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황장재-대둔산-먹구등-왕거암-대궐령 ☞지도보기 ☞낙동10구간 사진모음 

*일시:2003.9.22
*날씨:맑고 청명

*산행상세
황장재-(1시간 13분)-대둔산-(1시간 15분)-먹구등-(1시간 21분)-왕거암-(53분)-대궐령
황장재 출발(07:48)-가선대부 김씨묘(산봉)(08:06)-능선마루(무덤,잘려진 소나무)(08:13)-안동권씨 쌍무덤(08:24)-갈평재(08:25)-590.7봉(08:43)-움막터(08:52)-무명봉(09:10~09:24)-국립공원표석(09:33)-대둔산 삼거리(경주최씨묘)(09:43)-대둔산(09:45)-너덜안부(10:05)-849봉(10:12)-무덤1기(10:27)-통천문(10:30)-두고개(10:52~11:03)-먹구등(헬기장)(11:15)-817.9봉(헬기장)(11:17)-안부(11:30)-명동재(875봉,시멘트헬기장)(11:43)-폐헬기장(11:47)-느지미재(중식, 12:00~12:28)-왕거암3거리(12:55)-왕거암(13:04)-왕거암3거리(13:14)-능선분기점(독도주의지점,13:35)-송이모듬터(13:45)-대관령(13:48)-비박바위(13:56)-대궐령(740m)(14:00)

*기타 탈출로:대궐령-(8분)-갓바위-(30분)-용전저수지-(22분)-용전분교
대궐령(14:12)-갓바위(14:20~14:30)-지적경계표석(14:48)-계곡합수(14:53)-용전저수지(15:00)-용전분교(15:22)

*도상거리:14.4km(정맥)+3.0km(탈출로)=17.4km
*총소요시간:7시간 34분(순보행-정맥:4시간 42분, 탈출:1시간)

*참가: 백호산악회 23명
김동석(회장), 최부근(부회장), 이경수(총무), 한백기(대장T), 박춘하(대장L), 임상운, 문무종, 성기봉, 김재권, 김용배, 이경모, 주영기, 박종덕, 조동범, 이병목, 전태환, 이재천,  김승현, 황병수, 이종택, 김지용, 정현근, 정태영

 

=== 낙동의 꽃 주왕산 국립공원에서 얻은 또 하나의 선물 갓바위 ===


가는 계절의 끝자락을 붙잡고 한바탕 서럽게 울어대던 태풍 "매미"가 한반도 남동해안을 휩쓸고 간 터라 이땅의 남녘 산하는 온통 아수라장을 방불케 할 만큼 된통 홍역을 치뤄야만 했다. 작년 "루사"에 이은 커다란 자연재해에 많은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엄청난 재산 손실을 입었으니 미미한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낙동정맥의 산줄기 역시 "매미"의 상흔으로 곳곳에 쓰러진 나무등걸과 채 화려한 색조로 물들기 전에 흩어진 무수한 나뭇잎의 주검을 밟고 산줄기를 이어가야 했다.
이번 구간은 낙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왕산 국립공원 북동편 외각의 산줄기를 타고 이어진다. 주왕산(周王山,720m)은 청송과 영덕에 걸쳐 있고 곳곳에 주왕에 관련된 지명들이 옛 이야기 속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으며 영남 산악인들과는 친숙한 산이다. 주방천을 중심으로 곳곳에 거대한 암벽이 둘러쳐진 산세로 인해 석병산(石屛山), 주방산(周房山),대둔산(大遯山)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빽빽한 수림을 이룬 정맥길은 주왕산의 멋진 암릉미를 제대로 조망할 수 없는게 흠이라 할 수 있고, 일부 정맥꾼들은 주왕산구간을 황장재~피나무재까지 단번에 끊어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정맥팀은 주왕산 외각의 적당한 지점을 끊어서 영남의 소금강이라 불릴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주방천 일대를 일부러라도 들러보는 경향이다. 우리팀 역시 대궐령에서 구간을 끊고 요즘 한참 알려지기 시작한 영덕군 달산면 용전리의 용전갓바위를 들러보는 외유로 숲의 장막이 주는 답답함에서 벗어나 오랫만에 뛰어난 조망을 맞는 기회를 가져보기도 한다.

