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강원도 정선군 남면, 동면(지도보기)

▼정상부의 짙은 운무가 잠시 비켜서는 사이...(억새능선을 오르는 산객과 왼쪽 골짜기 아래의 증산면)
강원 정선군 남면에 펑퍼짐하게 솟아있는 민둥산은 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상에 나무 한 그루 없는 독특한 산이다. 거기에다 수십만 평에 달하는 주능선 일원이 억새밭으로 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주변의 다른 산들은 강원도 산답게 높고 가파르며 숲이 짙건만 이 산만 마치 돌연변이처럼 억새지대를 이루고 있다. 가을 억새산행지이자 철도산행지의 대표적인 산이 정선 민둥산이다. 민둥산은 해발 1,118.8m로 산 전체에 관목과 잡목이 우거져 있고, 정상부분은 나무가 거의 없다.
산세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끝없이 둘러친 가을 억새군락지는 많은 등산객들을 불러 모은다. 민둥산 억새는 거의 한 길이 넘고 또 매우 짙어서, 길 아닌 일부 지역은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다. 민둥산이 억새밭이 된 이유는 각종 산나물이 자라도록 매년 한번씩 불을 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년 10월 중순에 억새제가 개최되며 산 자락에는 삼래약수와 화암약수가 있다.


1.증산초등교-쉼터(휴게소)-남릉-민둥산-억새밭 갈림길(우측사면길)-임도-증산초등교 (9km, 3시간 소요)
2.증산역-증산초교-민둥산-억새군락-지억산-불암사-화암약수 (14km, 5시간)
 

☞정선-증산초등교:영동고속국도 하진부IC-33번 지방도(정선 방향)-나전3거리(우회전)-42번국도(정선 방향)-정선읍-429번 지방도(덕우리 방향)-덕우리3거리-33번 지방도(문곡 방향)-문곡(우회전)-증산초등교

☞포항-증산:영덕방면 7번 국도-호산삼거리-태백-정선방면 59번 국도 이용- 증산(4시간 30분~5시간 소요)

☞열차: 제천역에서 태백선,정선선을 이용, 증산역(033-591-1069)하차
☞노선버스:정선시외버스터미날(033-562-9265)에서 고한행 완행버스 이용, 증산 하차
 

 

1.증산초등교-쉼터(휴게소)-남릉-민둥산-억새밭 갈림길(우측사면길)-임도-증산초등교

 

비오는 날의 수채화 - 정선 민둥산

★일시:2002.10.20 (21세기 산악회 따라)

*산행코스:증산초등교-남릉-민둥산-억새밭 갈림길-우측 사면길-증산초등교
 (9km, 3시간 소요)

*GUIDE

먼먼 옛날 온 대지가 희뿌연 어느날 하늘에서 말 한 마리가 내려왔다. 이 말은 누군가를 태우고 하늘나라로 올라 오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았는지 그 주인을 찾아 보름동안이나 민둥산 일대를 헤집고 다녔다는데 그 후로부터 이 일대는 나무가 자라지 않고 억새만 자란다는 이야기 한자락...
민둥산에 얽힌 이야기지만 우리의 몇몇 산자락이 그러했듯 산나물 채취를 위해 해마다 불을 질렀기 때문에 지금은 억새로 유명해진 민둥산이다. 행정구역상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2리. 산천수려한 정선과 태백의 경계지점쯤에 위치해 있고 한때 태백, 사북, 고한 등지와 함께 그 무한한 탄전으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던 곳이 이곳 증산이다. 또한 증산은 추억 속에 잊혀져 가는 비둘기호 열차인 한 칸짜리 꼬마열차가 구절리로 향하는 정선선 철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살림에 큰 돈 벌겠다고 증산으로 떠났던 고향 형님 한 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젠 오십을 넘겼을 그 형님의 소식은 그 이후로 들은 바가 없다.

주절주절 내리는 비속에서 포항을 출발한 버스가 호산-태백을 거쳐 이곳 증산에 당도하기까지는 꼬박 5시간이 걸렸다. 그놈의 "루사" 인가 뭔가 하는 태풍은 강원도 영동지역 일대를 사그리 망가뜨리고 말았다. 가곡쪽에서 신리재로 이어지는 동활계곡 역시 예외는 아닌 듯 곳곳에 유실된 교량이며 붕괴된 도로, 무너진 산록이 그 처절했던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재앙을 몰고 왔던 자연은 능청스럽게 짙은 가을을 뿜어내고 있다.
비록 비 내리는 잿빛 하늘이지만 그 화려한 색상은 감출 수 없는 듯 곱디 고운 색으로 치장한 붉고 노란 계절이 동활계곡 물가까지 내려 앉아있다.

