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깃재-한티재-우천마을-추령 ☞지도보기 ☞낙동5구간 사진모음

*일시:2003.5.25
*날씨:처음부터 끝까지 비

*산행상세
깃재-(41분)-884.7 헬기장-(1시간 45분)-길등재-(46분)-한티재-(1시간 11분)-우천마을-(50분)-추령
신암분교(08:00)-깃재(신내고개)(08:37~08:40)-884.7봉 헬기장(09:25~09:30)-850 직전봉(10:18~10:24)-612봉 삼각점(11:07)-길등재(11:21)-야구랑곡 안부(11:47)-한티재(점심)(12:07~12:30)-우천마을(13:41)-청주한씨 합장묘(14:07)-헬기장(641.7봉, 단양장씨묘)(14:23)-추령(가릿재)(14:30)-오기저수지 상단 포장도로(14:42)
*기타접근로:신암분교-깃재(1.8km, 37분)  추령-오기저수지 상단(0.7km, 10분)
== *도상거리:17.5km(정맥)+2.5km(접근로)=20km *총소요시간:6시간 42분(순보행:6시간) ==

*참가: 백호산악회 20명
최부근(부회장), 한백기(등반대장 T), 이경수(총무), 김승현, 김용배, 김재권, 이경모, 이종택, 김지용, 최호우, 박준희, 주영기, 정홍조, 박성현, 조동범, 이병목, 정태영, 정광수, 김흥수, 임상운(기록)

 

=== 비 내리는 정맥엔 운무만 가득하고... ===


제법 거센 빗줄기가 영양으로 향하는 버스의 차창을 심하게 두드린다.
내심 쉼 없이 움직이는 차량 와이퍼가 제발 작동을 멈춰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었지만 하늘은 그런 바램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기세를 꺽을 줄 모르고 있다. 내리는 비와는 아무 상관 없는 듯 우리를 실은 버스는 백암온천을 지나 구불구불 산길을 휘어돌아 구주령을 거뜬히 넘어서고 산행 들머리인 수비면 신암리 신암분교 앞에 멈춰섰다. 새벽 5시에 지곡골을 출발하여 대략 2시간 50분 가량 소요되었다.

이번 구간은 신암분교에서 정맥 마루금인 깃재에 접속하여 한티재를 넘어서서 추령(가릿재)까지 어어지는 길로 접속구간까지 포함한다면 도상거리 20km에 육박하는 거리다. 다음 구간 이어야 할 백암산까지의 거리도 만만찮을뿐더러 백암산에서 백암온천까지 내려서는 4km의 접속구간이 부담스러워 4구간에서 깃재까지 진행했고, 5구간을 추령까지 끊어주므로 다음구간인 백암산까지의 부담을 덜기 위함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km에 이르는 거리를 6시간 40분 정도에 주파하므로 상당히 빠른 속보를 보였다. 전 구간의 고도차가 그리 크지 않은 거의 평지성 능선을 이어온 탓도 있지만, 내리는 비로 인하여 엉덩이 붙일 곳이 마뜩찮은 관계로 휴식시간이 그만큼 짧았었고 사위 조망이 짙은 운무로 막혀있어 걷는다는 것 이외에는 전혀 조망이 없었던 것도 한 몫 차지하고 있다. 비록 조망이 없었던 산행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벗삼아 괴기스러울 만큼 울울창창한 원시림 속을 헤집고 다닌 듯한 색다른 경험과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던 하루발품이었다.

