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작은피재-대박등-예낭골임도-유령산-느릅령-우보산-통리역 ☞지도보기 ☞낙동1구간 사진모음 

*일시:2003.2.7
*날씨:쾌청-산행하기에 더 없이 적당

*산행상세
작은피재(09:20)-임도에서 주능선 진입(09:41)-대박등(930.8m)(09:55)-송전탑(No:118)(10:08)-두 번째 송전탑(자작목이)(10:15)-능선분기점(귀나무목이)(10:40)-예낭골임도(서미촌재)(10:58)-922봉(11:24)-송전탑(No:119)(11:40)-유령산(932.4m)(11:50)-느릅령(유령산령당)(중식, 12:01~12:36)-무덤(우보산)(12:55)-갈미봉 갈림길(13:02)-통리역(13:25)
=== 도상거리:8km, 총소요시간:4시간 05분 ===

*참가: 백호산악회 42명
김동석(회장), 최부근(부회장), 한백기(등반대장 T), 박춘하(등반대장 L), 이경수(총무), 김상권, 주영기, 최호우, 정홍조, 탁경배, 이종택, 조형연, 김재권, 이경모, 김용배, 박성현, 김지용, 이병목, 권순태, 성기봉, 류연하, 이재천, 김승현, 김태기, 송인철, 박준희, 김영철, 추보엽, 정현근, 정태영, 장석태, 정하교, 김흥태, 김흥수, 진태화, 류기정, 김변진, 정길영, 조동범, 문무종, 임기성, 임상운(기록)

 

=== 설레임으로 시작하는 낙동정맥 그 첫 걸음 ===

피재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는 삼수령 표석▼

천리능선 낙동정맥의 첫 행보를 시작한다.
백두대간상 매봉산 천의봉(1303m) 북동방면 약 1km 지점의 무명봉(1145m)에서 낙동정맥은 분기하여 서쪽으로 낙동강을 이루고 동으로 바다를 끼고 장장 천리 가까운 마루금을 이은 후 부산 몰운대에서 그 꼬리를 묻고 있다.
지난날 우리의 왜곡된 산줄기였던 태백산맥과 같은 맥락이지만 옛 태백산맥의 개념은 중간중간 물줄기로 끊어져 있다 하므로 진정한 의미의 맥은 아니었다. 이제 제대로 된 우리의 산줄기를 찾는 마음은 벌써 정맥의 어느 외진 마루금을 헤치고 가고 있는 듯 마냥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05시 20분,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출발!
짙은 어둠을 뚫고 42명의 대인원을 태운 버스는 북으로 향하여 달려간다. 그러고 보니 다시 백호산악회 식구들을 만난게 2년 반이 훌쩍 지나 버린 세월이다. 모두들 잊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는 끈끈한 정에 세삼 얼굴이 붉어지고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마음에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어느새 훤히 날이 밝아지고 차창 밖으로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통리일대가 지척이고 차량은 통리에서 좌회전하여 황지로 진입 후 정선, 삼척방면의 피재에 올라선다.

09시 정각, 피재(삼수령, 920m)도착.
근 3년 만에 다시 찾은 피재, 그저 감회가 새롭다. 아침햇살을 등진 삼수령비는 여전히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고 주차장 위 정자(삼수정)와 빗물의 운명을 적은 빗돌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기고 있다. 산천은 그대로 이건만 되레 그동안 변한건 내 자신일 뿐이다. 세월의 군더더기를 잔뜩 덮어쓰고 허망한 욕심만 늘었으니.... 산을 통해 그 욕심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자족(自足) 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우면 좋으련만....
삼수령을 알리는 표석 앞에서 낙동정맥의 출발을 의미하는 기념촬영을 하며 무사한 정맥완주를 기원해 본다. 표석 옆 온도계가 영하 2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차가운 북서풍이 몰아치는 고갯마루의 체감온도가 결코 만만치 않다.
삼수령부터 발품이 시작될 줄로 알았는데 임원진에선 작은피재까지 차량으로 이동시킨다. 사실, 대부분의 정맥꾼들이 이곳 삼수령표석이 있는 피재에서 정맥을 시작하거나 마치지만 낙동정맥의 시발점은 천의봉 아래 1145봉에서 그 가지가 시작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낙동정맥이 시작되는 능선 초입부로 사유지인 "예수원 분수령목장"의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현실적으로 정확한 마루금을 잇는 것이 어렵고 목장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피재까지 대간 마루금을 탄 후부터 낙동정맥의 시작점을 잡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이곳 피재는 큰피재라고도 하고 삼수령이란 표석이 서 있지만 물길이 한강, 낙동강, 오십천으로 갈라지는 꼭지점은 백두대간상 1145봉이 빗물의 운명을 가르는 정점이 된다. 즉, 큰피재는 한강과 오십천을 가르고, 아래쪽 작은 피재는 오십천과 낙동강을 가르고 있으므로 이 두 개의 피재를 합하여 삼수령이라 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어쨋든 피재에서 황지쪽 35번 국도를 따라 작은피재까지 내려서는 약 700m 가량의 다리품을 던 셈이다.

