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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산행기 [남도의 화려함으로 싱싱해 지기를 명하노라]
*걸었던 길:무등산장-꼬막재-규봉암-지공너덜-장불재-입석,서석-중봉-중머리재-봉황대,천재단-증심사
▼무등산의 상징 서석대 뒤로 보이는 광주시가지, 왼편 아래는 바람재로 이어지는 사양능선
▼중봉 아래 입석에서 아득히 건너다 보이는 화순땅 산자락 무등산은 전형적인 육산이지만 그 완만한 산자락 갈피로 우뚝 우뚝 기암을 얹어 매력을 더하는 산이다
민주화가 뭔지, 자유가 뭔지... 그 의미조차 헤아리지 못하던 시절(지금도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묵직한 베낭 하나에 그럴 듯한 고뇌를 잔뜩 꾸려넣고 광주 충장로 밤거리를 싸돌아 다녔었다. 거리 곳곳엔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고, 일정한 거리마다 만나는 큼직한 방패를 앞세운 제복들의 부동자세, 내 또래 젊은이들의 경직된 얼굴들...
무등산에 들기 위해 찾았던 광주의 첫 인상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주눅들게 만들었다. 518민주항쟁이 있은지 몇 년이 흐른 후였지만 그곳엔 시도때도 없이 화염병이 날아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낯선 광주땅을 체험코자 멋모르고 싸돌던 철부지는 뒤늦게야 충장로 분위기에 쪼매 적응되고 쫓기듯 구석진 여인숙을 파고 들어 쓴 소주를 홀짝거렸다. 날이 밝았어도 광주의 아침은 우울했다. 원효사까지 가는 시내버스에선 아침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불콰한 얼굴을 한 취객의 집요한 공략대상이 되어 내내 불편했었다. 취객은 광주항쟁 당시 자식을 잃은 분풀이를 죄다 나에게 쏟아붓는지 잘 알아 듣지도 못하는 말을 끝도 없이 내 뱉었다. 몇 안되는 버스 승객중 죽은 자식 또래의 팔팔한 놈을 보니 그때의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 났던 모양인지... 아니면 젊은 놈이 하릴없어 베낭메고 싸돌아 다니는 꼴이 한심스러워서 였을까? 무등산을 찾았건만 무등에 대한 기억보다는 우울했던 광주의 표정만 남았을 뿐이다.
벌써 20년 하고도 몇 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아무튼 무등산에 대한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던 것같다. 증심사 길 위에서 만났던 짧은 인연 하나를 제외한다면... 다시 찾은 무등산... 세월이 흐르건 말건 무등산은 광주의 시린 가슴을 보듬으며 늘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아니 예전보다 좀더 근사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왼편은 산행 날머리가 되는 증심사 일주문, 오른쪽은 산행 출발지인 원효사 일주문
 ▲(좌)옛 절터 자리인 오송원을 지나면 숲은 키를 세운 송림숲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우)규봉암 입구 거석 사이로 낀 돌 하나가 절묘하다.
 ▲원효사 주차장을 지나 상가단지로 들어서면 저 앞으로 북봉, 천왕봉 고스락이 달려든다.
 ▲꼬막재 직전 샘터-무등산은 물이 흔한 산이다. 곳곳에 시원한 샘물을 만나게 된다.
봄은 진작부터 우리 곁에 다가와 얼굴을 간지럽히지만 꽃샘추위 뒤로 오는 맵싸한 바람살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원효사 주차장. 집단시설지구 상가촌을 씩씩하게 들어서자 저 앞으로 천왕봉이 산머리를 세우고 악수를 청한다. 산 아래 길은 처음부터 갈래갈래 흩어진다. 하지만 그리 염려할 바는 못된다. 그 갈림길 곳곳으로 든든한 이정표가 꼬막재 가는 길을 등대처럼 밝히고 있다. 포장길 끝에서 산문으로 들어선다. 제법 경사도를 올리는 길에서 겉옷 하나를 벗어내고서야 제대로 숨통이 트인다. 옛 절터자리인 오송원 근처의 어둑한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면 리기다소나무가 키를 세운 편안한 송림숲이 한동안 이어진다.
