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당당한 산, 있을건 다 있다 - 홍천 팔봉산

 

*일시:2011.9.23(한마음, 29명)
*코스: 팔봉산유원지 주차장-매표소-1봉-8봉-강변로-주차장(3.5km/4시간)


  홍천 팔봉산은 규모는 작지만 강과 산과 바위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산이다.
해발 고도가 불과 300m를 조금 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100명산에 당당히 제 이름을 걸고 있으니 당차기도 하다. 1봉에서  8봉까지 여덟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산행거리는 불과 3.5km가 고작 이지만 산행시간은 예측하기 어려운 산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날이면 두세 시간 정도면 족하겠지만 주말이나 휴일이라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워낙 유명한 산이고 찾는 이들이 많은 관계로 산길에서의 정체가 예상되고 강 아래를 굽어보는 풍광이 너무 좋아 조망하는 시간에 따라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날 것이다. 팔봉산처럼 강을 가까이 끼고 산행을 항 수 있는 산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팔봉산 유원지 주차장에서 코 앞으로 보이는 팔봉산 - 여덟 형제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palbong2_02.jpg  암릉이라 위험할 법도 하지만 곳곳에 안전산행을 돕는 발판과 철난간, 계단등의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으니 약간의 주의만 기울인다면 초보자도 무난히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가 가까워 10분 안팎이면 다음 봉우리에 닿는다. 작은 규모이고 보니 체력적인 부담도 크지 않고 각 봉우리마다 우회로가 있고 중간중간  홍천강변으로 하산로가 열려있으므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하산이 가능하다.
산행코스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1봉~8봉까지의 외통수 능선이다. 반대로 진행시는 암릉구간에서의 교행시 정체가 예상되므로 역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여덟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재미사 솔솔하고 풍광 또한 일등급이니 웰빙산행으로는 최적일 것이다.

포항에서 팔봉산유원지 주차장까지는 다섯 시간이 소요되었다. 꽤 먼 거리다. 예전 같았으면 더 소요되었겠지만 중앙고속도로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어유포교를 건넌 너른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아담하게 볼록볼록 솟아 오른 산이 팔봉산이다. 여덟 개의 봉우리가 죄다 코 앞에서 보이니 소문과 달리 만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음만 먹으면 한 두 시간만에 후딱 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얕잡아 보기 십상이다. 허나 막상 산에 발을 들여 놓고서야 그리 호락호락한 산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실감 난다. 적재적소에 설치된 안전시설물이 없다면 엄두도 못 낼 산이다.

팔봉교-팔봉산의 관문이 되는 팔봉교를 건넌 후 매표소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palbong2_03.jpg

   휑하게 비어 있는 주차장에서 홍천강을 끼고 10여분 남짓이면 팔봉교를 건너 팔봉산 매표소 앞이다.
매표소 옆으로는 팔봉산장이 자리하고 있다. 매표소에서는 인당 1500원의 거금을 징수한다. 30명 이상의 단체는 할인하여 1000원이다. 산악회측에서는 단체표를 끊는다. 산행인원은 29명 이지만, 단체표가 경제적이란다. 햐~~ 머리좋다.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었지만 산행을 하면서 위험한 곳에 설치해 놓은 시설물들의 도움을 받고 보니 그 정도의 부담은 타당하다고까지 여겨진다. 매표소엔 남근목이 입구를 떡허니 차지하고 있다.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지만, 기념촬영을 하며 추억을 남기는 일행들은 마냥 즐거움이다.

  매표소 등산로 입구를 따라 작은 개울을 지나는 철다리를 넘어 서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초입부터 가쁜 숨을 연신 토해낸다. 주변으로 야생화들이 유혹하지만 저질체력은 앞 사람 꽁무니 따라 가기에만 급급하다. 10분 가량 올라서자 구세주같은 휴식터가 나타난다. 엉덩이 붙이고 털썩 주저앉아 냉수만 벌컥벌컥 마신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게을러지는 일상으로 배는 나오고 몸은 점점 무거워진다.ㅎ
쉼터에서 길은 둘로 갈린다. 곧바로 급사면으로 오르는 길과 왼편으로 에둘러 가는 쉬운길 팻말이 각기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두 길은 10여분 후 능선 바위길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만난다.
왼편 쉬운 길을 택해 일행 중 맨 꼴찌로 선다. 한 템포 늦춰 걸으니 비로서 숲이 보이고, 길이 보이고, 꽃도 제대로 보인다. 세상사 마음만 앞서서 될 일이 없다. 몸이 가는 길과 마음이 가는 길이 하나가 될 때야 비로서 내 길이 되는 것이다.