민둥산 산행 들머리가 되는 무릉4거리에 버스가 당도하자 짓궂은 부슬비는 그 강도가 더해진다.
아예 산행을 포기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어짜피 그 찬란한 아름다운을 발산하는 민둥산 명물, 억새의 물결은 포기했지만 예까지 힘들여 와서 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이 하루가 아까울 터...

12시 08분, 무릉4거리에서 증산초등교가 있는 동면방향 421지방도를 따른다. 철길 아래를 지나 도로 따라 100m 정도 후에 증산초등교가 나타나고 왼쪽으로 작은 철다리를 건너서게 되면 이정표가 "정상 4km, 1시간30분 소요"를 알리고 있다. 증산초등교에서 민둥산 오르는 길은 이래 저래 세 갈래로 나 있다.
처음부터 나타나는 오름길을 얼마 나서지 않으면 오른쪽으로 완경사를 알리는 팻말이 있는 갈림길, 우측 완경사 길로 접어들게 되면 발구덕마을을 경유해 정상을 오를 수 있고, 정면으로 난 뚜렷한 길을 직진해서 올라서게 되면 또다시 갈림길. 이번에는 왼쪽으로 완경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왼쪽 길은 산허리 두 어개를 돌아 민둥산 직전 자그마한 억새밭 안부까지 이어지는 길로 개인적으로는 이 왼쪽 길을 권하고 싶다. 발길이 뜸한 길로서 울창한 숲 사이로 이어지는 편안한 오솔길이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 뚜렷하게 난 넓은 길을 따라 주능선을 타고 직등을 하기로 한다. 이 길은 곧장 정상까지 일자(一字)로 뻗은 주능선 길이다.

오늘이 일요일인 터라 우리뿐 아니라 다른 여러 지방의 산악회에서도 많은 산님들이 찾았다. 우리가 오르는  이 길은 메인 등로인 탓에 길은 질척거리고 대만원을 이뤄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이래저래 정체와 서행을 반복해야 했지만 증산리 일대를 내려보는 시선은 즐거웁기 그지없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운무의 향연을 갈무리 하고파 카메라를 꺼내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꾸준한 오르막 길... 이깔나무 숲지대를 지나 얼마간을 더 올라서게 되니 차량 몇 대가 서 있는 포장도로의 쉼터에 이른다.(12:45) 먹거리를 파는 포장집 서너개가 보이고 포장 속에는 비를 피한다는 핑계로 걸쭉한 막걸리 사발을 돌리는 산객들로 성시를 이룬다.
급기야 여기까지 올라와서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되내려 가시는 분들이 속출하기도 하고, 길은 차도를 건너 정상까지 곧은 직선으로 이어진다. 쉼터에서 민둥산 정상까지는 50분 거리.

우산을 받쳐 든 사람, 1회용 비옷을 입은 사람, 그냐 가랑비를 맞으며 씩씩하게 오르는 사람들의 무리속에 끼어 우중산행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길은 이제 아예 갯벌을 지나는 듯하다. 신발에 붙은 흙이 점점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탓에 몇 번씩이나 진흙을 떨어내야만 했다. 미끄러운 길에서 한 번이라도 엉덩방아를 찧은 사람은 그 흔적을 산행 내내 달고 다녀야 하므로 미끌어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별이 확연하다.
카메라를 보호한답시고 덮어 쓴 판쵸속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오늘같은 가랑비 정도에는 비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매한가지이므로 그냥 비를 맞는 것이 한결 가뿐한 것쯤은 알고 있지만 건너편 산자락을 붉게 물들인 단풍 숲과 모였다 사라지는 운무의 조화를 카메라에 담을까 하여 미련스럽게도 판쵸를 벗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매번 운무가 빚어내는 멋진 조화는 놓치고 만다.

