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군서면,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지도보기

▼월출산정상의 표시석

예로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일컬어 졌으며 신라 백제때는 월내산(月奈山), 고려때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조에 들어와서 월출산이라 불렀다. 전라남도의 남단이며 육지와 바다를 구분하는 것처럼 우뚝선 산 월출산은 서해에 인접해 있고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라고 하여 월출산이라 한다.
정상인 천황봉을 비롯, 구정봉, 향로봉, 장군봉, 매봉, 시루봉, 주지봉, 죽순봉 등 기기묘묘한 암봉으로  거대한 수석 전시장 같다. 정상에 오르면 동시에 3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암반이 있다. 지리산, 무등산, 조계산 등 남도의 산들이 대부분 완만한 흙산인데 비해 월출산은 숲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바위산에다 깎아지른 산세가 차라리 설악산과 비슷하다.
바람폭포 옆의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는 지상 120 미터 높이에 건설된 길이 52m, 폭 0.6m의 한국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로 월출산의 명물이다. 사자봉 왼쪽 산 중턱 계곡에서는 폭포수가 무려 일곱차례나 연거푸 떨어지는 칠치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월출산은 서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몰풍경이 장관이고,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꽃, 여름에는 시원한 폭포수와 천황봉에 항상 걸려있는 운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 또한 동백꽃과 기암괴석이 한창 절묘하게  어우러져 해빙기의 등산로로도 압권이다. 천황사에서 계곡에 이르는 1㎞ 남짓한 초입부부터 동백꽃으로 곱게 단장하고 있다.
하산길에서 만나게 되는 도갑사 부근에는 3월 중순 경부터 피기 시작한 동백꽃이 3월말이나 4월초까지 절정을 이룬다. 월출산의 운해는 평야의 들바람과 영산강 강바람이 맞부딪쳐 천황봉 정상에서 만들어내는 구름바다가 볼만하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영암아리랑 노랫말이 말해주듯 월출산은 산 봉우리와 달뜨는 광경의 어울림이 빼어난 산이다. 구름을 걸친 채 갑자기 우뚝 솟아 눈앞에 다가서는 천황봉의 신령스러운  모습, 그위로 떠오른 보름달의 자태는 달맞이 산행의 명산이기도하다.
월출산 일대인 영암, 강진, 해남은 "남도 문화유산답사의 1번지"로 꼽을 만큼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천황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단아한 모습의 무위사, 서쪽에는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됐다는 도갑사가, 구정봉 아래 암벽에 조각한 높이 8.5m의 마애여래좌상(국보 144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국보13호, 도갑사 해탈문은 국보 50호다. 또한 도갑사 서쪽 성기동에는 백제의 학자로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 아스카문화의 원조가 된 왕인 박사의 유적지가 국민관광단지로 조성돼 있다.

1.천황사매표소-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미왕재(억새밭)-도갑사(9km,6시간)
2.도갑사-억새밭-구정봉-경포대(6.8km,5시간)
3.
경포대-바람재-천황봉-바람폭포-구름다리-천황사(5.4km,4시간30분)

*영암-천황사: 군내버스(06:40, 09:10, 10:10, 15:20, 16:30) 1일5회 운행: 630원
*영암-도갑사: 군내버스(09:30, 14:10) 1일2회 운행: 850원
*영암-구림 : 20분 간격운행

1.천황사매표소-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미왕재-도갑사

도갑사(道岬寺):전남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도갑리(道岬里)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전기 1456년(세조 2) 수미(守眉)가 중건하였다.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도갑사의 해탈문(解脫門)은 현존하고 있는 한국의 건물 중 보기드문 옛 건축물이며, 이 밖에 대웅보전(大雄寶殿:지방유형문화재 42)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 89) ·도선국사비(지방유형문화재 38) ·명부전(冥府殿) ·팔각석등대석(八角石燈臺石) ·3층석탑 ·5층석탑 · 그리고 석제(石製) 구유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도선 및 수미대사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다.  