▼황장재-영덕에서 진보,안동으로 이어지는 34번 국도로 고갯마루 아래에는 신촌약수가 있다.
07시40분, 텅빈 황장재 휴게소는 이른 아침이건만 여전히 흥겨운 음악소리가 고갯마루에 울려 퍼지고 있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고갯마루를 슬쩍 훝어내자 손끝이 시릴 정도로 차가웁다. 전번 산행과는 상당한 대조를 이룰 만큼 계절은 가을 속으로 성큼 들어와 있었다. 진보쪽 신원리일대의 나즈막한 산록은 짙은 안개가 골골이 파고들어 있고 파란하늘을 유영하듯 흐르는 뭉게구름이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날씨를 보이고 있다.

07시48분, 청송군관광안내도 옆으로 빼곡히 붙은 정맥표지기를 따라 황장재를 출발한다. 초입을 들어서게 되면 좁다랗게 파진 교통참호를 끼고 오르다가 왼편으로 무덤3기를 두고 우측능선으로 붙는 오르막길이다. 교통참호를 지나치게 되면 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시원한 바람이 농밀한 나무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온몸을 훝어내며 기분좋은 출발을 알리자 모두들 날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등로 곳곳엔 부러진 나뭇가지며 수북히 쌓인 나뭇잎이 태풍 "매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리고 있다. 출발한지 10여분 가량 완만하게 나서던 길은 우측으로 무덤1기를 통과하면서 무덤 뒤로 난 산봉하나를 슬며시 왼쪽으로 트래버스하고 있다.
산자락을 휘어돌아 다시 주능선과 합류하여 얼마지 않아 오른쪽 건너편 산비탈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보인다. 지형도상의 백석터마을로 마을 가운데는 커다란 부처입상이 아침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다. 백석터를 사뭇 우측으로 두고 가던 길이 자그마한 산봉에 다다르자 "가선대부김씨묘"가 멧부리를 지키고 있다.(08:06)
살아서의 부귀영화는 끝내 한줌 흙으로 돌아가 자연으로 회귀하건만 우리네 삶은 무엇에 그리도 집착하고 앞만 보고 쉼없이 달려야 하는건지..... 가끔은 삶의 일탈을 꿈꾸며 이렇게 호젓한 숲길을 걷는 시간이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닐런지?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주책을 부리는 사이 길은 어느새 오름길로 접어들었고 능선마루에서 서자  또 하나의 무덤이 앞을 막는다.(08:13)
무덤 앞, 뒤로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톱날에 베어져 쓰러져 있다. 아마도 짧은 생각을 가진 후손들이 한줌 햇볓을 받기위해 베어낸 듯 하다. 이 무덤이 있는 곳에선 오른쪽으로 슬쩍 꺽여나가는 길이다. 역주행시에는 무덤 정면으로 난 직진능선으로 접어들기 쉬운 곳이지만 왼쪽 아래 비탈로 내려서야 하는 곳이다.
무덤을 지나 5분 후 갈림능선에 이른다.(08:18) 정점에서면 오른쪽(동쪽)으로 661.7봉을 경유해 갈평동으로 내려서는 뚜렷한 능선길이 보이지만 길은 이 산봉을 올라서기 직전에서 왼쪽으로 빗겨가고 있다. 갈평재로 내려서는 길에선 왼쪽으로 지품리 안학곡마을 상단의 한골지가 숲 사이로 언뜻 모습을 비치기도 한다. 내리막 끝에서 만난 안부가 갈평재인가 여겼지만 바로 앞 "안동권씨" 쌍무덤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선 후(08:24) 옛 성황당터가 있었던 듯 돌무더기가 수북히 쌓여있는 고갯길이 갈평재다(08:25)
진보쪽 갈평동과 지품쪽 학곡마을을 연결하는 옛길이지만 이미 발길이 끊어진 듯 희미한 내림길이 수풀에 덮여있다. 저 앞으로 넘어야 할 봉우리인 무명봉 하나가 우뚝 솟아 있어 미리부터 걱정된다. 철쭉 나무가 군락을 이룬 터널 사이로 계절을 잊고 핀 진달래 한 송이가 애처롭다.

