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월산 왕의 길(신문왕 호국행차길)
*2014.5.5(천년미소)
*추원마을 입구-모차골-수렛재-불령봉표-용연폭포-기림사(9.2km/3시간)
연두가 짙어진 만큼 이미 계절은 깊어졌다. 아름답고 역동적인 5월의 숲은 이제 하늘을 가릴 만큼 짙어졌다.
이 좋은 계절 천년미소에 얹혀 1300년전 신라 설화가 살아 있는 신문왕 호국행차길로 활동을 나선다. 이 길은 경주 추원마을에서 모차골을 거쳐 수렛재, 불령을 넘어 기림사에 이르는 옛 길이다.
▲모차골 입구 왕의 길을 알리는 안내판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 장례식 때 화장한 뼈를 감포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에 안치하려고 갈 때, 그리고 신문왕이 부왕인 문무왕을 위해 완공한 감은사를 찾아갈 때도 이 길을 지나갔다고 한다. 사실, 오래 전 함월산 일대를 누빌 때만 해도 수렛재, 불령이란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능선 일대로만 길이 있었고, 좌 우 고갯길은 희미한 족적만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허나, 2011년 경주시와 국립공원이 이 옛길을 복원하며 신문왕이 행차했던 길이라 하여 등산로를 단장하고 스토리텔링화 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된 길이다. 처음에는 이 길을 신문왕 호국행차길로 불렀으나 지금은 "왕의 길"로 통한다.
추원마을 입구에는 주차 공터가 있고 주변으로 칡즙이며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간이 매점이 있다. 추령터널 입구에서 추원마을을 따라 들어가는 길은 차량 한대가 통과할 수 있는 정도의 길이다. 따라서 대형버스는 진입이 불가하다. 본격적인 왕의 길이 시작되는 황룡석불암까지는 약 2.5km의 차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승용차 이용시에는 추령터널 입구에서 백년찻집 방향으로 잠시 올라섰다가 왼쪽 추원마을로 들어서야 한다. 마을 안쪽 황룡약수 인근에 주차가 가능하다.
모차골로 올라서는 길은 곳곳에 "왕의 길" 이란 안내판이 있어 찾아가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도중에 황룡약수를 지나치게 되는데 모두들 한 모금씩 마셔 보더니 그 기괴한 맛에 당혹스러워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맛은 묘하지만 위장에는 좋다고 한다.
약수터를 지나 10 여분이면 길 양쪽으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석불을 만나게 되는데 본격적인 왕의 길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황룡석불암이다. 석불암은 이미 폐사된 듯 허물어져 가는 대웅전과 옹색한 요사채가 전부이다. 주인 잃은 쓸쓸한 암자 마당은 주차장으로 변해 있다. 암자 주변으로는 재미있는 형태의 석불들이 대 숲에 가려져 있다. 이곳에서 한동안 쉬어간다.
▲모차골을 따라 오르는 길은 온통 봄 꽃들의 천국이다.
숲 길을 걸으며 길 섶 작은 꽃들에 관심을 보이고, 그 이름을 불러주며 허리를 숙이는 일은 길에서 만나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신문왕 행차길을 알리는 안내판을 지나치자 아담한 계류를 이리저리 건너며 오른다. 길 섶으로는 미나리냉이, 애기똥풍, 쥐오줌풀, 광대수염, 졸방제비꽃등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숲은 5월답게 신록이 우거져 싱그럽기 그지없다. 꽃 향기 풀 향기에 취해 킁킁거리며 계곡 더 깊은 곳으로 빨려든다. 사실 모차골은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다만 옛 이야기를 따라 걸으며 그 의미를 새겨보는 길일 것이다.