무위사(無爲寺):전남 강진군 성전면(城田面) 월출산(月出山) 남동쪽에 있는 고찰.
《사지(寺誌)》에 의하면 617년(신라 진평왕 39)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하였는데, 875년(신라 헌강왕 1) 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 개칭하였다. 946년(고려 정종 1)에는 선각(先覺) 형미(逈微)가 3창하여 모옥사(茅玉寺)라 하였다가, 1550년(명종 5) 태감(太甘)이 4창하고 무위사라 개칭하였다. 그러나 경내에 있는 보물 507호인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의 비명(碑銘)에 의하면 신라시대에도 이미 무위갑사(無爲岬寺)로 불렸으므로 《사지》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의 당우(堂宇)는 본절이 23동, 암자가 35개로서 모두 58동에 이르는 대사찰이었는데, 그 후 화재 등으로 축소되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남아 있는 당우는 극락전과 명부전 및 요사(寮舍)뿐이었는데, 1974년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 ·해탈문(解脫門) ·분향각(焚香閣) ·천불전(千佛殿) ·미륵전(彌勒殿) 등을 중건하면서 옛날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중 국보 제13호 극락전은 벽에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本尊佛) 뒤의 탱화(幀畵)만 남아 있고, 28점은 보존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어떤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천황사(天皇寺):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사자봉아래에 위치하고있다. 신라때의 절터에 1906년에 창건하였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2001. 3. 14 화재로 암자가 소실되어 현재 절터만 남아있다.  2002년부터 복원 예정

월출산마애여래좌상(月出山磨崖如來坐像):월출산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을 깊게 파서 불상이 들어 앉을 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높이 8.6m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모습을 한 높이 86㎝의 동자상을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있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아래까지 흘러 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주름과 양감있는 신체의 표현에서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당당한 신체에 비하여 팔은 가늘게 표현하고 있으며,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따로 조각하였으며, 그 안에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전반적으로 안정감과 장중한 인상을 주며,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기법과 더불어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반면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커진 얼굴과 너무 작게 표현된 팔 등에서 불균형한 비례와 경직된 표현이 엿보여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거대한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호남의 바위산

⊙일시:2002.2.4~2.5

⊙산행코스:천황사매표소-(0.4km,13분)-천황사-(0.9km,32분)-구름다리-(1.9km,1시간20분)-천왕봉-(1.6km,1시간)-구정봉-(1.6km,35분)-미왕재-(2.6km,1시간)-도갑사 ===9km, 순보행:4시간40분, 총소요:6시간 ===

월출소고
바로 어제 충북 제천에 있는 동산(東山)을 다녀왔건만 월출산의 유혹을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고 영암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꼭 10년 만에 다시 찾게 되는 월출산이다.
당시 둘째 녀석을 뱃속에 넣은 아내와 단 둘이 참 오붓하게도 남도땅을 돌아보며 월출산, 두륜산을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온갖 야생화가 피어 오르던 늦은 봄날 비와 안개속을 헤치며 올랐던 월출산이 아니던가?
짙은 안개 속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던 그 월출의, 마치 거대한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하던 기기묘묘하게 생긴 암봉은 과히 신선경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고 나에게는 경외감으로 다가온 그 암릉과 미왕재의 푸른 초지에서 이리저리 야생화를 찾아 헤메던 그 날의 기억들이 아스라한 기억속에 낡은 필름처럼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월출산 구름다리(왼쪽 끝이 천황봉)
공교롭게도 산행코스조차 천황사-천황봉-미왕재-도갑사에 이르는 길로 같은 코스를 밟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월출산을 한 두 번 찾는 이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코스로 월출산의 알곡들을 두루 살펴보기에는 가장 무난한 코스이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경포대, 무위사, 또는 숨은 코스를 찾게 될 터이니 당연지사 일지도 모를 일이다.

밤늦은 시간 남녘국토의 동서를 횡단하는 버스는 어둠을 뚫고 잘도 달린다.
전날의 산행, 그리고 출근, 또다시 이어지는 산행길이라 피곤한 몸은 어느 휴게소에 쉬었는지 조차의 기억도 없이 천황사에 이르기까지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 들었다.
포항을 출발하여 5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천황사 매표소.

천황사와 구름다리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1시간 정도 차내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며 출발을 기다린다.
06시 27분, 매표소를 출발하여 천황사를 향하는 도로를 따라 오름짓을 시작한다. 매표소 안은 아직도 한밤중인 관계로 공원입장료 1300원이 굳어지는 순간이다.-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매표소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고-
월출산은 국립공원인 관계로 곳곳에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으므로 굳이 세세하게 산길 따라가기를 부연설명 한다는 것은 낭비가 아닐까?(이정표상의 거리표시가 상이한 부분도 있음)
겨울날씨, 그것도 새벽기온 치고는 다소 푸근한 날씨다. 등줄기가 후줄근해질 무렵에야 자켓을 벗어 던지니 한결 상쾌해진다. 참 오랜만에 어둠과 함께하는 새벽길이다.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천황사 야영장을 지나치고 바람폭포 갈림길에서는 왼쪽 구름다리 이정표를 따라 오른다.
숲길을 빠져 나와 뿌연 하늘빛이 보이고 잔뜩 흐린 날씨에 흐릿한 반달을 볼 수 있을 즈음 천황사에 도착한다.