8시 43분, 완만한 오름을 이어 590.7봉에 올라선다. 바로 앞 봉우리가 한없이 높아만 보인다. 590.7봉에선 왼쪽으로 급하게 꺽어나간 완만한 평지길을 따른다. 지품리 평지동일대의 마을이며 논밭이 정겹게 내려다 보인다. 왼쪽으로 달밭골에서 올라오는 듯한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08:49) 길은 사정없는 된비알이 시작된다.
사면을 향하던 길이 산허리를 슬며시 넘어서더니 건너편 능선으로 붙는다.(08:52) 이 지점에 송이채취금지를 알리는 입산금지 비닐코팅종이가 걸려있고 송이꾼 움막이 있다. 길은 더욱 고개를 고추세우고 있다. 간혹 옛 부족국가 시대의 고인돌을 연상케 하는 바위들이 듬성듬성 얹혀져 있는 위로 돌이끼가 가득하다. 산봉이 가까워질 즈음에야 저 아래로 갈평지가 모습을 비친다.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저수지 물빛이 황토색에 가깝다.

더덕캐기에 열중인 김용배님
9시10분, 드디어 숨이 턱까지 차는 오르막 끝으로 둥그스럼한 무명봉에 올라선다. 정상부는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가 뒤섞여 있는 너른 평지를 제공하고 있다. 정점에는 약 50cm가량의 시멘트기둥이 박혀있는데 삼각점은 아닌 듯하고 주왕산 국립공원을 알리는 표석인지 뭔지 그 용도는 알 수가 없다. 이 일대에도 송이채취구역을 알리는 반짝이 줄이 쳐져 있다. 초반 오르막에 기력을 쏟아낸 탓에 한참을 쉬어간다.
잠시 짬이 나자 김동석회장님의 더덕강의가 이어지고 회원님들은 이곳 저곳 수풀을 헤치며 더덕캐기에 여념이 없다. 평소 약초나 나물을 탐하지 않던 이총무님도 양손에 잔뜩 흙 묻은 손을 앞세워 뒤늦게야 등장한다.

9시24분, 달콤했던 휴식을 뒤로 하고 대둔산을 향한다. 산봉에서 10m거리의 양지바른 곳에 있는 무덤2기를 지나치자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희미한 수풀 속을 따른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제법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평지성 능선을 이어간다. 낙동의 산줄기는 그 왕성했던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삭히며 서서히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한줄기 바람에도 온몸을 바르르 떤다.
왼쪽 아래로 기사리 마을과 도로가 언뜻언뜻 내려다 뵌다. 10여분 길을 잇자 "주왕산국립공원"을 알리는 시멘트표석을 대한다.(09:33) 이제부터 낙동정맥의 유일한 국립공원 주왕산권역에 접어든 셈이다. 이 지점쯤에서 왼쪽 북동방향으로 희미한 갈림길이 기사마을을 향하고 있다. 그 길로 잠시 따라 나섰더니 그런대로 희미한 족적이 이어지고 있었다. 5만 지형도에는 첫 후식을 취했던 산봉에서 국립공원 권역이 시작되고 있었고 북동으로 달밭골로 내려서는 소로가 표시되어있지만 실제 지형은 약200m가량 더 지나친 지점에서 국립공원표석과 갈림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잠시 더 진행하자 굵직한 낙엽송이 숲을 이루고 그 아래로 잡풀들이 제 멋대로 세력다툼을 벌이는 분지성 지형으로 예전에 이곳 어디쯤에 절이 있었으나 빈대가 많아 폐사되었다는 절터쯤으로 여겨지고 지형도의 기사마을과 갈평지 상단의 둔골을 넘나들던 옛 고개인 절등재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강력태풍 "매미"의 소행인 듯 아름드리 낙엽송 두 그루가 뿌리채 뽑혀 나란히 누워있는 오르막을 올라서자 대둔산 직전3거리인 "경주최씨"묘역에 이른다.(09:43) 정맥은 왼쪽 숲으로 꺽여 내려가야 한다.
무덤이 있는 3거리에서 대둔산은 무덤 뒤쪽 50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족적은 희미한 편이다. 행장을 벗어던지고 올라선 대둔산(大遯山,905m)은 실망스럽게도 봉분 위로 억새 무성한 무덤1기만이 고스락을 지킬 뿐 이렇다 할 표식은 없다. 황장재에서 대둔산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남쪽 발 아래 노루용추계곡 건너로 주왕산 일주능선인 장군봉-금은광이-먹구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참나무 숲 사이로 조망되는 것이 고작이다. 진행방향 정면인 남서쪽으로는 태행산(太行山,933m)-중태산(679m)-방광산(519m)으로 이어지는 길이 뚜렷하다.
산경표에 따르면 주왕산의 옛 이름인 주방산(周房山) 직전 죽현(竹峴)에서 방광산(放光山)으로 이어지는 짧은 지맥이 표기되어 있는데 그 지맥 분기점이 바로 이곳 대둔산이 아닐런지? 주왕산의 옛 이름 중의 하나가 대둔산이며, 일부지형도에는 대돈산으로 표기되어있기도 하다.

