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가는길

   
   
 
 

한무당재-관산-만불산-아화고개-사룡산-숲재 ☞지도보기 ☞낙동16구간 사진모음

*일시:2003.12.31
*날씨:맑고 포근한 겨울

*산행상세
한무당재-(1시간39분)-관산-(48분)-294.9봉-(39분)-아화고개-(24분)-고속도로-(59분)-형재목장고개-(1시간28분)-사룡산-(25분)-숲재
한무당재(08:34)-316.4봉(삼각점,08:49)-못안마을 4거리안부(성황당터,09:07)-파평윤씨 무덤2기(09:37)-관산직전안부(09:55)-관산(393.5m,무덤+삼각점,10:13~10:23)-밀양박씨묘3기(갓비석,석등,망주석,10:49)-무덤8기(10:55)-양계장초입(11:06)-294.9봉(양계장 최상단,11:11~16)-시모골안부(11:24)-만불산(275m,11:31)-안동권씨무덤3기(11:34)-동래정씨,광천노씨무덤(11:37)-한국방음공사옆 철탑2기(11:45)-아화고개(4번국도,11:55~12:01)-71번 송전탑(12:09)-70번 송전탑(12:12)-69번 송전탑(12:19)-고속도로철조망(12:25~12:30)-고속도로건너편(12:38)-67번 송전탑(12:43)-김해김씨무덤2기(중식,12:45~13:05)-고압송유관매설지역 철조망(13:09)-연못과 논두렁경계(13:24)-샘촌마을갈림길(13:39)-60번 송전탑(13:45)-59번 송전탑(13:47)-형재목장고개(13:49)-김해김씨,파평윤씨 쌍무덤(13:56)-사룡산 첫봉(14:29)-전망대1(14:49~14:57)-전망대2(15:02)-삼각점(No036,15:03)-전망대3(15:08)-비슬기맥분기점(약 650m,안테나,전봇대, 15:14~21)-사룡산(683m,무덤2기,15:31~35)-사룡산,생식마을 3거리(15:40)-식물분석장철문(15:53)-숲재(16:00)

*도상거리:18km
*총소요시간:7시간 26분(순보행:6시간 22분)

*참가: 나홀로

   


=== 정맥도 때론 사람사는 소리가 그리워 몸을 낮춰 곁눈질 하더이다 ===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던 2003년 계미년 한해의 마지막 날! 돌이켜 보건데 이래저래 부족함으로 일관된 나날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매 순간순간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둔함을 반성하며 홀로 산길을 걷는다. 한해를 돌이켜 보는 의미에서 삶의 궤적과도 같은 산길을 걷는다는 것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한무당재 고갯마루에 섰다.
한무당재~숲재, 이미 지난달에 지났어야 할 길이지만 한번 놓친 기회는 좀체 두 번의 기회를 주기에 인색했고 결국 오늘에서야 마눌님을 꼬득여 숲재까지 숙제하러 길을 나선다.

휘휘 남으로 내달려 거침없이 남하하던 낙동정맥도 슬며시 사람냄새가 그리웠는지 관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낮은포복으로 비산비야지대를 형성하며 아화마을까지 낮게 내려앉아 고달픈 민초들의 삶을 귀동냥 한 후 철길과 고속도로를 건너 논두렁 하나로 물길의 운명을 바꾸더니 서서히 고개를 치켜들며 사룡의 등줄기를 이루며 고도를 높여간다.
이번 구간은 정맥에서 가장 낮은 지대를 이룬 탓에 곳곳에 무덤터가 많고 길은 아예 무덤을 찾아가는 착각이 들 정도다. 정맥마루금을 차지한 과수원이며,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난 임도로 인해 산줄기를 이어가는 길을 다소 혼란스럽다. 흔하게 보이던 정맥표지기들 조차 야산지형에선 나몰라란 식으로 발을 빼기가 일수다. 하지만 마루금은 여전히 마을을 아우르며 낮게 낮게 물의 운명을 가르고 있었다.

