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 충북 제천시 한수면, 덕산면 -
☞지도보기  *월악산국립공원1(만수봉,포암산) *월악산국립공원2(만수봉,포암산)  


▼덕주공주가 망국의 설움을 달랬다는 월악산 덕주골에 있는 마애불(보물 제406호)

충북 제천시 한수면과 덕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월악산은 충북의 알프스라는 별칭을 들을 만큼 산세가 빼어나게 아름답다. 백두대간 상에서 살짝 벗어나 장엄한 암봉을 머리에 이고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며 조령산에서 하늘재를 거쳐 포암산, 대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만나고 있으며, 동서로 뻗은 산세는 험준하고 심산유곡과 폭포, 소를 이루어 한껏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비결잡록>에 '충주월악산하송계 불입병화보신산수(忠州月岳山下送溪 不入兵火保身山水)'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병화를 피해 숨어 살만한 곳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충주 호반과 어우러진 월악산은 1984.12.31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월악산은 마치 알프스의 마터호른을 보는 듯한 주봉인 국사봉(일명 영봉)을 비롯해 중봉, 하봉이 모두 암골미(岩骨美)가 빼어난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하설봉과 용두산, 문수봉 등 웅자 수려한 영산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즐비한데다가 정상에 오르면 만고풍상을 견디며 자라온 잡목림이 풍화작용에 부서진 바위 봉우리들과 어울려 빽빽이 들어 차 있고, 눈 아래에 동서남북으로 훤히 트인 하늘이 쾌적하게 펼쳐진다. 영봉은 해발 1,097m로 험준하며 가파르기로 이름 나있고 암벽 높이가 150m, 둘레가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945봉 능선길에서 바로 앞에 영봉이 보이지만 바위 봉우리를 한참  뒤로 돌아서 철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공원 구역내에는 단양8경중 옥순봉, 구담봉, 하선암, 상선암, 사인암 등 6경이 속해 있으며, 산자락 곳곳에는 신라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 김일과 덕주공주의 이야기가 얽힌 미륵사지의 석불입상과 덕주사 마애불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등산의 묘미를 배가시켜 준다. 일찌기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애환이 서린 덕주산성은 전략상의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함으로써 여러 역사적 사실과 전설, 그리고 곳곳의 문화유산을 자랑하고 있다. 주위엔 충주가 자랑하는 수안보온천과 신라에 귀화한 가야국의 우륵이 가야금을 즐겨 탔다는 탄금대가 있다. 




1.☞덕주사-마애불-영봉-송계3거리-동창교
2.☞신륵사-영봉-마애불-덕주사



*포항 → 대구(중앙고속도로) → 단양IC → 5번국도(단양방면) → 36번국도(충주방면) → 장회 → 수산 → 덕산 → 송계리
*네비게이션: 신륵사(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덕주사(제천시 한수면)



1.☞신륵사-영봉-마애불-덕주사

[월악영봉은 안개에 젖고]

*일시: 2011.6.9(한마음)
*산행코스: 신륵사-영봉-마애불-덕주사
*산행상세
월악교-(2.3km/20분)-신륵사-(1.0km/15분)-수렴선대 갈림길-(0.8km/25분)-지능선-(1.0km/50분)-신륵사 삼거리-(0.5km/15분)-보덕암 삼거리-(0.3km/10분)-월악산 영봉-(0.8km/23분)-신륵사 삼거리-(0.7km/20분)-송계삼거리-(0.7km/12분)-마애봉(만수릿지 갈림길)-(1.1km/40분)-마애불-(1.6km/27분)-덕주사-(1.0km/20분)-덕주골주차장
=== 이정표거리: 11.8km, 총소요: 6시간 20분, 순보행: 4시간 37분 ===

☞사진으로 보는 산행기

  영봉 아래에 서자 길은 안개에 묻혀 버린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 걸음.
월악산에 오르면 응당 중봉, 하봉 건너로 볼 수 있는 충주호의 물빛, 겹겹으로 에워싼 산들의 중첩,
먼 데로 뻗어나간 아스라한 산줄기를 만날지 알았다.
먼 풍광은 보이지 않아 아득하니 월악에서 기대했던 아름다운 그림들은 안개 속에 묻어두고 길에만 충실한다.
길에서 만난 야생화와 더 친해질 수 있었던 안개 속 산행
가까이 눈길 줄 수 있는 산행
안개 젖은 풀꽃들의 여린 몸짓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월악산은 22년 만에 다시 찾는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 흘렀다. 아득한 기억속 월악산은 무척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시 만나는 월악의 모습에 사뭇 기대되는 마음으로 산악회원들 틈 사이에 한자리 꿰찬다. 오랜만에 보는 살가운 얼굴이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산친구의 모습을 보니 지난날 걸었던 길들이 새록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 꽤 깊은 산정이다.