9시49분, 대둔산 직전 삼거리의 무덤가로 되내려와 남동쪽 내리막인 정맥을 따른다. 잠시 내려서던 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고만고만 하게 이어지는 평지성 길이다. 799.7봉은 정점이 어디인지 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잠시 내려선 안부에는 잔돌들이 총총히 박힌 짧은 돌밭길이다.(10:05)
이 안부에서 너구동으로 내려서는 길이 지형도에 표시 되어있지만 족적은 보이지 않는다. 너구동은 옛 독립투사들의 피신처였던 곳으로 4개의 골짜기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모여진다 하여 넷귀마을(四耳洞), 너귀동, 사이동이라고도 불려지는 오지마을이다. 너덜이 깔린 안부에서 제법 가파르게 한 바탕 땀을 쏟아내고서야 849봉에 올라선다.(10:12) 오르막 올라선 지점부터 시작되는 좁다란 날등이 끝나는 부분에 둥그스럼한 둔덕처럼 생긴 봉우리가 정점이다. 799봉쪽에서 보았을 땐 뾰족한 삼각형태의 봉우리처럼 보였건만 정작 올라서고 보니 그저 밋밋한 둔덕봉이다.

849봉을 내려서면서도 역시 유순한 길이 오붓하게 이어지고 있다. 때묻지 않은 청정산길이 고속도로처럼 너르게 펼쳐지고 있다. 이 지점 어디쯤이 732.6봉쯤을 추측되지만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넓은 초원처럼 이어지는 평지가 펼쳐지고 키다리 참나무 숲 아래를 휘적휘적 걷노라니 바람이 친구하자며 달려든다.
능선상의 무덤1기를 지나친다.(10:27) 이 일대는 집터의 흔적이었던 듯 가지런히 돌로 쌓은 집터 흔적도 역력하다.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이고 이 깊은 산중 외진 곳에 둥지를 틀고 화전을 일구며 뼈를 묻었던 옛 민초들의 애환에 대해 잠시 이총무님과 몇 마디 대화가 오간다. 이 능선 오른쪽 아래가 달기 약수가 있는 노루용추계곡 최상단부인 너구동이고, 너구동에서 북동으로 올라 붙는 지류가에 "절골"이라 불리우는 옛 마을이 있었던 걸로 봐서 예전에 이 능선 어디엔가 절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왼쪽 바로 아래로 기사저수지가 내려다 보일즈음 듬성듬성 기이한 형태로 생긴 바위들이 능선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지루함을 덜어준다. 이 일대의 바위들은 대부분이 바위 위에 또 다른 바위를 얹혀놓은 듯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태행산~왕거암으로 이어지는 능선자락에는 유명한 청송꽃돌(화문석)의 생산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걷고 있는 이길..... 발부리를 막는 돌맹이가 꽃돌의 원석인지도 모를 일이다.