모차골은 동해바다에 있는 문무왕릉을 알현하기 위한 신문왕의 마차행렬이 다닌 곳이다. 마차의 발음이 전이돼 모차골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 수없이 많은 사람과 수레들이 드나들던 골짜기 길은 완만하다. 문무왕에게는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와 나라를 위한 충성의 얼이 깃든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허나 그 왕의 길이 생업을 위해 이 길을 걸었을 민초들에겐 고달픈 애환이 길이었을 지도 모를 것이다. 지금도 골짜기 곳곳에는 집터의 흔적이 있는 축대며, 예전 화전을 일구며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석불암에서 쉬엄쉬엄 30분 이면 수렛재다. 수레가 넘나들었던 곳이라 한다. 고개 같지도 않은 고개인 수렛재는 예전 운토종주나 함월산 산행시 자주 지나쳤던 안부자리다. 지금은 떡허니 수렛재란 이름을 걸고 안내판이며 이정표가 번듯하게 붙어 있다.
수렛제 이후 불령까지는 처음 걷는 길이다. 길은 잘 정돈되어 있다. 목책도 가지런히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 옛 설화 속 이야기를 전해주는 안내판이며 숲 이야기를 들려주는 안내판이 함께한다.
길은 줄곧 계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깊 섶으로 숯가마터, 세수방 안내판도 지나친다. 세수방은 신문왕이 이견대 앞바다의 섬에서 동해 해룡으로부터 검은 옥대를 얻어 오다가 이곳에서 세수를 하며 쉬어갔다고 하는 곳이다. 세수방을 지나 산허리를 타고 올라서면 다시 고갯길로 불령봉표란 안내판이 서 있는 불령이다.
▲불령봉표
불령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이 부근에 이름을 모르는 절과 석불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 절은 사라졌고 이곳에 있던 석불은 기림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신라시대 불상제작시 잘못된 불상을 묻었던 곳이라도 한다.
불령재에는 특이한 볼거리가 숨겨져 있는데 바로 불령봉포다. 고개마루에서 기림사쪽으로 서너 걸음쯤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이 비석에는 '연경묘 향탄산인 계하 불령봉표(延慶墓香炭山因啓下佛嶺封標, 연경의 묘에 쓸 향탄 즉 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일반 백성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불령에 봉표를 세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연경은 효명세자를 가리킨다.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라 불리는 효명세자가 죽은 다음 해인 신묘년(1831)에 그의 묘에 사용할 제수에 필요한 경비를 기림사 일원의 산으로 정해 이 부근의 산에서 나오는 목탄을 생산해 충당한 것을 기록하는 유물이기도 하다.
왕의 길은 신라 신문왕시절의 이야기가 주된 주제가 된다. 허나 불령에 이르러서는 120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조선후기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지금부터 채 200년도 되지 않았던 이야기 이기도 하다.
불령에서 좌측 오름길은 함월산 방면이고 우측 능선길은 기림사 앞 계류까지 등산로가 연결된다. 불령을 넘어 얼마지 않아 도통골을 만난다. 이후 넓어진 신작로 같은 길을 따라 내려 오면 용연폭포를 만날 수 있다.(지형도에 따라서는 기림폭포로 표기되기도 한다)
용연은 폭포 아래 소를 일컷는 말로, 삼국유사에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은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신문왕은 용왕으로부터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어 돌아오는 길에 기림사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는데, 이때 태자 이공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는 “이 옥대에 박힌 모든 장식은 하나하나가 다 살아 있는 용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옥대의 장식을 떼어 시냇물에 담그니 곧 용이되어 하늘로 올라갔고 그 자리는 연못이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용연이라고 한다.
폭포는 탐방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목책을 넘어서야 제대로 된 폭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수원 보호구역을 이유로 계곡쪽 출입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폭포에 대한 궁금증으로 목책을 넘어서고야 마는 곳이기도 하다.
▲초파일을 하루 앞 둔 기림사
용연폭포를 지나면 오늘 걸음의 날머리인 기림사가 멀지 않았다. 넓어진 길을 따라 휘적휘적 걷는 사이 기림사 경내로 들어선다. 초파일을 하루 앞둔 절 집은 연등의 행렬이 하늘을 덮고 있다.