  산행은 신륵사에서 영봉을 거쳐 덕주사로 내려오는 순서다. 덕산면에 있는 월악교를 지나 신륵사와 용하계곡 갈림길에 이르자 신륵사 방면으로는 공사중이므로 대형차량의 진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월악교에서 신륵사까지는 2.3km, 예정에 없던 발품의 시작으로 월악산과 대면한다. 월악교에서 100m 지점의 갈림길에서 우측 신륵사 이정표를 따라 든다. 잠시 후 한국전통문화체험학교를 지난다. 예전 월악초등학교가 있었던 자리다.
이어서 텅빈 월악산국립공원 금수산분소를 지나 20분 가량 시멘트 길을 따라 들자 널찍한 신륵사 주차장이 나타난다. 주차장 초입에는 월악산 노래비가 서 있다.(2010년 11월 10일 제막) 평일이라서 인지 그 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있다. 도중에 공사 흔적도 없었으니 버스로 와도 될 뻔했던 길이다. 저 앞으로 당연히 월악영봉이 보여야 하건만 산머리는 안개만 자욱하다.

◀담장너머 훔쳐 본 신륵사
  주차장에서 등산안내도가 그려진 길을 따라 3분 정도 차길을 더 따라가면 신륵사가 나타난다. 입구에는 참배객외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엄중한 문구가 붙어 있다. 게다가 사진촬영까지 금지하고 있으니 스님들이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다. 신륵사 경내에는 3층 석탑과 함께 극락전(도유형문화재 132호), 괘불대, 산신각, 국사당등의 건물이 모진 풍상을 이겨내고 서 있지만 가까이 대면하지는 못하고 그저 담장 너머로 기웃거리는게 전부였다.
신륵사에서 수렴선대 갈림길까지 약 1km 거리는 계속되는 신작로 수준의 길을 따라 15분쯤 진행한다. 이정표(신륵사 1.0km, 신륵사 삼거리 1.8km, 영봉 2.6km)가 있는 수렴선대 3거리에서 출입금지 안내판과 나무울타리가 쳐진 직진방면의 넓은 길은 옛날 신륵사의 스님들이 참선했다는 수렴선대 방면이고, 영봉은 오른쪽 산비탈 방면이다.

 삼거리에서 지능선까지는 긴 오르막의 연속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은 오를수록 안개만 짙어진다. 오름길 도중 길 오른편으로 작은 당집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서니 "국사당" 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월악영봉의 다른 이름인 국사봉에서 연유한 이름인 듯하다. 수렴선대 갈림길에서 간간이 통나무가 설치된 길을 따라 25분 가량 땀을 솟아내자 숨통이 트이는 지능선 마루에 올라선다. 올라선 지능선에서는 왼쪽으로 몸을 튼다.
온통 안개에 싸인 숲길. 안개가 깊으니 숲도 덩달아 깊어져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천히 쉬어가며 50분 남짓 완만한 능선을 올라서자 영봉 턱밑인 신륵사 삼거리다.(이정표: 영봉 0.8km, 신륵사 2.8km, 덕주사 4.1km)
바로 머리 위가 영봉이지만 한 치 앞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안개 숲은 영봉의 위엄을 제 속에 묻어두고 있다.
왼편 덕주사방면은 하산할 길이고 보니 영봉에 올랐다가 이곳 3거리까지 다시 와야 한다. 올라가봐야 안개뿐이란 걸 알면서도 걸음은 이미 바위를 오른쪽으로 에돌아 가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