▼신암분교를 뒤로 하고 깃재를 향하는 발걸음이 자못 당당하다.(사진의 뒷모습은 최부근, 박성현님)
오전 8시 정각, 1회용 우의를 걸치고 베낭커버 씌우니 그런대로 우중산행이 준비되는 셈이다.
신암분교를 뒤로 하고 깃재를 향한다.오늘은 비 때문인지 참석회원도 20명, 단체산행 치고는 단촐하다 해야하나? 하지만 모두들 비장한 각오(?)로 산행에 임하는 듯 씩씩한 걸음들이다.
마지막 민가를 지나 개울 하나를 건넌다. 두 번째 계류를 건너선 갈림길에서 왼쪽 산자락에 붙게되자 이내 팍팍한 오름이 시작된다. 잠시 후 "어! 이 길이 아니잖아!" 분명 지난번 깃재에서 내려 설 때는 계류를 세 번 건넌 기억이건만 길은 계속 지릉을 타고 오르고 있다. 되돌아 내려서서 다시 갈림길을 만났던 지점까지는 제법 많은 발품을 팔았기에 우리의 대장은 과감하게 일단 주능선에 붙은 후 상황파악을 하기로 하고 계속 오름을 어어간다. 다행스럽게도 또렷한 산길은 주능선이 가까워지면서 오른쪽 남서방향으로 산허리를 넘더니 지난 산행시 하산했던 눈에 익은 산길로 접어든다. 그렇다면 두 번째 계류 이후의 갈림길에서 정면 계곡길과 왼쪽 산자락으로 붙는 길은 모두 깃재로 올라서는 길임이 확인된 셈이다.

8시 37분, 정맥마루금 눈도장을 찍어 두었던 깃재(신내고개)에 올라선다. 지난번 하산시 까마득하게 내려섰던 길이건만 예상외로 쉽게 정맥 접속점에 도달했다.
깃재에서 잠시 후미를 기다리는 사이 부산 석천산악회 낙동정맥팀을 만났다. 그들은 애미랑재에서 한티재까지 진행중에 있었고 우중에 정맥팀을 만났다는게 한편으론 반갑기도 했다. 역시 일요일날 산행을 하게되니 산님들도 만나는 모양이다. 깃재에서 후미팀을 기다리며 잠시 숨을 고른 후 왼쪽(동쪽) 숲으로 파고든다.
간간이  금강송들이 눈에 띈다. 아랫부분은 흠뻑 젖어 검은 빛이지만 역시 위로는 붉은 기운이 활기차 보인다.  842봉을 넘어서자 능선은 밋밋하게 이어지고 있다. 하늘을 덮은 울울창창한 숲길에서는 빗줄기가 다소 가라앉는 듯 했지만 그것은 잠시의 착각일뿐 숲이 조금이라도 하늘을 열면 여지없이 쏟아지는 비를 온 몸으로 받아 내야만 했다.

깃재에서 10여분 진행후 밋밋하던 능선이 왼쪽으로 살짝 꺽으며 내려서는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08:49~08:56) 말이 휴식이지 어디 엉덩이 붙일 만한 처지가 아니다. 이미 온 몸은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고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젖은 몸이 식으면서 온 몸에 한기가 밀려든다. 다시 부지런히 걷는 것이 오한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이다.
마루금은 고만고만한 높이로 큰 오르내림이 없다.
09시 10분, 좌우로 급사면을 이룬 짧은 바위날등지대를 지났는가 하는사이 뒤에서 갑자기 "쿵" 하며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봤더니 김승현님께서 능선에 가로놓인 고사목 한 그루에 그대로 박치기를 시도하는 재미난 역사를 만들고 계신다. 하지만 본인은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고, 오늘처럼 비오는 날엔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거기에다 후드까지 덮은 상태라 전방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는 탓이다.

09시 25분, 완만한 평지성 능선을 이어 폐헬기장으로 되어있는 884.7봉에 이른다.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깃재에서 약 2km 거리에 있는 884.7봉까지는 휴식시간 포함하여 50분 가량이 소요된 셈이다.
이쯤에 서게 되면 건너편으로 일월산이며 지나번 구간 지나왔던 통고산, 칠보산이 보일법도 하건만 짙은 운무는 사위를 가리고 있어 그저 답답하다. 걷는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후미팀을 걱정하는 한대장님의 발길이 또다시 884.7봉에서 멈춰서고 모두들 제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염려하는 사이 부산 석천산악회팀이 속속 지나치고 있다.
잠시후 정광수님이 도착하여 후미상황을 알려주자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 듯 884.7봉을 출발한다.(09:30)

