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박점고개-장구메기-화매재-황장재 ☞지도보기 ☞낙동9구간 사진모음 

*일시:2003.9.2
*날씨:흐린 후 비

*산행상세
삼의3교(블루밸리 쉼터)-(48분)-박점고개-(1시간 9분)-630.5봉(여정봉)-(1시간 34분)-화매재-(1시간 25분)-황장재
삼의3교(07:46)-박점고개(08:34~08:45)-656봉 우회(08:56)-포도산 삼거리(09:08)-송전탑(48번)(09:40)-평산신씨묘(09:50~10:00)-630.5봉(여정봉,삼각점)(10:04)-묵정밭(장구메기의 눈)(10:15)-임도접-송전탑(50번)(10:27)-임도3거리(당집)(10:34)-남평문씨묘(10:38)-포산마을 지나 갈림길(10:47)-시멘트길에서 정맥접속(10:53)-갈림길(청주한씨묘)(10:55~11:04)-송전탑(56번)-송전탑(57번)(11:17)-능선3거리(11:21)-화매재(중식,11:50~12:24)-과수원 최상단(12:28)-묵정밭(임도접)(12:38)-능선갈림길(13:00)-532봉(13:34)-황장재(13:55)

*기타접근로:삼의3교(블루밸리 쉼터)-(3.2km,50분)-박점고개
== *도상거리:14.2km(정맥)+3.2km(접근로)=17.4km *총소요시간:6시간 9분(순보행:4시간 56분) ==

*참가: 백호산악회 24명
최부근(부회장), 이경수(총무), 한백기(등반대장T), 박춘하(등반대장L), 황병수, 이종택, 김지용, 성기봉, 이재천, 임상운, 김승현, 이병목, 정광수, 최호우, 신용호, 박준희, 정홍조, 조동범, 전태환, 권진만, 정태영, 김용배, 김재권, 이경모

 

=== 정맥구간중 지형이 가장 까다로운 장구메기, 포산마을을 빠져나와 황장재까지 ===


이렇다 할 큰 태풍은 없었지만 유난스레 많은 비를 뿌렸던 올 여름도 막바지에 접어 들었고 오늘 산행도 비를 동반한 우중산행을 예상했었건만 날씨는 잔뜩 흐린 기운만 보일뿐 우려했던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퍽이나 다행한 일이다.
영덕 3거리를 지난 버스는 안동으로 향하는 34번 국도의 아침을 가른다. 영덕군 지품면 일대는 도로변의 복숭아 과수원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매년 4월에는 복사꽃 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우리가 달리는 도로는 봄이면 화사한 꽃길로 단장되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꽤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이다.
황장재 못미친 원전에서 911번 석보방면 지방도를 따라 우회전 한 버스는 산행 중간귀착지인 화매재를 넘어선다. 영양,청송의 갈림길인 화매삼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917번 도로를 따르게 되면 삼의3교 블루밸리쉼터에 이르게 된다.(07:40) 포항과 인접한 지역이라 약 1시간 20분 만에 정맥 접속구간 들머리에 이르렀다.

이번 구간은 낙동정맥의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영양군을 벗어나게 되고 정맥은 줄곧 서진을 하여 청송땅과 접하게 되어 내륙 깊숙이 파고들게 된다. 특히나 장구메기와 포산마을 일대에서는 낙동정맥 구간중에서 가장 까탈스러운 지형으로 인해 난이도를 요구하는 독도주의 구간이다. 1:50,000 지형도는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고, 곳곳에 임도와 마을길을 지나게 되는 구간으로 많은 선답자들이 이 일대에서 한 번쯤은 우왕좌왕 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팀 역시 포산마을 일대에서 마을 뒤쪽의 야트막한 능선을 놓치고 마을길을 통하여 다시 마루금에 붙는 오류가 있기도 했다. 화매재에서 황장재까지는 대체적으로 등로의 폭이 좁은 오솔길이지만 많은 표지기들의 친절한 안내가 있는 또렷한 길로 이어진다.

▼삼의교에서 박점고개로 올라서는 임도-계곡은 분주한 매미소리만이 산객들을 맞고 있다.
07시 46분, 삼의교를 출발하여 정맥 접속점인 박점고개를 향한다.
지난번 하산시 소용돌이 치던 계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적하기 이를데 없고 맑은 물은 소리없이 조용히 자연의 순리에 따라 제 갈길을 찾아가고 있다. 다소 습한 기운이 감돌기는 하지만 흐린 날씨는 오히려 뜨거운 햇살을 감추고 있어 산행의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맴맴 촤르르르" 좁은 계곡에는 제 짝 찾아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매미소리만 분주히 나뭇잎을 흔들고 있다.

