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이 준 뜻밖의 선물, 부소암]

 

부소암은 금산이 꼭꼭 숨겨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사실, 이번 금산 산행에서 산문을 들어서기까지 부소암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부소암은 거대한 바윗덩이 이자 작은 암자다.
봄 햇살로 데워진 부소암 뜨락은 따뜻하다. 절집은 고요하다. 그래서 평화롭다.
한 뼘 절 마당엔 세월의 흔적이 묻은 바위확 몇 개가 어깨를 맞대고 얕은 담장 너머 바다와 그 바다에 기대에 사는 민초들의 이야기에 귀 귀울이고 있는 듯하다. 한 켠으로는 가지런히 정열된 기와들이 새롭게 태어날 불사를 꿈꾸고 있다. 거대한 부소암이 바람을 막아주는 부소암 뜨락에 앉아 짧은 몽상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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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암 뜰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두모마을과 노도, 앵기만 건너로는 남해 설흘산이 건너다 보인다.

 

비록 한 뼘밖에 되지 않는 뜨락이지만 펼쳐진 드넓은 다도해 전부가 절 집 마당이고 보니 옹색한 암자에 비해 마당은 가없이 넓다. 발치 아래로는 두모마을이 정겹게 앉아있고 마을 비탈엔 다랭이 논이 봄 햇살에 졸고 있다.
옅은 미세먼지가 시야를 살짝 흐리게 하지만 바다 본연의 빛을 감추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쪽빛 바다, 산줄기가 바다에 닿는 너머로 작은 섬 노도가 육지와 키를 맞대고 있다. 멀리로는 여수 돌산도가 희미하다.
부소암에서는 그렇게 바다와 마을이 어우러지며 풍경을 완성시킨다. 분명 저 아름다운 그림 속에는 오래된 이야기와 민초들의 고달픈 애환이 있겠지만 멀찌감치 떨어져 보는 그림에서는 그 모든 애환조차 평화로운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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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암 갈림길에서 5분 정도 내려가면 눈 앞으로 나타나는 기과한 암봉이 부소암이다. 철계단과 다리를 건넌 후 왼편으로 돌아 나가면 거대암봉에 숨겨져 있던 부소암을 만날수 있다.▲사진(좌,상) 부소암 바위를 왼편으로 돌아나가는 중 두모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사진(좌,하) 철계단을 건너와 건너편으로 보이는 암봉군, ▲사진(우,상)부소암 스님은 출타를 하셨는지 법당문은 굳게 잠겨져 있다. ▲사진(우,하) 암자 뒤편 바위벽에는 호랑이를 탄 산신할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경남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남해의 소금강이라 할 만큼 기암괴석이 눈길을 끄는 산이다.
최정상부인 망대에 올라서면 남해의 아름다운 해안과 크고 작은 섬들이 푸른 바다와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곳이다. 아니 어쩌면 산 자체보다는 기도도량인 보리암으로 인해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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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정상표석이 서 있는 바위에 올라 내려다 본 상주해수욕장 일대

 

정확하게 25년 전 이곳 남해 금산을 찾았었다.
금산매표소에서 쌍홍문을 거쳐 보리암과 정상을 밟은 후 두모계곡으로 내려섰었다. 하지만 그 때를 기억할 만한 것은 낡은 사진 몇 장과 다섯 줄의 기록이 전부이다. 세세한 감동과 길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20대의 열정으로 이 산 저 산 기웃거리며 웅진에 잠시 적을 두고 있던 시절이었다. 밤 늦은 시간 금산매표소 부근에 도착하였고, 야영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시간에 묵직한 등짐으로 금산에 올랐던 기억이 아슴하다.
당시는 3조3교대 시절이라 야간 출근시간 전에 맞추어 포항에 도착하려면 오전 내로 산행을 마쳐야 했다. 요즘이야 조금 일찍만 서두른다면 전국의 산을 당일에 다녀 올 수 있는 세월이고, 휴무일도 많으니 격세지감이다. 참 오래된 세월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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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금산

 