08시 34분, 휑하니 한무당재를 떠나는 마눌님과 때를 같이하여 북서쪽 계단길을 올라선다. 계단을 올라서자 "경주최씨" 무덤을 비롯한 "여강이씨" 무덤 3기가 한 줄로 늘어서 있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던 길은 왼쪽으로 짧게 갈래친 산봉 하나에 올라서게 되고(08:39) 이 봉우리 직전으로 오른쪽으로 트래버스 된 길이 산봉 내려선 안부까지 우회하고 있다.
"경주최씨" "김해김씨" 쌍무덤을 지나(08:44) 짧게 올라서자 삼각점(경주412)과 측량폴대가 서 있는 316.4봉이다.(08:49) 짧은 오름이지만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 탓으로 등줄기에 땀이 젖어든다. 겉옷 하나를 벗어내야 했다. 316.4봉에선 왼쪽(서쪽)으로 꺽여 나가는 완만한 길이다. 왼편 건너로 우뚝 솟은 인내산(534m)을 보며 진행하게 되고 가끔 우측으로 칠전리일대의 마을과 멀리로는 관산이 시야에 잡힌다.

밋밋하게 이어오던 길은 오른쪽으로 슬쩍 치우치는가 하더니 잔솔들이 걸리적거리는 숲길을 빠져 나가자 좌우로 내려서는 길이 넓게 닦여져 있는 4거리 안부에 이른다.(09:07) 지금도 왕래가 있는 길로 여겨지며 경주 서면 마채마을과 영천쪽 못안마을을 있는 고갯길로 안부에는 옛 성황터였던 듯 돌무더기가 수북이 쌓여있다. 왼편 아래로 무덤 1기도 보인다.
낮은 구릉지대를 이어가는 정맥은 구불구불 휘어지며 돌더니 무덤3기가 나란히 있는 지점을 지나친다.(09:12) 무덤을 지나서도 길은 소나무 숲을 이리저리 뱅뱅도는 기분이고 방향감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다행인 것은 또렷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충실한 안내를 하고 있다. 산줄기가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 돌더니 오름길 등로 우측 아래로 무덤2기를 만난다.(09:17) 잘 가꾸어진 잔디밭에 호석까지 두른 무덤이 아침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다.

▼파평윤씨무덤가에서 건너다 보이는 관산-구미 천생산의 축소판이다.
길은 관산을 향하여 고만고만하게 이어 돌더니 산허리 하나를 왼쪽으로 슬쩍 빗겨돌아 낡은 무덤 2기를 만나며 다시 주능선에 접한다.(09:27) 왼쪽 아래로 아곡, 당리마을과 저수지가 언뜻언뜻 모습을 내비치더니 관산이 정면으로 뚜렷하게 그 형체를 드러내는 무덤2기(파평윤씨묘)에 이른다.(09:37) 정면으로 나무를 베어놓아 관산을 향한 조망은 기가 막히게 좋다. 관산은 갓을 쓴 형태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고 구미 천생산의 축소판 모양을 하고 있다.
파평윤씨무덤에서 우측으로 꺽어들면 망주석이 세워져 있는 "평해황씨" "경주이씨" 무덤을 지나치게 되고 여기서부터 넓은 수레길을 따라 30~40m 나서면 돌무더기가 수북이 쌓여있는 성황당을 이뤘던 십자로안부에 이른다. 수레길은 우측 아래로 꺽이며 칠전리로 내려서고 있고 왼쪽으로도 아곡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뚜렷한 4거리 안부다.

안부를 가로질러 10여분 후 다시 넓직한 임도를 만난 길은 2분만에 임도는 왼쪽 아래로 꺽여 내려가고 정맥은 다시 숲 속을 파고들고 있다.(09:52) 잠시후 희미한 안부 하나를 넘어서자(09:55) 길은 관산을 향하여 꼿꼿하게 고추서 있다.
표고차 120~130m 정도되는 오름이지만 대단한 급비탈이다. 갓머리에 올라서기 위해 사력을 다해 13분 가량 기력을 소진하고서야 겨우 관산 끝자락에 올라선다.(10:08) 여기까지 올라온 것에 대한 격려라도 하는 듯 길은 관산정상까지는 평탄면을 따라 나서게 된다.
10시 13분, 무덤 1기가 멧부리를 차지하고 있는 관산(冠山,393.5m)고스락에 올랐다. 괴이한 것은 무덤 가장자리 봉분에 삼각점이 박혀있다.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결론은 명당을 찾는 후손들의 집요함이 삼각점이 있는 정수리에 무덤을 쓰고 다시 그 자리에 삼각점을 심어놓은 것으로 추측된다. 관산에서는 서쪽 건너로 내내 시야를 벗어나지 않던 인내산이 이젠 꽤 멀어 보이고 그 오른편으로 구미산~용림산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나무사이로 조망된다. 발 아래로는 심곡지도 빤하다. 여름철이라면 무성한 수목으로 인해 시야가 막혀 답답한 감도 들 수 있으리라!