솔바람 드나드는 숲길은 한없이 평온하다. 봄산에 소풍 나온 듯한 달뜬 걸음은 남도의 알싸한 바람에 한껏 마음을 열어 젖힌다. 가뭇하게 얼굴 내민 손톱만한 새순은 한 줌 햇살이 쏟아지자 연초록 웃음을 터트린다. 전신으로 봄을 받아내고 있는 숲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산 가득 봄빛 내려 앉은 길은 겨우내 얼었던 흙이 풀리면서 몰랑몰랑 해진다. 길섶 시원한 샘터에서 습관처럼 마신 물 한 바가지가 채 자리도 잡기 전 꼬막재에 닿는다. 꼬막재는 예전 꼬막만한 잔돌들이 질펀하게 깔려있어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돌길의 흔적은 가뭇하다. 담양과 광주를 경계짓는 고개지만 재라고 부리기엔 뭔가 부족한 작은 고개 꼬막재를 알리는 표석만 없다면 그저 무심코 지나치게 될 산자락에 불과 할 것이다.
꼬막재를 지나서도 한동안 봄빛에 취해 흐믈흐믈해진 길을 따라 나서면 느닷없이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진다. 남동쪽 코 아래로 신선대가 있는 북산이 내려다 보이고 반대로는 북봉이 올려다 보이는 호남정맥 마루금과 맞닿게 되는 곳이다. 햇볕이 따스하게 데워 놓은 억새 사이를 파고들어 옹종한 점심상을 펼친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정담과 함께 즐기는 오붓한 시간은 함께 걷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아직은 겨울 끝. 한줌 햇살이 귀한 시기라 억새밭으로 차고 넘치는 볕이 아까울 지경이다. 느긋하게 오수라도 즐기고픈 욕심... 마냥 늑장을 부릴 수만 없는 한정된 시간을 아쉬워하며 장불재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꼬막재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억새밭-저 앞으로 신선대가 있는 북산이 건너다 보인다. 느긋하게 점심을 즐긴 이 곳은 호남정맥의 마루금이 북산에서 올라붙는 곳이다.
 ▲규봉암 가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화순땅-동북호 건너로 키를 재는 화순의 산자락이 가뭇하다.
 ▲규봉암 관음전 뒤로 우뚝선 암봉이 절마당에서 호들갑 떠는 중생을 향해 뭐 그 정도에 호들갑이냐며 나무란다
 ▲지공너덜-무등산에 덕산너덜과 지공너덜이 있다- 너덜밭에는 지공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지공너덜 옆으로는 천연석굴인 은신대가 있는데 보조국사가 좌선수도 했다하여 보조석굴이라고도 한다.
 ▲지공너덜을 지나면 옹색한 일주문을 세운 석불암이 나타난다. 요사채 뒷편으로 가면 유리문 속으로 천연 바위에 세긴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편안하게 이어지는 길 끝으로 돌길을 만나면 곧 규봉암이다. 무등산 3대 절경 중 하나인 규봉암 바위벼랑 아래 절집에 서면 발 아래로 동복호와 어우러진 화순땅 들판이 봄빛에 찰랑거리고 그 뒤로 올망졸망 키를 재는 산자락이 겹겹으로 아른거린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도 이지역 산자락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뿐이다. 규봉을 지나면 지공대사가 법력으로 수많은 돌을 깔았다는 지공너덜과 자연석에 음각된 마애불이 있는 석불암이다. 옹색한 암자엔 스님 기척은 가뭇하고 서너마리 고양이가 담장을 어슬렁거리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건너로는 호남정맥의 마루금이 장군봉을 지나 안양산으로 이어지며 유연하게 날개 펼치는 백마능선이 내내 시선을 잡아끈다.