예전에 그 옹색하리만치 초라하던 암자는 모습을 감추고 오른쪽 귀퉁이에 임시포장을 쳐 불상을 모시고 있고, 천막 안을 밝히는 희미한 불빛에서도 금빛 불상만은 광채를 발하고 있다.
커다란 프랭카드에 "복원불사"라는 글귀가 띤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천황사 법당은 화재로 소실되었고(2001.3.14), 현재는 천황사터를 발굴조사 중이라고 한다.-
천화사터 발굴이 끝나면 이 자리에는 아주 그럴 듯한 불사가 중건되리라... 그러면 또 옛 것이 그리워 지겠지?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이 자리에 천황사가 복원되기까지는 당분간 "천황사터"로 불려져야 할 것같다.
그래도 남아 있는 샘터의 물 맛은 여전히 달고 시원하다.

10여분간을 지체한 후 대숲을 빠져나와 돌길과 계단이 뒤섞인 가파른 오름길을 오른다. 구름다리 0.3km를 알리는 이정표에 다다르니 서서히 날이 밟아오기 시작하고 오른쪽 건너편으로 장군봉이 검은 윤곽을 드러낸다.
새벽녘 검은 실루엣을 걸치고 다가서는 장군봉 능선의 멋진 암봉에 벌써 감탄사가 섞여 나오기 시작한다.-이제 겨우 월출은 시작을 알리고 있을 뿐인데... 오른쪽으로 거대한 화강암 슬랩을 형성하는 암봉 위가 시루봉이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계단을 올라 암봉 위에 서면 먼저 팔각정이 반긴다.

그 너머로 천길 낭떠러지를 가로지른 구름다리....  월출산이 신의 조화로 빚어낸 조각품이라면 이 구름다리는 신의 작품에 조화를 이룬, 인간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월출산 명물이 되고 만다.
저 아래 바람골을 따라 올라서는 골짜기로 한 줄기 운무가 스쳐 지나가고 나는 그냥 그 운무를 떠다니는 신선이 된다.
건너편 장군봉에서 광암터로 이어지는 능선 위에 도열한 바위군상들과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는 여전히 회색빛 색조를 띠고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왼편으로 거대한 암봉, 천황봉이 묵직하게 다가선다.

10년전 아내와 함께 이 구름다리를 건널 때는 짙은 운무로 인해 전혀 고도감을 느끼지 못했건만, 오늘 잔잔한 일렁임에도 오금이 저려온다. 아래를 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다.
갑자기 이 다리를 건너며 "착하게 살아야지! 죄 짖고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 탓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위기감을 느낀 절박한 순간이, 아니 山이 이 미물의 찌든 마음을 정화(淨化)시키고 있는 걸까?

구름다리를 지나면서부터는 급경사 암릉길을 20분 정도 사다리계단을 타고 올라서야 한다. 경사도가 얼마나 심한지 사다리 난간을 잡은 손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로 움켜쥐고 올라선다. 사다리계단이 아니라면 감히 이 바위길을 오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리라. 만약 철계단에 얼음이라도 얼었다면 상당히 위협적인 요소가 다분한 길이다.
앞으로 보고, 옆으로 보고, 뒤를 내려다 봐도 보이는건 갖가지 모양의 암봉들 뿐이다.

하늘로 통하는 문 통천문(通天門)지나 천황봉
그렇게 가파른 철계단을 다 올라서게 되면 이정표가 있다.(경포대 3.6km, 천황봉 1.5km, 구름다리 0.4km)
여기서 오른쪽으로 하늘을 향해 고추 서 있는 암봉이 건너다 뵈는데 사자봉이다. 사자봉은 표호하는 사자의 위협적인 기세로 하얗게 빛나고 인간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다. 길은 사자봉을 왼쪽으로 돌아 크게 떨어진 후 다시 올라야 한다.
역시 산은 정직하다.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야 한다.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은 오름길이 보통이 아니다. 몇 발자국 오르고 쉬기를 반복해야 한다.