모차골에서 기림사로 이어지는 왕의 길은 옛 이야기를 더듬으며 걷는 웰빙 트래킹 코스다.
급한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으니 걷기에도 부담없는 길이다. 다행인 것은 아직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아 호젓하고 때묻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은 차량이용시 원점회귀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차량 이용자는 대부분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천년미소와 함께 한 왕의 길. 5월의 싱그러운 숲에서 봉사를 곁들인 웰빙 트래킹이다. 회비 만 원으로 점심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만원의 행복이 여기 있다.
▲추원마을 들어서는 입구
▲5월의 싱그런 향연이 한창인 초록의 길을 따라 걷다.
▲모차골을 따라 드는 길은 곳곳에 왕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어 쉽게 찾아 갈 수가 있다.
▲왕의 길에서 추원사 갈림길을 만난다. 호기심은 어느새 추원사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추원사 입구
▲추원사
추원사에서 왕의 길을 따르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미 저 만큼 앞서간 일행의 꽁무니를 쫓기 위해 추원사에서 계곡으로 내려서서 길 없는 가파른 비탈을 올라선다.
▲황룡약수
수량이 적어 물 한 모금 마시려면 한참을 받아야 한다. 물 맛이 기묘하다. 씁쓸, 짭잘...
▲자연향기 팬션
▲본격적인 왕의 길이 시작되는 황룡 석불암 입구
▲석불암에서 용연폭포까지는 3.9km
▲황룡석불암은 폐사된 듯 초라한 대웅전이 전부이다. 절 마당은 주차공터로 활용되고 있다.
▲황룡석불암 대웅전 - 문이 잠겨져 있어 틈새로 들여다 본 내부는 유리로 천장을 만들어져 있었고, 내부는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 찬 창고로 변해 있다.
▲석불암 뒤편으로는 다양한 모양의 석상들이 숲 속에 여럿 숨어 있다.
▲신문왕 호국 행차길을 알리는 안내판
▲숲 길을 잠시 따라 들어가면 계류를 건너는 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모차골을 따라 드는 계곡은 물 길을 수도 없어 건넌다.
▲길에서 아름드리 산뽕나무를 만난다. 그 뽕나무 높은 곳에 버섯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들 상황버섯이라고...
허나 너무 높은 곳에 있어 그림의 떡이다.
▲뽕나무는 기이하게 몸을 비틀며 자라고 있다.
▲수렛재 - 설화 속 옛 이야기를 들으며 한동안 쉬어간다.
▲수렛재에서 불령으로 내려서는 길 - 수렛재에서 불령까지는 걸어보지 못했던 길이다.
▲세수방 안내판
신문왕이 이견대 앞바다의 섬에서 동해 해룡으로부터 검은 옥대를 얻어 오다가 이곳에서 세수를 하며 쉬어갔다고 하는 곳이다.
▲길에서 만난 꽃들과 노닥거리다.
광대수염, 벌깨덩굴, 으름꽃, 졸방제비꽃
▲불령봉표가 있는 불령에서 기림사로 내려서는 길
▲용연폭포
▲기림사로 내려서는 길에도 신문왕 호국행차길을 알리는 안내판
▲5월의 싱그런 숲이 무조건 좋다.
▲딸기꽃도...
▲기림사 직전 운치있는 정자 - 정자 앞으로 작은 연못이 있다. 그 연못엔 연이 자라고
▲초파일을 하루 앞둔 기림사
▲초파일을 하루 앞둔 기림사
▲감로수
▲어느 보살님이 꽃 장식을 하고 있길래 양해를 얻어 한 컷
▲향기 없는 불두화
▲삼층석탑은 연등에 묻혀있고
▲기림사 범종루
▲기림사 구항루
▲기림사 일주문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