10시 23분, 관산 무덤가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한후 발길을 재촉한다. 관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왼쪽 아래로 심곡지를 가까이 끼고 나서게 된다. 올라왔던 것만큼이나 심한 급비탈을 한차례 떨어져 내린다. 이어서 희미한 안부를 지나쳐(10:35) 또 한번의 짧고 가파른 된비알을 올라서자 멧부리에 서너개의 바위가 있는 산봉 하나에 올라선다.(10:41)
고만고만하게 이어져 가던 등로 오른편으로 잘 가꾸어진 무덤 3기가 있는 "밀양박씨묘"를 지나친다.(10:49) 갓비석, 망주석, 석등까지 갖추며 화려하게 꾸며진 무덤터다. 이 무덤에서부터는 오래된 임도가 시작되고 30m후 망주석이 세워진 또다른 "밀양박씨묘" 1기를 만난다.
계속되는 넓은 오솔길을 따르자 이번에는 무덤 8기가 연이어 자리하고 있는 넓은 무덤터를 지난다.(10:55)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낙동마루금은 경주서면 일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무덤을 찾아가는 길로 변한 꼴이다. 주변으로 마을이 가까운 야산지대라 저마다 능선마루 명당터를 찾아 무덤을 쓴 탓이다.
무덤터를 빠져 나오자 산등성 저 건너로 봉우리 하나가 민둥사면으로 변해 밭으로 개간된 지역이 보이고 목장으로 추측되는 건물도 보인다. 정맥은 그 민둥봉을 겨냥하여 오른쪽으로 슬며시 휘어돌아가고 있다.

넓게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온갖 궁상맞은 생각들로 휘적휘적 걷는 사이 숲에서 산짐승 한 마리가 화들짝 가랑잎을 헤치며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녀석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워낙 순식간인지라 분간할 수 없다.
11시 02분, 넓은 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왼편 아래로 무덤이 보이고 그 앞으로 대숲이 빽빽하다. 한줄기 겨울바람이 스치우자 대숲은 이리저리 저희들끼리 부딪히며 괴이한 소리를 내며 숲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온통 갈색톤의 겨울 숲에서 유난히 그 푸르름이 돋보인다. 넓은 길은 어느사이엔가 건너로 보이던 농장 초입부로 들어선다.(11:06)
주변으론 온통 개간된 밭이고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개짖는 소리만 요란하다. 쓰러져가는 건물은 양계장이었고 수백마리의 닭들이 구구대며 요란스럽다. 요즘 항간의 이슈가 되고 있는 조류독감의 여파에 저녀석들의 운명도 심히 걱정스럽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농장 시멘트도로를 따라 사료저장탱크를 지나쳐 오른다.