08시 34분, 본격적인 낙동정맥과 접속하는 박점고개에 이르렀다. 아직은 초반이라 원기가 충전한 탓인지 지난번 50분 만에 내려온 길을 올라갈 때 역시 50분 가량이 소요되었다. 다소 빠른 걸음이었다. 삼의리와 속곡리를 잇는 고개마루엔 제법 선듯한 바람이 불어 초반에 흥건히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하다.
채 본격적인 마루금을 타기도 전 서비스구간이 너무 길어 기력이 다 빠져 버렸다는 이재천님의 너스레에 모두들 동감한다. 소규모 인원일 경우는 고개마루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면 초반 발품을 덜 수고 있으련만...
(박점고개는 정확한 지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과산" 에서는 박짐고개라 표기해 두었고, 삼의교가 있는 블루밸리쉼터의 지명은 박점마을이다. 따라서 박점고개라 칭하기로 함)

08시 45분, 10분 남짓한 휴식을 뒤로 하고, 한대장님을 필두로 일제히 숲길로 접어든다. 노란 물통이 있는 공터에서 숲으로 들자 곧바로 우측으로 꺽이며 줄줄이 표지기들이 안내하고 있는 능선을 타야 한다. 무심코 정면으로 내려서는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박점고개까지 올라왔던 지루했던 임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상큼한 오솔길이 펼쳐진다. 때마침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진한 풀내음이 코끝을 스치며 기분 좋은 출발을 보인다. 첫 번째로 나타나는 봉우리인 656봉까지는 좌우로 급사면을 이룬 좁다란 능선 날등으로 이어진다. 10여분 진행 후에 바로 앞으로 보이는 656봉 정수리를 우회하여 슬그머니 왼쪽으로 트래버스 된 길이 초반의 발품을 덜고 있다.(08:56) 656봉을 왼쪽으로 돌아 나서자마자 길은 잠시동안 사정없는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다.
포도산삼거리를 향해 가파른 오름이 시작되기 직전 좌우로 희미한 갈림길이 수풀에 덮여있다. 정맥은 곧바로 정면의 능선을 타야 하고 왼쪽은 포도산 삼거리를 오르지 않고 산허리를 타고 돌아 나가는 지름길이고, 우측 역시 포도산으로 우회하는 길이다. 정면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된비알을 힘겹게 올라서면 작은 산봉이 정맥꾼을 맞는다. 이후 한고비를 넘긴 듯 1분 가량 순하게 이어지는 능선 끝자락이 포도산 삼거리다.(09:08) 박점고개에서 23분이 소요되었다.
정맥은 왼쪽으로 표지기가 조롱조롱 달린 순탄한 남쪽방향으로 급하게 꺽어 나가야 하고 오른쪽으로 또렷이 난 길은 포도산으로 이어진다. 포도산(葡萄山, 747m)은 이 삼거리에서 북으로 700~800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내심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가파른 비탈을 올라오느라 기진맥진한 체력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정맥길로 접어든다.

풀잎에 맺힌 물방울들이 신발과 바지가랭이를 촉촉히 적시지만 분위기 좋은 소나무 숲 오솔길은 오붓하게 이어진다. 삼거리를 지난 6분 거리의 밋밋한 안부에서 왼쪽으로 포도산 삼거리를 우회하여 올라오는 지름길을 만난다.(09:14)
평지나 다름없는 부드러운 능선을 이어가던 길은 우측으로 무덤을 지나치면서 정면 능선을 왼쪽으로 빗겨간다.(09:22)
3분후 무덤 하나를 더 만나게 되고 무덤 앞 공터엔 고사리가 빼곡히 자라고 있다.(09:25) 10여분 길을 더 이어 나지막한 산봉에 올라서더니(09:35) 우측(남서)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50m 가량 진행하던 능선은 다시 왼쪽(남동)으로 꺽으며 내려서게 된다. 내리막 30m 지점쯤에 최근에 벌초한 듯한 깨끗한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09시 40분, 첫 송전탑(48번) 아래를 통과한다. 잘 자란 잔디밭이 쉬어가기를 유혹하는 곳이다. 송전탑을 지난 1분 거리로 잡풀이 무성하여 그 역할을 다한 듯한 묵은 임도를 가로지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임도인지 구별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수풀이 무성하다.
이 임도는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닦여진 듯하고 포산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편법이긴 하지만 장구메기일대를 돌아 나가는 수고를 덜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임도를 건너면서부터 길은 서서히 오름으로 진행되고 그 오르막 끝지점 인근으로 불탄 흔적이 있는 고사목이 상당수에 이른다. 능선마루에 서게 되면(09:46) 왼쪽(남동)으로 방향이 전환되며 몇 발자국 더 나서면 저 아래로 속곡리 상속동이 내려다 보인다.