포항을 출발하여 약 4시간만에 금산탐방지원센타 앞에 선다. 주차장 뒤로 우뚝하게 솟은 암봉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보는 이를 압도한다. 양지바른 길 섶엔 이미 진달래가 피었으니 이곳이 남도 땅임을 비로서 실감한다.
사진 몇 장 남긴다고 어물거리는 사이 일행들은 죄다 저만치 앞서간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내판을 뒤로 하고 일행들의 뒤를 잰걸음으로 따른다. 길은 널찍하고 완만한 한길이다. 허나 채 10여분도 나서지 않아 심장이 헐떡거리며 조여온다. 게으른 일상과 나태로 이젠 몸도 마음도 많이 삐그덕거린다. 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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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봄은 역시 빠르다. 쌍홍굴 오르는 길에서 만난 봄의 전령사들이다. 진달래와 현호색, 남산제비꽃과 생강나무

 

토요일. 붐비는 길엔 우리일행뿐만 아니라 강원, 경기, 충청, 경남지역의 산객들로 빼곡하다. 그 중 경남 마산쪽의 말씨를 쓰는 할머니들의 사투리가 정겹다. 예순을 훨 넘긴 듯한 연배지만 걸음은 날렵하다. 저 나이가 되어서도 저들처럼 저렇게 씩씩한 모습으로 산을 찾을 수 있을까?


긴 오름에 두텁게 껴입었던 옷을 한 거풀씩 벗어내는 사이 쌍홍문(雙虹門)에 도착한다. 주차장을 출발하여 쉬엄쉬엄 1시간 가량이 소요되었다. 쌍홍문은 예전에는 천양문으로 불리었다고 하나 원효대사가 이 굴을 보고 두 개의 무지개 같다고 하여 쌍무지개를 뜻하는 말이지만 범부의 눈에는 해골의 형상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오래 전에 찾았던 금산의 기억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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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제15경 쌍홍문- 옛날 세존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으로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온다.

 

쌍홍문은 금산 정상이나 보리암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해골의 눈 속으로 들어서면 서늘하다. 이리저리 움푹 패여 들어간 벽면이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굴 안쪽 벽에는 세 개의 구멍이 나란히 있는데 돌맹이를 그 구멍에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특히 가운데 구멍에 돌을 넣으면 득남한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뭔가 수수께끼같은 이야기가 더 있음직해 보이는 신비감이 넘치는 동굴이다. 쌍홍문 들어서기 직전 왼편으로 넝쿨식물인 송악이 뒤덮고 있는 큼직한 바위는 쌍홍문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장군암이다. 장군이 검을 잡고 우뚝 서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사람의 옆 얼굴 모습을 하고 있는 듯도 하다. 장군암 직전으로는 동서남북에 있는 네 명의 신선들이 모여 놀았다는 사선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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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 들어서기 직전 오른쪽으로 보이는
만장대(12경) 절벽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단애 위에 보리암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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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 내부 - 굴 속에 들어가면 천정으로 구멍이 뚫어져 있어 하늘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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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에서 보이는 남해바다, 미조항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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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암-바위를 휘감고 자라는 송악이 눈길을 끈다.

 

쌍홍문 일대를 시작으로 정상으로 오를수록 천태만상의 바위들이 저마다의 전설을 내세우며 볼거리를 자랑한다. 비경의 반열에 제 이름을 당당히 걸고 있는 것만 38경, 하지만 금산이 품고 있는 바위는 38경 이상일 것이다.
쌍홍문을 빠져 나가면 길은 보리암과 상사바위방면으로 갈린다. 앞선 우리 일행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갈림길은 시장통처럼 사람에 밟힌다. 출발 당시 산대장님께서 산행지 소개를 할 때 시계방향으로 돈다고 했다는데 본인은 시계반대방향으로 알아듣고 보리암쪽으로 먼저 향하게 되었다. 버스에서 비몽사몽간에 잘못 알아 들은 모양이다. 이때부터 일행들과는 떨어져 산행 내내 독립군이 되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덕분에 좀더 자유로운 걸음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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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갈림길 이정표 - 오른쪽은 보리암, 왼쪽은 쌍사바위 방면이다.