  다시 한 차례 올라서서 1봉 직전에서 갈림길이다. 왼편은 1봉 우회하는 길, 오른쪽 길을 따라 1봉을 향한다.
가파른 바윗길을 로프에 의지해 오르면 첫 번째로 만나는 봉우리다. "팔봉산 1봉"(278.8m)을 알리는 빗돌이 반갑다. 왼편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고 동쪽 건너로 금학산(654.6m)이 우뚝하다. 남쪽 멀리로는 대명스키장의 슬로프까지 보인다.
돌탑 쌓인 노송 아래서 조망을 핑계로 한참을 쉬어간다. 보온병에 든 복분자 액기스 한 잔이 감로수처럼 달다. 힘이 불끈 솟는 듯 하다. 새벽녘 잠 설친 아내가 마련해 준 고마운 선물이다.

  쇠발판과 난간을 잡고 조심스럽게 1봉을 내려선다. 밧줄과 쇠파이프로 위험구간에서 안전을 확보해 준 손길에 고마움을 느낀다. 안부에서 다시 2봉 우회로를 버리고 곧장 오른다. 1봉에서 채 20분이 되지 않아 칠성각과 삼부인당이 있는 2봉(327m)이다. 팔봉산 여덟 봉우리 중 최고로 높은 곳이란다. 지나온 1봉이 빤하고 굽이도는 홍천강 푸른 물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인다. 진행방향 바로 앞으로는 근사한 모습의 3봉이 마주 보인다. 앞선 일행들은 이미 3봉 고스락에 진을 치고 있다.
2봉은 주변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져 풍광은 최고로 치닫는다. 벌어진 입에선 연신 감탄사만 내 뱉는다.

palbong2_04.jpg◀3봉에서 건너다 본 2봉의 삼부인당

  2봉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칠성각은 "팔공후토신령" 과  "칠성칠군"의 위폐를 모신 작은 당집이다. 그 뒤로 있는 삼부인당은 시어머니, 며느리, 딸의 위폐를 모신 곳이다. 400년 전부터 팔봉산 주변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풍년과 평온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매년 이곳에서 제를 올리고 굿놀이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산 정상부에 당집이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지만, 이런 풍광 좋은 곳에서 기도한다면 기도빨이 절로 먹힐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2봉에서 내려와 재난방지 통신시설이 있는 안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2봉과 3봉 사이 쉼터가 마련된 안부를 지나면 곧 우측으로 강변로로 내려서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철계단을 올라서서 만나는 3봉(325.3m)은 팔봉산 여덟 봉우리 중 최고로 장쾌한 조망을 자랑한다. 우뚝 선 장군바위를 비롯해 홍천강과 어우러진 주변 산자락 모습이 가장 드넓게 펼쳐지는 곳이다. 돌을 던지면 바로 강물에 퐁당 빠질 듯 홍천강이 발 아래다.

  4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팔봉산의 명물인 "해산굴"을 통과하여야 한다. 사람 하나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수직 바위굴로 안내판에는 산모가 아이를 낳는 것만큼 힘이 든다 하여 해산굴이라 하며 이 굴을 많이 통과할수록 오래 산다고 하여 "장수굴" 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바위굴을 통과하는 시간이 더디다 보니 일행 모두가 통과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소요되었다.
이 작은 산에 인파가 몰리면 정체가 빗어지는 구간이다. 해산굴 직전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으므로 정체시에는 그 길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차례를 기다려 해산굴을 통과하는 재미는 새삼스러웠다. 베낭을 맨 채로는 통과하지 못하므로 앞 사람에게 굴을 통하여 먼저 올려 보내고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발을 이용하여 몸을 밀어 올려야 쉽게 통과할 수 있다. 해산굴을 통과했으니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ㅎㅎ
3봉의 장군바위가 남성의 상징이라면 4봉의 해산굴은 여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3봉에서 내려다 본 홍천군 서면 팔봉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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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굴을 빠져 나와 몇 걸음이면 4봉(320.2m)이다. 4봉 역시 전망이 뛰어나다. 유유히 굽돌아 흐르는 홍천강은 어느 자리에 서나 팔봉산의 밑그림이 된다.
4봉을 내려서는 바위 사면길로 접어들면 곧 해산굴을 우회한 사면길과 만나고 안부 지나 철계단을 올라서면 5봉(310.7m)이다. 정상부는 날카로운 바위들이 있어 여럿이 쉬기에는 부족하지만 조망만큼은 여느 봉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 5봉을 알리는 빗돌은 보이지 않고 받침돌로 사용했던 시멘트 기둥의 흔적만 남아있다.
5봉에서 연이어진 철계단을 따라 안부자리로 내려서면 다시 홍천강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다. 이 안부에서 밧줄을 잡고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면 6봉(288.8m). 6봉을 내려서다 보면 작은 무명봉에 도착하게 되는데 바로 앞으로 수직에 가까운 습랩성 벼랑을 이룬 7봉이 매끈하게 보인다. 이곳 역시 조망이 뛰어난 곳이지만 제대로 된 봉우리 대접을 못받고 있는 곳이다.