09시 50분, 평산신씨무덤을 지난 이깔나무 아래서 잠시의 휴식을 가지며 새벽밥 먹고 집떠난 허기를 달랜다. 바로 앞으로 630.5봉이 올려다 보인다. 10여분 휴식을 접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짧게 나타나는 억새밭을 지나 산불 흔적이 있는 능선에 올라서자 낡은 삼각점이 고스락에 정좌하고 있는 630.5봉(5만 지도에는 632.1봉)에 오른다.(10:04)
이 산봉에 "낙동정맥 여정봉" 이라 씌여진 자그마한 팻말이 세워져 있고 정수리부에는 낡은 삼각점이 있다. 주위로는 참나무를 베어내 지나온 방향으로 제법 시야가 트이는 곳이다. 630.5봉은 박점고개와 화매재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고 지형도에 그어진 마루금을 살펴보면 이 일대가 메기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으며 630.5봉은 메기의 주둥이 부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630.5봉의 이경수, 신용호님-"낙동정맥 여정봉" 이란 팻말이 있고 낡은 삼각점이 있다.
10시 07분, 여정봉 팻말을 지나 오른쪽으로 훽 꺽어 북서로 향하는 내림길로 접어든다. 능선상에 수 없이 나타나는 불탄 흔적의 고사목들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길을 잠시 따른다.
7~8분 후 묵정밭을 만나게 되고(10:15) 밭지대를 오른편에 두고 왼쪽으로 휘어지는 내리막이다.
저 건너로 철탑이 보이고 옛 장구메기 마을의 밭과 수림의 경계를 따라 나선다. 1분 가량 묵정밭 옆을 따르면 밭이 거의 끝나는 지점의 오른쪽으로 늪지대가 나타난다.(10:16) 길은 늪을 오른쪽으로 끼고 잡목과 억새사이를 비집고 오른쪽으로 다시 턴을 하게 된다. 키를 넘는 억새밭 사이로 바스라진 낙엽을 잔뜩 이고 있는 커다란 개미집을 지나친다.(10:11) 이색적이다.
여전히 장구메기 일대의 묵정밭을 오른쪽에 두고 오르는 길이다. 권진만님께서 예전에 이 길을 지날 때는 배추농사를 크게 짓던 곳이라 일러주신다.
장구메기란 지명은 이 일대의 묵정밭 분지가 장구의 잘록한 부분처럼 패여 들어가 그렇게 불려지는지? 메기 머리의 형상을 한 지형이라서 인지 알쏭달쏭하다. 어째든 이곳 지형은 묵정밭을 가운데로 두고 한 바퀴 삥 돌아 나가며 심한 맥돌이를 하는 지형으로 메기의 눈 부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맥돌이가 거의 끝날 즈음 왼쪽 아래로 넓은 갈래길 하나를 지나치지만 정면방향으로 표지기들이 안내한다. 갈래길을 지나친 후 1분 만에 정맥은 임도를 만나게 되고 비로서 장구메기 일대를 온전히 빠져나온 셈이 된다.(10:27) 표지기가 없었다면 제대로 된 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지형으로 마치 긴 미로 거친 듯한 기분이다.(장구메기마을-메기의 눈부분, 맥돌이 11분 소요)

임도에선 왼쪽으로 접어들어 1분 거리에 건너편에서 보이던 두 번째 송전탑(진보 50번)을 왼쪽으로 두고 지나가게 된다.
이제부터는 임도가 정맥길이다. 7분 가량 진행되던 임도길이 오르막을 올라서자 또다른 임도와 접하는 삼거리 갈래길이다.(10:34) (오른쪽에서 오는 임도는 처음 만났던 송전탑에서 이어지는 길로 대략 20분 정도면 족할 거리를 장구메기로 돌아 나오느라 1시간 정도가 소요된 셈이다.)
왼쪽으로 10m 뒤에 함석으로 만든 당집이 고개마루를 지키고 있다. 표지기들은 모두 당집 뒤로 향하는 능선길로 안내한다. 그러나 결국 두 길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합류하게 된다. 일단은 표지기들의 안내를 받아 정면의 넓은 임도를 버리고 당집 뒤로 접어든다. 길은 넓지만 묵은 임도다. 4분 뒤 왼쪽 솔숲사이로 표지기가 붙어있고 숲 아래로 무덤이 보인다.
10m 가량 왼쪽 숲으로 내려섰더니 "애국지사 남평문씨" 무덤 2기가 잘 가꾸어져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무덤 하나가 더 있는 곳으로 지아비가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가 적힌 깔끔한 화강암 표석까지 서 있다.(10:38)

