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통리역-백병산-토산령-면산-석개재 ☞지도보기 , ☞낙동2구간 사진모음  

*일시:2003.4.15
*날씨:맑음, 전형적인 봄날씨

*산행상세
통리-(1:45)-백병산-(1:45)-토산령-(1:50)-면산-(1:40)-석개재
통리 경진슈퍼(05:28)-태현사(05:31)-철탑(05:36)-첫봉우리(930m)-삼거리능선(05:55)-1090봉(06:13~06:29)-훅찌이밭재(06:45)-면안등재(06:53)-고비덕재 헬기장(07:06)-백병산 삼거리(07:20)-백병산(1259.3m)(07:26~07:35)-백병산 삼거리(07:40)-큰덕(07:45)-송전철탑(08:20~08:31)-토산령(09:29)-구랄산 전위봉(09:56~10:07)-구랄산(1071.6m)(10:13)-면산(1245.2)(11:28~12:05)-광평(13:12)-1009.3봉(13:45~13:52)-석개재(13:58)
=== 도상거리:16.5km, 총소요시간:8시간 30분 (순보행 7시간) ===

*참가:백호산악회 30명
최부근(부회장), 이경수(총무), 한백기(등반대장T), 박춘하(등반대장L), 김상권, 송병호, 김용배, 이경모, 진태화, 정홍조, 강동길, 장석태, 조동범, 김승현, 이종택, 김지용, 이병목, 정길영, 최호우, 박준희, 성기봉, 문무종, 최태영, 정태영, 전태환, 조규식, 정광수, 김영철, 이대영, 임상운(기록)

 

=== 낙동정맥의 맹주 백병산, 그리고 멀고 먼 면산 ===


남녁의 산하와 들녘은 봄기운이 만연하여 산수유, 진달래가 그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4월 중순이건만,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지 못한 낙동정맥 최고봉인 백병산을 찾는다.
백병산(白屛山 1259.3m) 정상은 낙동정맥 마루금에서 약 300m 가량 서쪽으로 벗어나 있지만 명실공히 낙동정맥의 맹주노릇을 하고 있으며 태백산-함백산-금대봉-덕항산을 잇는 백두대간을 한 발짝 물러나 두루 살필 수 있는 백두대간의 전망대일뿐 아니라 매봉산에서 분기한 낙동정맥이 토산령-면산으로 뻗어나가는 정맥까지 굽어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치 하얀 병풍을 두른 듯 하다 하여 붙여진 백병산의 볼거리인 병풍바위가 정상 서릉에 자리하고  있으며 가뭄이 들면 이 바위가 하얗게 변한다는 전설을 품고 있어 백산(白山)이라고도 부른다.

세 차례씩이나 산행계획을 변경시키게 만든 낙동정맥 백병산구간을 향한 버스는 정확히 01시 정각에 포항을 출발하여 어둠을 가르고 달려 04시 50분 통리역 맞은편 경진슈퍼 앞에 정차하였다. 아마도 차량주차할 곳을 찾는 듯 주위를 살피던 이 총무님께서 태현사 건너편 상가가 있는 공터로 차량을 인도한다.
새벽 단잠에 빠진 일행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나고 이내 버스 안은 소란스러워 진다. 계절은 완연한 봄이건만 주섬주섬 행장을 챙겨 내려선 통리의 새벽바람은 아직도 차가웁기만 하다.
오늘 산행의 출발점은 태현사 들머리인 통리–신리간 427번 도로변으로 신리재 확포장공사 간판이 붙어 있는 곳이다.
당연히 지난번 구간종주를 마쳤던 통리역에서 산행이 시작될 줄로 알고 있었건만 통리역~태연사입구까지의 도로는 마루금에서 제외시킨 모양이다. 제대로 된 마루금 잇기는 결국 약150m정도의 공백이 생기는 셈이고 후일 그 마루금을 온전히 이었다 할지라도 그 의미는 반감될 것이다. 단체산행에 있어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1090봉 직전에서...(저 멀리로 백두대간의 등뼈 태백산, 함백산이 시야에 잡힌다)
05:28분, 출발이다!
바로 건너편 통리역사의 불그스레한 조명등쪽으로 자꾸 솔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태현사를 알리는 표석을 따라 시멘트길을 따른다. 왼쪽 산록쪽에서 누군가가 부지런한 새벽을 여는 듯 기계톱 소리가 고요한 통리를 깨우고 있건만 조는 듯한 가로등은 기척이 없다. 도로변에서 태현사까지는 불과 3분 거리, 왼쪽의 여염집 같은 태현사 앞을 지나쳐 나타나는 밭뙤기 왼쪽 가장자리로 올라서 밭길이 끝날 즈음 왼쪽 사연을 파고드는 솔숲 사이로 올라 서게 된다.
서서히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하던 비탈길을 5분 가량 올라서게 되니 철탑아래를 통과한다.(05:36) 하늘은 희뿌옇게 열리기 시작하고 이내 등줄기가 후줄근해지기 시작한다. 때맞춰 산새들의 지저귐이 나무사이를 비집고 청아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어둠을 털어내고 있는가 하면 저 아래로는 자그마한 소도시 통리일대의 가로등도 제 임무를 마친 듯 하나 둘 꺼져가는 바지런을 떨고 있다.