월악산 영봉 오르는 가파른 길섶에는 큰앵초가 다투어 피고 있다.▶

 정상까지 0.8km 거리지만 거대한 바위를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가는 길이므로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신륵사 삼거리에서 한 차례 떨어졌다 다시 올라서면 보덕암 삼거리다.(이정표: 영봉 0.3km, 보덕암 3.7km, 신륵사삼거리 0.5km) 보덕암 길은 월악산 등산로 중 단연 으뜸으로 치는 중봉, 하봉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보덕암 삼거리에서 영봉까지는 가파른 계단길의 연속이라 제법 힘이 든다. 예전 수직사다리와 로프에 매달여 올랐던 기억이 아슴아슴 떠오른다. 당시 아내와 둘이 한 산행으로 힘들어 하는 아내로 인해 한발 오르고 한참 쉬기를 거듭했던 기억이다. 비록 길은 거칠지만 오를수록 먼 풍광에 감탄사를 연발해야 하는 길이지만 오늘은 그 길에 안개만 자욱하다.
풍광의 아름다움은 안개가 삼켰으니 길에선 풀꽃만 보인다. 안개에 함초롬히 젖어있는 풀꽃이 지천이니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가. 큰앵초, 수수꽃다리, 정향, 눈개승마.... 수십 종의 여름풀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또 지고 있으니 그 길에서 눈길 주느라 한동안 멈춰 선다. 영봉 오르는 가파른 길에선 꽃들로 거친 숨을 다스린다.

 
▼산안개에 갖혀 버린 영봉
  보덕암 삼거리에서 15분 가량 계단과 어우러진 길을 올라서면 신령스러운 곳 월악산 영봉이다. 가까이의 중봉, 하봉, 너머로 충주호가 보이고, 주변의 만수산, 포암산이며 주흘산들이 보여야 하건만 영봉엔 허망한 안개만 자욱하다. 벼랑 끝을 휘감아 도는  안개바람에 아쉬움만 커진다.
영봉에서 신륵사 삼거리까지는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덕주사 4.1km 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순한 능선길을 걷는다. 안개에 젖은 숲은 후둑후둑 물방울을 흘린다. 그 길에서 노린재, 수수꽃다리, 민백미를 만나니 걸음은 더디다.
동창교로 내려가는 송계삼거리에 현위치 안내판과 이정표가 유령처럼 서 있다.(이정표: 영봉 1.5km, 덕주사 3.4km, 동창교 1.8km) 곧이어 널찍한 헬기장이다. 맑은 날이면 영봉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곳이기도 하다.

  굵은 참나무가 촘촘히 도열한 포근한 숲길이 계속된다. 숲은 단조로운 구도와 색감으로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른다. 헬기장에서 느릿느릿 10분이면 삼각점(덕산24)이 있는 960.4봉이다. 어떤 지도에는 마애봉이라 표기해 두기도 하였다. 이곳은 만수봉으로 연결되는 갈림목이기도 하다. 만수봉까지 이어지는 바윗길이 있어 만수릿지로 불리는 길이지만 그 초입으로는 "탐방로아님" 이란 금줄이 쳐져 있는 비지정 탐방로다.(이정표: 영봉 2.2km, 마애불 1.2km, 덕주사 2.7km)
만수봉 갈림길에서는 오른쪽 산허리를 타고 마애불쪽으로 내려선다.
이 구간은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져 월악산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고 있는 구간이지만 안개는 여전히 풍광에 인색하다. 간혹 코 앞으로 살풋 안개가 걷히는 순간순간 나타나는 신선경엔 어김없이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안개속에서 간헐적으로 드러나는 산릉과 암릉은 월악산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고 있다. 30분 가량 계단과 바위가 섞인 길을 내려오면 계단 옆으로 있는 바위굴 하나가 이색적이다. 바위굴에서 마애불까지는 다시 15분 정도가 더 소요된다.

