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일대도 사람들로 가득하여 정상표석에서 인증샷 한번 남기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발 아래로 보리암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올라선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예전에 부둥켜 안고 찍었던 작고 앙증맞은 표석이 서 있는게 아닌가. 망대쪽에 새로운 표석이 있지만 예전 표식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있다니... 잊고 지내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한동안 고스락에서 이 바위 저 바위 옮겨 다니며 어슬렁거리다 사람들에게 쫒기듯 정상을 내려선다.
▲금산 정상부 모습- 왼쪽 상하는 망대와 금산표석, 오른쪽은 문장암이다. 금산 38경 중 제 1경인 망대는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로 사용되었으며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라 적혀있다.
오른쪽 문장암은 조선시대 학자인 주세봉 선생이 "由虹門上錦山(유홍문 상금산;쌍홍문을 거쳐 금산에 오르다)"라는 글귀를 새겼다 하여 '문장(文章岩)'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일명 '명필바위'라 부른다. 지금도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반갑다!!! 예전 표석
▲대장암 아래로 상주해수욕장
▲당겨 본 상사바위
▲금산 구 표석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대장봉과 보리암
▲ 마치 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천구봉 - 뒤로는 남해지맥
상사바위까지 능선으로 계속 이어지는 길은 넓고 편하다. 각 갈림길마다 든든한 이정표가 있으니 길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좋을 듯하다. 단군성전을 둘러보고 헬기장이 있는 갈림길에 올라섰더니 뜻밖에도 우리 일행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그들은 상사바위쪽을 돌아 오르는 길이라고 한다. 식사 후에는 부소암을 돌아보려고 한다는 귀뜸을 해준다. 사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부소암의 존재조차 몰랐다.
▲ 단군성전-1995년에 재건립하였다고 적혀있다.
큰 기대없이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그냥 둘러보자는 심산으로 부소암쪽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길은 주등산로와 달리 사면을 따라 난 좁다란 길이다. 초입으론 "부소암 가는길"이란 이정표만 있을 뿐 거리표시를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가야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걷는다. 길은 한동안 내려선다. 이러다가 고도를 다 까먹는가 하는 조바심이 날 즈음.
두~둥~~~ 하면서 코 앞으로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나타난다. 구지 설명이 없더라도 그 바위가 부소암(扶蘇岩)이란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부소암은 사람의 뇌처럼 생겼다고 표현하고 있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멀리 다도해를 밑그림으로 깔고 있는 부소암의 전경은 소나무와 어울려 그윽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마치 이승과 천계를 연결해주는 철다리를 건너면 부소암에 대한 안내판이다. 안내판에는 중국 진시왕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 유배되어 살다가 갔다는 전설과 단군의 첫째아들 부소가 방황하다가 이곳에 앉아 천일기도를 하였다는 짧막한 글이 전부다. 부소암의 비범한 모양세나 풍경에 비하여 참 싱거운 이야기다. 아마도 분명 좀 더 깊고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부소암-법왕대라고도 한다. 사람의 뇌를 닮은 기이한 모습이다.
암봉을 270도 정도 애돌아 간다. 부소암 직전으로 두모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다.
녹쓴 철문을 밀고 돌계단을 올라서자 놀랍게도 거대한 바위벼랑을 등지고 아담한 암자 하나가 나타난다. 부소암(庵)이다. 즉, 부소암은 바위와 암자가 한 몸인 셈이다.
도대체 이 거대한 바위를 등진 까마득한 벼랑 위에 처음 절 집을 지은이는 어떤 이 였을까? 그리고 이런 천연의 요새 지역이 있다는 것은 어찌 알아냈을까? 이런 곳에선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득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 바위를 애돌아 나가면 녹쓴 철문이 나타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지런한 돌계단 위로 다소 옹색해 보이는 암자 부소암이 거대바위를 등지고 나타난다. 인근 보리암에 비해 턱없이 초라한 모습이지만 몸과 마음은 더욱 경건해진다.
▲두모마을과 노도가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고
기척을 보여도 암자는 고요하다. 스님은 출타를 하셨는가 보다. 주인없는 빈 뜰에서 혼자 어슬렁거린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찬바람이 남아있는 겨울 끝이지만 바위가 찬바람 막아주는 부소암 뜰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 그 햇살이 아깝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까워 염치불구하고 절 마당 평상에 앉아 점심상을 펼친다.
혼자 먹는 점심이지만 전혀 외롭지가 않다.
밥 한 숫가락에 반찬은 바다다. 또 밥 한 숫가락에 반찬은 산줄기에 기대어 있는 평화로운 두모마을이다. 반찬은 끝없이 많다. 건너편으로 길게 띠를 두른 암릉이며, 절 마당에 파릇하게 돗아 나는 새싹이며, 싱싱한 기상으로 자라는 소나무며,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감탄이다. 혼자놀기가 지겨워질 즈음 건너편 철다리에서 일행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그 소리에 나른한 봄날 낮잠에서 깨어난다.