태현사를 지나쳐 20분 가량 팍팍한 오름길 후에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 서게 되니(05:50)동편하늘이 발그레한 빛을 띠고 있다. 저 뒤로는 연화산(蓮花山, 1171.2m)을 중심으로 태백산과 함백산이 고요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전경이 마냥 평화스럽게 느껴진다. 밋밋한 능선을 이어 5분을 더 나서게 되니 오른쪽 아래로 능선이 분기하는 삼거리 갈림목에 다다른다.(05:55)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 능선은 원통골로 떨어지게 되고, 원통골 건너로 백병산 고스락과 병풍바위가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전모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즈음부터 석성의 흔적이 있는 좁다란 능선날등을 타고 왼쪽(동)으로 살짝 굽어지며 올라서는 길로 시종 백병산을 건너다 보며 걷게 된다.
06시13분, 백병산이 코 앞으로 보이는 1090봉에 도착한다. 여전히 태백산~함백산을 잇는 스카이라인은 아래로 옅은 안개를 살포시 깔고 고요한 아침을 열고 있다. 1090봉에서 배당받은 김밥 한 줄을 해치우고 다리쉼을 갖는다.(~06:29)
휴식을 갖는 동안 지난해 정년퇴임을 하신 송병호옹(?)께서 이번 산행에 특별출연하셔서 은근한 손주 자랑이 대단하다.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단독산행을 즐기며 꾸준한 저력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정열이 젊은 사람을 훨씬 능가하는 분이다.