 

쌍홍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5분 남짓이면 그 유명한 보리암이다. 양양의 낙산사,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알려져 있는 보리암은 , 관음보살에게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하지만 토요일 관광객, 등산객, 참배객이 붐비는 보리암은 이미 내 기억 속의 고즈넉하던 보리암은 아니다. 여느 유명관광지들처럼 이리저리 사람에 떠밀려 다닌다. 하지만 절 집에서 보는 풍광은 역시 최고였다. 일제히 남해바다를 향해 일어선 수많은 기암 괴석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사람들에게 떠밀려 절 집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감로수 앞에서는 습관처럼 목도 축여본다.


보리암은 원래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훗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열었다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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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보리암은 사람들로 붐빈다.-사진은 시계방향으로 해수관음전 뒤로 대장봉, 상주해수욕장, 보광전, 감로수
38경 중 제 3경인 '대장봉(大將峰)'은 그 모습이 웅장하고도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있어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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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 - 뒤로 화엄봉과 일월봉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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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상에서 본 상사바위 - 상사바위 우측부터 사자암,좌선대,제석봉,일월봉이 차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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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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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 전경

 

보광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대숲 옆 돌계단 길을 올라섰더니 기념품 판매점이다. 북곡주차장과 금산 정상으로 길이 갈리는 곳이다. 애초에 화엄봉을 경유하려 했는데 사람들 틈에 섞여 걷다보니 예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다시 보리암으로 내려가 범종 옆 산길을 따라 잠시 올라서면 화엄봉이다. 화엄봉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내려다 보이는 보리암의 모습은 한 폭 그림이다. 깍아지른 만장대 벼랑끝에 자리한 보리암은 최고의 명당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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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봉 오르기 직전 조망 좋은 곳에서 내려다 본 보리암- 다도해를 배경으로 한 최고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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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화엄봉에 올라 보리암을 내려다 본다. 사진 왼쪽 아래는 화엄봉 모습

바위 모양이 한자인 '화(華)'자를 닮았다 하여 '화엄봉'이라 한다는데

 

화엄봉을 지나 10여분 정도면 봉수대가 있는 금산 정상이다.(705m) 다도해를 굽어 볼 수있는 넓은 시야권을 제공하는 곳이다. 마침 공단직원이 설명을 하고 있어 봉수대와 문장암등 주변 풍경과 옛 이야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정상일대도 사람들로 가득하여 정상표석에서 인증샷 한번 남기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발 아래로 보리암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올라선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예전에 부둥켜 안고 찍었던 작고 앙증맞은 표석이 서 있는게 아닌가. 망대쪽에 새로운 표석이 있지만 예전 표식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있다니... 잊고 지내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한동안 고스락에서 이 바위 저 바위 옮겨 다니며 어슬렁거리다 사람들에게 쫒기듯 정상을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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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정상부 모습- 왼쪽 상하는 망대와 금산표석, 오른쪽은 문장암이다.
금산 38경 중 제 1경인 망대는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로 사용되었으며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라 적혀있다.
오른쪽 문장암은 조선시대 학자인 주세봉 선생이 "由虹門上錦山(유홍문 상금산;쌍홍문을 거쳐 금산에 오르다)"라는 글귀를 새겼다 하여 '문장(文章岩)'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일명 '명필바위'라 부른다. 지금도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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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예전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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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아래로 상주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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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겨 본 상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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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구 표석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대장봉과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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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천구봉 - 뒤로는 남해지맥

 

상사바위까지 능선으로 계속 이어지는 길은 넓고 편하다. 각 갈림길마다 든든한 이정표가 있으니 길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좋을 듯하다. 단군성전을 둘러보고 헬기장이 있는 갈림길에 올라섰더니 뜻밖에도 우리 일행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그들은 상사바위쪽을 돌아 오르는 길이라고 한다. 식사 후에는 부소암을 돌아보려고 한다는 귀뜸을 해준다. 사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부소암의 존재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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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성전-1995년에 재건립하였다고 적혀있다.