헬기장이 있는 884.7봉에서는 왼쪽으로 살짝 꺽어가는 내리막이다. 여전히 길은 유순하다. 앞서가던 부산팀을 만나게 되자 보행속도는 갑자기 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비오는 오솔길이 흥에 겨워서인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함인지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자적 걷고 있다. 그들 중 한 분이 타령 한 곡조를 멋들어지게 불러내자 우리팀에서 앵콜을 청하고...
그렇게 20여분 가까이 그들과 뒤섞여 진행한 후에 겨우 부산팀이 길을 내어주고 느렸던 발품을 만회하기 위해 그들을 앞질러 빠른 걸음으로 진행한다.

09시 53분, 봉분이 다 파헤쳐진 무덤 1기를 지나친 내림길에서 왼쪽으로 관중이라 불리는 고비밭이 넓게 펼쳐진다. 깊은 수림, 자욱한 안개로 가시거리는 불과 10m 정도..... 마치 열대우림지역의 원시림으로 빠져든 기분이다.
용니계곡이 바로 오른쪽 아래라고 생각되는 지점의 날등에서는 호박잎만한 왕취밭을 만난다.(10:00) 사실, 오늘은 아예 찬거리가 될 만한 산나물이나 좀 뜯을 요량으로 나섰지만 산신령이 노했는지 하루종일 비를 뿌리는 통에 일찌감치 나물산행을 포기했건만 왕취밭에서 잠시 마음이 동해지지만 짐짓 외면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10시 18분, 지형도상의 850.5봉으로 갈라지는 지점의 봉우리에 올라섰다.(6분 휴식) 하지만 가시거리가 없는 탓에 정확한 지형파악은 곤란했다. 884.7봉을 지나 850.5봉 직전까지 도상거리 약 3km를 48분만에 진행한 셈이다.
850.5 직전봉을 지나자 길은 오른쪽(남서)로 꺽이며 떨어지는 내리막이 시작된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는 여전하고 가끔씩 강하게 부는 바람은 마치 태풍의 한 가운데를 걷는 듯 위태로운 걸음이 이어진다. 잠시 잠시 갖는 휴식은 오히려 한기를 몰고오는 관계로 쉬는 시간이 오히려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850.5봉을 지나 10여분 내려서게 되니 능선갈림길이다.(10:34) 정맥은 왼쪽(남서)으로 떨어지는 내리막이고 초입으로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길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또렷한 길은 절터로 내려서게 되는 길이다. 다소 급한 내리막길을 12분 정도 떨어지게 되니 왼쪽으로 소나무가 간벌된 지역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이 간벌지는 612.1봉 직전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어둡고 습한 깊은 수림을 빠져나와 모처럼 하늘이 빤하게 열리기 시작하더니 왼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간벌된 골짜기 저 아래로 옛날 신라 화랑들이 수련하던 곳으로 알려진 화랑곡으로 내려서는 골짜기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오른쪽 계골마으로 흘러드는 문상천의 협협한 골짜기로는 여전히 짙은 운무가 지척으로 골골이 들어앉아있어 마치 구름 위를 떠가는 기분이다.
10시 59분, 짧은 오름을 이어 화랑곡마을 바로 상단의 작은 산봉에 올라선다. 이 봉우리는 612.1봉 바로 직전봉으로 헬기장을 조성하려고 했었던 듯 열 서너평 정도의 평탄면을 깍아 놓았고 한 켠으로 터를 닦으며 베어 낸 듯한 나무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남서쪽 건너로 볼록하게 솟아오른 612봉이 건너다 보이는 이 산봉은  우측으로 트래바스 된 길이 있으므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여기서 약 200m, 6~7분 가량을 더 나서게 되면 "山" 이라고 새겨진 시멘트 삼각점이 있는 612.1봉에 이른다.(11:07) 별 특징없는 산봉으로 왼쪽으로 짧은 능선 하나가 흘러 내리고 있다.

