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암 남사고묘(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2015.10.18


남사고 부친묘를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사고 본인의 묘소도 둘러 보았다.
무덤은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 57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부친묘가 있는 수곡리에서 7번 국도변으로 진입하는 길 옆으로 자리하고 있다.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울진 근남면 수곡리 출신으로 조선 명종 때 이름이 높았던 예언가이다.
1575년(선조8) 조정이 동서 양편으로 분당될 것을 미리 짐작했고, 뒤이어 임진왜란(1592)이 발생할 것도 정확히 예측했던 인물로

남사고는 우리나라 풍수의 비조(鼻祖)로 불리는 도선대사를 비롯하여 박상의,이의신,숙종대왕, 성지대사,무학대사,일견대사,학조대사,어사 박문수,
토정 이지함 등의 인물들과 함께 걸출한 명풍수로서 격암유록 등 흥미진진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많이 남긴 인물이다.
남사고는 예연뿐만 아니라 풍수지리학에 조예가 깊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격암유록이라는 예언서를 남겼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집필자의 진의여부에 대해서는 확실치가 않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소년 남사고는 고향인 울진 불영사에서 한 노승을 만났는데 노승은 남사고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고 천(天), 지(地), 인(人) 3편의 비서(秘書)를 주었다.

천편은 별자리의 운행과 그 운세 등 천문에 관한 모든 사항을 항목별로 적어 놓았다. 지편은 산천의 지세와 명당 등 풍수를 자세히 논한 것이었다. 인편은 한번만 사람 얼굴을 보고도 그의 명운(命運)을 알아맞힐 수 있는 비급(秘笈)이었다.

노승은 이 책들을 건네주며 신신당부했다. 비급에 적힌 술법을 배우기보다는 덕을 쌓는 것이 더 중하다고 강조했다.

그러고 어느 날 노승은 남사고의 공부를 점검하러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남사고가 당연히 제1권인 천편부터 공부하고 있으리라 짐작했으나, 남사고는 마지막 인편에 실린 각종 비술에 빠져 천편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노승은 남사고가 비결을 익혀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쓸까 염려한 나머지 남사고의 집에 불을 질러 책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러고는 불영사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졸지에 비급을 모두 잃은 남사고는 새 각오로 집을 떠나 삼천리강산을 두루 유람하였다.

그렇게 공부해서 마침내 명당을 얻더라도 결국 덕을 많이 쌓은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쳤다고 한다.


▲수곡리 도로변에서 남사고 묘소를 알리는 표석

남사고 묘에 대해선 안내판도 없고 "격암남선생 묘소"를 알리는 표석 하나가 전부다. 산자락으로 향하는 농로길을 따라 들어간다.


▲위성지도에서 표시한 남사고 무덤 위치


▲터 좋은 무덤가를 지나고


▲산기슭을 따라 짧은 대숲 사이길로 올라간다.


▲도로변에서 5분 남짓 걸으면 남사고의 무덤이다.

앞면에는 格菴南先生之墓, 옆면에는 崇禎紀元後五 즉, 1890년에 건립하였던 같다.

상석과 무덤 왼편으로 비석이 있다. 남사고가 아니고 남선생지묘라고 적혀 있다.

보통의 비석은 무덤 오른쪽에 있는데 여기는 왼편에 있어서 의아하다.


▲격암 남사고 선생 묘소


▲예를 갖추고


▲묘소가 자리한 위치에 대한 설명을 드는다.


▲영강과 영공중인 늙은 학생들


▲무덤 앞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안산


▲무덤 뒤로 주산

외소한 소나무 한 그루가 무덤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문득, 격암선생의 묘소는 과연 누가 잡았는지 궁금해 진다. 본인 아니면 그의 제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