▼통천문(?)의 이총무님-먹구등을 지나서는 능선상에 듬성듬성 기이한 형태의 바위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10시 30분, 등산로 바로 옆으로 통천문이라 이름 지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바위통로가 있어 이총무님과 함께 억지로라도 그 바위문 홈통을 따라 내려서 본다. 듬성듬성 이어지는 바위날등지대를 연이어 통과하고 절리현상이 뚜렷한 바위 커다란 바위틈을 빠져 나온다.(10:45) 대문 바위라고 불리야 하나! 하여튼 이 대문바위틈을 빠져 나오면서부터 더 이상의 바위들은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10시52분, 넓은 안부가 있는 두고개에 이른다. 앞선 일행들이 막 휴식을 끝내고 자리를 비워준다. 김승현님이 준비해온 은어튀김에 더덕주가 한 순배씩 오간다. 두고개엔 왼쪽으로 내기사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뚜렷하고 오른쪽길은 주왕산일주능선인 장군봉~금은광이~먹구등으로 이어지는 고갯길 하나를 더 넘어 내원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뚜렷하다.
두고개란 옛날 영덕쪽 기사리에서 청송쪽 내원동을 이었던 길로 두 개의 고갯길을 넘어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게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오른쪽 바로 아래로 형성된 계곡은 달기약수가 있는 월외리 노루용추계곡의 최상단부인 대리골의 상류가 된다.

11시 03분, 두고개에서 휴식을 뒤로하고 지척에 있는 먹구등을 향한다. 10여분 올라서게 되면 두수람에서 먹구등을 연결하는 주왕산 일주능선을 만나고 여기서 왼쪽으로 꺽어들어 2~3분가량 더 발품을 팔게 되면 약간의 공터로 잡목에게 잠식당한 폐헬기장이 있는 먹구등(846.4m)에 이르게 된다. 이렇다 할 표식은 없지만 수두룩한 표지기들이 먹구등 정상임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대둔산을 출발하여 1시간 25분이 소요되었다. 먹구등에선 다시 왼쪽으로 꺽어나간 후 2분 거리에 또다른 폐헬기장(817.9봉) 하나를 지나친다.(11:17)
이후 약간의 고사목이 있는 산봉에 올라서게 되면(11:25) 저 아래로 내기사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지나온 대둔산 일대의 산군들이 훤히 조망되는게 모처럼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밋밋한 안부 하나를 지나(11:30) 올라서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힘겹게 올라선 봉우리엔 산봉 오른쪽으로 큼직한 바위하나가 자리하고 있을 뿐 이렇다 할 조망은 없다. 이 일대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2단, 3단으로 쌓아놓은 듯한 바위들을 연이어 지나친다.

