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나라 물의 나라 방태산
*일시: 2011.7.5 (알프스)
*산행코스: 미산리-개인약수산장-개인약수-방태산-적가리골-방태산자연휴양림
*산행상세
미산리 미산약수교-(5.5km/1시간10분)-대개인동 개인약수산장-(1.5km/35분)-개인약수-(1.5km/1시간05분)-주능선-(1.4km/30분)-(0.4km/15분)-삼거리-(4.2km/1시간20분)-제2주차장-(2km/40분)-매표소(방태산 자연휴양림관리사무소)
==== 이정표거리:16.5km, 총소요: 7시간20분, 순보행: 5시간 35분) ===
정감록에 나오는 난리 피할 수 있는 최고의 피난 처, 삼둔사가리로 알려진 은둔의 땅
내린천, 진동리, 방동리, 살둔, 원둔, 귀둔, 아침가리, 적가리, 곁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등 타인들의 입과 눈을 통해 이미 가보고 싶은 곳으로 점찍어 두었던 방태산으로 떠난다.
"둔" 이란 농사짓기 좋은 평평한 산기슭을 의미하고, "가리"는 경작하여 살만한 계곡 옆의 땅을 의미한다고 한다. 방태산은 이미 그 명성이 자자하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아직도 때묻지 않은 오지의 산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건강하게 보존된 원시의 약수골이며, 적가리골 투명한 계곡의 풍부한 물줄기들, 방태산의 기억은 온통 물의 나라, 산의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
◀개인약수 입구가 되는 미산약수교
7월 장마의 틈새에서 요행히 비를 피한 날, 방태산 한 모퉁이로 스며든다.
운두령 고개길 구비구비 힘겹게 넘어 도착한 강원도 인제군 삼남면 미산리. 포항에서 5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으니 꽤 먼 길이다. 인제쪽 삼남과 홍천쪽 내면을 연결하며 내린천을 따라 난 446번 도로변의 "미산약수교" 가 놓인 곳이 방태산 산행의 초입이 된다. 다리 옆으로는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간이매점이 있고, "개인산약수 7km, 미산너와집, 운계정, 오봉산장" 등을 알리는 안내판이 어지럽게 서 있다.
내심 대개인동 개인약수산장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할지 알았건만 다리 건너편으로 대형버스 진입금지를 알리는 프랭카드가 걸려있으니 버스를 타고 온 일행은 영락없의 차의 길을 걸어야 할 판이다.
11시 48분. 출발이다. 이미 점심때가 다 된 시간의 출발인지라 오늘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된다.
7월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아스팔트 포장길을 또박또박 걷기 시작한다. 어제 내린 비로 요란하게 흐르는 내린천을 가로지르는 "미산약수교"를 건너 오른쪽 개인약수 안내팻말을 따라 들어간다.
몇 걸음 도로를 따라 나서자 "산삼금표(産蔘禁標) " 안내판이 나타난다. 내용인 즉, 예전 이 지역은 산삼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었고, 타 지역민의 채삼을 금지하기 위해 세웠던 금표석을 세웠던 자리였다는 내용을 적어 두었다.
길은 산비탈을 굽이굽이 거칠게 돌아간다. 대형버스로는 커브를 틀 수 없을 만큼 급하게 돌아가는 모롱이도 나타난다. 초입 버스진입금지를 알리는 안내판을 무시했더라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송어회와 토종닭을 파는 운계정을 지나 깃대봉 갈림길이 있는 한니동까지 빠른 걸음으로 13분 정도가 걸렸다. 깃대봉 초입으로 방태산안내도가 잘 그려져 있고 한니동을 알리는 안내판과 잘 지어진 팬션이 눈에 들어온다.
욕심같아선 깃대봉~주억봉~구룡덕봉을 한꺼번에 꿰고 싶지만 오늘 일정으로는 터무니 없는 욕심일 뿐이다.
대개인동의 개인약수산장까지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는 산굽이를 힘겹게 굽돌아 오른 후 산허리를 넘으면서 다시 계곡쪽으로 길게 곤두박질 친다. 인적이라고는 없을 법한 첩첩 산중이건만 "배나무골" 안내판이 붙은 지계곡 언덕 위로 팬션인지 민가인지 모를 집이 몇 채 모여있다.
배나무골 이후 10여분 내리막 끝으로 도로가 180도 돌아가는 부분에 "오봉산장"을 알리는 빗돌이 서 있다. 산장 앞으로는 숲에 가려진 소개인동계곡이 넓게 펼쳐져 있다. 여기서 개인약수터산장까지는 150m, 5분 정도를 더 올라서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형버스를 이용한 단체산행에서 개인약수코스를 들머리로 오를 경우라면 446번 도로변에 있는 소개인동에서 소개인동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것이 훨씬 산꾼들에게 어울리는 길일 것이다. 단, 계류를 건너야 할 경우를 대비하여 반바지와 샌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대개인동에 있는 미산너와집-예전엔 개인약수산장만 있었지만 최근에 들어선 건물이다.