마애불 옆에 자리한 대웅보전▶
  마애불역사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마애불까지는 산비탈을 100여m 되짚어 올라야 한다.(이정표: 영봉 3.3km, 마애불 0.1km, 덕주사 1.6km) 계곡 중턱에 높다란 2단 석축 위 암벽면에 돋을새김을 한 마애불은 고려시대 불상형식으로 보물 제 4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예전에는 석축 아래에 암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고 마애불 옆쪽으로 비스듬한 높이의 근사한 법당이 서 있다.
마애불은 특히 덕주공주와 마의태자의 전설이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쓰러져가는 신라천년의 마지막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내주자, 아들 마의태자는 미륵리에 미륵불을, 그의 누이 덕주공주는 월악산 암봉 아래 절을 짓고 마애불을 조영했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백성에게 속죄의 뜻으로 엄동설한에도 삼베옷 한 벌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덕주산성 동문(덕주루)
-신라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가 피안하였던 곳이라고 전해오며 1256년(고종43년)에는 몽고병이 충주를 공략하고 이곳으로 진격하자 관리들과 노약자들이 이 산성으로 피신하였는데 갑자기 구름, 바람, 비, 우박이 쏟아지므로 적병이 신이 돕는 땅이라 하여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애불을 둘러보고 다시 등산로를 따라 10여분 이면 산성터를 지나고 다시 15분 거리에 덕주사를 만날 수 있다. 덕주공주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덕주사는 높직한 계단을 올라야 대웅전을 마주할 수 있다. 절 앞쪽으로는 남근석이 세워져 있는데 월악산의 음기를 누르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덕주사 이후로 널찍한 차의 길이다. 그 길에서 덕주공주가 피난을 왔었다는 덕주산성 동문, 층층기암과 노송들이 위용을 자랑하는 곳에 학들이 날아와 노닐고 갔다는 학소대, 수정처럼 맑은 물이 거울같다는 수경대를 차례로 지나면 탐방지원센터에 이른다. 여기서 덕주사주차장까지는 5분 가량 발품을 더 팔아야 한다.

덕주사-마애불-영봉-송계3거리-동창교

*일시:1989.5.3(영태)
*숙식:덕주사入口 송계리민박(5000원)
*산행코스
덕주사입구(08:00) -덕주사(08:20~08:25) -마애불(09:30) -960봉(11:05~11:10) -정상직전 안부(11:30~11:40) -정상(12:30~13:20) -안부(13:55~14:05) -중식 -동창교(16:00)
=== 총소요: 8시간 ===

◀뒤로 보이는 것이 월악산 영봉
국립공원인 관계로 등산로가 잘 나 있고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덕주휴게소 뒤편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로 차길을 따라 수경대, 학소대, 동문을 차례로 지나 덕주사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현 덕주사 자리는 원래 하덕주사가 있던 곳으로 절 앞에 놓인 남근석이 명물이다. 덕주사에서 맞은편으로 있는 계곡을 건너 30여분 오르면 마애불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다. 오른쪽 100여m 거리에 있는 마애불을 둘러본 후 다시 삼거리까지 되내려 온다. 이후 간간이 계단이 설치된 가파른 길을 따라 45분 가량 올라서면 주능선의 960봉이다. 비록 길은 거칠지만 다양함 암릉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는 길이다. 특히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암릉길이 볼만하다.

960봉 이후로는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헬기장과 동창교로 내려서는 삼거리를 지나면 월악산 남벽 아래다. 바로 앞으로 거대한 암벽으로 된 월악영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정상이 바로 위로 보이지만 길은 암봉을 바짝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내려 가다가 중봉,하봉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난 급경사(사다리설치)길로 올라야 한다. 정상 아래 영봉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덕주휴게소에서 정상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가 걸린다.
하산은 헬기장 직전에 있는 삼거리까지 되내려가서 오른쪽 동창교쪽으로 내려서면 된다. 10분쯤 지나면 길은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고 월광폭포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폭이 좁아지는 돌계단 길이다. 이후 동창교 1km 전부터 길은 걷기 편해진다. 동창교매표소가 있는 송계리코스는 월악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로 가장 짧은 코스지만 제법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하산은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덕주사
▼덕주사 남근석-월악산은 워낙 음기가 강해서 비보를 하기위해 남근석을 세웠다고 한다.
덕주산성(德周山城)동문(東門)에서 가까운 덕주사는 옛날의 절이 아니고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본래의 덕주사는 현재 대웅전이 있는 곳에서 덕주골을 따라 30분쯤 산을 올라간 마애불상이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다. 이 덕주사는 591년(신라진평왕 13년)에 창건한 고찰로서 6.25전까지도 고색창연한 건물이었으나 전쟁때 전소 되었다고 하는데, 신라가 망하자 마의태자(麻衣太子)의 누이인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 절에 들어와 머물며 자신의 형상을 마애불로 조성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절 이름을 덕주사, 계곡이름을 덕주골이라 했다는 것이다.
덕주사 법당터는 석축만이 남아 전하는데 부근에는 부도4기와 우공탑(牛公塔) 1기가 세워져 있다. 우공탑은 옛날, 이곳 승려들이 법당을 지을 때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재목을 실어 날랐는데, 그 소는 재목을 모두 실어다 놓고는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가 죽은 자리에 우공탑을 세우고 화장한 소의 뼈를 보관했다 한다.