1090봉을 지나서도 계속되는 성터흔적을 따라 10분 가량 나서니 돌로 테두리를 한 참호가 있는 작은 산봉을 지나치게 되고(06:39) 이어지는 내림길에서 밋밋한 안부로 100여m 가량 산죽이 깔려있는 훅찌이밭재에 이른다(06:45)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산죽은 시종일관 나타나며 종착지인 석개재까지 끈질기게 정맥마루금을 잠식하여 이어지게 된다. 산죽이 넓게 이어지는 훅찌이밭재를 지나쳐 올라선 산봉 하나가 평평하게 한참을 이어진 후 고개를 숙이게 되면 약 50~60평 가량 넓은 터가 전개되는 면안등재에 이른다.(06:53)
면안등재를 지나면서부터 길은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휘어도는 꾸준한 오르막을 이어간다. 그 오르막이 잠시 숨을 죽이는 지점의 평평한 지역으로 시멘트 석주가 널브러져 있고 나뭇단을 쌓은 듯한 흔적이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된다. 그 나뭇단 위로 뭔가를 집어든 승현형님께서 예사 돌이 아닌 광석이라 한다. 아마도 이곳이 광산을 시추한 흔적이 있는 곳이 아닌가 싶다. 잠시 오름을 더 이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훤해지며 넓직한 헬기장이 있는 고비덕재에 이른다.(07:06)
고비가 많이 자생한다는 곳으로 능선상의 평탄한 지역을 이르는 “덕”과 합쳐져 고비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고비덕재는 옛 고개길로 소금을 비롯한 동해의 수산물이 황지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지금은 가곡~통리를 연결하는 신리재를 이용하지만 그 이전에는 왼쪽아래 백산골을 타고 이 고비덕재를 넘었다고 한다. 해서 오른쪽 아래 원통골이란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넓은 헬기장 끝단부로 “백병산 0.9km”를 알리는 흰색 안내판이 백병산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고비덕재를 지나 제법 오래된 참나무 숲으로 접어들자 굵은 밧줄이 연이어져 있다. 특이한 것은 나무등걸에 생채기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천연수세미 같은 재질을 이용하여 로프를 고정해 둔 점이다. 사소한 것이지만 그 세심한 배려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백병산 오르는 북쪽 능선길은 지난 겨울을 채 삭이지 못한 깊은 심설이 아직도 두텁게 그 여운을 부여잡고 있다. 이 길은 계단길이라 했건만 두터운 눈길은 그 계단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잠시 발끝에 힘이라도 주게 되면 여지없이 무릎까지 빠지기가 예사다. 그러나 정맥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간간이 양지바른 곳에서 만나게 되는 노란색 양지꽃이며, 생강나무 꽃봉우리, 낙엽을 뚫고 배시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원추리등이 바로 그것이다. 고비덕재를 지나 15분가량을 나서게 되니 백병산 동쪽 삼거리가 나타난다.(07:20) 넓직한 언덕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정맥은 여기서 왼쪽(동쪽)으로 방향을 획 틀어 내려서는 내림길이다. 오른쪽 수더분한 오름길은 백병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백병산 오르는 길은 로프가 쳐져 있고 아직도 겨울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눈길이다.
백병산은 정맥마루금에서는 살짝 빗겨나 있지만 낙동정맥의 최고봉이다. 삼거리에서 배낭을 벗어두고 백병산을 향한다. 넓은 능선이 차츰 좁아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좁다란 날등으로 이어진다. 좌우로 키를 훨씬 넘는 좁은 진달래골목을 빠져 나오면 작은 둔덕에 “ROKAMC”라고 씌여진 삼각적이 있는 백병산 고스락에 이른다.(07:26)
통리를 출발하여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 백병산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명색이 낙동정맥의 맹주이건만  사위가 수목에 가려 이렇다 할 전망을 제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100여m만 더 나서보기로 하자. 백병산 서릉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통나무 계단길 직전으로 촛대바위,병풍바위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서 있다.
거기서 10여m 정도만 더 나서게 되면 멋들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원한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 산의 이름은 잉태한 병풍바위가 발 아래로 봉긋이 올라 앉아 있고 그 너머로 태백산-함백산 –매봉산-덕항산을 잇는 백두대간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꽉 들어 차 있다. 남쪽으로도 이어가야할 면산자락이 아스라하게 펼쳐지고 있다. 발아래 병풍바위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게 되면 원통골로 내려서게 된다.

조망을 한껏 즐기고 백병산 삼거리까지 되 내려와 면산을 향한다.(07:40) 밋밋한 동릉을 따라 5분 가량 내려서게 되면 왼편으로 이깔나무 군락을 이룬 넓은 분지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 일대는 큰덕이라 부른다.(07:45) 과연 이름 그대로 너른 평지를 이룬 아늑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곳이다. 마루금 주변으로는 역시 산죽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큰덕을 지나면서 산죽은 그 농도를 더해가고 있다. 발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더듬어서 길을 이어갈 뿐이다. 서걱거리는 시퍼런 댓잎사이를 기계적으로 헤쳐 나가고 있다. 어느사이 능선이 오른쪽으로 크게 굽도는가 싶더니 시야가 트이는 송전철탑아래에 이른다.(08:20~08:31) 백병산 삼거리를 출발하여 40분 가량 소요되었다.

▶백병산에서 100여m 가량 더 나서게 되면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바로 뒤로 병풍바위와 백병산 서릉 하산로가 내려다 보인다.(송병호옹(?)과 전태환님이 옛정을 되새기며 한 컷)