큼직한 공터 주차장과 산장이 들어서 있는 대개인동에서는 계곡이 둘로 갈리고 길도 계곡따라 둘로 갈린다. 직진방향은 대개인동계곡(어둔이골)을 따라 구룡덕봉쪽으로 이어지고, 개인약수는 좌측 약수골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개인약수터산장 앞마당을 가로질러 왼편 계곡쪽으로 진행한다.)
갈림길 초입으로는 각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이정표: 약수터 1.4km/40분, 미산마을 4km/1시간30분, 구룡덕봉 4.5km/3시간40분) 이정표상 미산마을까지는 4km로 표시되어 있지만 꼬박 1시간 10분을 걸었고, 초입 이정표에 따르면 약 5.5km 정도로 추정된다. 도로를 걷는 동안 방태산에 대한 기억이 7월의 뙤약볕 아래 한없이 차도를 걸었던 기억으로만 점철될까 내심 걱정이었다.
방태산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둔이골로 잠시 들어서 본다. 이름대로 어둡고 습한 기운이 가득하다. 길은 뚜렷하지만 최근 다녀간 발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말 그대로 청정계곡이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 나와 약수골 초입에서 점심식사 후 출발이다.
대개인동에서 북쪽으로 난 약수골을 따라 개인약수까지는 1.55km, 약 35분 정도가 소요된다. 개인약수의 인지도에 비한다면 계곡은 원시의 상태로 남아 있는 듯하다. 계곡의 경사도가 제법 있는 편이지만 물의 풍요로 인해 곳곳에 앙증맞은 폭포의 나라를 펼치고 있다. 초록 이끼가 바위며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이끼계곡이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법도하다.
대개인동까지 차도를 걷느라 지친 심신이 시원한 물소리와 계곡의 서늘한 기운에 한껏 위로를 받는다.
이윽고 개인약수. 돌로 다듬은 넓은 재단터로 깔끔하게 조성된 약수터엔 붉은 기운의 약수가 뽀글뽀글 쉼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톡 쏘는 맛도 일품이다. 해발 1080m 지점에 자리한 개인약수는 당뇨병과 위장병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한다. 주변으로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서 있어 마치 약수터를 지키는 호위병처럼 여겨진다.
▲좌: 개인약수터- 돌로 정성껏 다듬어 개인약수
우:개인약수를 지나 방태산 오르는 길은 녹색 이끼류 가득한 원시의 계곡을 걷는다.
약수터 앞에서 계곡은 둘로 갈라지고 길도 둘로 갈린다.
약수터 맞은편 계류를 건너 산비탈 오르는 초입으로 표지기들이 여럿 붙어 있는 또렷한 길이 보이는데, 그 길은 깃대봉방면의 배달은석쪽으로 이어지고, 약수터 뒤편 제단터쪽 길은 방태산 주억봉쪽에 좀더 가깝게 올라붙는다. 두 길 모두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로 능선까지는 가파름을 극복해야 한다.
주억봉까지 좀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후자의 길을 따라 약수터 오른쪽 뒤편으로 걸음을 옮긴다. 길은 계속되는 계곡을 따른다. 수림이 우거져 숲은 어둑하다. 족적마져 희미해지니 더욱 원시에 가까워진다. 길조차 반듯하지 않으니 그저 물길을 따르면 그게 곧 사람의 길이다.
물길은 경사도가 꽤 급한 편이지만 계곡의 규모에 비해 물은 여전히 풍요롭다. 낙차가 있으니 당연히 작은 폭포가 여럿 생겨난다. 사람의 때를 탄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으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곳곳에 관중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으니 마치 열대 우림의 정글을 걷는 기분이니 이국적 분위기마저 풍긴다.
길은 어느 순간 물흐름이 멈추고 고추서기 시작한다. 통과의례같은 긴 가풀막이 한동안 이어진다. 개인약수를 출발하여 1시간 가까이 비지땀을 흘리자 드디어 하늘이 열리는 능선마루다. 처음엔 주능선인가 착각하였지만 찬찬히 지도를 살펴보았더니 이제 겨우 지능선 마루에 올라섰다. 지형도엔 용갱등이라 표기되어 있다.