양계장을 올라서자 산봉우리 하나가 온통 밭으로 개간된 294.9봉에 올라서게 된다.(11:11) 산정은 밋밋한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어 어디가 정수리 부분인지 판별이 되지 않는다. 산정에서 왼편 건너로 감시용 탑인 듯한 가건물 있는 곳까지 나서봤지만 삼각점은 눈에 띠지 않는다. 이 넓은 평원에서 삼각점 찾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으리라.
294.9봉에선 우측 저 건너로 만불사 영천대불이 건너다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꺽으며 그 대불을 향해 나서야 한다. 즉, 양계장 윗부분에 올라서서 계속 축사를 끼고 우측으로 꺽여나가는 시멘트도로를 따라가는 길이 정맥이다. 저 앞으로 아화리일대의 마을이며 오봉산, 사룡산, 단석산이 잘 건너다 보인다. 시멘트 길은 6~7분후 만물산과 294.9봉 사이의 깊은 잘록이 4거리까지 떨어진다.(11:24)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설 때는 왼편능선이 마루금이지만 도로와 나란히 붙어서 내려서게 되므로 구지 능선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고개마루에서는 우측 영천방면 신촌과 좌측 아화 시모골로 내려서는 넓은 길이 있고 좌우로 민가가 아주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만불산 아래의 안동권씨무덤에서 보이는 "영천 아미타대불"-최고를 지향하는 만불사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개에서 6~7분 가량 올라서면 만불산(275m)이다.(11:31) 별 특이한 지형지물도 없을뿐더러 사방이 수목으로 가려있다. 왼편으로 급하게 꺽어 내려서게 되면 "안동권씨 무덤3기"가 있는 곳으로 떨어진다.(11:34) 이제 거대하게 솟은 황금빛불상이 바로 앞으로 가까이 보이고 국도변도 보인다. 불상이 있는 곳은 만불사로 불상의 정확한 명칭은 "아미타영천대불"로 높이 33m에 이르고 영천 만불사의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만불사는 생긴지 10년 정도 되고 접집다운 분위기는 풍기지 않지만 국내최대의 황동주조품인 "황동와불열반상" "만불보전의 일만칠천불"등 최대와 최고를 자랑하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이고, 납골당 허가를 받아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부도탑묘를 분양하고 있다.

안동권씨무덤 3기를 지나면서부터는 계속 불상 뒷편을 보며 넓은 경운기 길을 따라 내려서게 되고 우측으로 철조망이 쳐져있다. 잠시후 경운기길이 왼쪽으로 꺽이며 시모골을 향해 내려서는 지점에서 정면 숲을 파고든다.(11:37) 숲길로 접어들면 이내 "동래정씨" "광주노씨" 무덤2기를 만난다. 정맥은 바로 건너로 보이는 송전탑을 향하여 진행한다.
정맥날등의 우측부분은 공장건물이 들어서 있고 한켠에 깡통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매쾌한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너머로 거대한 불상이 건너다 보이는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간간이 괘적을 울리는 기차소리도 들리고 철길과 애기지도 내려다 보인다.
11시 45분, 우측 아래로 산을 깍아내고 들어선 "한국방음공사"를 지나치자 2개의 철탑이 서있다. 하나는 72번 송전탑이고 또 하나는 철탑만 덩그러니 서 있다. 송전탑을 지나치자 3분 만에 "김해김씨무덤"이 나타나고 바로 아래가 4차선국도 확포장공사를 하고 있는 아화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하지만 절개지로 내려설 수 없는 탓에 시멘트 배수로를 따라 왼편으로 100m 정도 따라 나서야만 확포장도로에 내려설 수 있다.
아화고개는 4번국도가 커브를 트는 지점으로 "만불사 1km"를 알리는 안내판이 전봇대에 붙어있고 고개라고 쉬이 여겨지지는 않지만 정맥날등이 내려앉는 부분이다. 도로 바로 아래로 철로가 국도와 나란히 진행하고 있다. 마침 기차 한 대가 고달픈 삶의 여정을 싣고 천천히 지나간다.

12시 01분, 철길을 넘어서자 이내 하추마을 과수원을 따르는 시멘트길이다. 마을길은 축사가 주변으로 있는 탓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몇몇채의 민가를 지나 왼쪽으로 보이는 송전탑을 향해 과수원을 가로질러 오르는 길이 정맥이다. 하추마을에선 왼쪽 능선을 향하지 않고 마을길을 따라 우회하는 탱자나무 울타리로 정맥표지기들이 유혹한다.
과수나무가 심어진 비탈을 올라서면 71번 송전탑이다.(12:09) 이 일대로는 야산지형이라 곳곳에 과수원이 들어차 있고 능선이 이리저리 갈래치므로 정맥은 혼란스럽게 이어진다. 표지기조차 종적을 감췄다가 간헐적으로 나타나므로 연이어진 송전탑을 목표로 진행하는 것이 좋으리라.
건너편 70번 송전탑에 이르자(12:12) 우뚝 솟은 사룡산, 오봉산이 햇살을 등지고 검은 실루엣으로 다가선다. 70번 송전탑을 지나치자 하추마을을 우회해서 올라오는 임도로 여겨지는 길과 합류한다.(12:15) 여기서부터 임도를 따라 나서게 된다. 69번 송전탑을 지나자(12:19) 정맥은 과수원길과 뒤섞여 더울 혼란스러워진다. 왼편으로 68번 송전탑을 두고 오른쪽으로 돌아 나선다. 과수원지대에 있는 물웅덩이 하나를 지나치자 저 아래로 경부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인다.(12:23)