612봉을 지나 100여m 가량 진행하게 되면 다시 간벌된 소나무가 쓰러져 있는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11:10) 언뜻 정면으로 똑바로 이어지는 능선이 정맥 마루금으로 여겨지기 쉬운 곳이지만 여기서는 오른쪽 아래 사면으로 떨어져야 한다. 소나무가 쓰러져있는 이 지점부터 다시 간벌지가 시작된다.
이쯤의 위치라면 동쪽으로 있다는 산불감시초소와 발리천 너머의 울련산(938.6m)이 보일만도 하건만 여전히 시야는 사방으로 운무만 자욱할 뿐이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비탈로 내려서게 되니 곧이어 뚜렷한 능선을 접하며 길은 유순하게 내려서고 있다. 왼쪽으로 다시 간벌지대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후 짧게 나타나는 이깔나무터널(11:18)을 빠져나와 내려서게 되면 정맥을 가로 지르는 또렷한 잘록이가 있는 4거리에 이르게 된다.(11:21) 옛 고개마루인 길등재에 이른 것이다.
오른쪽은 계리의 계골마으로 내려서고 왼쪽은 발리로 향하는 쥐골로 내려서는 길이다. 고개를 지나 20m 가량 올라서게 되면 다시 능선이 정면과 우측으로 갈라지게 되고 우측으로 조금 내려서게 되면 봉분 큰 무덤 1기가 나타난다.(11:22)
무덤 앞으로는 멋들어진 춘양목사이로 계골마을 논배미들이 내려다 보인다. 무덤을 지나치게 되면 곧바로 넓은 차도가 관통하는 산악임도에 이른다.(11:24) 이 임도는 계골마을과 발리를 연결하는 길로 조금 전에 지나쳐 왔던 옛 고개인 길등재를 대신하는 차도로 여겨진다. 문명의 이기는 그렇게 옛 고갯길을 지난 세월 속에 묻어두고 새로운 편리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세월 속에 묻히고 잊혀지는 것이 인간사만 아니라 정맥을 넘나드는 고갯길 또한 그러하다. 850봉을 지나 이곳 산악임도까지는 약 4km의 거리로 1시간 만에 도착했다. 전체적인 고도가 완만했던 탓도 있었지만 상당한 속보로 진행했었다.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숲으로 접어든다. 임도 사면을 올라서는 짧은 절개지는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어 올라서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임도를 지나쳐 6분 만에 만나게 되는 무덤에서는 왼쪽으로 발리를 향하는 계곡이 내려다 보이고 계곡 주위로는 넓게 벌목이 되어있는 민둥사면이다.
이어서 3분 만에 또다른 낡은 무덤 1기를 지나친다. 길등재를 지나면서부터는 마을이 가까운 탓인지 마루금에서 무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밋밋하게 이어오던 능선이 왼쪽으로 슬쩍 꺽이는가 하더니 무덤 하나를 더 지나쳐 잘록이인 야구랑곡 안부에 이른다.(11:47). 오른쪽 아래로 야구랑곡을 향한 희미한 내림길이 보이고 왼쪽은 여전히 벌목지대가 전개되고 있다.
야구랑곡 안부를 지나 산굽이 하나를 휘어돌자 저 앞으로 발리 일대의 올망졸망한 마을이 내려다 보이며 한티재가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왼쪽 민둥사면으로는 어린 잣나무를 조림해 두었지만 대부분이 노랗게 죽어가고 있는 상태다. 곧 한티재가 나올 법도 하건만 길은 고만고만한 산봉을 계속 넘나들고 있다.