무덤 앞 경운기 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우측으로 넓은 밭지대를 따라 내려서는 길로 통행이 끊어진 듯한 길이다. 표지기가 안내하는 길들은 상당히 어지럽게 이리저리 굽어 돌아 상당히 헷갈리는 지형이다. 무덤을 지나 경운기길 2분 만에 다시 당집에서 이어지던 임도를 만나게 된다.(10:40) 결론적으로 당집 앞으로 난 임도가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임도 주위로는 수확을 포기한 듯한 무밭이 펼쳐지고 굵은 무는 이리저리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다. 임도를 따라 100m 가량 내려서게 되면 오른쪽으로 무덤(남평문씨) 뒤쪽의 능선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경운기 길과 다시 합류하게 되고 5분 후 비포장길은 시멘트 길로 바뀌더니 저 앞으로 4~5가구 남짓한 포산마을이 지척이다.
우리는 이 지점쯤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만다. 시멘트길 인근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산자락으로 붙어 올라가야 하건만 모두들 들머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포산마을쪽으로 내려서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틈엔가 이용배님이 널브러진 무 하나를 줏어 들고 듬성듬성 깍아 내더니 한 조각 잘라준다. 제법 속이 옹골차고 단맛까지 나는게 갈증을 식히기에는 충분하다.
포산마을 일대는 아늑한 고원분지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넓은 분지로 벼농사가 가능할 정도로 물도 풍부한 곳으로 잘 자란 벼들이 알알이 영글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민가에 들러 담배잎을 정리하는 초로의 부부에게 이곳이 포산마을임을 재차 확인하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무밭을 방치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안타까와 할 뿐이다. 마을 뒤로 정맥을 이어가는 능선이 손에 잡힐 듯 지척이다.
포산마을 저 앞으로 10여가구 남짓한 포산본동 일대를 바라보며 걷는다. 두 마을사이의 가운데쯤에서 전봇대를 왼쪽에 끼고 능선을 향한 갈림길로 접어든다.(10:47) 길은 여전히 시멘트길이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넘어 건너편의 산허리를 돌며 이어지는 길로 전봇대가 가지런하다. 걷고 있는 이 길은 화매리 홀무골과 포산리를 연결하는 도로다.

10시 53분, 산허리를 돌자 왼쪽 능선에서 시멘트길로 내려서는 정맥 갈림길로 서너개의 표지기가 걸려있다. 이 능선에서 시멘트길과 합류하는 소로길을 만나고서야 마을일대에서 표지기들을 만나지 못했던 의문이 풀린다. 결국 우리는 마을 뒷산 약 300m 정도의 마루금 대신 포산을 경유하는 마을길을 따라 잠시 돌아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 서운치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잘 선택했다고까지 자위해 본다. 기나긴 낙동정맥의 외진 마루금이 우리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고, 보듬으며 함께 숨쉬고 있는 이런 아늑한 고원분지 마을을 지나친다는게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멘트길이 정맥마루금과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 2분 가량 진행해서 도로가 막 내림길로 바뀌기 직전으로 왼쪽 숲으로 드는 넓은 길로 접어든다. 초입으로 잘 가꾸어져 쉬어가기 좋은 "청주한씨' 무덤이 이정표가 되고 있다.(10:55)
지금껏 이어온 낙동정맥 구간중 장구메기가 시작되는 630.5봉부터 포산마을을 넘어서는 마루금일대가 가장 난해한 구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루금은 이 일대에서 가장 심하게 이리저리 굽돌이하고 마을이 인접한 관계로 잦은 갈림길과 임도가 어지럽게 난 탓이다.