이후 과수원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고속도로 철조망이 앞을 막는다.(12:25~12:30) 철망엔 고속도로를 넘지 못하는 표지기들이 나풀나풀 거리며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건너편 능선에 붙기 위해 고속도로 철망을 따라 왼편으로 150m 가량 진행후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야 한다. 굴다리 통과직전 왼편으로 아화마을이 넓게 펼쳐져 보인다.
아화는 예전에 마을 앞에 언덕이 있어 답답하다고 하여 아울(阿鬱)이라 하였고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하절기에 초목이 고사될 정도로 가뭄이 심하여 언덕에(阿) 불(火)을 지르면 계속 탓다고 하여 아화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굴다리를 빠져나와 곧바로 고속도로를 끼고 올라서면 끊어진 고속도로 건너편에 붙을 수 있다. 굴다리 정면으로 계속이어지는 시멘트길은 아화 시나골을 지나 능선을 우회한 후 다시 마루금에 붙을 수 있다.
고속도로변에서 잠시 카메라를 꺼내 들었더니 질주하던 차량들의 브레이크 소리가 요란하다.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꼴을 보고 마치 파파라치로 착각 했었던 듯.... 괜시리 멀쩡히 지나가는 차량에 사고를 유발시키는 것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12시 38분, 고속도로 건너편 마루금에 섰다. 불과 몇 발자국이면 건너 설 수 있는 길을 8분 가량 소비한 셈이다.
다시 정맥 마루금을 따라 잠시 올라서면 "도로"라고 씌여진 검은 플라스틱 기둥과 "우52"라 적힌 빨간 측량깃발이 있는 작은 봉우리다.(12:41) 계속되는 송전탑을 따라 나선다. 67번 송전탑을 지나(12:43) "김해김씨무덤" 2기가 있는 곳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갖는다.(12:45~13:05)
진행방향으로 사룡산 1봉이 뾰족하게 올려다 보이므로 사룡산을 겨냥하여 진행하면 된다. 김해김씨무덤을 내려서자 왼쪽 아화시나골에서 올라와 영천쪽으로 넘서는 듯한 넓은 고개길을 만난다.(13:07) 아마도 이 길은 고속도로 굴다리 지난 지점에서 시나골을 경유해 다시 정맥마루금과 합류하게 되는 부분쯤으로 여겨진다. 여기서부터는 경운기길을 따라 오르게 된다. 경운기길 상단에 이르면 왼편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고 철조망을 넘어선 흔적이 역력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계속 넓은 길을 따라 올라서야 한다. 왼편 바로 옆에 있는 66번 송전탑을 직접 통과하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가게 되는 셈이다.
철조망을 따르는 길 옆으로 "고압송유관 매설지역"을 알리는 간판이 수풀속에 묻혀있다. 65번 송전탑이 있는 나지막한 산봉은 직접 거치지 않고 산봉직전에서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내려선다.(13:15) 길은 계속해서 넓게 이어지고 송전탑 건설후 조림한 듯한 애기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야산지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주 서오리일대-지나온 관산과 만불산을 비롯하여 인내산, 구미산, 용림산이 보인다.
잠시후 과수원지대에서 파란 물통을 만나게 되는데 경주 서오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파란 물통을 지나서는 왼쪽 아래 서오리쪽 조남지가 있는 곳을 향하여 내려서는 경운기길로 접어들어 마을 도로로 내려선 후(13:20)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3~4분 가량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논배미들과 마을이 건너다 보인다. 때마침 땔감을 위하여 잔가지를 줏어 모으고 있는 노부부를 만나 이곳 지명을 여쭤본다.
"요긴 경주 서오고, 조 앞은 영천 효령이지"
산자락과 산자락을 연결하는 고개같지도 않은 잘록이에 큼직한 물웅덩이가 있고 그 오른쪽은 논이 들어 앉아있다. 비록 연못은 농사를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 졌지만 논과 웅덩이를 연결하는 작은 두렁 하나가 정맥이 되어 물길을 가르고 경주와 영천을 경계지으며 생활과 문화마저도 갈라 놓는다. 논물을 대기 위한 작은 연못은 동해로 흘러들어야 할 물이지만 농사철이면 두렁을 넘어 낙동강을 타고 남해로 흘러가야 하는 얄궂은 운명을 갖고 있다.

