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 충북 충주시 상모면, 경북 문경시 문경읍 ==
*포암산-만수봉 지도보기(월악산포함)

▼포암산 정상표석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주능선상에 있으며 월악산국립공원의 가장 남쪽에 속한다.
포암산은 하늘재를 지키고 선 산이다. 만수계곡에서 들어가면 쌍봉의 육산처럼 보이지만 문경시 쪽에서 보면 암봉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이 산을 베바우산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반듯한 암벽이 키대로 늘어서 있어 거대한 베 조각을 이어 붙여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희고 우뚝 솟은 바위가 삼대 즉, 지릅같이 보여서 마골산(痲骨山)으로 불렸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으며, 하늘재의 옛지명인 계립령에서 이름을 빌려 계립산(鷄立山)으로도 불리었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고 하늘재(525m)를 경계로 월항삼봉과 연결된다. 산세가 험하여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 산 밑 고개인 하늘재는 신라시대부터 사용한 옛고개로 북방의 문화를 영남지방에 전해주던 관문이었고 지금도 성벽이 남아 있다.
하늘재 밑의 미륵사지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약 4천 평의 대사찰로 주흘산을 진산으로 하며 좌우로는 신선봉과 이 산을 끼고 멀리 월악산을 조산으로 하는 중심혈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보물 제95호인 5층석탑과 보물 제96호인 미륵석불이 있다. 미륵석불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북향석불'이다. 이 석불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을 담고 있어 마의태자 자화상으로도 불린다.
인근의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신선봉등과 함께 조령5악으로 손꼽히는 포암산은 바위와 노송 등이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경치가 곳곳에 널려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마폐봉에서 부봉을 거쳐 돌아드는 주흘산과 월악산 등의 산군이 일품으로 사계절 내내 산행할 수 있는 곳이다.




1.만수교-용암봉-만수봉-포암산-하늘재-만수교(12.8km, 5시간 20분)
2.하늘재-포암산-대미산-작은차갓재(18km, 백두대간)


*승용차(만수교)
포항→ 대구→ 김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 나들목으로 나와 수안보 방향 →3번 국도에서 '월악산·수안보 온천' 표지판을 보고 597번 지방도 방향→ 월악산 쪽으로 우회전 → 월악산국립공원으로 들어와 지릅재를 넘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송계계곡'으로 좌회전 → '만수계곡'이란 비석이 서 있는 만수휴게소



1.만수교-용암봉-만수봉-포암산-하늘재-만수교
 

[하늘재(525m]-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의 경계

월악산 미륵사지 3층석탑을 조금 지난 왼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하나 나 있다. 멀리 황장목(적송)과 떡갈나무, 해송 등의 운치있는 풍경을 마주하며, 청량한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길이 열리는 이 길은 일명 '하늘재'. 길 왼편 아래로 나 있는 도랑은 가뭄탓에 때때로 말라버린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기암절벽 산봉우리와 길가의 진분홍 물봉선, 짙은 자주빛의 수리취, 노란짚신나물 등의 들꽃들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미륵리사지를 지나 하늘재 오르는 옛길 초입에 있는 표석

얼핏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하늘재(해발 525m)는 이름처럼 높지는 않다.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잇고 있는 도 경계로서 미륵리에서 30∼40분(2㎞) 정도 걸어 오르면 곧바로 문경 관음리로 연결된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은 하늘재 고갯마루에 이르러 쭉 뻗은 아스팔트 길로 이어지는데 서쪽으로 문경 대미산(해발 1,115m) 정상이 아스라히 시야에 들어온다.

겨릅산, 계립령, 대원령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 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 신라 제8대 아달라(阿達羅)왕이 재위 3년(156년)에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 죽령보다 수년 먼저 개통된 하늘재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신라는 일찍이 하늘재를 교두보로 한강으로 진출하였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처럼 중요한 전략거점이다 보니 하늘재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했으며 고려시대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몽진할 때도 이 길을 이용했다. 신라 망국의 한을 품고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금강산으로 향할 때 피눈물을 머금고 이 고개를 넘었다 한다. 하지만 하늘재는 조선태종 14년(1414년)에 지금의 문경새재인 조령로가 개통되면서 군사적 요충지와 사통팔달의 아성을 한꺼번에 조령에게 넘겨 주게 되었다.
하늘재-초입에 포암산 등산안내도가 있다.▶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측은 하늘재의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고갯길 1.5㎞ 구간을 '역사·생태관찰로' 로 조성한다. 현재 하늘재로 알려진 이 길은 지난 1970년대에 농로로 새로 개설한 것으로 도랑 너머 오솔길이 진짜 하늘재라는 것. 월악산 자연생태를 직접 보며 역사를 설명해주고 문화재 화판 등을 설치해 주변 문화유적과 함께 설명할 방침이기도 하다. 충청북도가 선정한 '충청북도 자연환경명소 100선' 중 10걸로도 선정된 하늘재는 그렇게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한편, 하늘재 아래의 미륵사지는 신라 말∼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옛절터로, 당간지주와 회랑 등의 흔적만으로도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로는 유일하게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지릅재와 하늘재 사이의 분지인 미륵리에 터를 잡고 있다. 미륵사지의 목조건물은 전란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는 5층 석탑(보물 제 95호), 석불입상(보물 제96호)을 비롯해 석등(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 3층석탑(지방문화재 제33호) 등이 남아있다. 미륵사지는 지난 1977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작업을 통해 일연스님이 거처했던 '미륵대원'으로 밝혀졌다.

※ 참고로 하늘재는 일반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미륵사지~관음리를 답사할 계획이면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되 사전에 정확한 버스시간을 확인하도록 한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중원 미륵리사지(彌勒里寺址)]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중원 미륵사지는 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사지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변에 사각석등, 석구, 당간지주, 5층석탑, 3층석탑, 미륵리석불입상 등이 산재되어 있는 곳으로 미륵리 사지가 어느 정도 컸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고기록에 전하는 계립령과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납북향으로 펼치는 사지임. 여기에 일찌기 석굴사원이 경영되었으나 오래전에 소실되어 현재는 석조물만이 남아있다.
청주대학에서 1977~1978년 제2차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많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1980년에 이화여대에서 3차 발굴을 실시한바 있다.
관련 유물과 기록을 종합해 볼때 위 사찰은 고려초기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후기인 고종때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된듯하며 사명은 미륵대원이었다. 발굴시에 명창3년, 미륵당등의 명문와가 수습되기도 하였다.

거대한 무사석들을 쌓아올려 높이 6m의 형 석실을 구축하였고 그 중앙에 보물96호인 석불입상을 봉안하였다. 석실 앞에는 지방문화재 19호인 석등과 보물 95호인 5층석탑이 이고 국내에 2기뿐인 연혁문동간지주가 유존한다. 그 외에 지방문화재 33호인 3층석탑이 사역 동쪽에 위치하여 大形石造龜趺, 불두, 용두,사자상등이 유존하고 있다

◀미륵리 석불입상

중원 미륵사지는 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사지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변에 사각석등, 석구, 당간지주, 5층석탑, 3층석탑, 미륵리석불입상 등이 산재되어 있는 곳으로 미륵리 사지가 어느 정도 컸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다른 절과 달리 특이하게 북쪽을 향해 절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고구려 땅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추정된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석굴사원을 조성하고 불상을 세워, 동생인 덕주공주가 송계계곡으로 남향한 암벽에 새긴 마애불(덕주사 마애불)과 마주보게 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출처: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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