올라선 지능선에서 방향을 좌로 꺽어 15분 가량 더 땀을 쏟아내고서야 깃대봉과 주억봉 사이의 주능선에 다다른다. 주능선과 합류하는 지점으로는 이렇다 할 지형지물이나 이정표가 없다. 그저 작은 공터에 난 희미한 갈림길 수준이다. 만약 올라왔던 길로 하산할 경우라면 이 갈림길을 지나칠 수 있으니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올라선 주능선에서 주억봉은 오른쪽이다. 주억봉까지는 수림에 가려 다소 답답하지만 한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시종 이어지니 그 또한 위안이다. 길은 달려도 좋을 정도의 평지성 탄탄대로이니 주억봉까지는 순식간이다.
방태산 정상에서 본 소쿠리형태의 적가리골 풍경▶
올라선 주능선에서 주억봉까지는 2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삼각점이 있는 방태산 주억봉은 산의 형태가 주걱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정상부에서 북쪽 아래로 보면 적가리골의 형태가 여느 산의 능선과 계곡과는 사뭇 다르다. 소쿠리 형태의 능선이 에워싼 골짜기는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지릉이 촘촘한 주름을 놓은 듯 적가리골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그 건너로는 연무속 설악산의 모습이 어렴풋이 건너다 보이고, 배달은석, 깃대봉쪽의 주능선도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 공터에서 주억봉주변을 둘러싼 산군의 모습을 보는 맛은 각별하다. 온통 보이는 것은 산뿐이다. 겹겹으로 에워싼 산줄기가 중첩된 풍광이 멋스럽다. 멀리 설악산에서 오대산으로 뻗어나간 대간줄기가 아스라하고 가까이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초원을 이룬 구룡덕봉(1388.4m), 개인산(1341m), 침석봉(1320.8m)이 빤하다.
이곳에 서면 방태산이 과연 " 산의나라" "물의 나라" 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하산은 정상 이정표가 안내하는 삼거리 방면인 구룡덕봉쪽이다.(이정표: 삼거리 0.4km, 탐방로종점 4.6km)
15분 가량 숲길을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는 3거리로 직진은 구룡덕봉, 좌측은 적가라골 방면이다.(이정표: 주억봉 0.4km, 구룡덕봉 1.4km) 삼거리에서는 왼쪽 방동리라 표시된 이정표를 따른다.
내려서는 길 초입은 유순한 편이지만 내려 설수록 길은 거칠어진다. 거친 내리막은 통행이 많았던 듯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40여분 급경사를 구르듯 떨어지면 물소리가 들리는 지당골 계류가에 닿는다. 등산로가 계류와 만나는 지점부터는 나무계단공사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이후 지당골계류를 따라 내려서는 길로는 계곡을 여러 번 건너지만 그럴 때마다 앙증맞게 생긴 나무다리가 있어 웬만한 수량에도 신발을 적실 일이 없을 것이다.
▼적가리골의 대표명소인 2단폭포(이폭포저폭포)-연이어진 암반 폭포 풍치는 수량이 풍부하고 짜임새가 매우 뛰어나다.
합수부를 지나면서부터 지당골은 적가리골로 이름을 바꾼다. 계곡따라 30여분 내려서면 탐방로종점 1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이정표: 주억봉 3.6km, 구룡덕봉 4.6km, 탐방로종점 1.0km, 우측 숲체험코스 400m) 이후 3분 거리에 또다른 이정표를 만난다.(이정표: 매봉령 2.7km, 구룡덕봉 4.2km) 이 안내판들은 방태산 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매봉령~구룡덕봉~주억봉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 탐방로를 안내하고 있다.(탐방로 길이: 10.2km)
이후 너른 암반을 아래에 두고 병풍처럼 길게 펼쳐져 흐르는 폭포에서 잠시 쉬어간다. 뜨거운 7월 이건만 발을 물 속에 담그자 뼛속까지 시려진다. 물 속에선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암반 바로 아래에서 탐방로가 끝나는 제2주차장이다. 너른 공터 한 켠에 탐방로 각 구간별 거리와 코스를 자세하게 그려놓은 안내판이 서 있다.
이제부터는 다시 비포장 차도를 따른다. 비록 차의 길이지만 적가리골의 수려한 풍광과 물소리가 지루함을 덜어준다.
구룡교를 지나면 길 왼편으로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마련되어 있고 그 아래 계곡에 적가리골의 대표명소인 2단폭포(이폭포저폭포)가 숨어 있다. 장마의 힘을 빌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폭포 주변으로는 물보라가 휘날려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엔 그만인 듯하다. 이후 산막이 설치된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3층 구조의 "산림문화휴양관"이 보이는데 그 바로 직전의 마당바위와 와폭 또한 볼만하다.
휴양관에서 방태산 자연휴양림관리소가 있는 매표소까지는 2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현재 그 길은 전선관 매립공사로 길을 파헤쳐 놓아 걷기까지 불편하니 휴양림은 개점휴업 상태인 셈이다.
길은 지루하지만 적가리골의 물소리가 그 지루함을 덜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