11시 43분, 시멘트로 잘 닦아놓은 875봉 헬기장에 선다. 지형도상의 명동재의 위치는 바로 이 헬기장이 있는 875봉이다.. 내내 지형을 유심히 살피며 지나왔지만 이렇다 할 옛 재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지점은 보지 못했다. 예전 주왕산 오지마을 내원동 사람들이 영덕쪽 지품으로 숯을 팔러 다닐 때 명동재를 넘었다고 하건만 이 높은 산봉을 넘어 다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헬기장인 명동재를 지나면서도 능선 곳곳엔 듬성듬성 놓인 큼직한 바위들의 행렬은 계속된다.
11시47분, 싸리나무가 빼곡하고 자라고 있는 폐헬기장 하나를 더 지나쳐 느지미재로 향하는 길은 완만한 평지성길을 따른다. 저 앞으로는 참나무숲 사이로 왕거암을 지나 가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언뜻언뜻 나타나고 가메봉 정상부의 특이하게 단애를 이룬 바위봉 윤곽이 뚜렷하다. 느지미재 가는길은 그렇게 사뭇 왕거암을 바라보면서 이어지고 동으로는 간간이 영덕쪽 동해 바다가 건너다 보인다. 낙동정맥 마루금을 따르며 오늘처럼 맑은 날씨를 보인 때가 없었건만 주왕산 일대에서 이렇게 바다가 보이는 깨끗한 전경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을 얻은 셈이다.
옛 고개하나를 지나쳐 작은산봉 하나를 더 넘어서자 내원동을 내려서는 길이 뚜렷한 느지미재에 이른다.(12:00) 넓은 안부의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은 주왕산 오지마을인 내원동으로 향하는 길이다. 골을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느지미재를 조금 올라선 풀밭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땀이 식으면서 약간의 한기를 느낄 정도로 정맥엔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12시28분, 급하게 마친 점심밥이 채 자리도 잡기 전에 한기를 이기려고 왕거암을 향한다. 식사직후라 왕거암을 향하는 꾸준한 오르막에서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27분만에 왕거암 직전 전위봉 삼거리에 올라선다. 정맥은 왼쪽으로 이어지고 있고 오른쪽은 왕거암 가는 길이다. 삼거리에 행장을 내려놓고 왕거암으로 올라선다.
오르막 100m후에 큼직한 바위 오른쪽을 돌아들면 왕거암 정상이라고 속을 법한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지만 왕거암 고스락은 이 산봉을 지나 부드러운 풀밭으로 분지를 이룬 길을 따라 다시 100여m 정도 밋밋한 능선을 더 걸어야 한다.
고스락부는 싸리나무로 둘러쳐진 헬기장으로 되어 있고, 쓰러져 뒹굴고 있는 삼각점 옆으로 누군가가 자그마한 말뚝을 박아 "왕거암정상" 이라고 적어놓은 빛바랜 글씨만이 고스락은 알리고 있다. 예전 등산지도에는 "은장도봉"이라도 표기된 왕거암(王居岩,907.4m)은 왕이 기거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름에 걸맞는 바위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웃한 가메봉만 하더라도 반들반들한 등산로며 곳곳에 설치된 이정표가 길을 밝히고 있지만 명색이 주왕산 국립공원의 최고봉인 왕거암은 이렇다 할 이정표조차 없어 일반산객들의 발길조차 잦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저 가메봉으로 이어지는 또렷한 길 초입으로 몇몇 산악회의 표지기들만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왕거암은 정맥능선에서 약 200m가량 서쪽으로 물러나 앉아있는 셈이다.

13시14분, 왕거암 3거리로 되내려와 남동쪽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정맥 내리막길에선 곳곳에 잣나무가 있어 걸음이 더뎌진다. 태풍 "매미"의 영향인지 곳곳에 나뒹구는 큼직한 잣 줍는 재미가 솔솔하다. 알도 제법 영글어 진한 갈색을 띠고 있다.산속 다람쥐녀석들에겐 쬐금 미안하지만 선두에 섰던 한대장님은 제법 많이 주워 미처 노획하지 못한 분들을 일일이 챙겨주는 노고도 잊지 않는다.
왕거암 3거리에서 10여분 가량 내려선 밋밋한 안부를 지나자 길은 곧이곧대로 산등에 덤벼들지 않고 우측 산허리를 돌아 나가고 있었다. 송이버섯 채취를 금지하는 팻말을 지나자(13:28) 왼쪽 아래로는 수직 낭떠러지를 두고 걷게 된다. 발아래로 영덕방면 용덕리 절골로 이어지는 계곡이 입체적을 다가서고 멀리로는 푸른 동해바다를 굽어보는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저 앞으로는 오늘의 목적지 대궐령에서 내려서야 할 능선상의 갓바위까지 어림된다.