 

큰 기대없이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그냥 둘러보자는 심산으로 부소암쪽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길은 주등산로와 달리 사면을 따라 난 좁다란 길이다. 초입으론 "부소암 가는길"이란 이정표만 있을 뿐 거리표시를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가야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걷는다. 길은 한동안 내려선다. 이러다가 고도를 다 까먹는가 하는 조바심이 날 즈음.

두~둥~~~ 하면서 코 앞으로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나타난다. 구지 설명이 없더라도 그 바위가 부소암(扶蘇岩)이란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부소암은 사람의 뇌처럼 생겼다고 표현하고 있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멀리 다도해를 밑그림으로 깔고 있는 부소암의 전경은 소나무와 어울려 그윽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마치 이승과 천계를 연결해주는 철다리를 건너면 부소암에 대한 안내판이다. 안내판에는 중국 진시왕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 유배되어 살다가 갔다는 전설과 단군의 첫째아들 부소가 방황하다가 이곳에 앉아 천일기도를 하였다는 짧막한 글이 전부다. 부소암의 비범한 모양세나 풍경에 비하여 참 싱거운 이야기다. 아마도 분명 좀 더 깊고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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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암-법왕대라고도 한다. 사람의 뇌를 닮은 기이한 모습이다.

 

암봉을 270도 정도 애돌아 간다. 부소암 직전으로 두모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다.
녹쓴 철문을 밀고 돌계단을 올라서자 놀랍게도 거대한 바위벼랑을 등지고 아담한 암자 하나가 나타난다. 부소암(庵)이다. 즉, 부소암은 바위와 암자가 한 몸인 셈이다.
도대체 이 거대한 바위를 등진 까마득한 벼랑 위에 처음 절 집을 지은이는 어떤 이 였을까? 그리고 이런 천연의 요새 지역이 있다는 것은 어찌 알아냈을까? 이런 곳에선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득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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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를 애돌아 나가면 녹쓴 철문이 나타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지런한 돌계단 위로 다소 옹색해 보이는 암자 부소암이 거대바위를 등지고 나타난다. 인근 보리암에 비해 턱없이 초라한 모습이지만 몸과 마음은 더욱 경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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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마을과 노도가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고

 

기척을 보여도 암자는 고요하다. 스님은 출타를 하셨는가 보다. 주인없는 빈 뜰에서 혼자 어슬렁거린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찬바람이 남아있는 겨울 끝이지만 바위가 찬바람 막아주는 부소암 뜰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 그 햇살이 아깝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까워 염치불구하고 절 마당 평상에 앉아 점심상을 펼친다.

혼자 먹는 점심이지만 전혀 외롭지가 않다.
밥 한 숫가락에 반찬은 바다다. 또 밥 한 숫가락에 반찬은 산줄기에 기대어 있는 평화로운 두모마을이다. 반찬은 끝없이 많다. 건너편으로 길게 띠를 두른 암릉이며, 절 마당에 파릇하게 돗아 나는 새싹이며, 싱싱한 기상으로 자라는 소나무며,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감탄이다. 혼자놀기가 지겨워질 즈음 건너편 철다리에서 일행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그 소리에 나른한 봄날 낮잠에서 깨어난다.
부소암은 금산이 준 뜻밖의 선물이다. 훗날 금산을 기억할 수 있는 최고의 고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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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마당엔 옛 이야기를 전하듯 돌확이며 석대등이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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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길 벼랑 위 위태롭게 자라는 소나무가 있는 곳, 그 바위 뒤에 꼭꼭 숨겨진 부소암은 오랫도록 기억될 것이다.