11시 04분, 잠시의 휴식후 한대장은 화매재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공포하고 후다닥 숲으로 사라져 버린다.
화매재로 향한다. 깨끗하고 또렷하게 난 오솔길은 별 특이한 지형지물 없이 서쪽으로 향하더니 좁은 숲길을 빠져 나오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세 번째 송전탑(56번) 아래에 선다. 왼쪽 건너로 주왕산 일대가 훤히 보이고 고스락은 옅은 구름에 가려져 있다. 이후 오른쪽으로 홀무골로 향하는 갈림길을 지나쳐 네 번째 송전탑(57번)을 지나친다.(11:17)
송전탑에선 정면 솔숲사이로 진입한다. 100m 정도 내려선 임도에서 정면의 넓은 길을 버리고 왼쪽 숲으로 난 갈림길로 접어든다.(11:18) 57번 송전탑을 지나 4분 거리에 있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능선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타난다.(11:21) 여기서 정맥은 봉우리를 직접 오르지 않고 왼쪽(남서)으로 방향을 급하게 꺽어 나간다. 직진하는 능선으로 접어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11시 45분, 무명무덤 1기를 만나 우측으로 나서면 또 다른 무덤을 만나게 되고 바로 아래로 화매재 오르는 차도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2분 거리로 무덤 하나를 더 지나치게 되면 좌우로 키 큰 소나무와 이깔나무가 경계를 이룬 솔옷한 오솔길이다.

▼화매재의 김지용님-영양군을 알리는 대형입간판에는 영양의 명물 고추와 사과그림이 그려져 있다.
11시 50분, 맵싸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고추밭 가장자리로 내려서게 되면 이미 차량으로 눈도장을 찍어둔 911번 2차선 도로인 화매재다. 화매재는 영덕 지품면과 영양 석보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영양군을 알리는 대형 안내판이 서 있고 차량통행은 뜸한 편이다. 포산마을을 지난 시멘트길을 벗어나 화매재까지는 대략 4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도로변에 자리를 잡고 질펀하게 둘러앉아 여유있는 식사시간이다. 박준희님의 돼지수육이 입맛을 돋군다.
12시 24분, 느긋한 식사를 끝내고 약 4.3km의 거리를 남겨둔 황장재를 향한다. 화매재에선 왼쪽 아래로 대림잠업농원을 알리는 프랭카드가 걸려있고 차단막이 있는 길과 과수원을 향한 정면길이 넓게 펼쳐지지만 영양군 안내판 뒤로 있는 가장 오른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야 한다. 왼쪽으로 경작을 그만둔 묵정밭과 몇몇 무덤이 있는 지역을 끼고 오르는 길이다.
100여m 올라서면 왼쪽으로 과수원 철조망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붉게 익은 사과가 가지마다 다닥다닥 열려있다. 보기만해도 군침이 돌만큼 탐스러운 모습이다. 사과밭 뒤 능선 정수리부에 이르게 되면 길은 또렷하고 넓은 길로 바뀐다.
오른쪽 저 아래로 화매리일대의 올망졸망한 마을이며 학교건물이 아담하게 내려다 보인다. 과수원에서 10여분 길을 이어 이깔나무 숲을 빠져 나오게 되면 오른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를 만나고 묵정밭이 넓게 펼쳐진다.(12:38) 밭을 우측으로 끼고 오른다.

12시 45분, 오르막 하나에 이어 무덤이 고스락을 지키는 산봉을 넘어서니 수령 20년 가량된 중키 정도의 소나무 조림지대를 빠져 나가게 된다. 대체적으로 길은 좁고 잡목이 성가신 방면 또렷한 편이다.
13시 00, 능선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왼편으로 90도 꺽어 내려선다. 저 앞으로 마지막 봉우리로 여겨지는 532봉이 뾰족하게 고개를 세우고 있어 "저길 또 넘어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무덤 하나를 지나쳐(13:04) 고만고만한 산봉을 오르내리지만 큰 고도차는 없는 편이다. 정면으로 나타나는 산봉을 왼쪽으로 슬며시 돌아들게 되니 532봉 직전의 안부다.(13:17) 마지막 오름을 위한 준비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짧은 휴식을 갖는 동안 델타 등반대장 정광수님이 쵸코바 하나씩을 쭈~욱 돌린다. 쵸코바에 힘을 얻는다.