왼쪽으로 절벽지대를 끼도 나서던 길이 끝나며 내려선 내리막길에서 정맥은 앞으로 또렷이 이어지는 능선을 외면하고 왼쪽 비탈로 접어든다.(13:35) 마치 계곡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의 내리막 사면길인지라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능선분기점까지 다시 올라가 보는 수고를 했지만 정맥은 교묘하게 물길을 피해 큰 능선을 버리고 낮아지지만 온전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이 지점은 마치 오른쪽 건너의 능선이 정맥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헷갈리기 쉬운 지형을 하고 있으며 내리막 사면으로 떨어지게 되면 우측 바로 옆으로 마른계곡을 바짝끼고 능선은 고개를 낮춘다. 바로 오른쪽 계곡은 주왕산의 또다른 비경이라 할 수있는 절골계곡이 대문다리를 지나 우측으로 갈래친 갈전골의 최상단 지류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길은 어느새 계곡을 멀리두고 왼쪽 아래로 까마득한 단애를 이룬 바위날등을 타고 있다.(13:40) 완연한 동고서저의 지형이다. 바위벼랑에 위태롭게 무리를 이룬 구절초 가족들이 산들거리는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또 한번 시원스런 조망이 펼쳐진다. 용덕리 절골에서 올라오는 깊고 깊은 계곡은 협곡을 이루고 있고 그 협곡을 이룬 능선은 군데군데 하얀 암릉을 드러내고 있다.
산봉 하나를 우측으로 돌아나서는 길에서 비닐움막에 구들장까지 깔린 송이모둠터를 지나친다.(13:45) 얼마 후 왼편으로 3단으로 쌓아올린 듯한 커다란 3층 바위를 지나 50m가량 더 나서면  좌우로 내려서는 길이 또렷한 옛 고개길인 대관령에 이르게 된다.(13:48) 안부일대에는 누군가가 잔가지를 쳐놓았고 절골상단계류인 갈전골로 내려서는 우측길은 완경사를 보이는 반면 왼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송이꾼의 소행인 듯 안부에는 소주병을 비롯한 약간의 쓰레기가 깊은 오지산자락의 청정미를 훼손시키고 있다.

오늘의 정맥 목적지인 대궐령으로 오르는 길이 은근히 힘이 든다. 대궐령이 가까워질 즈음 좌우로 옹립한 커다란 바위사이를 지나치게 된다.(13:56) 하룻밤 비박하기엔 안성맞춤인 "비박바위"로 왼편의 것은 바위처마 아래로 평평한 바위턱이 있고 누군가가 기거했었던 듯 이부자리까지 깔려있다. 이슬을 가릴 비닐 하나만 있으면 훌륭한 산상호텔이 부럽지 않을 자리다. 비박바위를 지나쳐 올라오게 되면 목적지인 대궐령(740m)정상에 서게 된다.(14:00)

대궐령일대는 정상부가 축구장만큼 넓은 평지에 마치 부드러운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넓은 풀밭을 이루고 있다. 대궐령은 임금이 계신 곳을 둘러서 이어진 산봉우리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며 일반적인 고개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산줄기의 높은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법하다. 옛 이야기 속에 나오는 중국 당나라때 진의 후손인 주도가 진의 회복을 도모코져 스스로 후주천왕을 자처하고 군사를 일으켰다가 패하여 이곳 주왕산으로 숨어 들었을 때 영덕지방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하였던 곳이 바로 이곳 산상분지인 대궐령이다.
고스락부엔 영덕쪽에서 만들었을 법한 이정표가 서 있기도 하다. 우리가 왔던 방면으로는 "주왕산방향" 별바위쪽으로 이어지는 정맥방향으로는 "청련사 1.4km" 그리고 하산해야 할 용전리 쪽으로는 "갓바위 0.2km"로 표시되어 있다.
갓바위방면으로 40m 가량 나서게 되면 오늘 산행에서 최고의 조망을 제공해주는 "갓바위전망대"에 서게 된다. 그동안 답답한 수림에 가려있던 시야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곳으로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아래로 거대한 입식처럼 서있는 갓바위다. 갓바위는 사람이 갓을 쓴 모양이라고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보이며 위에서 내려다 볼 때는 흡사 남근의 형태를 닮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갓바위로 인해 대궐령 정상부는 갓바위산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저 멀리로는 자그마한 마을들이며 논, 밭, 하천들이 올망졸망 놓여져 있고 그 너머로 동해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대궐령-갓바위-용전분교>
14시12분, 전망대에서 한껏 조망을 즐긴 연후에야 갓바위골이 있는 용전리로 내려선다. 용전리 입암마을 차도까지는 약3km의 거리로 정맥탈출로라기 보다는 잠시 정맥외유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갓바위 아래에 선 김재권님