다시금 주능선에 올라 전후좌우를 살피는 경관은 가히 환상적이다. 광암터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그렇고, 왼편 경포대계곡을 형성시키는 암릉 또한 장관이다. 뒤돌아 본 사자봉과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위태로운 능선이 급격한 낙차를 이룬 끝부분에는 시루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가 애처로울 정도로 가냘프게 걸려있다.
어깨를 대고 이어진 암릉에는 여지없이 바위기둥들이 서 있고 그 기둥 위에 위태로울 만큼 얹혀져 있는 공기돌 같은 바위들이 부처의 모양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또 그 바위 상단 또는 틈새로는 어김없이 소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마치 거대한 수석과 분재 전시장을 보는 듯하다.

길이 잠시 완만하게 내려서는가 싶더니 왼쪽으로 경포대에서 올라오는 갈림길과 만난다.(경포대 2.5km) 천황봉까지는 4km의 거리, 얼마간을 더 나서니 다시 오른쪽으로 갈림길 하나와 합류한다. 이제 천황봉까지는 불과 200m 남은 거리다. 오른쪽 길은 천황사터에서 바람폭포를 경유하여 올라오는 길로 가지런한 나무계단 길이다.
천황봉 오르는 관문, 아니 하늘에 오르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에 이르러서는 심호흡 한 번 크게 쉬고 하늘로 오를 채비를 해 본다. 인간이 하늘에 오르면 신선이 아니런가???
통천문 앞에 서서 안내판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는 사이 지나던 일행들이 통천문 보다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그래도 꿋꿋하게 끝까지 중얼거리며 읽어 내려간다...^^

드디어 가파르게 암봉을 올라서니 달뜨는 산 월출산의 천황봉(808.7m)이다.
그래도 일면식이 있는 큼지막한 표석이 나를 반기고 한 차례 운무가 서쪽 골짜기에서 빠른 속도로 올라선다.
전에도 그랬었다. 그 날은 정말이지 천황봉을 오르면서 계속 촉촉한 가랑비를 맞았었다. 비가 그친 천황봉에서 내려다본 안개바다는 장관을 이루었고 유명 사진작가들의 작품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장엄한 운무의 파노라마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 날의 감흥이 오늘 나를 또 이 자리에 서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천황봉과 구정봉이 빚어내는 골짜기가 바로 안개골이다. 정말 현실적인 이름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그 드넓고 기름지다는 나주평야와 지척에 내려다 보일 듯한 영암땅을 제대로 조망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가슴 한 곳에 자리하는 것을 보니 내 욕심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월출산은 그렇게 인색하지가 않다. 고개를 돌리게 되면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구정봉, 향로봉 암봉이 아침햇살을 반쯤 걸치고 빼어나 암봉미를 자랑하고 있다. 천황봉 정상에는 신라시대 이후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소사지(小祀址) 였음을 알리는 표석과 안내비문이 적힌 표석이 있다.

몇 차례 짙은 운무가 몸을 촉촉히 적시고 난 연후에야 구정봉을 향해 내려서기를 시작한다. 구정봉을 향하며 앞으로, 뒤로 펼쳐지는 빼어난 암릉미에 연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과연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조물주는 특별히 조각에 정통한 신을 지명하여 이 월출산의 빼어난 암봉들을 조각하도록 했으리다.
누군가가 애써 조각한 듯한 각양각생의 바위들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도 같고...

월출산의 한 가운데, 주봉으로도 손색이 없는 구정봉
조릿대 가득한 억새밭 안부를 지나서 어디쯤에서 뒤 돌아본 천황봉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요새를 이루는 성채처럼 보인다. 그리고 중세 봉건기사가 영락없이 투구를 쓴 모습을 보이는 바위 하나가 상당히 입체적이다.
길은 크고 작은 암봉을 돌아나서기도 하고 넘어서기도 하면서 이어진다.
월출산에도 남근바위가 있다. 엊그제 제천 동산에서 만났던 남근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지만 맞은편의 베틀굴과 대응하고 있어 음양의 조화가 마냥 신기해만 보인다. 길은 이 남근바위가 세워진 바위벽 사이를 빠져나온다.