◈덕주사 마애불(보물 406호)
신라 진평왕 13년(591년) 덕주부인이 세웠다고 전해지며 원래의 위치는 보물 406호인 마애불이 있는 자리라고 한다. 이 마애불은 덕주공주가 마의태자를 눈물로 기다리며 불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천년의 한의 삼킨 마의태자가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미륵사지의 미륵불과 마주보며 서 있어 오누이 한을 불심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덕주산성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덕주산성은 고려 고종때 쌓은 성으로 둘레가 32,670척에 이른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충청북도지>에는 덕주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한 석성으로 고구려의 독산성일 가능성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일대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었고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삼국시대때 쌓은 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고려때 몽고의 침입과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등을 치르면서 여러차례 파괴되고 다시 보수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송계8경중 제 6경인 망폭대 건너편의 산 기슭에 남은 남문(南門)부근과 송계리 새터말의 민가 가운데 있는 북문(北門), 덕주골의 동문 부근등에 성곽의 일부만이 남아 있을뿐이다. 덕주산서의 남문과 북문, 동문은 누각이 없어진 채 홍예문만이 남아 전한다.


◈미륵사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달천계곡의 상류에 있는 절터로 신라의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조성 했다고 전해지나 고증할 수는 없고 다만 유물 등으로 미뤄 신라말이나 고려초의 사찰로 추정된다. 보물 제95호인  5층 석탑과 보물 제96호인 미륵불 입상이 유명하다. 그 밖에 석등, 돌거북등의 문화재와 절터의 흔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색적인 것은 개울 건너편 바위 위에 공기돌 하나가 놓여 있는데, 이는 이곳이 삼국시대의 접전지로서 고구려 땅인 이곳을 신라가 계속해서 집적거리자 온달장군이 맹세를 하고 이곳에 신라를 물리치고져 진을 치고 있었으나 신라의 힘에 목숨까지 앗아가고 말았다. 그러던 온달장군이 망중한(忙中閑)을 보내기 위해 갖고 놀던 공기돌이라 한다. 그런데 이 공기돌이 지름 70~80㎝로 바위에 가깝다.
 

◈송계8경

*第1景 월악영봉
고봉준령, 기암괴석의 묘가 극치에 달한 월악산은 영봉, 중봉, 하봉 등 삼봉의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특히 주봉인 국사봉의 깍아 지른 듯한 바위 덩어리는 가히 일품이다.
바위능선을 타고 영봉에 오르면 충주호의 잔잔한 물결과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第2景 자연대
자연그대로가 아름다워 자연대라 불리 우는 곳으로 덕주 야영장 앞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대는 덕주야영장
1 ~ 덕주야영장2 까지 이어지는 계곡의 물이 흐르는 곳으로 어린이를 대동한 가족들의 물놀이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알려져 사람들이 항시 모여 드는 곳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그늘과 정리된 야영장, 그리고 도로변에 가까운 계곡과 수심이 깊지 않은 안정성. 이러한 조건들이 가족의 쉼터로 안성맞춤인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第3景 월광폭포(月光瀑布)

월광폭포는 월악산 계곡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3단폭포에 이르는데 검은 암벽에 두개의 흰 물줄기가 30여 m도 넘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마치 능수버들 가지가 소슬바람에 하늘거리는 듯한 장관을 펼친다.
옛 신라의 고찰 월광사지가 있고 월악산의 비아수 바위와 조화되어 일대 경관을 이룬다. 월광폭포는 국립공원 월악산 송계계곡의 자연휴식년제에 의하여 일정기간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에 포함되어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第4景 수경대(水鏡臺)
도로변의 덕주골 휴게소를 지나 덕주골로 들어서면 넓고 잘 정리된 길을 따라
300여 미터를 오르게 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으로 물이 거울처럼 맑다고 하여 수경대이다. 무심코 산을 오르다 보면 지나칠 수 있는 곳이지만 도로변의 안내판을 따라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한 발짝 내려서면 수경대의 전체를 감상할 수 있다. 신라시대 때부터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하늘에 제를 지내는 곳이라 전해오고 있는 반석 옆 부분에 수경대라 새겨져 있다.

