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국사골-굴바위-탁자바위-부석-사자봉-금오봉-용장사지삼층석탑-설잠교-용장리(2014.9.2)

보름만에 다시 남산을 찾는다. 동남산쪽의 국사골로 올라 서남산쪽인 용장사지로 내려서는 짧고 단순한 길이다.

비록 짧은 길이지만 그 길 속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국사골은 두어번 오르내린 기억이 있다. 국사골이나 바로 옆 지바위골은 예전 무속인들의 흔적이 도처에 있었는데, 국립공원측에서 정리를 한 후 확연하게 달라져 있는 모습이다.


국사골(國師谷)은 동남산에서 세 번째로 큰 골짜기로, 그 길이가 1.2km쯤 되는 비교적 긴 골짜기로 여러 절터와 함께 고깔바위, 남산 부석, 상사암 등의 바위들이 있다. 산행후 국사골의 정확한 유래를 알기 위해 찾아보았더니 대구일보의 기사내용에서 삼국유사에 기록된 국사골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사(實際寺)의 스님 영여(迎如)는 그 씨족은 알 수 없으나, 덕과 행실이 모두 높았다. 경덕왕(景德王)은 그를 맞이하여 공양하고자 사신을 보내어 그를 불렀다. 영여가 대궐에 가서 의식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니, 왕은 사신을 보내어 절까지 전송하게 하였다. 영여는 절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숨어버려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사신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알리니, 왕이 그것을 이상하게 여겨 국사로 추봉(追封)하였다. 그 이후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으니, 지금에 이르러 그 절을 국사방(國師房)이라 칭한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5(卷 第五) 제8 피은(避?第八) 영여사(迎如師) -

국사골 오름길에서 잠시 땀을 흘렸지만 이후 능선에서는 시종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없이 좋았던 하루였다.
짧은 길을 네시간 남짓 어슬렁거렸으니 꽤나 여유있게 걸었던 길이다.
금오봉에서 용장사지로 내려서는 길엔 도토리가 지천으로 깔려있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올 봄 이 길가로 진달래 흐트러지게 피어있었는데, 벌써 계절은 가을 옷을 갈아 입고 있는 중이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젠 나이가 들어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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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 - 통일전주차장 바로 옆에 있다.

 

“서출지의 내력”

 

삼국시대의 연못으로, 경주 남산 기슭에 자리한다. 신라 제21대 소지왕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이 연못은 경치도 좋지만 전해 오는 이야기로 더욱 유명하다. 488년 신라 21대 소지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천천정(天泉井)에 행차하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어대며 사람처럼 말을 했다. 이상히 여긴 임금은 장사 한 사람을 시켜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장사는 까마귀를 따라서 피촌(또는 양피촌) 못 가까이 왔는데, 그곳에선 두 마리의 돼지가 무섭게 싸우고 있었다.

 

장사는 그만 돼지 싸움을 구경하느라 까마귀가 간 곳을 놓쳐 버렸다. 임금님의 명령을 거역한 장사는 당황하여 이 못 가를 돌며 까마귀가 간 곳을 어떻게 찾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이 때 못에 큰 물결이 일더니 못 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장사를 불러 봉투에 든 글을 주면서, 그것을 임금에게 전하라 하고는 다시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장사가 돌아와서 임금에게 그것을 바치니 봉투에는,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 보지 아니하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씌어 있었다. 소지왕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은 일이라고 생각하여 열어 보지 않기로 하였다. 이 때 나라 일을 예언하는 일관이 아뢰었다.

 

"한 사람이라 함은 임금님이옵고, 두 사람이라 함은 평민을 가리키는 것이오니 열어 보시는 것이 옳을 줄 압니다." 여러 신하들도 일관의 말이 옳다 하고 열어 보기를 간했으므로 왕도 그럴 듯하여 봉투를 열어 보았다. 봉투 속에는 '사금갑(射琴匣)'이라 씌워 있었다. 거문고가 들어 있는 상자를 활로 쏘라는 뜻이다.