송전철탑에서는 넓은 방화선인 듯한 임도를 따라 5분 가량 내려서게 된다. 넓은 길은 안부에 이르면서 오른쪽 산비탈을 타고 태백방면 백산동의 젖골로 내려서고 있다. 그러고보니 넓은 임도는 방화선이 아니고 철탑을 세우기 위해 닦여진 도로인 셈이다. 임도가 꺽여지는 곳에서 정면 마루금을 따라 능선을 계속이어 나간다. 송전탑을 지나면서부터는 참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지고 마치 둥지를 튼 새집마냥 겨우살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아직도 그 푸르름을 자랑하는 겨우살이는 그 만큼 이곳엔 봄이 늦게 오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송전탑 다음으로 나타나는 봉우리는 왼쪽으로 트래버스된 길을 따라 다시 능선에 올라 붙게 되고, 그 다음 봉우리 역시 왼쪽 우회로를 따라 넘어선다. 그렇게 두어 개의 봉우리를 더 우회하는 동안 지형도상의 1085봉은 언제 지나쳤는지 정확한 확인을 하지 못했다. 대략 송전탑 에서 45분 가량 진행한 지점의 자그만한 안부 왼쪽으로 2~3m 정도 떨어진 지점으로 수직 5m 가량되는 구멍바위가 있는 지점은 지나치게 되고, 주위로 모처럼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이어지는 길은 한없이 떨어지는 듯한 급한 내리막이고 바로 앞으로 떡허니 버티고 서 있는 봉우리가 1071.6봉. 즉, 구랄산이다.

다시 올라야 할 구랄산에 잔뜩 주눅이 들어 내려선 안부가 토산령(土山嶺)이다.(09:29)
송전탑에서 고작 1시간 정도 다리품을 팔았건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만큼 별 특징없는 능선을 잇는 길이고 작은 오르내림이 많았던 영향일 터이다. 토산령 일대는 온통 산죽의 천국이다. 4거리 갈림길목만이 두어 평 정도 빤한 곳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토산령은 왼쪽(동쪽)으로 막장사택을 지나 가곡자연휴양림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과 오른쪽 철암방면 버들골로 내려서는 좁은 갈림길이 산죽사이로 희미하게 그 들머리를 내 비치고 있다.
토산령을 지나서도 키를 넘나드는 산죽밭은 50m 가량 된비알로 이어지고, 그 산죽밭이 끝나자 길은 더더욱 고개를 고추세우고 있다. 얼추 토산령을 지나 15분 가량 나서게 되면 멋들어진 아름드리 고사목이 길을 막고 그 뒤로 구랄산으로 여겨지는 봉우리가 건너다 보인다. 10여분 힘을 더 쏟아부어 그 산봉에 올라 섰건만 겨우 구랄산 전위봉이었다.(09:56)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물만 벌컥벌컥 마셔댄다.
전위봉을 지나서도 7~8분 가량 더 진행하여 밋밋하게 올라선 둔덕의 등로 한복판에 작은 삼각점이 박혀있다. 구랄산(1071.6m)이다!(10:13) 사방으로 잡목에 가려 시원한 조망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남쪽 저 멀리로 면산이 어림된다.

면산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지금껏 올라온 발품이 억울할 정도로 한없이 내려가고 있다. 그럴수록 앞으로 다가서는 봉우리는 점점 높아만 간다. 정확히 7분을 뚝 떨어져 내려섰고 바로 앞 나직한 산봉 하나를 넘어서서도 길은 계속 아래로만 치닫고 있다. 그 내림의 끝에서 본격적인 면산을 향한 오름이 시작된다. 면산을 향한 오름은 한없이 고달프기만 하다.
면산(綿山)이란 자체의 이름만 언뜻 듣는다면 그 어감에서 상당히 부드러움을 연상시키건만…
모두들 말이 없이 꾸역꾸역 한 걸음씩 힘겹게 내 딛는다. 아니 한 걸음도 벅차다. 반 걸음씩, 반 걸음씩 아주 천천히 오른다. 그렇게 30분 이상을 쉼 없이 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산봉에 섰다.(11:05) 그러나 거기는 가짜 면산이었다.
저 앞으로 또 하나의 봉우리가 버티고 있다. 하기야 실제적인 낙동정맥 마루금 상에 놓인 최고봉이 바로 면산이 아니던가? 그렇게 호락호락 고스락을 내줄리가 만무하다. 마음을 달래가며 또 한번 힘을 내 올라섰건만 이번에도 가짜였다. 면산에는 가짜 면산이 오히려 더 기세등등하다. 면산은 멀고 먼 산이다. 두 번의 가짜에 당하고 또 다시 더 높은 산봉을 향하여 인내를 시험해 본다. 팍팍한 오름에서 나타나는 눈밭길이 발걸음을 더디게만 만든다. 정상이 가까워질 즈음 길은 제대로 나 있지 않다. 그저 높은 곳을 향하여 이리저리 산죽을 헤치고 올라야 한다.
◀면산 고스락에 선 선두그룹-정상일대는 온통 산죽이 점령해 있다.