*第5景 학소대

수경대를 지나 100여미터 정도를 오르면 눈앞을 가로막는 우측편의 덕주산성과 왼쪽편에 산성동문 으로 지어진 누각의 [덕주루] 직전에 위치해 있다. 학소대는 월악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곳에 모여 처음 소를 이루는 장소이다. 층층 기암과 노송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이곳을 찾아드는 학의 무리가 꽃 피듯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하여 학소대로 불리운다.

*第6景 망폭대

덕주야영장이 있는 자연대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2km를 더 오르면 조그만 교각[망폭교] 를 건너면서 우측에는 월악산성 남문이 있고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우뚝 솟아있는 바위벽이 망폭대이다. 제2의 금강산이라고도 칭하는 기암 줄바위와 고무서리 계곡을 굽이 도는 맑은 물, 그와 어울리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우기 바위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그 생김새가 마치 속리산의 정 2품송과 비슷하다 하여 정 3품송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의 최남단 경계지역인 송계계곡은 경상도 와 충청도의 접경지로 몽고군의 침입을 대비하여 덕주산성을 쌓았으며 계곡에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망폭대 암벽을 이용하여 덕주산성의 남쪽성문을 만들고 지형적인 요세를 이용하였던 것이다
.

*第7景 와룡대

덕주산성 남쪽성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500여 미터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 접어들면 [사자빈신사지석탑]문화재가 있는 곳으로 도로변에는 [골뫼시내버스정류장]이 있다. 와룡대는 이곳에서 200여미터를 더 올라 와룡교에 닿게 되는데 도로변 우측에는 [물래방아휴게소] 가 있고 좌측에는 자연적인 대형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와룡교 건너기전 도로변의 주차장옆 울타리의 보호난간을 따라 계곡쪽을 살펴보면
50여 미터의 길이에 수심이 3 ~4미터를 넘나드는 용소 와 커다랗고 웅장한 바위벽을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와 함께 와룡대가 나타난다.
원래의 이름은 용이 떨어진 곳이라 하여 용추라 불리었다 전해지며 만수봉 계곡에서 시작하여 흘러내린 물이 급한 물살을 이루어 와룡대에서 한숨을 죽이고 송계계곡으로 흘러내려 청풍호의 황강으로 이어져 남한강의 물줄기에 합류하게 된다. 물의 수심이 깊고 물살이 급하여 안전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위험한 장소이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여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第8景 팔랑소

송계도로변에 위치하며 신라시대 8공주가 목욕재계하고 국운을 빌었던 곳이라 하여 팔랑소라 하였다 하며 200여평의 넓은 반석이 넓게 깔려있고 바위주변에는 물줄기가 거세게 감돌아 흐르고 있다.
 

◈도담삼봉, 석문옥전
푸른 강물가운데 우뚝 선 기암괴석의 세 봉우리가 도담삼봉이며, 이곳이 단양 팔경 중에서 첫 손에 꼽히는 곳으로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높다. 가운데 봉우리는 점잖으며, 교태를 풍기는 남봉은 첩봉 혹은 딸 봉우리라 하고, 북봉은 처봉 혹은 아들 봉우리라고도 하며, 중봉 허리쯤에는 수각이 있어 절경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망루 역할을 한다. 도담삼봉에서 상류를 따라 약 5백미터 가면 강 왼편 언덕 위에 높이 수백미터나 되는 석주 위에 돌다리가 걸려 있어 무지개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석문이며, 석문 왼편에 작은 굴이 있고 그 굴 바닥에 작은 반석이 있어 그 곳이 선녀의 옥으로 만든 궁전이라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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