규봉암까지만 해도 일사분란하게 열을 맞춰오던 일행들은 이제 삼삼오오 흩어져 나름대로의 길을 걷는 듯하다. 그 자유로운 걸음 뒤로 장불재에 닿는다. 사방으로 너른 시야를 보여주는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억새숲 사이로 선 듯한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이 싫지 않다. 부드런 바람이 스치듯 속삭인다. <남도의 화려함으로 싱싱해 지기를 명하노라> 이미 보이는 것 모두가 싱싱한 즐거움 이지만 바람의 속삭임에 걸음은 한결 힘을 얻는다. 장불재는 넓직한 억새평전으로 호남정맥의 맹주격인 무등산을 지난 마루금이 안양산쪽으로 굽돌아 서는 길목이 된다. 장불재에 서면 모든 것이 넉넉해 보인다. 능선자락으로 거대하게 키를 세운 방송시설물들도 그리 밉지 않다. 그저 이 평화롭고 넉넉한 자연을 치켜세우는 소품 정도로... 마른 억새 출렁이는 백마능선 너머로 누군가가 백마를 대신한 자전거를 타고 느릿느릿 장불재쪽으로 날개짓 하고 있다. 햇살 등진 그의 모습은 어디 영화에서나 본 듯한 그림이다.
 ▲장불재에서 올려다 보이는 서석대(좌)와 입석대(우)
 ▲장불재는 화순과 광주의 경계로 넓은 억새 평전으로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공원같은 분위기다.
 ▲입석대-무등산1경으로 꼽히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입석대에서 바라본 백마능선, 호남정맥의 마루금이기도 하다. 왼편은 장군봉 혹은 낙타봉으로 불리기도
 ▲고대의 신전 위에서 자유의 날개를 펴다.
 ▲서석대 너머로 보이는 광주시가지-무등산과 광주는 결국 한 몸이다.
 ▲철조망에 가로 막혀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천지인왕봉
 ▲무등산 정상을 대신하는 1110봉
 ▲서석대에서 바라본 무등산 1110봉
 ▲다시 서석대로 눈길 주고
 ▲아래쪽에서 본 서석대-바윗돌에 얼음이 붙어있는 서석대는 수정병풍이란 별칭을 갖기도...
 ▲서석대에서 내려다 본 중봉-방송통신탑으로 이어지는 길은 바람재로 통하는 사양능선
장불재에서 무등산의 상징인 입석대, 서석대까지는 한달음이다. 입석대 오르는 길에선 열 걸음 가다 뒤돌아 서고 또 열 걸음 가다 뒤돌아 서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아예 한참을 멈춰 서서 작정하고 아랫동네를 내려다본다. 늘씬한 백마능선 너머로 화순땅이 가물가물하다. 입석대!!! 도대체 이 높은 곳에 저렇듯 정교한 돌기둥으로 신전을 세운 이는 누구일까? 입석대는 고대에서나 있을 법한 마법의 성이다. 발을 들여놓기조차 부끄러운... 거대한 입석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곳. 중생대 화산폭발이 남긴 신의 걸작이란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신전의 기둥을 요리조리 기어 올라 입석의 상단에 서서 날개짓 펼쳐본다. 이곳에 앉으면 누구나 부처가 되지 않을까? 입석대 주변을 꼼지락 거리는 사이 발빠른 일행은 이미 되내려 서고 있다.
입석대에서 한 차례 더 올라서면 서석대. 무등산의 옛 이름 중의 하나가 서석산이라 했던가! 저녁노을이 들 때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난다 하여 수정병풍이라고도 한다는데... 욕심같아선 그 노을이 들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싶다. 서석대를 정점으로 무등산을 더 이상 오를 수 없다. 울타리 안으로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이 있지만 군사시설물이 있는 금단의 성역이다. 언제쯤에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설 수 있는 저 천지인왕봉 고스락을 밟게 될런지... 차별없는 세상, 무등(無等)의 아쉬움만 서석대에 내려놓고 중봉을 향한다.