11시 28분, 드디어 아득하기만 했던 면산(1245.2m) 고스락에 올랐다. 강원도 태백시를 벗어나 경상도 봉화땅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기도 하다. 구랄산에서 쉼 없는 발품이 1시간15분 가량  이어졌다.
면산은 일명 두리봉이라고도 불리우며 정상일대는 넓게 펼쳐져 있지만 온통 산죽이 점령하고 있어 빤한 곳을 드러낸 곳이 없다. 진행방향에서 우측으로 약간 치우쳐서 삼각점과 시멘트기둥이 있는 곳으로 두어 평 가량 빤한 틈을 내 보이고 있는 정도다. 역시 사방으로 키 큰 수복이 빼곡하여 조망은 감히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12시05분, 면산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더 이상의 오름이 없다는 안도감으로 인해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석개재를 향한다. 내려서는 방향은 동쪽, 강원도 삼척과 경북 봉화군을 경계 지으며 이어지는 키 큰 산죽을 헤치고 내려서면 길은 주능선을 약간 벗어난 오른쪽 사면을 타고 이어지는 길로 남동쪽 저 멀리로 석개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아스라히 시야에 들려온다.
앞서가던 전태환님의 손에 커다란 자루가 들려져 있다. 간혹 마루금 주변으로 이리저리 나뒹구는 쓰레기를 줏어 담는 정녕코 아름다운 모습이다. 제 몸 하나도 추스리지 못해 힘겨워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려니와 진정 山을 아끼고 사랑하는 전선배님의 마음 씀씀이가 한없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면산을 출발한지 40분 남짓 지났을까? 왼편으로 암봉군이 불쑥 솟아있고 그 바위상단으로 푸르디 푸른 소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멋진 전경들이 펼쳐진다.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사진이라도 찍어두려고 기회를 엿보지만 끝내 잡목숲에 가려 촬영은 무의로 끝나고 마음에만 그 멋진 풍경을 담아두기로 한다.
백병산을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하던 겨우살이가 석개재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고 덕분에 한움큼 어렵게 노획하여 행장 속에 갈무리하는 여유도 부려본다.
면산에서 1시간 남짓 내려선 지점에서 오른쪽 아래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너르게 분포되어 있고 지형도상의 광평마을쯤으로 여기지는 곳을 지나치더니 잠시 후 마루금이 오른쪽으로 굽돌며 휘어지고 있다. 근처에는 참호인 듯한 호가 파여져 있고 주위로는 벽돌을 쌓아두었다. 언뜻 숲 사이로 민가 한 채도 보인다. 그렇게 나지막한 능선을 이어가는 동안 저 앞으로 석개재도로가 시야에 다시 잡힌다.
이제 석개재까지는 불과 1km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있지만 그래도 멀게만 느껴진다. 능선은 다시 한번 왼쪽으로 휘어 돌더니 조릿대 군락을 지나치며 마지막 봉우리인 1009.3봉에 올라선다.(13:45)

1009.3봉 정수리에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바로 저 아래가 석개재이고 고달팠던 산행은 종착지를 향하고 있다.
소나무 숲 그늘에 앉아 마지막 한 모금의 물까지 탈탈 털어내며 물통을 비워낸다. 1009봉에서 석개재까지는 불과  5분거리, 급비탈을 쏟아져 내려오면 숲 사이로 시멘트 볼록을 지어서 만든 "심마니 산당"을 지나 곧이어 석개재에 도착이다.(13:58) 면산을 출발하여 1시간 50분 정도가 소요된 셈이다. 석재재는 강원도 삼척시 가곡에서 경상도 봉화군 석포를 잇는 포장도로로 그리 통행량이 많지 않는 해발 900m정도의 고개로 길 양편으로 "세계적인 동굴도시 삼척"을 알리는 곰 형상표석이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다.
하산주로 준비된 막걸리 한 사발에 하루산행의 피로가 녹아든다. 석개재를 뒤로 한 차량은 가곡방면으로 내려서는 동안 오른쪽 아래로 응봉산의 숨은 비경을 간직한 "괭이골"이 깊디 깊은 골을 형성하여 길게 이어져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귀포길 백암수련관에 들러 따뜻한 온천욕을 즐기니 뿌듯한 하루산행이 마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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