▼대박등(930.8m) 오름길에서 건너다 본 천의봉-낙동정맥이 곁가지를 치는 꼭지점이 어림된다.

09시 20분, 작은피재 출발.
낙동정맥의 정점인 1145봉에서 이미 1.1km 가량 마루금이 내려선 작은피재는 황지에서 피재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왼쪽으로 급하게 휘어도는 지점의 고개같지 않은 고개다. 이 지점에 급커브를 표시하는 교통표지판이 서 있다. 정맥이 남하하는 서쪽 산허리엔 여전히 목장 철조망이 쳐져 있고 건너편 넓은 목초지 뒤쪽 능선이 낙동정맥의 마루금이다.
고개에서 차량출입금지 바리케이트가 막고 있는 임도로 접어들면서부터 비로서 본격적인 낙동정맥의 첫 발을 내딛는다.
정맥은 시작부터 중허리를 가르는 포장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볼을 감싸며 주능선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른다. 오른쪽 목초지 저 아래로 수자원공사 시설물들을 내려다 보며 걷는 밋밋한 길이다. 왼쪽의 나지막한 구봉산(九峰山)은 8부 능선쯤으로 허리를 돌아 나간다. 구봉산은 특별한 정점없이 작은피재  이후로 이어지는 아홉 개의 연이은 봉우리를 이르는 이름이다.
임도가 산허리 하나를 돌아서자 수자원공사 시설물은 그 모습을 감추게 되고 15분 가량 나서니 임도 왼편 저 앞으로 대박등(930.8m)이 올려다 뵌다. 여기서부터 목초지를 뒤로하고 오름길이 시작된다. 선두그룹에서 스패츠를 착용하고 있다.
임도를 뒤로 한 오름길은 서서히 경사도를 높이기 시작하고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 오른다.

허리까지 잠기는 짧은 산죽밭과 진달래나무가 뒤섞인 오름길을 극복하고 나면 대박등이다.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스럽게 트이는 지점으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오른쪽(서쪽) 아래에 보이는 초지 건너로 보이는 매봉산 천의봉(1033m)이다. 정상부의 통신 시설탑이 있음으로 쉬이 구분할 수 있고 그 아래로 완만한 구릉을 따라 넓게 펼쳐지는 목장지대가 다소 이국적이다. 대박등에 있어야 할 삼각점은 아마도 깊은 심설 속에서 동면을 취하고 있으리라.
이후 길은 고만고만한 표고차를 두며 밋밋하게 이어지는 방화선인 듯한 넓은 길이다. 주능선으로 깊은 심설이 모든 것을 감추고 있다. 앞서 가던 홍일점 아가씨(?)가 마치 설탕을 깔아놓은 길이라 한다. 마치 훅 하고 불면 날아가 버릴 듯 보드라운 눈이 발끝에서 부서져 날리고 있다.

10시 08분, 대박등을 지나 13분 만에 거대한 고압송전탑(No:118) 아래를 지나친다. 그러고 보니 방금 지난 넓은 길들은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닦여진 길로 추측된다. 이 송전탑을 지나 7분 가량 나서게 되니 바로 코 앞으로 두 번째 송전탑이 버티고 있다.(10:15) 정맥은 이 두 번째 송전탑 직전 약 20m 전방에서 왼쪽 아래로 고개를 낮추고 있다. 무심코 뚜렷한 능선을 이어가기 십상인 곳이다. 이 지점쯤이 수자원공사가 있는 할미골과 예낭골을 가르는 자작목이고개다.
철탑 직전에서 왼쪽 아래로 20m 가량 내려서게 되니 무덤 3기가 자리하고 있고 그 오른쪽으로 넓은 길이 보인다. 예낭골의 최상단부까지 도로가 올라앉은 셈이다. 이후 13분 후에 고갯마루 하나를 넘어선 길은 왼쪽 산허리를 돌며 이어지고 있다.

▼대박등지나 송전탑 임도를 따르는 길
10시 40분, 태백시와 삼척시를 경계짓는 시계능선에서 정맥길이 갈라지는 능선 분기점에 섰다.(귀나무목이) 여기서 선 채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른쪽(남쪽) 아래로 꺽어드는 능선을 따라 내려서게 된다. 선두그룹에선 여전히 러셀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산대장의 수고 덕분으로 뒤를 따르는 나로서는 그 발자국을 조준하여 정확하게 발도장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발을 높이 들고....