▼한티재-영양2구간 안내판 앞에 선 선두팀(좌에서 김재권,정광수,이경모,한백기,김승현,이병목,박준희님)
11시 55분, 작은 산봉 하나를 넘어선 내리막에 무덤 1기를 만나게 되고 오른쪽 아래로 영양~봉화간 31번 국도가 굽어도는 지점이 내려다 보인다. 바로 앞으로 쭉쭉 뻗은 낙엽송 숲을 지나면 키 작은 소나무 숲길로 바뀐다. 십자로 안부를 지나(12:00) 솔 숲을 빠져 나오게 되니 이윽고 31번 포장도로가 관통하는 한티재에 이른다.(12:07)
길등재의 산악임도를 지나 약 2.7km의 거리로 43분이 소요되었다. 한티재는 발리재라고도 부르며 확연한 고개라기 보다는 그저 밋밋한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다. 수비면 일대가 이미 해발 400m 이상의 고산분지를 이루고 있는 탓에 이름만큼 그리 높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고갯마루 건너편으로 영양군에서 설치한 "낙동정맥 영양2구간" 한티재~검마산휴양림 갈림길 15.3 km 에 대한 대형 등산안내판이 걸려있고 <한티재(430m)>, <추령 6.6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영양군의 전설에
따르면 한티재는 수비면 계리에 있는 큰 재로 임란시 의병과 왜군이 이 골짜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바 있어, 지금도 비만 오면 핏물이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며, 통로의 반석 위에는 많은 말발굽 자국을 선명히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일대에서 바위와 반석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한티재 이정표 뒤쪽 무덤 2기가 있는 곳에서 젖은 몸을 잔뜩 웅크려 점심식사를 한다. 평상시 식사시간이 주는 느긋함은 호사스러운 사치였던 듯 짧은 식사시간동안 한기가 몰려들고 있다. 최소한 밥먹는 시간 동안만은 비가 멈취주길 바랬지만 무심한 하늘은 잠시의 여유에도 인색할 뿐이다. 주절주절 한없이 내리는 비가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12시 30분, 쫓기듯 한티재를 뒤로 하고 추령을 향한다. 이정표 바로 뒤의 무덤터를 지나치게 되면 얼마 안가 왼쪽에서 합류하는 길을 만나게 되는데 한티재 임도를 따라 30m 정도 진행후 우측으로 접어드는 소롯길과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
한티재에서 추령까지는 영양군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요소요소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으며 간간이 나무의자를 만들어 둔 쉼터를 만나게 된다. 또한 등로 주변의 나무들은 제각기 그들만의 명패를 걸고 산객을 맞고 있으며 잘 가꾸어진 오솔길은 일종의 자연학습관 역할을 하고 있다.
한티재에서 10분 가량 올라서면 나무의자가 설치된 첫 봉에 올라선다.(12:41) <추령 5.9km>를 알리는 이정표와 김소월의 "산" 이라는 싯구가 걸려있다. 역시 이후의 길도 잘 다듬어진 오붓한 길이다. "통정대부 안동김씨묘비"가 있는 무덤 2기를 지나자(12:48), 된비알이 산객을 맞는다. 
◀"산길"이란 싯구가 걸린 산봉에 선 조동범님

두 번째 봉을 힘겹게 올라서자(13:00) 이번에는 양주동의 "산길"이라는 싯구가 반긴다. 힘들여 올라서는 봉우리마다에 싯구와 의자를 설치해 두므로 산객의 훌륭한 쉼터를 제공하는 영양군의 노력이 고맙기 그지없다. 여기서 추령까지는 5.0km를 알리고 있다. 또 한번의 짧은 가파름을 올라서자 역시 김억의 "산수갑산" 이란 싯구가 잔뜩 비를 머금고 있다. 이 지점에서는 능선이 좌우로 갈라지고 있는데 우측길로 접어들 게 된다.(13:05)

