랑을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처녀는 형제 중 누굴 택할 것인가에 아픈 마음을 가지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을 눈치챈 두 형제는 이때부터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자 어느 날 형이 아우에게 "청아! 우리들이 이렇게 귀한 세월만 보내며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을 생각해야 되지 않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너와 나는 지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난 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죽음을 택하겠다" 하면서 형은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형이 말하기를 "그녀가 한 벌의 두루마기를 꾸미는 동안 나는 30관의 쇠줄을 발에 묶고 20리 길을 갔다 오기로 하고 너는 저기 대국산에 돌로 성(城)을 쌓는거야 싫다면 바꾸어서 해도 괜찮다"하면서 "이긴 사람이 그녀가 만든 두루마기를 입고 그녀와 같이 사는거야 그리고 우리가 약속한 일은 그녀가 꾸미는 두루마기보다 빨리 끝내야만 되지 만약 늦게 끝내면 우리는 깨끗이 그녀와의 혼인은 포기하고 마을을 떠나기로 하자"하면서 동생 청이의 동의를 구하였다.
청이도 승낙하고 그 해 가을 달 밝은 보름날 밤 처녀는 두루마기를 짓고 형제는 약속대로 일을 시작하였다. 밤이 깊어 달이 서산에 걸릴 무렵에 아우 청이는 성을 다 쌓았다. 그때까지 처녀는 두루마기를 다 꾸미지 못하였고 형 역시 돌아오기 전이었다.형은 시합에 져서 억울하였다. 그러나 약속한 것이라 미련을 남기지 않고 운명이라 생각하고 한숨을 돌린 채 칼로 자기 가슴을 찔러 죽고 말았다. 청은 막상 시합에서는 승리하였으나 형이 죽고 나니 왠지 서러움에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 후 날로 왜구들의 침략이 심해지자 청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자기가 쌓은 성을 이용하여 적을 무찌르고 마을의 안녕을 지켰다. 왜구들이 성을 기어 오르고 화살이 비 오듯 날아 왔지만 청의 군사들은 굽히지 않고 싸워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산성에는 대포에 맞은 흔적들이 남아 있고 청이 형제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대국산성 전선 둘
대국(중국)이란 명칭을 따서 대국산성이라 하였다는데 옛날에 정희(鄭喜)라 하는 사람이 자기 마누라하고 내기를 했다. 마누라는 웃옷 만드는 일이며 자기는 성(城)을 아침까지 쌓는 일이다. 만약 내기에 지는 사람은 상대편을 죽이기로 하였다.
그래서 정희는 성을 쌓기 시작하였고 마누라는 두루마기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두루마기보다 성을 먼저 쌓게 되었다.
사실은 마누라가 두루마기를 먼저 지어 놓고 기다렸는데 성을 모두 쌓은 뒤 두루마기를 살펴보니 두루마기 안고름을 안 달았기 때문에 마누라는 정희라는 장군의 손에 죽고 말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CopyRightⓒ2000-2008 By 산으로가는길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