 

왕은 급히 대궐로 돌아와서 왕비의 침실에 세워 놓은 거문고가 든 상자를 겨누어 화살을 날렸다. 쿵! 화살이 금갑에 박히자 금갑 속에서 끔찍스럽게 붉은 피가 흘러 나왔다. 왕실 내전에서 불공을 보살피던 중이 왕비와 통하고는 임금이 나간 뒤에 금갑 속에 숨어 있다가 왕을 해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왕비가 사형 당하니 두 사람은 죽고 왕은 위기를 면해 살게 되었다.

 

이 날이 바로 정월 보름날이었다. 임금은 이 날을 기념하여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집집마다 오곡밥을 조금씩 떠서 담 위에 얹어 까마귀와 까치를 위하게 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매달 첫 돼지 날과 첫 쥐날, 첫 말 날에 모든 일을 조심하고 어디로 나가는 것을 삼가는 풍습이 생겼다 한다.

이 못은 그 후부터 서출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 서출지는 이곳에서 약 400m남쪽에 있는 탑 마을에 있는 양피 못이라 한다.

=== 출처: Daum 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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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에 있는 "이요당(二樂堂)"

조선 현종 5년에 임적이 지은 소박하고 아담한 정자로 서출지와 어울려 멋스러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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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를 지나 무량사 앞을 지난다.

무량사는 서출지 옆에 있는 절집이지만 옛날 서원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원래는 이요당의 소유자인 풍천임씨의 종가집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면서 1972년부터 무량사란 절집으로 변했다고 한다. 법당으로 쓰고 있는 건물은 400년이 넘은 건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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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동 마을을 지나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서면 남산 지킴터를 만난다.

오늘은 천년미소 38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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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골 입구에 있는 탐방로 안내판 - 여기서 "남산부석 1.3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국사골을 따라 올라 금오봉을 지나 용장골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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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버섯 - 국사골에선 각양각색의 버섯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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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발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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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바위

국사골 계류를 오른쪽으로 두고 완만한 경사길을 올라 대숲을 통과하면 집채만한 바위에 자연굴이 있는 굴바위를 만난다. 예전 절터였다고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굴 속에는 무속인들의 흔적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는데, 지금은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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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위골과 국사골 갈림길이 있는 능선상 이정표

굴바위를 지나 지그재그 오름길을 10여분 올라서면 닿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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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능선에 있는 탁자바위 -바위 상단부가 넙쩍하여 여럿이 앉아 식사하기 좋은 곳이다.

지바위골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은 부석능선으로 기이하고 큰 바위들이 있어 일명 만물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는 바위를 하나 하나 발고 올라섰지만 지금은 길을 막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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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바위에서 건너다 본 부석

부석은 경주팔괴의 하나로 남산부석 또는 부처바위, 버선바위라 부르는 바위다. 부처의 머리를 닯은 바위가 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부석(浮石)이라 부른다.

남산부석은 버선을 벗어 거꾸로 세워둔 모양이라 버선바위, 스님의 머리를 닮아 부처바위로도 불린다. 이렇게 괴상한 바위들을 둘러싸고 많은 바위들이 천태만상으로 솟아 있어 남산의 만물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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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능선에서 건너다 본 국사골 상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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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쪽에서 본 만불상과 뒤로 토함산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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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에서 본 고위봉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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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터에서 본 보문단지쪽과 동대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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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관광일주도로 기념비가 서 있는 사자봉 정상

예전 박통시절 내남교도소 죄수들을 동원하여 포석정~통일전에 이르는 일주도로를 개통했다고 한다. 비문의 글씨는 잘 보이지 않지만 1966년 개통되었다고 하니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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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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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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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 삼층석탑 - 뒤로 쌍봉능선과 고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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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저 뒤로 영남알프스 일대가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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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아래 로프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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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 삼륜대좌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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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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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잠교 -설잠(雪岑)은 김시습의 법명

매월당 김시습은 이곳 은적골에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썻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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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골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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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머리 용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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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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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천년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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