부소암은 금산이 준 뜻밖의 선물이다. 훗날 금산을 기억할 수 있는 최고의 고리가 될 것이다.
▲절마당엔 옛 이야기를 전하듯 돌확이며 석대등이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고
▲천 길 벼랑 위 위태롭게 자라는 소나무가 있는 곳, 그 바위 뒤에 꼭꼭 숨겨진 부소암은 오랫도록 기억될 것이다.
다시 주능선으로 돌아오는 길. 사면으로 지름길이 보이길래 호기심으로 들어섰더니 그 길에서 뜻밖에도 얼레지 군락을 만났다. 아직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몇 날만 더 있으면 꽃대가 올라 올 것이고 지천으로 화려한 얼레지가 나그네를 유혹할 것이다. 혹 이번 산행에서 운이 좋으면 얼뜨기 봄꽃이라도 만나려나 기대했었는데, 얼룩무늬 꽃잎이라도 보았으니 아쉬움은 떨쳐버려도 섭섭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름길 사면을 따라 올라섰더니 부소암 갈림길이 있던 헬기장에서 약 50여m 떨어져있는 또다른 헬기장으로 접속된다.
▲부소암에서 돌아오는 길, 운좋게 얼레지 군락을 만나다.
언제 내렸을지 모를 옅은 눈 속에 피어나는 얼룩무늬가 애처롭지만 몇 날만 지나면 그 화려한 춤사위를 벌일 것이다.
이후 다시 번잡해진 길을 따라 상사바위에 선다. 안내판에 따르면 조선조 숙종대왕시절에 전라남도 돌산지역 사람이 남해에 이거하여 살았는데,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과부에게 반하여 상사병에 걸려 사경을 헤메게 되었다. 남자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아름다운 과부가 이 바위에서 남자의 상사를 풀었다 하여 이 바위를 상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흔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상사암은 금산에 있는 바위 중 최고로 규모가 큰바위이고, 최고의 조망터로 알려져 있다. 발 아래로는 은모래로 유명한 상주해수욕장 펼쳐지고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이 귀양살이를 했다는 노도가 두모마을과 한 몸처럼 보인다. 그 오른편으로는 앵강만 건너로 설흘산도 가깝다. 빤히 보이는 보리암 방면으로는 저마다의 사연과 전설을 품고 있는 바위들이 기묘한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못다 이룬 사랑의 아픔을 가진 사람이 상사바위 벼랑 끝에 선다면 그 사랑에 겨워 어떤 극단의 충동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사랑의 아픔을 가진자여 부디 상사바위 벼랑 끝에는 서지 마시길.
▲상사바위 가는 길에 건너다 본 금산의 바위 전시장
▲사람들이 옹종하게 모여 있는 제석봉 뒤로 보리암을 당겨보고
▲향로와 같이 생겼다 하여 향로봉
▲향로봉 오른쪽 끝으로 상사바위
▲상사바위
▲상사바위에서 본 상주 해수욕장- 물고인 바위확은 상사바위 전설에 나오는 구정봉이 아닐런지
▲두모마을과 노도
▲팔선대 건너로 앵기만과 설흘산
상사암에서 금산매표소쪽으로 원점회귀를 위해선 다시 쌍홍문쪽으로 돌아와야 한다.
상사바위쪽에서 보는 금산은 말 그대로 만물상이다. 정상부 아래로는 화엄봉, 일월봉, 제석봉,향 로봉이 줄을 이으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각각의 바위를 이동하며 다른 각도에서 보는 맛도 각별하다.
특히 인상적인 곳은 제석봉 인근의 금산산장이다. 국립공원내에 이렇듯 숙박과 먹거리를 제공하는 사유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80 년대쯤으로 되돌아 온 느낌이다.
국립공원의 고압적인 규칙의 테두리가 철망을 치지 못하는 치외법귄 지역, 금산산장은 금산의 소도에 해당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막걸리 파전냄새 풍기는 산장이 밉기는 커녕 오히려 정감이 간다. 만약 혼자가 아니었다면 막걸리 한 사발 청해 느긋하게 풍광에 취한 막걸리 잔을 주거니 권쿼니 했을 것이다.
▲제석봉에서 본 금산산장
▲제석봉에서 일월봉과 보리암
쌍홍문을 빠져나와 주차장을 내려오는 길은 여전히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이다. 4시간 남짓한 짧은 산행에서 너무 욕심 내서 많은 것을 보고 온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 잊어도 부소암에서의 기억 하나만으로도 대만족이다.
다시 올려다 본 금산. 이제 막 꽃망울를 피우기 시작하는 주차장 쉼터 목련 너머로 상사바위가 하얗게 빛난다.
▲주차장 쉼터에서 다시 올려다 본 금산-우측이 상사바위
목련이 활짝 피었을때 보면 환상적인 그림이 되지 않을런지...
*2014.3.15(알프스)
*흔적:금산탐방지원센터-쌍홍문-보리암-부소암-상사바위-제석봉-쌍홍문-원점(6.4km/4시간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