◀빗속에 오르는 민둥산(오름길 끝이 정상)
어느덧 사방으로 억새의 물결이 시작된다. 좌우로 도열한 억새의 호위를 받으며 이어지는 넓직한 골목길이다. 힐끔 힐끔 골목길 너머 담장 속에 뭐가 있나 하여 두리번 거리지만 여전히 짙은 운무는 내용물을 꼭꼭 숨겨두고 있다.
오른쪽으로 "쉬어가는 곳" 이라 쓴 움막을 지나면서 갑자기 산불초소와 민둥산 표석이 서 있는 그 민둥봉에 오른다.(13:35) 짙은 운무로 정상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정상이 얼마나 멀었을까 하고 노심초사 했던 것이다.
민둥봉 역시 사람들로 꽉 들어 차 있다. 어쩌면 화창한 어느 오후 이곳에 오르면 억새보다는 줄을 이어 억새골목을 메운 산객들의 화사한 행렬이 더 볼거리를 제공할지 모를 일이다.
때마침 한껏 선심을 쓰는 듯 저 아래로 한줄기 바람이 운무를 걷어내고 좁다란 계곡 저 아래로 증산리 일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 깨끗한 전경이 지척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북쪽 지억산쪽으로도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지고 산객의 행렬이 키 큰 억새사이로 줄을 잇고 있다.
기실 억새는 황혼녘 석양을 등진 모습이 최고지만 애시당초 기대하지도 않은 바라 크게 섭섭할 것도 없다. 호리호리 야윈 몸매에 흠뻑 물기를 머금은 억새의 무리가 을씬년스럽기까지 하다. 민둥산은 매년 억새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올해는 정선지역 수해로 인해 취소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이 민둥산에 다시 올라 은빛 찬란한 억새의 장관을 다시 보리란 기약 없는 약속을 뒤로 하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넓은 억새골목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억새를 이어 만든 초가(쉬어가는 곳)에서 늦은 점심을 한다. 내부가 어둡긴 해도 오늘같은 날 비를 피해 식사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마침 산을 오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한지라 밥 한 그릇을 개눈 감추듯 해치운 후 뒷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총총히 억새골목길을 내려선다.(14:10)
몇 발자국 내려서지 않아 만나게 되는 밋밋한 안부에서는 왔던 길을 버리고 오른쪽 아래로 난 길을 따른다. 제법 가파르게 떨어지는 길로서 억새가 자취를 감출 즈음에 키 큰 소나무와 낙엽관목이 뒤섞인 길로 이어진다. 낙엽이 소복이 쌓인 길이라 질척거리지 않아서 좋고 산객의 통행도 뜸한 편이다.
정상을 출발한지 15분 만에 잔돌들이 깔린 임도에 이른다.(14:25)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올라올 때 만났던 쉼터쪽으로 이어지지만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서는 능선방향으로 증산초등교쪽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다.

오른쪽 아래 숲길로 내려서는 순간 이 길을 잘 생각했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기쁨으로 다가서게 된다. 길은 키 큰 이깔나무가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하듯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고 옅은 안개가 스며든 숲길은 마치 외국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모두들 이 좋은 길을 두고 어디로들 내려 갔는지...
좁다랗게 이어지던 오솔길은 이깔나무 숲이 끝나면서 낙엽관목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다. 곱게 차려입은 단풍숲을 따라 나서게 되는 길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단풍색조에 따라 얼굴색까지 노랗고 빨갛게 변화되는 기분이다. 정상부의 은빛 억새를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은 이 단풍터널 속에서 충분히 보상받고 있는 셈이다.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는 증산일대▶
산허리를 두어 개를 돌아 나서게 되니 이윽고 올라올 때 만났던 두 번째 갈림길과 접속하게 된다.(14:50)
간간이 기적을 울리며 지나다니는 기차소리가 한때 탄광도시로 화려했던 옛 증산의 영화를 반추하듯 아련한 향수로 다가선다. 이후 여전히 질척거리는 길을 내려서서 굴다리 옆 허름한 가게 처마에서 구슬프게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마시는 달작지근한 막걸리 한 사발에 왕복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비오는 날 수채화같은 산행이 녹아들고 있다.(14:57)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은 영월-제천을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느라 올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3시간도 안되는 민둥산 산행을 위하여 투자한 왕복 11시간의 이동이 결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음은 역시 산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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