13시 24분, 위태롭게 물길을 가르며 정맥을 이어가는 작은 논두렁을 가로지른다. 우측으로 영천 효동마을이 지척이다.
10여분 후 사룡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157.5m)에 올라서자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13:35) 이 봉우리에선 사룡산뿐만 아니라 오봉산, 부산성일대도 잘 건너다 보인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를 즐기며 무아지경에 빠졌는가 싶었는데 바로 앞으로 중개 정도 크기의 노루 한 마리가 겅중거리며 앞 길을 가로지른다. 이번에는 확실한 노루였다. 아직은 자연과 야생이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잠시후 왼쪽 샘촌마을로 내려서는 넓직한 길을 지나친다.(13:39) 바로 옆으로 송전탑 하나가 서 있는 곳으로 이 넓은 길에선 우측으로 검은 비닐이 깔린 밭지대를 끼고 올라서게 된다. 이어서 60번 송전탑(13:45), 59번 송전탑(마지막 철탑,13:47)을 차례로 지나치더니 성황당터였던 듯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고갯길이다.(13:49) 경주 샘촌마을과 영천 효동을 연결하는 넓직한 경운기 길로 지금도 제법 통행이 있는 듯 길상태가 양호하다. 이 지점이 형재목장고개가 아닐런지? 왼쪽 바로 아래로 샘촌마을 논배미들과 차도가 아주 가깝게 내려다 보인다.

13시 56분, "김해김씨" "파평윤씨" 쌍무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돌팔이가 봐도 한눈에 명당터임을 알아볼 것같다. 왼편으로 오봉산, 우측으로 사룡산을 두고 있어 아! 이런게 바로 좌청룡 우백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쌍무덤을 지나 2분 거리에 좌우로 소롯길이 있는 안부를 지나면서부터(13:58) 길은 솔가리가 수북이 깔린 좁다란 소나무 사잇길을 요리조리 비집고 올라서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키작은 소나무 숲에서 얼마나 허리를 숙이며 올라섰는지 허리가 뻐근할 정도다. 사룡산을 향하여 용의 등허리를 타고 가는 길은 거친 된비알이다. 30분을 꾸준하게 올라서야 겨우 아래에서 뾰족하게 올려다 보이던 사룡의 첫 번째 봉우리를 밟게 된다.(14:29) 그저 바위 몇 개만 듬성듬성 놓여 있을뿐 사방은 수목에 가려있다.
애써 올라온 길을 까먹는 듯 능선은 잠시 내려서더니 또 한번 오르막을 극복하고서야 두 번째 봉에 올라선다.(14:49) 이번에는 소나무 한그루와 넓은 반석이 있는 멋들어진 전망대역할을 하는 곳이다. 긴 발품 끝이라 오랜만에 베낭을 내리고 느긋하게 조망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왼쪽으로 천촌리일대의 논밭이며 건너로 오룡산의 바위봉 윤곽이 뚜렷하고, 오른쪽으로는 영천쪽 북안면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골짝골짝은 저마다 자그마한 저수지 하나씩을 품고 있다.

◀사룡산 오름길의 바위전망대
14시 57분, 휴식을 뒤로 하고 잠시 올라서자 이번에는 더 멋들어진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15:02) 오른쪽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지대를 이룬 곳이다. 전망대를 지나쳐 오르자 "NO 036" 이라고 적힌 삼각점같은 지적표석이 땅에 박혀있다.
이곳 역시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시멘트 표석을 지나쳐 5분 거리에 멋들어진 소나무와 조화를 이룬 전망바위 하나를 더 지나치게 되는데(15:08) 이 지점은 암릉으로 되어있어 바위 왼쪽 아래를 돌아서 올라간다. 사룡의 등줄기를 타고 오른 머리부분은 곳곳에 뛰어난 조망을 제공하는 전망대가 있어 피곤했던 발품을 충분히 보상하고 있었다.