잔뜩 습한 기운이 감도는가 하더니 어! 어! 하는 사이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532봉을 향한다.(13:23) 무덤 하나를 지나면서(13:25) 본격적인 가풀막이 시작된다. 이때 애써 참아주던 하늘이 급기야 소나기를 사정없이 뿌려대기 시작한다. 바짝 달아오른 어깨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자 마치 뜨거운 철판에 물을 뿌리듯 열기가 식어 내려간다. "칙- 치이이익" 온 몸이 급속 냉각된다.
그렇게 소나기에 허둥지둥 하는 사이 된비알을 언제 올랐는지 모를 정도로 싱겁게 532봉에 올라선다.(13:34) 532봉은 약간의 돌무더기가 있는 능선 날등을 이루고 있으며 영양, 영덕, 청송을 경계짓는 산봉으로 줄곧 영양땅을 이어오던 낙동정맥이 청송군으로 입성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532봉에서는 남으로 향한다. 6분 정도 오솔길을 따르던 정맥이 내리막에서 우측의 넓은 임도와 합류하고(13:40) 곧이어 오른쪽으로 무덤 1기를 통과한다. 3분 후 쌍무덤 2기를 지나친다.(13:44)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아이러니는 목적지인 황장재가 지척이라는 마음의 여유 때문이리라.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가 경쾌한 자연의 즉흥 연주곡으로 들린다.

13시 52분, 무덤 1기를 지나 20m 후에 연못이 나타난다. 이 깊은 산중에 웬 귀한 연못! 빗방울은 조그만 연못에 파도를 일으킨다. 연못을 지나면서 길은 급한 내리막으로 떨어진다. 발 아래로 자동차 소리며 휴게소 노래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지만 비에 젖은 가풀막이 미끄러워 내려서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이윽고 마지막 짧은 바위사면을 내려와 철망 아래로 뚫린 개구멍을 빠져 나오면 34번 국도의 황장재에 이른다.(13:55) 철망 오른쪽 10m 정도 거리에 정맥으로 진입하는 들머리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기도 하다.
화매재에서 황장재까지는 10여개의 준봉을 넘어 1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되었고 오늘은 선두와 후미가 별반 시간차 없이 거의 같은 시간대에 황장재에 이르렀다. 내리는 비는 그 강도를 더해 이제는 아예 양동이로 쏟아붓듯 퍼붓는 게릴라성 폭우로 돌변하고 박대장은 휴게소 처마에서 콸콸 쏟아지는 빗물에 몸을 씻고 있다.

▼황장재-"영덕호" 나룻배가 보이는 휴식공간에서 막걸리 하산주(좌에서 박춘하,박준희,최호우,정홍조,신용호님)
황장재는 영덕과 안동을 연결하는 2차선 국도지만 고개마루는 4차선 오르막 차도이며 안동 간고등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개다. 해산물이 귀했던 안동지방인지라 인근 강구, 후포, 축산의 해산물이 운반되던 주요 육로로, 이동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등짐장수들의 애환이 서린 고개이기도 하다.
항구에서 갓 잡아낸 고등어는 보부상들에 의해 이 험준한 황장재를 넘어 신촌에서 하루밤을 묵은 뒤 안동으로 이동되었고,전라도 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부산을 거쳐 낙동강 하구를 타고 안동포구로 올라온 소금배와 만나 안동고유의 염장문화를 만들어 지금의 특산물인 "안동 간고등어"를 탄생시키게 했으니 험준한 황장재를 넘어야 했던 안동의 지리적 조건이 또다른 음식문화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일설에 의하면 진보에 있는 신촌약수는 한 등짐장수가 황장재를 넘다가 도적을 만나 낭패를 당하여 가까스로 도망쳐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사경을 헤메던 중 신촌에 있는 빨간물이 솟는 샘터에서 그 물을 마신 후 정신이 맑아지고 상처를 치유한 이후로 약수의 효험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각종 피부염, 속병환자가 몰려들어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신촌이라는 동네가 형성되었다 한다.

이런 저런 사연을 담고 있는 황장재 고개마루엔 번듯한 휴게소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영덕방면으로 조금 내려서서 "영덕호" 나룻배가 있는 쉼터 아래서 단골메뉴인 오징어무침에 하산주가 오간다. 이미 정홍조옹께서 사위에게 선물받은 꼬냑 한 병을 선뜻 희사한 터라 속이 알그리한 상태였건만 오고 가는 술 잔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귀포길.... 이가리에 있는 오리불고기 식당에 들러 또 한바탕의 뒷풀이가 이어진다. 이미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황장재까지 먼저 테이프를 끊어 놓으신 김동석회장님께서 사모님과 함께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참석하니 백호맨들은 절로 의기가 투합된다.
그나저나 매번 뒷풀이를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것다! 몇 푼 안되는 회비로 알뜰살뜰 실속있게 살림을 챙기는 이총무님의 살림살이 비결이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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