5분 가량 쏟아지는 급한 내리막을 따르면 바로 코앞으로 갓바위 바위능선이 앞을 가로막고, 산길은 굵은 로프가 쳐져있는 왼쪽 사면을 따라 갓바위를 우측으로 두고 내려선다. 위에서 볼 때 갓바위는 거대한 하나의 입석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각기 독립된 5개의 거대한 바위가 연이어져 있었고 그 바위와 바위가 연결된  통로로 올라서 봤더니 거침없이 쏟아내는 바람구멍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다섯 번째 바위가 바로 갓바위이고 실제 밑에서 올려다 봤을 때는 그럴싸하게 갓을 쓴 사람모양을 하고 있었다. 거북바위라고도 불리우는 갓바위는 주왕산국립공원 권역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주왕산의 또다른 면면을 보는 것같아 내심 흡족하다. 이 바위아래에 있는 마을이 용전리 입암마을 이고 입암(笠岩)은 바로 갓바위에서 유래된 마을이름이라고 유추해보다. 갓바위는 옛날부터 신성하게 여겨져 동네지킴이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한다.
갓바위 바로 아래편으로 아찔한 단애를 이룬 멋진 전망대가 있어 부지런히 사진도 찍으며 또 한참을 쉬어 가야했다.
용전리 갓바위골은 임진왜란 중국 명(明)나라에서 원병 왔던 이여송이 갓바위골 입구 보골양지라는 산등선에서 갓바위골까지 칼등같이 생긴 능선을 칼로 치자 그 곳에서 나온 용마(龍馬)가 하입암(下笠岩) 들로 내려 갔다 하여 그 들을 용두전(龍頭田)이라 하고 그 뒤 동명을 용전(龍田)이라 했다 한다.

14시30분, 갓바위에서의 아쉬운 마음을 접고 로프가 쳐진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선다. 왼쪽 계곡건너로 바위암릉이 날카롭게 침봉을 이루고 바위벼랑으로 물은 흐르지 않지만 폭포길의 흔적도 보인다.

그렇게 좌우계곡과 능선에 눈길을 주며 급한 내리막을 25분 가량 떨어지게 되면 지능선이 끝나고 두 계류가 합해지는 합수점에 이른다.(14:53) 계류를 넘어서자 "갓바위등산로 (용전리~청련사) 갓바위까지 1.2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대한다.
이후 갓바위골 계류를 따라 평평한 반석이 펼쳐지는 지대를 지나치게 되면 비포장길이 시작된다.(15:00)
4분 가량 이어지던 비포장길이 시멘트길과 만나는 지점으로 "갓바위1.3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고 바로 앞으로 용전저수지가 펼쳐진다.(15:04)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간혹 길가에 걸려진 연등에 대해 의아해 하던 차 때마침 산으로 드는 마을주민께 여쭈어 봤더니 계곡 안쪽에 "용암사"란 절이 있다고 일러주신다.

이제부터는 시멘트길을 따라 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내려선다. 산그림자가 물 위에 드리우니 한 폭의 수묵산수화가 따로없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울렁 더울렁 담소를 즐기며 걷고 있는 우리님들의 뒷모습이 무척 보기 좋다. 정맥능선에서는 보기힘든 여유가 있어서 좋다.
시멘트길 20분 만에 이미 폐교가 된 윗입암마을 달산초등교 용전분교가 닿는다. 본관 건물을 빠져 나와 학교 앞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지품에서 우설령 오르는 914지방도로 아래 소서천 계류가에 훌러덩 벗고 찌든 땀을 닦아낸다.
"새천년 기념마을" 표석이 있는 윗입암마을 도로변에 앉아 한잔 술이 오가고, 이미 한쪽 귀퉁이는 텃밭으로 변해 있는 용전분교 너른 운동장엔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신나게 뛰어놀던 산골아이들의 자잘한 웃음소리마냥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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