15시 14분, "위험고전압" 이라 적힌 전봇대와 녹슨 안테나가 산정을 지키는 봉우리에 섰다. 이곳은 비슬기맥 분기점으로 정맥은 왼쪽(남동)으로 고개를 숙이는 내리막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바로 숲재로 내려서는 능선분기점이다. 하지만 정맥으로 내려서는 능선 초입부로는 족적이 희미하다.
비슬기맥은 이곳 사룡산 직전 약 650봉에서 남서방향으로 곁가지를 친 맥으로 사룡산을 지나 영천,청도의 경계를 가르며 구룡산(674m)을 거쳐 경산으로 접어든 후 대구, 청도의 경계를 따라 비슬산으로 뻗어나가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우진나루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74km의 산줄기로서 금호강의 남쪽수계를 형성하고 있다.
즉, 사룡산 고스락은 안테나가 서있는 이 기맥분기봉에서 북서쪽 약 500m 거리에 떨어져 앉아있어 낙동정맥 마루금이 직접 거치지는 않지만 정맥에서 곁가지를 치는 비슬기맥이 시작되는 산봉이라봐도 무방할 것이다.

기맥분기봉 바로 아래에는 올해 설치된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이곳에서 감시인을 만나 주변산세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한다.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갓바위까지 잘 보인다고 하건만 옅은 스모그로 인해 그저 팔공산자락만 아스라히 그 윤곽을 희미하게 보일뿐이다.
15시 21분, 기맥분기봉에서 사룡산을 올라보기로 한다. 진행방향으로 잠시 내려서면 사룡산과 생식마을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15:24) 넓은 수레길을 따라 오르는 억새밭지역이 펼쳐진다. 억새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게 되면 왼편으로 시멘트헬기장 하나를 지나친다.(15:25) 이후 넓은 길은 무덤쪽으로 이어지고 있고 능선마루 숲길로 접어들어 5~6분 가량만 더 진행하면 망자의 무덤이 고스락을 지키고 있는 사룡산(四龍山,683m)이다.
무덤2기가 있는 사룡산은 경주, 영천,청송을 경계지으며, 그런대로 조망이 넓게 펼쳐지는 곳으로 남서쪽 비슬기맥 초입부로 한국독도학교의 기맥표지기를 비롯하여 일반산악회 표지기들도 걸려있다. 이 표지기들을 따라 나서게 되면 청도 운문면의 신당마을로 내려서는 등산로와 이어진다.

사룡산을 뒤로 하고 5분 가량 되내려와 생식마을로 내려서는 삼거리에 이른다.(15:40) 여기서부터는 생식마을을 통과하는 넓은 마을길을 따르기로 한다. 왼쪽 바로 위가 정맥능선이지만 이 기회에 생식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생식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지형이 시루모양을 닮았다하여 "시루미기"란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이 마을 주민들은 생식을 원칙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민들의 종교도 각양각색이지만 기독교적인 경향이 강한 것같다. 아무튼 사룡산 8부 능선쯤에 자리한 생식마을은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땐 생경스러운 곳이다. 곳곳에 약초와 관련된 글귀와 종교적 냄새가 풍기는 석비들이 세워져 있고 철망으로 높이 세운 문들도  자주 눈에 띤다.
민가가 끝나게 되면 생식마을의 관문역할을 하는 "식물분석장" 출입문을 빠져나온다.(15:53) 출입문 왼편으로 주차장으로 통하는 길이 정맥능선이 되지만 도로를 따르는 길과 나란히 진행하므로 능선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계속되는 시멘트 길을 따라 정맥능선을 왼편으로 바짝 끼고 내려서면 생식마을을 알리는 표석이 서 있는 숲재 고개마루다.(16:00)

이로서 2003년 마지막 날 한무당재~숲재까지의 보충수업을 마친다. 인적은 커녕 차량왕래조차 뜸한 숲재엔 차가운 바람만이 아쉬웠던 한해의 끝자락을 붙잡고 황망히 고개를 넘고 있다. 근 1시간 가까이 오들오들 떨고서야 마눌님이 도착하고 건네주는 뜨거운 커피 한 잔에 이내 한기는 사라진다.
이제 꼬랑지만 남은 2003년 마지막 태양이 서산마루 하늘을 붉게 적시며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을 오랫도록 지켜보며 또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접는다. 아~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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