서석대 서쪽 사면을 돌아 내리는 길은 아직 잔설이 깔려 있어 봄기운이 요원한 듯하다. 중봉으로 가는 길은 넓직한 억새평원을 가로지른다. 예전 군부대가 있었던 자리였다는데 기억 속엔 있었던지 없었던지... 억새밭 가로지르는 길은 환상과 낭만이 있는 곳이다. 연인과 함께 걷는다면 그 사랑을 천년쯤은 너끈히 이어가리라. 그 길은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는 길이다. 억새의 화려한 춤사위 속으로 한번쯤은 그렇게 걷고 싶은 길이다. 억새밭 끝으로 올라선 중봉에서의 그림 또한 대단하다. 서석대, 입석대 옆으로 둔중하게 머리 세운 무등의 품세가 듬직하다. 북쪽 방송국 시설 뒤로 이어져 바람재로 연결되는 사양능선도 한결 운치있게 다가선다. 백마능선, 사양능선... 모두모두 걸어내고 싶은 욕심의 길이기도 하다.
 ▲중봉 아래에는 예전 군부대가 있었으나 생태복원을 위해 막사를 철거하여 억새밭으로 변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등산 억새지역 중에서는 중봉 일대의 억새밭이 최고라고 여겨진다.
 ▲손잡고 걸어보고 싶은 길...
 ▲중봉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사양능선
 ▲중봉 아래 전망터 주위로도 입석이 즐비하다.
 ▲전망터에서 되돌아 본 천왕봉
 ▲좀더 가까이로
 ▲입석 사이로 백마능선의 방송 시설물이 - 오른쪽 바위는 의자바위??
 ▲암릉으로 휘늘어진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일대로는 키 작은 관목만 있어 소나무가 귀한 편이다.
중봉에서 한차례 급비탈로 떨어지면 스님의 머리처럼 민둥한 중머리재다. 중머리재에서 길은 다시 갈래갈래 흩어진다. 새인봉, 마집봉, 용추계곡, 장불재, 토끼등, 증심사... 중머리재는 무등을 오르는 사람들이 마주보기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하는 만남과 헤어짐의 길목이다. 추모비를 거쳐 증심사로 내려서는 길이 젤로 빠른 길이지만 예전 걸었다는 핑계를 대고 알량한 산욕심 채울 요량으로 봉황대쪽을 향해 잰걸음을 놓는다. 그 길에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게 산을 오르는 광주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이렇듯 넉넉한 품을 가진 무등산을 늘상 쳐다보고 마음 내키는대로 찾을 수 있는 광주시민들이 한량없이 부러워 배가 아플 지경이다. 샘통난다. 그들은 뉘엿뉘엿 해질 무렵 서석대에 올라 수정병풍 뒤로 노을진 하늘과 빛고을 광주의 야경에 젖을 것이다. 광주 사람들이 한결같이 무등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는 연유를 조금을 알 듯하다. 결국 광주 사람들과 무등산은 한통속인 셈이다.
갈길 먼 나그네는 그 부러움을 뒤로 하고 백운암 자리 옹종한 샘터에서 목 한번 축이고 바람처럼 달린다. 봉화대와 천재단 둘러보고 내려서면 증심사. 대웅전 처마에서 만났던 아득한 인연 하나 꺼내 들고 탈방탈방 주차장을 향한다. 무등을 찾은 오늘 난 얼마나 싱싱해져 있을까? 차별없는 세상, 무등(無等)과의 만남은 한동안 생활의 활력이 되어 싱싱한 즐거움으로 남을 것이다.
나머지 그림들...
 ▲(좌)중머리재 표석 (우) 중봉에서 올려단 본 천왕봉- 사람과 산이 만든 그림도 자연의 일부
 ▲봉황대-콸콸 쏟아지는 샘터 옆으로 편안한 쉼터가 마련된 곳이다. 옛 절터자리라고 한다.
 ▲봉황대 천제단은 천제봉 또는 천제등이라 불리웠고 하늘에 국태민안의 기원과 기우제를 올리던 신성시한 최고의 제단 이다.
 ▲수령 450년된 느티나무-당산나무 뒤편으로 봉황대 오르는 길이 있다.
 ▲증심사-통일신라시대 사찰인 증심사는 광주를 대표하는 불교 도량이다. 무등산의 등산기점은 대부분 증심사를 기점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사람 사는 곳 가까이로는 산수유가 만개해 있고
 ▲봄을 알리는 봄까치 꽃도 지천으로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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