"경포대 2.3km" 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바람재(구정치)에 이른 것이다. 왼쪽 길을 따르면 경포대계곡을 따라 월남리로 내려서는 길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구정봉(705m) 바위사면은 자비로운 부처의 얼굴을 하고 있고 그 왼편이 향로봉(743m)이다. 월출산의 봉우리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뒤돌아 본 천왕봉은 허리께로 옅은 운무로 띠를 두르고 고개만 쏙 내밀고 있다. 운무가 이뤄내는 절묘한 경관이다.
바람재를 지나서는 나무계단길이 이어진다. 억새밭(미왕재) 1.6km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구정봉으로 향한다. 구정봉의 얼굴모양을 가까이서 보기 좋은 지점으로 이어진다.

구정봉(九井峰)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되어있고 동사면은 100m에 가까운 직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정봉 뒤로 건너다 보이는 세 개의 암봉은 가로 세로 아무렇게나 획을 그어 놓은 듯한 절리현상을 또렷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 아무렇게 그어놓은 획은 아주 규칙적인 배열을 하고 있다. 마치 거대한 탑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기도 하다.
구정봉 오르는 초입으로 움푹 패여 들어간 곳이 베틀굴이다. 예전에는 음굴, 금수굴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었는데...
베틀굴은 임진왜란 당시 여인네들이 난을 피해 이 굴에 숨어들어 베를 짯다는데서 붙여진 이름...
하여튼 음굴 보다는 훨씬 점잖은 표현이지만 생김새만은 어쩔 수가 없다.

이 베틀굴에서 100m 정도를 올라서면 구정봉이다. 정상부는 2단으로 이루어진 암반으로 상단부로 오르려면 바위 왼쪽으로 난 좁은 홈통을 빠져나가면 올라설 수 있다. 세월의 풍화로 녹아든 가마솥형태의 크고 작은 우물들은 어김없이 얼음을 가득 담고 있다.
구정봉에서 보는 천황봉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여전히 천황봉은 옅은 구름을 덮어쓰고 있다.
예전의 메모장을 들추어 봤을 때 이 구정봉은 군사시설로 정상부가 출입금지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들이 가물가물하다. 하여튼 이 구정봉에 연유한 전설들은 여러 가지가 전하고 있다.

옛날 구림마을에 사는 동차진이란 사람이 이 곳에서 하늘을 향해 오만을 부리다가 하늘의 노여움을 사 아홉 번의 벼락을 맞았다는 내용과 이곳 구정(九井)의 아홉 구덩이에 용이 살았다는 이야기, 또한 아홉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던 중 인근 총각이 선녀의 옷을 훔쳐 결국 막내선녀는 인간세상에서 살게 되었다는 "선녀와 나뭇꾼" 의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구정봉은 월출산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월출산의 주봉이 구정봉이라 잘못 표기되어 있다는데, 굳이 높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과연 주봉이라 해소 손색이 없을 만큼 월출산 일대를 굽어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무릇 영암(靈巖)이라는 지명도 이 구정봉 아래에 있었던 세 개의 신령스러운 바위(靈巖)에 기인한 것이고 보면 월출산의 최고봉은 아니더라도 주봉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부드러운 억새밭으로 이어지는 미왕재 가는길
구정봉에서의 아쉬운 마음을 접고 향로봉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남쪽 건너로 보이는 암봉이 향로봉(742m)이다.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의 헬기장에서 북쪽 500m 지점에 용장사터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호기심 많은 산객이라면 기꺼이 들러 볼 일이고, 조릿대 숲을 헤쳐 향로봉으로도 올라 볼 일이다.
길은 향로봉 산허리를 돌아 유순하게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좌우로 펼쳐지는 천태만상의 천불상들은 발길을 부여잡고 더디게만 만든다. 점봉산을 지나 망대암산 가는 길이 이랬던가....

 ▼ 억새밭으로 이루어진 미왕재의 어제와 오늘(왼쪽은 1992년 5월, 오른쪽은 2002년 2월)

산세는 향로봉을 넘어서면서부터 부드럽게 이어져 나간다. 흔히들 구정봉을 기점으로 천황봉쪽을 남성적인 기개로, 향로봉, 도갑산쪽은 여성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과연 그렇다.
구정봉에서 30분 정도 수더분한 길을 따랐더니 자그마한 헬기장이다. 왼쪽 아래로 미왕재(억새밭)가 내려다 보인다.
이렇게 옹골차게 솟은 바위산에 부드럽게 펼쳐지는 억새밭에 또 한번 놀란다. 구정봉이나 천황봉이 일구어 내는 기기묘묘한 바위능선에 익숙해진 시선이 평화롭게, 어쩌면 다소 황량한 기운마져 감도는 미왕재 억새밭에서 월출산이 주는 또다른 육산의 모습에 마음은 절로 느긋해 진다.
남쪽 저 아래로 소박한 모습을 한 무위사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미왕재에서 정면으로 이어지는 길은 무위사 또는 도갑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또 한번 옛 추억을 떠올려 본다. 군데군데 늦은 철쭉이 피어있던 미왕재, 그리고 눈이 아플 정도의 푸른 녹색 풀밭에는 야생화가 그윽하던 미왕재가 아니었던가?(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감동으로 다가 왔었다.)
지금은 자연생태복원을 위하여 등산로 주변에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고 목조계단이 놓여진, 다분히 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된 미왕재를 내려선다.