<추령 4.3km>를 가리키는 팻말 옆으로는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란 싯구를 지나친다.(13:12) 10여분 더 길을 재촉하여 산길이 왼쪽으로 꺽어 들더니 이내 잘록이 하나를 지나친다.(13:23) 주능선 왼쪽 산허리를 타고 우천마을로 향하는 희미한 소롯길이 수풀 속에 묻혀있다. 오른쪽 역시 산허리를 타고 비스듬히 돌아가는 길이 보인다.
또 하나의 산봉을 넘어선 내리막에서 "진성이씨묘"에 이르니(13:37) 저 아래로 우천마을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무덤을 지나쳐 숲길을 내려오면 고추밭 가장자리로 내려서게 되고 이내 우천마을 최상단 갈림길이다.(13:41)
"우천(496m)" <추령 2.7km> <우천마을 0.3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우천마을이 바로 왼쪽 아래인 갈림길에서 갯버들나무 오른쪽을 돌아드니 왼쪽으로 기왓장이 수북히 쌓인 무너진 폐가 한 채 옆으로 염소 두 마리가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정맥은 허리를 낮추고 마을 가까이까지 내려앉아 있는 셈이다.

풀밭 뒤로 잣나무 빼곡한 수림 속으로 접어든다. 잣나무 사이에는 우천마을에서 올라붙는 소롯길을 만나며(13:44) 이 길은 우측으로 꺽어들어 산허리를 넘어서고 있다. 정맥과 어우러진 마을 뒷산을 타고 오르고 있다.
산허리를 휘어넘던 길은 어느샌가 밭고랑같은 펑퍼짐한 계곡을 타고 오르는 기분이 든다. 확연한 골짜기는 아니지만 좌우로 지릉이 뻗어내린 걸로 봐서 올바른 정맥은 아닌 듯하지만 모든 표지기들이 확연하게 난 골쪽으로 발길을 안내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 봤더니 왼쪽 위로 나즈막한 능선이 어림된다. 결국 온전한 정맥길은 잣나무 숲에서 마을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정면으로 치고 올랐어야 했으나 그 곳에선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여튼 표지기를 따라 소나무가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길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주능선에 올라 붙었다.(13:50) 여기서 정맥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마루금을 넘어서서 건너편 우천쪽으로 내려서는 넓은 길도 있다. 제대로 된 마루금을 확인할 겸 왼쪽으로 접어들어 잠시 올라 봤지만 능선을 이어오는 족적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결국 대부분의 정맥꾼들이 마을 뒷산길을 이용하여 산허리를 타고 넘어 능선에 다시 붙게 된다는 결론이다.

주능선에 올라붙은 지점에서 4분 거리에 <추령 1.5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친다.(14:05) 곧이어 내림길에서 만나게 되는 <청주한씨, 인동장씨 합장묘>에서는 무덤 왼편 앞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빗줄기는 갑자기 기세가 맹렬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오늘 날머리인 추령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위안이다.
펑퍼짐한 안부 하나를 지나쳐 올라서는 길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가로누워 길을 막고 있다.(14:12) 이 지점에서 잠시 헷갈렸었다. 정맥은 쓰러진 나무 뒷편으로 있었으나 소나무를 피해 오른쪽(동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잠시 따라 나섰다. 뚜렷하던 길이 갑자기 희미해지더니 "평택임씨선친 찾아가는길" 이란 빨간색 리본이 붙어있다. 약간의 의심이 있었던 터라 얼른 소나무가 쓰러져 있던 곳으로 되돌아 나왔더니 쓰러진 소나무 뒤편으로 또렷한 정맥이 나타난다.
길은 밋밋한 등성이 하나를 넘어서서 오른쪽으로 꺽이더니 곧이어 "평택임씨 선친묘소"를 알리는 표지기를 다시 만난다.(14:15) 결국 조금전 소나무가 가로 막은 길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던 길은 우회로인 셈이었다.
선친묘소를 찾아가는 빨간색 표지기... 요즘같이 숨가쁜 시대에 조상묘소를 찾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고작해야 일 년에 한 두 번 찾게 되지만 산길은 늘 알쏭달쏭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묘소 찾는 길을 표지기로 안내하는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그 묘소의 후손은 아마도 산을 자주 찾는 매니아임이 틀림없으리라.