10시 52분, 양지바른 곳 따스한 햇살을 쬐고 있는 무덤 1기를 지나친다. 그저 볼록하게 솟아있는 봉분으로 무덤임을 추측할 뿐 아무개의 무덤인지는 확인하지 못한다.
10시 58분, 내리막 솔숲을 빠져 나오게 되니 "국유림사용허가구역"임을 알리는 표시목이 서 있는 예낭골 임도에 다다른다. 왼쪽 아래 도계쪽 쥐치리의 지명에서 따온 듯 이 고갯마루를 서미촌재 또는 쥐치라고 부른다. 도로를 개설중인지 넓은 길이 고개를 관통하고 있으며 채석작업용 장비들도 눈에 띈다.
예낭골 임도를 건너서면서부터 길은 상당히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고 오른쪽 아래로는 예낭골을 따라 오르는 포장도로가 지척으로 내려다 뵌다. 오름길이 끝나게 되면 바로 앞 922봉까지 고만고만한 날등이 이어지고 옛 성터의 흔적으로 추측되는 돌들이 가지런히 쌓인 길을 따르게 된다. 좌우로 급사면이 형성되어 있어 전략적 요충지로 톡톡히 제 몫을 했을 법한 지형이다.

11시 24분, 922봉으로 추측되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비슷한 봉우리가 연이어 이어지는 관계로 정확한 922봉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위가 훤히 뚫리는 조망이 펼쳐지는 곳이다. 왼쪽(북쪽) 아래로 도계읍 일대가 내려다 보이고 유독 거대한 바위가 건너다 보이는데 흥전리의 매바위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 남쪽 건너로 연화산(1171.2m)이 마치 독립봉처럼 봉긋이 솟아있고 그 오른쪽 저 멀리로 태백산이 어림되고 있다.
특히, 함백산은 그동안 고스락을 구름 속에 꼭꼭 숨겨두었다가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 잠시 정상부의 국가시설물을 살짝 내비치고 있다. 성터의 흔적은 922봉을 지나서도 간간이 나타난다.

11시 40분, 세 번째 송전탑을 만난다.(No:119번)
이후 10분 후에 측량용 폴대가 철사에 묶여있는 유령산(932.4m)에 이른다.(11:50) 남쪽 연화산(蓮花山)만이 좀더 가까이 다가 섰을 뿐 사위조망은 비슷비슷하게 펼쳐지고 있다. 지척으로 보이는 연화산은 정말이지 연꽃이 활짝 피어있는 모습이다. 주봉을 중심으로 켜켜이 꽃잎을 펼친 준봉과 계곡의 굴곡으로 보아 어쩌면 연화산은 이곳 유령산에서 건너다 보고 지어진 이름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유령산 이후 길은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10분 가량 눈길을 미끌어지듯 내려서니 전봇대가 있는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12:01) 잣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이 임도는 전신주 설치를 위해 닦여진 길로 추측된다. 임도를 가로질러 1분 가량 내려서게 되면 느릅령에 이르게 된다. 일행은 느릅령 직전 임도에서 식사를 했건만(12:01~12:30) 조금 더 참고 내려와 느릅령에서 식사를 했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뒤늦은 후회도 해 본다.

느릅령은 도계와 황지를 연결하는 옛 고갯길이건만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는 듯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는 상태다. 고갯마루엔 때깔 좋은 단청을 입힌 "유령산령당(楡嶺山靈堂)"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유령제(楡嶺祭)유래문>을 적은 표석이 있다. 느릅령은 예전에 이 근동으로 느릅나무가 많아 붙여진 지명으로 추측되건만 구지 유령(楡嶺)이란 한자식 표현은 그 어감부터가 거북스럽다. 유래문을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

<유령제유래문(楡嶺祭遺來文)
이곳 느릅령은 신라때 임금이 태백산 천제를 올리기 위해 소를 몰고 넘던 고개이며 조선시대에는 태백산을 향해 망제를 올리던 곳으로 우보산(牛甫山)이라고도 했다. 먼 옛날 차도와 철도가 나기 전 이 고개길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 요충지로 험하고 높기에 맹호의 피해가 심하여 고개 밑에서 10명씩 모여서 넘곤 했다. 그 후 주민들이 산당을 짓고 영로(嶺路)의 무사 안행과 주민의 평안과 풍년농사를 기원하게 된 것이 천년이 넘는다. 중간에는 관청에서 보조봉제하다가 임진왜란등 난세에는 중단하므로 산당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극심하던 때 황지에 살고 있던 효자가 소달장(所達場)에 부친제사 장보러 갔다가 그날따라 늦어서 모군(募群)에 합류하지 못하고 혼자 산을 넘다가 호랑이인 산령에게 홀려서 죽게 될 지경에 이르자 아버지 제사봉행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니 산령왈 효성이 지극하니 나의 청을 들어주면 살려주겠노라고 하여 청왈 황소를 잡아 여기에 제사를 올려주면 무사하리라 하기에 약속하고 귀가하여 부친 제사 후 황우를 제물로 음 4월 16일에 제사를 올리게 된 후부터는 태백과 삼척 주민들이 산당을 복원하고 매년 이날 황우를 제물로 무사태평과 소망을 기원 봉제사하게 된 것도 우금(于今) 수백년이다. = 단기 4330. 음 4.16 유령제 봉사회 근수(謹竪) =