홍계골따라 도갑사까지
길은 온갖 활엽수 사이로 고도를 낮추며 도갑사가 있는 홍계골로 빠져든다.
그러나 그 옹골찬 바위들은 마지막까지 볼거리를 제공한다. 정면 북쪽으로 이어지는 노적봉~사리봉의 암릉이다.
바로 앞에 하얗게 빛나는 암봉이 노적봉이고 그 너머 어딘가에 몽영암지가 있고 또 다른 마애여래좌상이 인간사를 굽어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림이 깊어 지면서 더 이상의 암릉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도갑사 내려서는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며 계곡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눈이 녹아 질퍽해진 길은 그동안 바위와 철계단만 밟아오던 신발에게 월출산에도 이런 흙길이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악착같이 발 밑으로 달라붙는다.

아! 이제사 월출산도 뭍 산들처럼 평범한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황량한 겨울을 지키는 활엽수림 사이로 드문드문 동백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동백숲은 무리지어 나타나지 않는다.
처음 한동안은 그저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일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 반들거리는 푸른빛 광채의 잔잔한 흔들림이 나목 사이에서 언뜻언뜻 나타나 푸르름을 자랑한다. 이곳 일대는 동백나무보호지역으로 설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계류 하나를 건너면서 도갑사 1.8km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아직도 계곡은 한참을 내려서야 할 모양이다.
계곡 내림길이 지루하지 않도록 나무마다에는 자그마한 이름표들이 걸려있다. '굴참나무' '쇠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 '대패집나무' '신갈나무'.... 생소한 이름들의 나무도 많다.
글쎄, 저 많은 나무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내 한심한 눈썰미는 아마 몇 발자국 가지 않아 언제 봤냐는 듯 까마득히 잊을 것이다.
어른키 한 길 정도되는 산죽밭이 간간이 나타나고 그 산죽 옆으로도 눈이 시릴 정도의 동백잎에 그래도 푸르다고 자처하는 산죽도 기를 못 펴고 있는 듯하다.

도갑사가 가까워질 즈음 나무울타리가 세워진 목재데크로 올라 서면서 오른쪽으로 키 큰 갈대밭이 전개되는데 이 어디쯤에 풍성암이 있었던 것일까? 이 지역은 습지로서 손상을 막고자 울타리를 설치한 모양이다.
나무울타리를 내려서게 되면 <도갑사 도선수미비>와 부도밭을 지나게 되고 넓어진 길을 따라 내려와서 아치형 용화교 오른편으로 있는 대나무밭 안쪽의 돌로 만든 미륵불을 봉안하고 있는 미륵전도 들러본다.
미륵전 아래가 도갑사다. 넓직한 가람터를 가득히 울리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청아하다. 대웅보전 앞 뜰에는 5층석탑 복원공사로 다소 어수선하지만 그윽한 산사의 정취가 월출산 천황봉을 넘어온 산객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
해탈문을 빠져나와 다시 속세로 환속 하였건만 언제 다시 찾게 될지 모를 월출산을 그리는 마음에 매표소에서 지도 한 장(500원)을 구입한다.

도갑리 계류 건너로 상가단지 옆으로 수령 450년된 팽나무고목이 군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하산주로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니 어디선가 괴이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의 정체를 따라 나섰더니 도갑사 앞 계류에 웬 개구리떼들.... 이미 알까지 잔뜩 낳아 놓은 상태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바로 입춘(立春)이 아니었던가? 그래도 쌀쌀한 바람은 여전하건만, 이 곳 남녘땅 월출산 기슭 도갑리에는 이미 봄이 성큼 다가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골골이 울려 퍼지고 있다.
구림리를 거쳐 영암을 향하면서, 그리고 영암을 벗어나기까지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우뚝서서 시선을 놓아주지 않던 그 월출산의 위용이, 아직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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