▼5구간 날머리인 추령 고갯마루 쉼터-좌에서 최호우,박성현,김용배,정홍조,주영기,최부근,조동범님
오른쪽 갈림길과 합류하여 잠시 내려서게 되니 희미한 십자로안부 하나를 지나친다.(14:16) 이어서 만나야 할 636.4봉의 삼각점은 확인하지 못했다. 우회했었는지, 아니면 삼각점 자체가 없었던 것인지?
14시 23분, 잡풀 무성한 헬기장에 이른다.(641.7봉) 폐헬기장을 지나 20m 가량 나서게 되면 커다란 봉분이 있는 "단양장씨묘"를 만나게 된다. 역시 봉분 위로는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이제 추령까지는 곧장 내리막이다. 무덤에서 왼쪽으로 살짝 꺽이며 내려선다. 3분 가량 구르듯 떨어지면 왼쪽으로 석물 두 개가 서 있는 파헤쳐진 무덤 1기를 지나(14:26)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추령에 이르게 된다.(14:30) 한티재에서 도상거리 5.8km(이정표에는 6.6km)를 2시간 동안 내달려 왔다.

추령은 이 지역 주민들에겐 가릿재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영양군 일월면 가천리와 수비면 오기리를 연결하는 도로로서 서쪽 아래 가천리방면으로는 시멘트포장이 완료된 상태다. 고갯마루에는 옛스러운 움막 하나가 반가이 정맥꾼을 맞고 있다. 번듯한 간판을 걸고 있는 <추령쉼터>의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잠시 비를 피한다.
이것으로 오늘 정맥 마루금의 운행은 끝을 맺은 셈이고 제법 긴 거리지만 비로 인해 오히려 전반적으로 속도가 빨라졌고 깃재를 출발하여 약 5시간 50분 만에 추령에 이르렀다. 다음구간 이어야 할 산자락 초입으로 가지런한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휴양림 8.7km> <한티재 6.6km> <저수지 1.0km> <가천리 3.8km> 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추령에서는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오기저수지상단 도로까지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10여분 발품을 더 팔아야 한다. 이 길은 대형버스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게 닦여져 있는 편이지만 회전은 곤란할 듯싶다.

14시 42분,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오기리~우천마을 도로변으로 내려섰다. 오늘은 그런대로 부지런히 걸은 탓에 선두팀으로 내려선 편이고 15시 30분 경에 도착한 후미팀과는 약 50분 정도의 시간차를 두었다.
속속 도착하는 일행들과 우중에서도 무사히 5구간을 마친 자축의 악수를 나누고, 버스 안에서는 한 차례 홀딱쑈가 벌어진다. 특히나 이번 산행에서는 전태환님의 특별 찬조금 덕분으로 하산주에 오징어 무침을 곁들인다.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주신 최호우님 사모님, 그리고 맛있게 버무려 주신 김승현님을 비롯해 거금을 희사하신 전태환님께 감사하며 홀짝홀짝 들이킨 맑은 물에 어느 순간 "뿅" 하고 맛이 간다.
귀포길 백암수련관에 들러 온천욕 즐기고, 백암 흰바위가든에서 맛있는 된장찌게에 찹쌀동동주 한 사발 곁들이니 비오는 날의 하루 산행이 녹아든다.

<마루금에 비내리고>

사무치는 그리움 안고 한 달음에 그 길을 올랐지요
짐짓 모른체 외면하는 그 무덤덤 위로
애꿎은 작달비만 뿌리는구려
강에도, 마을에도,
당신의 정수리에 이어 내 마음에도....

농밀한 운무속 ....
부드런 당신의 속살 헤집으며
그저, 그 품에 안겼다는 자족 하나로
눈먼 가슴은
아련한 그길
가고싶은 그 길을 욕심껏 걸었다오

먼 훗날 저 심연의 바다에서 만나자는
속절없는 기약만 남기고 헤어지는 빗방울의 두런거림이
내겐 그저 아득한 기다림처럼 들린다오.

모롱이 하나 넘어선 신갈나무 숲 길에서
스치는 바람처럼 그 말을 흘렸어야 하는건데...

당신 속에서도 당신을 그리워 한다고....

<비 내리는 낙동정맥 "추령 가는 길에서" 200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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