다시 밧줄에 의지해 하산하다 보면 7봉 우회로를 지나 철계단이 설치된 암봉을 올라서면 7봉(277.7m)이다. 발 아래로는 출발했던 주차장이 빤하게 내려다 뵌다.
하나하나 세어가며 암봉을 넘다보니 벌써 일곱 봉을 지나고 이제 마지막 한 봉우리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힘들게 오르내렸던 기억은 잊고 다소 아쉬운 마음까지 든다. 그만큼 암봉을 오르내리는 재미가 각별했음이다.

▼7봉 노송 아래 쉼터에서 내려다 본 홍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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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봉에서 밧줄에 의지해 내려서다 보면 저 앞으로 팔봉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8봉이 소나무와 어우러져 아담하게 건너다 보인다. 팔봉산의 여덟 봉우리들은 고만고만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유독 7봉과 8봉 사이는 간격이 넓은 편이다.
재난방지 방송시설이 있는 봉우리 왼쪽을 지나 밧줄과 발판을 이용하여 내려간다. 7봉~8봉 사이의 안부자리에서 8봉을 오르지 않고 강변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에는 경고판이 붙어 있다. 8봉은 팔봉산 등산로 중 가장 험하고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코스이니 경험이 없는 사람이나 부녀자 노약자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하산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8봉은 예전 하산로 구간이 급경사 구간으로 위험하여 잘 오르지 않았다지만 최근에는 안전한 발판이 마련되어 있어 크게 위험하지 않은 편이다.

  갈림길에서 거의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과 로프를 타고 10여분이면 마지막 봉우리인 8봉(232.4m)이다. 여덟 봉우리 중 가장 키가 작은 막내지만 경관만큼은 여느 봉우리에 뒤지지 않는다. 동쪽으로 홍천강, 팔봉교, 팔봉산유원지 주차장이 훤히 드러난다. 강바람 불어오는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여덟 개의 봉우리를 넘어 온 스스로에게 대견해 한다.
팔봉산 산행의 특징은 한 봉우리 한 봉우리 급경사 구간을 오르고 내리며 숫자를 세어가는 재미도 한 몫한다. 나처럼 건망증이 심한 사람을 위해 각 봉우리마다 순서대로 정상표석이 있으니 몇 개의 봉을 넘어 섰는지 궁금하다면 답은 다음 봉우리에 있다.

▼8봉 내림길의 전망대에서 본 홍천강과 팔봉산 유원지 주차장. 멀리로는 금학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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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봉에서의 강변까지의 하산길 여느 봉우리에 비해 더욱 거칠고 가파른 편이다.
내림길 중 홍천강과 팔봉교, 주차장 일대가 훤히 보이는 전망터가 있다. 전망터 이후로 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쇠발판과 손잡이 고리에 몸을 의지해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긴 내리막이지만 안전시설물 덕분에 명성만큼 그리 큰 위험부담은 느끼지 못했다.
20여분 조심스럽게 내려가 마지막 계단길을 통과하면 드디어 홍천강변이다.

  지난 여름 왁자했을 법한 홍천강은 고요하다.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을 즐겼던 자리로는 하얀 모래톱과 잔 자갈들만 햇빛을 반사하며 하얗게 빛난다. 그 하얀 빛이 문득 쓸쓸해 보인다.
허리까지 잠기는 물 속에서 낚시에 몰두해 있는 한 사람의 태공과 자맥질하며 다슬기를 줍는 중년의 한 사내를 제외한다면...

  잔잔히 흐르는 옅은 물살이 오후의 역광에 은빛으로 반짝인다. 이제 산행의 마무리를 위해 물길따라 강변길을 걷는다.
기우뚱거리는 구름다리를 지나고 최근에 설치한 듯한 철판길이 편하다. 도중에 기이하게 튀어나온 바위터럭 아래를 지난다. 세월과 물이 합작하여 만들어 낸 작품이 아닐런지. 길섶으론 구절초, 쑥부쟁이, 노란물봉선이 한창이다.
앞선 일행들은 발품을 줄일 요량으로 강을 건넌다. 신발을 벗어들고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린 채 홍천강을 건너다.
그 평화롭고 서정직인 도강은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팔봉산을 기억할 만한 대표 밑그림으로 남을 것이다. 매표소까지 되돌아 와 팔봉교를 건너는 내내 강변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강물과 함께 윤슬처럼 빛난다.