 

다시 주능선으로 돌아오는 길. 사면으로 지름길이 보이길래 호기심으로 들어섰더니 그 길에서 뜻밖에도 얼레지 군락을 만났다. 아직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몇 날만 더 있으면 꽃대가 올라 올 것이고 지천으로 화려한 얼레지가 나그네를 유혹할 것이다. 혹 이번 산행에서 운이 좋으면 얼뜨기 봄꽃이라도 만나려나 기대했었는데, 얼룩무늬 꽃잎이라도 보았으니 아쉬움은 떨쳐버려도 섭섭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름길 사면을 따라 올라섰더니 부소암 갈림길이 있던 헬기장에서 약 50여m 떨어져있는 또다른 헬기장으로 접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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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암에서 돌아오는 길, 운좋게 얼레지 군락을 만나다.

언제 내렸을지 모를 옅은 눈 속에 피어나는 얼룩무늬가 애처롭지만 몇 날만 지나면 그 화려한 춤사위를 벌일 것이다.

 

이후 다시 번잡해진 길을 따라 상사바위에 선다. 안내판에 따르면 조선조 숙종대왕시절에 전라남도 돌산지역 사람이 남해에 이거하여 살았는데,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과부에게 반하여 상사병에 걸려 사경을 헤메게 되었다. 남자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아름다운 과부가 이 바위에서 남자의 상사를 풀었다 하여 이 바위를 상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흔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상사암은 금산에 있는 바위 중 최고로 규모가 큰바위이고, 최고의 조망터로 알려져 있다. 발 아래로는 은모래로 유명한 상주해수욕장 펼쳐지고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이 귀양살이를 했다는 노도가 두모마을과 한 몸처럼 보인다. 그 오른편으로는 앵강만 건너로 설흘산도 가깝다. 빤히 보이는 보리암 방면으로는 저마다의 사연과 전설을 품고 있는 바위들이 기묘한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못다 이룬 사랑의 아픔을 가진 사람이 상사바위 벼랑 끝에 선다면 그 사랑에 겨워 어떤 극단의 충동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사랑의 아픔을 가진자여 부디 상사바위 벼랑 끝에는 서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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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바위 가는 길에 건너다 본 금산의 바위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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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옹종하게 모여 있는 제석봉 뒤로 보리암을 당겨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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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와 같이 생겼다 하여 향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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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봉 오른쪽 끝으로 상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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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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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바위에서 본 상주 해수욕장- 물고인 바위확은 상사바위 전설에 나오는 구정봉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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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마을과 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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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대 건너로 앵기만과 설흘산

 

상사암에서 금산매표소쪽으로 원점회귀를 위해선 다시 쌍홍문쪽으로 돌아와야 한다.
상사바위쪽에서 보는 금산은 말 그대로 만물상이다. 정상부 아래로는 화엄봉, 일월봉, 제석봉,향 로봉이 줄을 이으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각각의 바위를 이동하며 다른 각도에서 보는 맛도 각별하다.


특히 인상적인 곳은 제석봉 인근의 금산산장이다. 국립공원내에 이렇듯 숙박과 먹거리를 제공하는 사유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80 년대쯤으로 되돌아 온 느낌이다.
국립공원의 고압적인 규칙의 테두리가 철망을 치지 못하는 치외법귄 지역, 금산산장은 금산의 소도에 해당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막걸리 파전냄새 풍기는 산장이 밉기는 커녕 오히려 정감이 간다. 만약 혼자가 아니었다면 막걸리 한 사발 청해 느긋하게 풍광에 취한 막걸리 잔을 주거니 권쿼니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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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봉에서 본 금산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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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봉에서 일월봉과 보리암

 

쌍홍문을 빠져나와 주차장을 내려오는 길은 여전히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이다. 4시간 남짓한 짧은 산행에서 너무 욕심 내서 많은 것을 보고 온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 잊어도 부소암에서의 기억 하나만으로도 대만족이다.
다시 올려다 본 금산. 이제 막 꽃망울를 피우기 시작하는 주차장 쉼터 목련 너머로 상사바위가 하얗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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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쉼터에서 다시 올려다 본 금산-우측이 상사바위

목련이 활짝 피었을때 보면 환상적인 그림이 되지 않을런지...

 

*2014.3.15(알프스)
*흔적:금산탐방지원센터-쌍홍문-보리암-부소암-상사바위-제석봉-쌍홍문-원점(6.4km/4시간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