12시 36분, 산령당 맞은편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비닐하우스 옆으로 올라서기를 시작한다. 정면으로 높다랗게 솟아 기를 죽이는 봉우리가 우보산(牛甫山)이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가파르게 이어지는 급사면으로 정체와 서행이 반복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급사면을 덮고 있는 미끄러운 눈 길은 한 발 오르면 두 발 미끌어지는 난구간이다.
커다란 바위를 돌아 오르는 길에선 정면으로 바위벽을 직등해 보기도 한다. 이윽고 급사면을 기어오르게 되니 완만한 능선길이 시작되고 초입으로 "가선대부 밀양박씨 정부인 전주이씨묘" 가 단정하게 자리하여 산객을 기다리고 있다.(12:55) 유일하게 비문을 읽을 수 있었던 무덤으로 반쯤 눈 속에 잠긴 비석이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무덤을 지나쳐 딱히 어디가 정정이라고 할 수 없는 밋밋한 봉우리가 우보산이다.
길은 6~7분 가량 평평하게 이어지더니 갈림길이다.(13:02) 정맥은 왼쪽으로 급하게 떨어지는 사면길이다. 바로 앞 남쪽으로 봉우리는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저 아래로 통리일대가 어림되고 그 뒤로 다음구간 이어야 할 백병산이 장대하게 솟아있다. 왼쪽으로 전환된 내리막 길은 우측으로 계곡을 두고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고 급하게 쏟아지고 있다.
10여분간 정신없이 떨어지니 무덤 2기를 차례로 지나치게 되고 길이 다소 완만해지며 쭉쭉 뻗은 침엽수림 사이를 뚫고 이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 한번의 급한 내리막이 있은 연후에야 양 옆에 계곡을 거느린 잘록이에 이른다.(13:19)
좌우로 계곡이 아주 가까이 근접해 있는 지점으로 과연 정맥길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위태롭게 이어지는 마루금이다.

▼통리일대-왼쪽으로 빨간지붕의 통리역이 보이고 건너로 다음에 이어야 할 백병산 구간이 보인다.
이후 짧은 오름길 이후로 이어지는 솔 숲을 빠져 나오게 되면 통리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널널한 밭 가운데를 통과하게 된다. 코 앞으로 빨간 지붕의 통리역사가 내려다 보이고 오밀조밀하게 지붕을 맞대고 있는 마을 뒷편으로 가지런한 철길이 걸려있다.
연화산, 백병산 자락에 포근히 쌓인 통리는 해발 680m 정도의 고산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방의 산이 높고 그 가운데로 길게 골짜기가 형성되어 마치 구유처럼 생겼다 하여 통리(桶里)라 부르게 되었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산업의 동맥으로 자리잡았던 무한한 탄전으로 인해 한때의 영화를 누리기도 했건만 지금은 그저 한적한 시골마을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아니 어쩌면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명소로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3시 25분, 산비탈을 내려서니 통리역 도착이다. 통리역은 정맥꾼들에겐 아득한 고향의 향수처럼 다가서며 하루 산행의 들머리가 되고 날머리가 되는 만남과 이별의 장이다.
이것으로 천리능선 대장정의 첫 쉼표를 찍는다. 짧은 거리로 첫 워밍업을 한 셈이고 다소 여유로웠던 시작이다.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에서 오늘만큼 심적으로 부담없는 산행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뒷풀이로 준비된 오댕국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며 삼삼오오 무리지어 초면의 얼굴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아름답다.

또한 인상에 남은 모습은 빨간 지붕의 통리역이다. 외관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고 역사 문을 열고 들어서니 훈훈하기 이를데 없다. 10여평 되는 대합실엔 열차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TV 시청에 여념이 없고 특히나 화장실로 이어지는 통로로 장애자용 블록을 깔은 배려가 좋았고, 깔끔한 화장실은 어느 고급식당의 수준만큼 정갈하다.

14시 10분, 통리를 출발하여 백암수련관에서 온천욕 즐기고, 칠보산부페에서 거하게 포만감을 느끼니 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낙동정맥의 첫 출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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